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한미FTA 협상은 애초 우리 협상단이 미국 측에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관철시키겠다고 다짐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일방적 게임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나마 마지막 자존심처럼 부둥켜안고 옥쇄도 불사하겠다고 외치던 쌀시장마저도 미국 측의 막판 전술에 휘말려 의제화되자 우리 협상단은 그 무도함에 분노하기는커녕 되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얻은 것은 미미하되 줄 것은 다 주고 그것도 모자라 투자자-국가제소제와 같이 언제 어떻게 우리의 발목을 잡아챌지 모르는 무기까지 쥐어주고도 한미FTA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 외치는 이 이상한 협상에서 진정한 악마는 각론을 챙기는 그들이 아니라 총론조차 숨겨버리는 우리의 협상체계가 아닐까?
며칠 전 미 하원의 한 위원회가 개최한 FTA 공청회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FTA 협상에서의 논쟁점들을 놓고 관련 산업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경연장이 되었다. 여기서는 무엇을 얻기 위해 어떤 이익은 양보하여야 한다는 문어 제 발 뜯기 식의 소극적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협상테이블에 놓인 안건 하나하나에 대하여 협상단은 자신들을 위한 악마가 되기를 강권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협상단은 정반대로 나아간다. 이들에게는 어느 누구도 각론을 말할 수 없다. 이들의 철저한 비밀주의는 누구라도 말할 능력을 박탈해 버리기 때문이다. 무엇이 논의되는지 협상의 의제들만이라도 공개하라는 요청은 법원에서조차 외면한다. 한미FTA 결사반대를 외치며, 농업을 지키고 문화를 수호하며 공공선과 사회정의를 구현하고자 울부짖는 목소리들은 경찰이 늘어놓은 차벽에 막혀 제자리만 맴돌 뿐이다.
그래서 악마는 무지에 깃들게 된다. 헌법과 법률을 알지 못하고, 국민을 외면하며 민생을 제쳐버리는 이들의 무지에 악마는 터 잡는 것이다. 미국의 협상단이 자국의 의회를 핑계로 각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그 시간에, 한국의 협상단은 제풀에 양보한 각론 하나하나를 놓고 국민들이 알지 못하도록 애를 쓴다. 그들은 법률은 글자 하나도 못 고친다고 버티는 바로 그 대목에서 이들은 법률이야 바꾸면 그만이지 하면서 줄 것 안 줄 것 다 내준다. 그들은 헌법에 충성하면서 그를 빌미로 물러서지 않지만, 이들은 헌법을 넘어서서 스스로 헌법의 의미를 바꾸어나간다.
결국 한미FTA는 그들의 성공과 우리의 실패로 나아간다. 대통령이야 ‘이익이 없으면 안 하면 되지’라지만, 여전히 협상내용과 과정은 비밀이고 그 손익점을 따지고자 하는 목소리는 방송이든 광장이든 무조건적으로 차단당한다. 되레 무엇이 이익이고 무엇이 손해인지는 어느 누구라도 모를 것이 강요될 뿐이다. 오로지 이들만이 판단하고 이들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여, 악마는 각론에서 뛰쳐나온다. 우리 협상단이 국민에게 강요한 무지야말로 악마가 터 잡기 가장 좋은 보금자리가 되며, 국민의 힘을 알지 못하는 협상단과 이 정부야말로 악마가 살아가기 가장 좋은 자양분이 된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대중과 전경의 지루한 싸움은 계속된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