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후배가 과학생회실에서도 동아리방에서도 문턱이 닳을 만큼 드나들던 총학생회실에서도 어느 날부턴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후배가 소주 2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덜렁 들고 술에 잔뜩 취해 나의 집으로 찾아왔다. 아무 말 없이 꼭 소주 2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다 비운 후에 그녀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는 잠수타서 미안하다는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 학교 학원자주화 투쟁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았던 한 선배에게 당한 성폭력 진술이었다. 미쳐버릴 듯 괴롭고 아팠다. 도저히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에게 부엌칼이 눈에 띄었고, 난 그걸 들고 바로 단숨에 선배의 자취방으로 달려갔다.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 선배가 미웠다. 그 선배가 나에게 이야기 했던 수없이 많은 운동적 가치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투쟁하는 민중의 역사를 이야기했던 그 선배의 입술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선배의 룸메이트에 의해 나의 일련의 행동들은 곧 저지되었다. 그날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그리고 그 선배는 미안하단 사과 한 번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렇지만 나의 후배는 산부인과 수술의 부작용으로 휴학에 복학을 밥 먹듯 하며 아주 오랜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게 내가 경험한 최초의 운동사회 성폭력사건이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은 “당신 참 지독하게 특별한 경험을 하셨군요!”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진짜 나의 경험은 이런 성폭력사건이 운동사회 내에 아주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몇 줄의 글쓰기를 위해 나는 아주 고통스런 과정을 반복해서 되풀이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런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운동사회의 성폭력이 얼마만큼 심각한 것인지 그대로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지면을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쓰도록 허락해준 너무나 소중한 나의 후배에게 뜨거운 자매애를 보낸다.
운동사회 성폭력-가해자와 주변사람들의 몇 가지 유형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를 기억하는가?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는 운동사회의 남성도 여느 일반사회의 남성과 다를 바 없이 성폭력을 ‘실천’하고 있었다는 점을 세상에 알리며, 운동사회가 가지고 있는 폐쇄성과 조직 보위론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가해자 실명공개방식을 채택했던 그 100인 위원회. 운동을 말아먹는 음해세력이라는 수많은 비난에도 “당신의 진보는 누구를 위한 누구의 진보인가?”를 따져 물었던 그 여성들의 외침에 나는 커다란 박수를 보냈었다. 이 용기 있는 여성들 덕분으로 성폭력의 범주와 정의는 여성의 경험으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는 귀한 성과도 얻어내었다. 그리고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운동사회 성폭력 문제에 대한 새로운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기회를 주기도 하였다.
그 후로 딱 7년이 지난 지금! 우리 운동사회는 어떠한가? 여전히 무수히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고, 그것을 말하는 것 역시 여전히 ‘금기’이다. 또한 가해자들의 대응방식도 7년 전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나에게 2006년은 성폭력 사건 대박의 해였다. 내가 활동해오던 몇 개의 모임에서 연타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어떤 건은 대책위에 참여해 활동했고, 어떤 건은 외곽에서 지원하는 형태이기도 했다. 이렇게 몇 건의 운동사회 성폭력을 경험하면서 나는 성폭력 가해자 매뉴얼이 업계에 조용히 돌고 있다는 심증을 거의 확신하게 되었다. 경험을 통해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만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패턴들을 다음과 같이 추려보았다.
-피해자의 고통과 연대하기보다는 가해자를 빨리 조직에서 축출해 조용히 봉합하려는 형식.
-가해자 비호세력들은 사건을 끌면 끌수록 ‘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피해자와 합의를 보려고 한다. 역시 피해자와의 합의사항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해자 비호세력들은 늘 항상 출연하고, 그들의 묵인과 지지로 가해자가 성폭력을 자행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그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2차, 3차 가해는 계속된다.
-운동사회의 특성상, ‘동지’에 대한 신뢰 때문에 피해자들이 어이없이 성폭력을 당하고도, 해결방안을 잘 찾지 못하는 형태가 많다. 아직도 운동사회 성폭력을 말하는 것은 금기이다.
-명예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집단인지라, 성폭력 사건을 자행하고도 명예훼손 역고소 소송을 통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 받으려 한다. 가끔은 어마어마한 피해보상금을 한데 묶기도 한다.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활동은 늘 여성 활동가들의 몫! 남성 활동가들은 침묵. 완벽한 성역할 분담!
<시민의 신문> 전 사장 이형모 사건은 “현재의 운동사회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다.
2006년 9월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형모 사건을 본다. 이형모는 2004년에 이미 저질렀던 성폭력 사건을 통해 재발방지 약속까지 철석같이 해놓고, 또 한 차례의 성폭력 사건을 자행했다. 처음에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 <시민의 신문> 지면을 빌어 ‘사과문’까지 발표하면서 자숙하겠다더니, 이제는 그를 비호하는 세력을 발판삼아 버젓이 명함 들고 왕성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사실, 자숙할 시간이나 있었나 모르겠다. 30여개 단체의 감투를 지금까지 부여잡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이형모의 성폭력 사실을 보도한 시민의 신문 기자들에게 1억 8천만 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형사 고소까지 해버렸다. 거의 완벽한 운동사회성폭력 가해자 매뉴얼의 표본이라 하겠다. 역시, 누구도 적극적으로 연대하지 않는 반성폭력투쟁이라 조금 외롭긴 하지만, 성폭력가해자 이형모가 명예훼손 역고소를 취하하지 않는 한 이번 주 금요일에도 운동사회 반성폭력운동 활동가들의 1인 시위는 계속될 것 같다.
당신의 진보를 재구성하라! 성찰하라!
나는 운동사회에서 성폭력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낙관하지 않는다. 적어도 피해자들의 2, 3차 피해를 최소화하고 성폭력문제 가해자가 그것에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을 역고소하는 일들은 좀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운동사회 내 반성폭력운동을 하고 있다. 조금은 비관적이기도 하다.
성평등의 문제를 부차적인 것, 주변적인 문제, 여성 활동가들의 몫으로만 환원하는 지금의 진보의 내용이 재구성되지 않는 한 ‘운동사회성폭력문제’는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운동사회를 멍들게 하는 짱돌이 되어 날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의 ‘진보’를 깊게 성찰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