회의를 마친 전장연(준) 소속 활동가들은 일정체크에 여념이 없다. |
그 절실함에 귀를 막은 우리사회의 냉소가 섬뜩해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이하 전장연(준)) 소속 중증장애인 50여 명이 휠체어에서 내려 한강대교 북단부터 노들섬까지 기어서 행진했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오페라하우스 건립부지로 예정한 노들섬까지. 무슨 얘기만 했다하면 예산 운운하는 정부의 얄팍한 잇속을 헤치고 장장 8시간의 행진을 이어갔다.
운동이 삶의 현실을 대변한다
장애운동진영의 투쟁은 활동보조 제도화 투쟁에서 보이듯이 그 강도가 거세다. 성람재단비리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전면개정을 위한 공동투쟁단(이하 성람공투단)은 종로구청 앞에서 2006년 7월부터 12월 15일까지 143일간 천막생활을 했다. 그 가운데 11월 차가운 빗속에서 시설 비리를 끝장내기 위한 48시간 연속 삼보일배가 있었다. 삭발투쟁과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농성 그리고 다시 농성과 삭발… 이 강도 높은 투쟁 속에 전장연(준)이 있다. 투쟁 강도가 너무 센 거 아닌가 조심스레 물었다. “7, 80년대의 노동운동 같은 분위기죠. 그건 지금 장애계가 처한 수준이 딱 그 때 노동자들의 처지와 같다는 얘기죠.” 조성남 사무처장의 대답에 비장함이 묻어난다. 민주화 운동을 거쳐 일정수준의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탓에 그리고 운동을 둘러싼 여러 사회적 조건들이 달라진 탓에 극단적인, 절체절명의 투쟁방식들은 거의 사라졌다. 뒤집어 말하면 장애인들은 2, 30년 전을 살고 있으며 눈부신(?) 사회발전에서 비껴서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때보다는 낫다고 위로하기엔 그 위로가 너무 비루하다. 그야말로 운동의 수준과 정도가 삶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 장애운동연대체로 거듭나다
전장연(준)의 시작은 2001년 서울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추락참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고가 있고나서 장애인 및 교통약자들에 대한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장애인이동권쟁취를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가 구성됐다. 이동권연대는 교통약자들에 대한 차별을 알려나가며 ‘장애인이동권확보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4년의 활동을 통해 2005년 1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정을 일궜다. 그리고 법의 제정과 함께 이동권연대는 해소됐다. 이동권연대가 활동하던 2004년 활동가들은 보다 상시적이고 진보적인 운동체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이동권, 교육권 등 각 부문의 영역싸움이 많아지고 회의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연대체의 정체성과 효율성의 문제도 대두되었다. 이에 2005년 1월 노들장애인야간학교, 한국자립생활네트워크를 비롯한 단체들은 진보적 장애운동연대체 건설에 대한 준비모임을 진행했다. 이후 광주.전남, 울산 등 지역 간담회가 발 빠르게 진행되었다. 각 지역에는 420투쟁 단위가 있었고, 이 단위가 지역을 꿰는 보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7월 제1회 전국장애운동활동가대회에서 진보적 장애운동연대체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준비위원회의 깃발을 올렸다. 진보적 장애운동? “아래로부터의 현장투쟁을 통해 장애인의 권리를 쟁취하자! 부문운동에 그치지 말고 사회변혁운동과 같이해야 한다는 거죠.” 한 마디 한 마디 조 사무처장의 말 속에 전사의 투지가 배어난다.
지역과 사안을 관통하는 연대체
전장연(준)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적, 사안별 집합체라는 것이 아닐까. 우선 서울, 부산, 인천, 광주, 충북, 경남, 경기 지역에는 각 지역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단위들이 있다. 각 지역 장연들은 420투쟁을 비롯해 다양한 현안들에 대해 독립적으로 때로는 연대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아직 지역조직 체제가 구성되지 않은 대구, 대전, 울산, 충남, 강원 지역은 꾸준히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전장연(준) 사무실을 찾은 날도 회의를 마친 활동가들은 ‘0일은 대전, 0일은 강원방문’ 간담회 날짜 체크에 여념이 없었다. 올해는 근 2년 동안을 달고 온 ‘준비위원회’를 떼어버리고 정식으로 출범할 계획으로 지역조직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안별로 보면 전장연(준)은 자립생활,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시설민주화 등을 주제로 한 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곳은 자립생활위원회 뿐이다. 이동권 위원회의 경우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정된 후 관심이 멀어진 상태, 시설민주화 투쟁의 경우도 성람공투단이나 정립회관민주화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의 활동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해당 각개 투쟁이 종료되면 활동도 수그러든다. 각 케이스의 사안이 전체적인 시설운동에 반영, 확대되지 못하고 위축되고 말다니. 그 많은 열정과 고생이 다음을 위한 씨앗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장애인의 날?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
조성남 사무처장 |
4월 20일, 달력엔 ‘장애인의 날’이라고 쓰여 있다. 전장연(준)은 코웃음을 날린다. 그리곤 분명하게 말한다. 시혜와 동정의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권을 쟁취하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이를 위해 매년 ‘장애인차별철폐투쟁기간’을 설정, 전국에서 지역 장연을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장애인차별철폐투쟁기간의 시작은 장애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최옥란 열사의 기일인 3월 26일 ‘장애인대회’로 시작해 노동절의 노동자대투쟁에 참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2007년 420은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한 입법쟁취!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한 사회권 권리 확보!’를 슬로건으로 9개의 공동투쟁 정책요구안을 제시하고 있다.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조례 제정 ▲활동보조인서비스의 권리성 강화 ▲장애인 소득 보장 ▲장애인 노동권 확보 ▲장애인 주거권 확보 ▲탈시설 권리의 보장 ▲장애인지역사회 서비스 확대가 그것이다. 무엇보다 올해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과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이 최우선 과제다. 현재 사회복지사업법의 공익 이사의 비율이 애초의 1/3에서 1/5로 밀린 상태다. 조 사무처장은 “누군가 들어가면 의사결정구조를 바꾸지는 못해도 이사회 안의 정보를 알 수는 있지 않겠어요.”라며 아쉬움을 표한다. 특수교육진흥법에 포함된 교육문제는 “장애인교육지원법”이라는 새 틀에 담았다. 그리고 지난 13일 장애인교육권연대는 장애인교육법제정을 위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부산을 시작으로 “남도에서 서울까지! 가자! 국회로”를 슬로건으로 각 지역을 순회하며 장애인교육차별철폐를 위한 의지를 모아오고 있다.
장애운동의 역사를 새로 쓰는 전장연(준)
2006년 삭발과 중증장애인들의 한강대교 행진 그리고 국가인권위 점거농성, 천막농성. 어떤 사회적 권리도, 가진 것도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은 모두 동원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장애인복지법 전부개정’과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제정이라는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 장복법에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활동보조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도록 한 근거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중증장애인들의 염원이었던 자립생활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장차법은 장애를 사유로 한 차별의 예방·조사·시정조치 등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내 장애인차별시정소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시정권고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당한 사유 없이 시정권고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 법무부 장관이 차별행위자에 대하여 시정을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장애인차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나마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기쁨 속에 일궈가야 할 가시밭(?)길이 수면으로 드러난다. 올바른 장차법의 정착과 시행을 위한 시행령을 만들어야 하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활동보조 서비스 자부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외에도 중개기관선정의 문제, 활동보조인을 위한 교육기관과 교육비를 누가 부담하는지의 문제 등… 시행착오 속에서 다듬어질 것을 각오하고 있다. 이 뿐인가? 2013년까지 저상버스 50% 도입이라는 중앙정부의 지침을 지자체가 받지 않아 양측 간 핑퐁게임이 진행 중이다. 한동안 신경을 못 쓰고 있지만 노동문제도 있고… 그래서인지 장복법 개정안과 장차법 제정이라는 금자탑 앞에서도 조 사무처장은 짐짓 무거운 표정이다. 그러나 의지와 투지로 일궈온 길이다. 역사를 만들어온 전장연(준)이 아니던가.
2007년 전장연(준)은 장애운동의 실질적 중심체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모든 지역과 사안을 전장연이라는 큰 틀 속에 묶어 상호 유기적이고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연대체로. 그런데 그 전에 해결하고 가야 할 문제도 하나 있다. 2006년의 투쟁은 성과와 함께 1억 원이라는 벌금을 남겼다. “420 끝나고 활동가들이 들어가서 몸으로 때울까 해요.” 조 사무처장이 공허하게 던지는 말이다. 단체회원과 개인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운영되는 단체에 1억 원의 벌금이라니. 14명 활동가의 활동비도 넉넉지 않은데 말이다. 사무실을 나서면서 함께 간 기자가 “장애운동 활동가들이 까칠하다고들 해요.” 농담처럼 던졌다. “사회성이 떨어져서 그래요. 매일 집에서 TV만 보던 사람들인데…” 조 사무처장의 대답에 유구무언이다. 그저 올해는 우리사회가 다시 장애운동가들을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강대교로, 빗속으로, 길거리 천막으로 내몰지 말기를 바래볼 뿐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