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노인재활센터와 장애인재활센터를 이용하는 것은 모두 무료다. 노인재활센터에서 발의사(발만 관리하는 발 전문의사)가 노인의 발을 진찰하는 모습. |
시골마을 구석구석까지, 의사 찾기 너무 쉽다
누구든 아프면 동네의원을 찾는다. 이런 동네의원을 1차 의료기관이라 부른다. 환자의 병이 중하다 싶으면, 도시에 있는 2차 종합병원으로 가보라 한다. 그곳에서도 치료할 수 없는 큰 병이면, 보통은 대학병원 정도의 3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보게 된다. 이렇게 1, 2, 3차를 거치다 보면, 병원에서 내는 돈의 크기도 엄청 다르다. 더군다나, 우리의 1차 의료는 가정의 혹은 일반의 중심이 아니라 특정과(안과/피부과/이비인후과처럼) 전문의들이 태반이다. 쿠바는 상황이 다르다.
쿠바에서 동네의원을 담당하는 의사를 가정의사라고 부른다. 아바나 인근 시골마을에서 만난 가정 의사는 옆집 사는 이웃 같은 느낌이었다. 오전에는 진료소에서 20명 남짓의 환자를 진료한다. 오후에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찾아 방문 진료를 간다. 가정집을 방문한 의사는 환자“만”을 살피지는 않는다. 수돗물은 잘 나오는지, 하수구는 막히지 않았는지, 음식이 썩고 있지는 않을까 이리저리 살핀다. 그러다가 요즘 벌이는 어떤지, 자식들은 잘 크는지도 묻는다. 가정 의사는 ‘건강’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이다. 아픈 환자의 ‘몸’만을 돌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한국의 의사들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이 병들기 ‘전’에 건강을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쿠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이런 가정 의사들은 전체 의사의 47%정도다. 그리고 전 국민의 99.2%가 이러한 가정 의사들의 진료권역에 포함된다. 한국 인구의 4분의 1정도가 되는 쿠바에는 전체 의사들의 숫자가 한국과 거의 같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와 달리 공무원 신분이다. 봉급도 노동자와 농민의 절반 수준이다. 그리고 한 명의 의사가 돌보는 환자의 숫자는 120명 남짓이다. 가정 의사를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2, 3차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진료와 처치는 모두 무료다. 또 노인재활센터와 장애인 재활센터를 이용하는 것도 무료다. 다만, 아직도 약을 수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약값의 일부는 본인부담이다. 그래도 가난하거나 약값이 많이 드는 환자에게는 이마저도 무료다. 혁명 후 시골마을 구석구석까지 가정 의사들을 찾기 쉽게 된 쿠바 사람들은 지금, 건강하다.
가정의사가 환자와 문진하고 있다. 쿠바는 많은 의료진이 국외 원조활동을 떠나 이처럼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가정의사들이 많다. |
앗! 미국이랑 다를 게 없잖아
생후 12개월이 안 된 아기들은 신체적 조건이 약하다. 그래서 잘 먹이고, 잘 돌보지 못하면 생명을 잃기 쉽다. 그래서 이들의 사망률은 한 사회의 보건의료 수준을 나타내주는 좋은 표시로 쓰인다. 또,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평균수명도 마찬가지의 역할을 한다. 쿠바의 영아 사망률은 천 명당 6명이다. 이웃 남미국가 멕시코는 23명이다. 잘 사는 나라 미국도 쿠바처럼 6명이다. 평균수명도 2003년 자료에서 미국과 쿠바는 남/녀 모두 같다. 쿠바도 미국처럼 잘산다? 아니다. 불행히도 쿠바는 미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난한 나라다.
미국은 최신의 의료기술이 넘쳐난다. 그래서 돈만 많으면 죽을 사람도 살려 놓는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안타깝지만, 미국에 사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굳이 최신의 의료기술이 필요 없다. 그냥, 필수 의료서비스라도 잘 받게 해 주면 지금보다 훨씬 영아 사망률은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의료 천국 미국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쿠바는 다르다. 앞에서 말한 바대로 가정 의사 중심의 1차 의료를 통한 건강‘예방’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미국의료지출의 10분의 1만 돈을 들여서도 사람들이 건강할 수 있는 것이다. 의료서비스를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미국은 이윤을 남기기 어려운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미국식 의료를 따르고 싶어 하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눈을 떠요, 라틴아메리카
아바나에 있는 안과병원을 찾았다. 우리가 방문한 보건기관 중에서도 최고의 시설이었다. 대형버스에서 내리고 타는 환자들도 많았다. 버스의 앞 유리창에는 “기적의 작전(mision milagro)”이라고 적혀 있다. 좌파정부가 들어 선 베네수엘라와 쿠바는 지난 3년간 이 작전을 함께 수행했다. 처음에는 베네수엘라의 앞 못 보는 녹내장/백내장 환자들을 대상으로 쿠바에서 무료수술을 해줬다. 교통비는 베네수엘라가 부담했다. 남미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말로 기적이 일어난다. 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고장으로 돌아가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시력을 회복한 남미 사람들이 자그마치 50만 명을 넘었다. 쿠바의 이런 의료기술과 베네수엘라에서 뽑아 올린 석유는 서로 교역을 한다.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는 상품을 교역하기 위해서, 자국의 다른 산업을 위축시키는 것은 ‘자유무역협정’의 특징이다. 자유무역협정은 철저하게 기업과 자본의 이익을 우선한다. 하지만, 석유가 필요한 쿠바의 민중과 의사가 필요한 베네수엘라의 민중은 서로 ‘필요한’ 것을 교역한다. 이것은 볼리비아를 포함하여 ‘민중무역협정’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교역의 가능성이다. 이런 연대의 배경에는 ‘기적의 작전’도 한 몫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기적의 작전", 베네수엘라의 앞 못 보는 녹내장, 백내장 환자들을 대상으로 쿠바는 무료수술을 해주었다. 수술을 마치고 난 환자들이 수송 버스에 올라타는 장면. |
또 있다. 이미 많은 책에서 소개 되었지만, 쿠바에는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이 있다. 이곳은 남미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학생들을 받아들인다. 쿠바 정부에서 이들을 무료로 교육 시켜준다. 그리고 이 학생들이 의사가 되어서는 자기의 나라로 돌아간다. 의사는 돈 잘 버는 직업이 아니라, 환자 돌보는 사람이라는 교육을 6년 동안 받는다. 그/녀들은 자연스럽게 고향의 산골짜기에서 평생 의사 한번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술을 나눈다.
미완의 현재진행형
구 아바나에 있는 산전관리센터를 방문했다. 우리 문화에서는 다소 어색한 풍경들이 있다. 대부분의 산모들은 10대이거나 40대다. 쿠바에서는 결혼과 이혼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와는 달리 유연하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임신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많은 나이에도 아이를 가진다. 문제는 이들이 의료적으로 보았을 때 위험에 취약한 집단이라는 점이다. 영양 섭취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산전관리를 한다면 태아와 산모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이 같은 산전관리센터를 고위험 산모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쿠바의 영아사망률이 선진국 수준인 것도 이런 노력들의 결과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장애 아동 재활센터와 노인 재활센터에서도 쿠바의 노력은 찾을 수 있다. 노인과 장애인도 건강에 취약할 가능성이 많다. 역시 쿠바는 건강 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건강은 의료적 행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일할 수 있는 고용이 보장되고,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득도 유지되어야 한다. 집 주위의 환경도 건강에 영향을 주고, 먹고 쓰는 생필품도 건강에 영향을 준다. 타고 다니는 운송수단도 건강과 연결된다. 한 사람을 둘러 싼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환경이 모두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쿠바의 부족한 식량 사정, 결혼마저 꺼리게 될 만큼 심각한 주택 공급 부족, 50년대 자동차가 뿜어대는 검은 연기, 70년대식 공장 하늘을 채우는 매연… 쿠바의 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건강 국가를 향하는 쿠바의 실험적 노력을 즐겁게 지켜 본 것이다. 그리고 쿠바의 새로운 실험들을 한국적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산업구조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계급적으로 벌어진 삶의 격차도 판이하게 다르다. 중요한 점은 각자가 처한 출발점에서 어느 곳을 목표로 달려가야 하느냐에 달렸다. 모든 사람이 도달 가능한 최고수준의 건강을 지향하는 것은 쿠바에게도 우리에게도 중요한 목표일 것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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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실린 사진은 필자가 제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