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보건의료단체연합 홈페이지 |
건강에서의 성별차이
여성이 남성보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객관적인 통계 수치로도 잘 나타난다. 건강관련 통계로 살펴보면 평균수명(2003)은 여성이 80.8세, 남성은 73.9세로 여성이 높지만, 건강여명(1998)은 남성은 65.44세로 여성의 63. 30세보다 더 높다. 만성질환의 유병율(2001)을 보면 여성이 57.9%인데 비해 남성은 50.5%로 낮고, 활동제한 유병율(2001)을 보면 여성은 16.0% 남성은 12.7%이다. 다시 말해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살기는 하지만 남성보다 질병도 많이 걸리고 건강하지 못한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는 것이다.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데도 남성과 여성은 차이가 난다. 여성들이 질병으로 병원은 자주 찾으나 장기간 입원하거나 병원비를 많이 내야 하는 데는 남성보다 더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 예로 외래 이용율(2001)은 여성이 높으나 입원율은 남성이 더 높고, 약국 이용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 정도 높다. 건강검진 수진율(2001)에서도 여성(42.4%)은 남성(54.4%)보다 낮은데, 건강검진 미수진 이유는 여성에서는 경제적 이유(26.0%)가 가장 높은 반면 남성은 건강에 자신이 있음(31.2%)이 제일 높았다. 질병예방에서도 여성들은 남성보다 경제적 제약을 많이 받고 있다.
보건통계는 남성과 여성의 건강상태나 보건 서비스 이용, 건강 증진 및 예방 등에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모든 영역에서 여성들의 건강이 취약한 것은 아니나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보건의료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건강의 문제를 논할 때 여성 건강의 특수성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건강은 의학의 영역이다?
건강 영역에서 여성의 차별성을 주장하려고 하면 항상 ‘여성’/‘건강’에 대한 몇 가지 고정관념들에 부딪히게 된다. 그 첫 번째가 건강은 가치중립적인 의학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건강은 신체적으로 질병이 없거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건강하지 못하다면 병원에 찾아가 질병을 치료 받으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누군가가 중대한 질병에 걸렸는데 고액의 치료비를 들이면 나을 수는 있으나 그/녀가 가난하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건강의 문제는 의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한 예로 서울에서도 강남에 거주하는 암 환자의 생존율은 다른 지역보다 높다. 통계적으로도 소득이 높고 학력이 높은 계층일수록 건강상태가 양호한데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건강을 사회적 문제라고 관점을 바꾸어 보면 남녀의 건강에서의 차이를 사회, 문화, 경제적 차별과 연결지어 설명할 수 있다. 한 예로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여성들은 남성보다 열악하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임금의 60% 수준에 머물고 전체 일하는 여성 중 비정규직 비율도 60%가 넘는다. 빈곤층 가구의 다수가 여성 가구주들이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빈곤의 여성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여성들의 경제적 취약성은 여성들의 보건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가정 내에서 여성들은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므로 자신의 건강보다 다른 가족원의 건강을 책임져야 한다. 훌륭한 주부는 유기농 야채를 골라서 식사를 준비하고 가족원의 건강 상태를 항상 체크해야 한다. 혹시 가족원 중에 환자라도 생기면 그 일은 여성들의 몫이 된다. 일을 하는 여성들은 일/가족 양립이라는 이중 부담을 혼자 져야 하고 여가나 웰빙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남성과 여성의 건강은 ‘임신, 출산만 빼고’는 같다?
여성 건강과 관련된 또 다른 신화가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이다. 생의학적(bio-medical) 관점에서는 남성과 여성은 ‘임신, 출산’을 제외하고는 동일하다고 본다. 이러한 개념화 방식은 여성건강을 모자 건강 혹은 생식건강으로 한정하고 그 외의 건강은 남성과 동일한 일반 건강으로 규정한다. 이럴 경우 생식건강을 제외한 건강 문제들은 남성을 기준으로 함으로서 여성들에게 차별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돌연사를 부르는 심장병을 생각해보자.
심장병은 남성의 병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여성에게 더 치명적일수도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환자 수는 남성이 많지만 사망률은 남성 2.81%보다 여성이 3.92%로 더 높다고 한다. 왜냐하면 심장병 증상이 나타나도 여성들은 화병이나 위장병으로 오인하고 수술에 대한 불안감이나 경제적 이유, 가족에 대한 부담 등으로 수술 치료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연합뉴스, 2005). 외국의 한 연구에서 지적하듯이 심장병 연구에서 연구 대상은 주로 남성들이고 의사들도 남성 환자에게 더 적극적인 치료를 권장하는 것도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여성들이 임신, 출산의 영역에서 권리를 확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출산한 여성들 중 약 40% 정도의 여성들이 제왕절개수술로 아기를 낳았다. 이는 WHO 권고기준인 10%, 일본의 15%, 영국의 16%, 미국의 20%에 비교해 볼 때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다. 제왕절개수술이 증가하는 것은 임산부의 연령이 높아지고 태아 위험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발전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료진들이 의료분쟁에 대비해 방어 진료를 하거나 낮은 분만 수가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피임, 낙태와 관련해서도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피임은 여성의 몫이고, 젊은 층에서는 피임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기 어렵고, 값싸고 안전하며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피임기구들도 많지 않다. 특히 미혼의 여성이 임신하였을 경우 출산을 선택하기 어려우며 고육지책으로 낙태를 선택해도 모든 비난이 여성에게만 쏟아지는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여성들이 건강권을 누리고 있는가? 대답은 회의적이다. 여성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서는 건강의 영역에서 남녀가 결코 같지(same)도 동등(equal)하지도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것 같아 보이는 ‘건강’의 영역을 ‘성인지적 관점’이란 렌즈를 가지고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여성의 건강 이슈를 사회적으로 드러낼 수 있고 이를 성차별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여성은 가족의 건강 지킴이가 아니라 건강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해 존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