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사례가 있다. 1991년 미국에서 생존 중인 4명의 전직 대통령들의 인기도를 물었는데 지지율 낮기로 유명했던 카터 전 대통령이 닉슨과 포드는 물론 재직 중에 높은 인기를 누렸던 레이건까지 제치고 1위를 한 것이다. 『여론조사의 덫』의 저자 다니오카 이치로의 분석은 이렇다. 카터는 민주당이고 나머지 세 명은 공화당이니 민주당 표는 모였고 공화당 표는 세 갈래로 나뉘었다는 것. 불순한 의도에서였거나 멍청했거나, 어쨌든 하나마나 한 조사였던 셈이다.
사회조사학 외에도 범죄학, 캠블사회학이란 독특한 학문을 전공한 저자는 이런 여론조사를 거침없이 (죄민수 버전으로) ‘쑤레기’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그는 “조사기획 권한을 주면 무엇이든 원하는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그가 지목하는 쓰레기 생산지는 데이터를 웬만해서는 공개하지 않는 정부와 항상 누이 좋고 매부 좋기로 유명한 학계, 그리고 당파성에 지나치게 충실한 언론과 시민단체들이다. 7년 전에 일본에서 나온 책이지만 읽다보면 청출어람이라고 바로 우리네 이야기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저자는 ‘리서치 리터러시(research literacy)’, 즉 여론조사를 읽고 쓰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책 후반부에 친절하게 연습문제도 맛보기로 달아놓았다. 최소한 알아야 속지나 않지, 하는 생각에 열심히 풀어보기는 했지만 만만치 않다. 하기야 백전백패가 빤한 것들로 꽉 채워진 인권의 항목들 앞에서 한눈팔지 말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마음이나 열심히 ‘리터러시’ 하는 게 이쯤에서의 바른 해답일지 모른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