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프라이버시를 훔치는 것은 삶을 훔치는 것

당신이 프라이버시권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면

나의 사생활을 열람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아래와 같은 세 그룹의 사람들



1.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
2.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
3. 1번이자 2번인 사람들은 언제나 내 프라이버시를 요구한다!



(물론 더 나쁜 사람들은 나한테 돈도 안주고 사랑을 속삭이지도 않으면서 -고객님 사랑합니다, 따위 말고! 나 모르게 내 개인정보를 10원에 팔아먹는 인간들이겠지)
-내 수첩에서 발췌



고등학교 다닐 때, 엄마가 나와 친구(특히, 이성 친구들과의)와의 통화를 엿듣는 것을 알아내고 불 같이 화를 냈지만-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엄마의 숨소리는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엄마의 “니가 나쁜 길로 빠질까봐 그래!”와 같은 당당한 모권의 표시 앞에서는 무너져 내렸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는 나의 가방 안을 보시길 원했고, 내가 거부하자 “나는 너한테 돈만 주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화를 내셨다. 아빠에게 돈만 받는 딸이 되지 않기 위해 난 결국 가방을 열 수 밖에는 없었다(이렇게 프라이버시를 침해 당해온 청소년기가 나를 정보인권 활동가로 만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버스 파업 때문에 처음으로 지각을 한 걸 굴욕으로 여길 정도의 심각한 모범생이었던 나는 억울함에 가슴을 쳤지만, 작은 꼬투리나마 잡히지 않기 위해 (시답지도 않은 내용이지만) 비밀 얘기는 집 전화를 통해 하지 않으며, 일기는 못 견딜 때만 쓰고 주기적으로 뜯어서 버렸다.


그 후로 몇 년, 솔직히는 10년이 흘러, 나는 부모님과 따로 살게 되었고, 집에 손 벌리지 않고 근근이 살아가면서(돈만 받는 딸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내 ‘프라이버시’의 자유를 완벽하게 누리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살고 있었다. 우연히 진보네트워크센터의 활동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부모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로 나를 위협하는 국가권력에게 내 프라이버시를 다 내 준 채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진 | 박김형준


지금도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냐고 물으신다면


엘리베이터 안을 포함한, 우리가 가는 거의 모든 곳에 CCTV가 있고, 후불제 교통카드를 쓰면 개인의 이동경로마저 다 알 수 있는 세상에서 아직도 프라이버시를 찾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프라이버시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자유와 행복을 누림에 있어 바탕이 되는 사생활 보호를 중심으로 자신의 정보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프라이버시권은 ‘혼자 있을 권리’ 정도의 한정된 권리에서, 기술의 발달에 따라 그 침해가 심해짐에 따라 자기의 정보를 공개하는 때와 범위를 결정하는 등의 더욱 적극적인 권리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이 권리는 적극적인 권리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으면 지키기 힘들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모르기 때문에 포기하게 되거나 이미 되찾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느낄 수 있는 프라이버시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오늘 우리의 프라이버시권을 지켜내기 위해, 두 가지 얘기를 하려고 한다.



전자여권, 그 치명적인 위협


한동안 거의 대다수의 사람이 의심 없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열손가락 지문을 찍어왔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그 당위성에 대해 의심을 하기 시작했고, 공식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지문 날인을 거부하며 주민등록증의 발급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들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위기가 닥쳤다.


지문날인 때문에 주민등록발급을 거부했다면, 혹은 어쩔 수 없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으나 더 이상 지문날인을 할 수 없다면, 당신은 전자여권이 도입되는 것을 막아내고 싶어 할 것이다. 외교통상부가 테러 확산을 막는다는 취지로 신원정보와 함께 얼굴정보가 필수인 데다가, 정확도를 이유로 지문정보까지 담는 전자여권을 도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자여권을 발행하는 35개국 중에서, 지문날인을 하는 국가는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 단 세 개 국가뿐인데, 한국은 왜 굳이 지문날인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미 주민등록증을 발급할 때 지문정보를 채집하기 때문에, 지문을 얻어내는 일 자체를 가볍게 치부하기 때문이리라.


개인정보보호법조차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자여권에 담긴 생체정보가 유출되었을 때, 개인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피해가 발생하였을 때, 구제나 보상을 받을 길이 없는 이 시점에서 전자여권의 도입은 모든 위험을 국민에게 돌리는 것이다. 특히, 지문은 변경이 불가능한 고유한 생체정보로서, 한번이라도 유출되면 당사자에게 평생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 지문 관련 기술이 날로 발달해 가는 와중에, 개인의 지문이 유출되어 악용되었을 때, 당사자는 지문을 바꿀 수 없을 테고, 그 사람은 평생 지문 남용의 두려움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지문날인 외에도 전자여권은 여러모로 주민등록증 발급과 닮은꼴을 하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기존의 분산발급식이 아닌 중앙집중식 여권발급체제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구청 등 지자체가 아닌 한국조폐공사에서 집중적으로 전자여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개인정보의 중앙 집중은 다량의 정보 집적으로 인해 유출의 위험성을 높인다. 외교통상부의 데이터가 다른 정부기관에 제공되는 것을 막을 법적 장치 또한 없다.


전자여권 기술의 핵심인 RFID 기술은 어떨까? 전자여권은 기존의 여권에 IC칩을 삽입, RFID 기술을 사용하여 정보를 인식한다. 지문날인까지 하게 된다면, 칩에는 신원정보와 안면정보, 지문까지 담기게 된다. 그러나 RFID 기술의 안전성 여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RFID는 무선 기술을 사용해서 접촉하지 않고도 근거리에서 정보를 빼낼 수 있다. 더구나 미국 정부 내에서는 수속 절차의 편의를 명분으로 무려 9M의 거리에서도 읽히는 칩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RFID 기술을 이용해 당사자 모르게 정보를 가로챌 수 있는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프라이버시권이 중대하게 위협을 받는 또 다른 지점이다. 자신의 정보를 자신이 통제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전자여권이 발급되면, 내 정보를 누가 빼가더라도 나는 그것을 전혀 모른다. 외국 방송에서는 벌써 몇 번이나 전자여권에 있는 정보를 빼내어 복사하는 실험을 시연하였고, 여권에 담긴 정보를 추적해서 특정국적의 여권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테러가 가능하다는 것까지 보여줬다.


과연 이 모든 위험과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전자여권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외교통상부는 미국과의 무비자 협정의 요건을 충적시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여권은 국민 프라이버시를 국제적인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당신의 프라이버시를 국제 미아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전자여권을 전자레인지에 돌려라. 아니, 그 전에 발급을 막아내야 한다. <필자 주: 전자여권을 살짝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RFID 칩만 망가지고 여권은 망가지지 않는다고 한다. RFID 기술의 불안정성 때문에, 독일에서는 RFID 칩이 작동하지 않아도 여권으로 인정한다고 한다.>



통신비밀보호법, 통신비밀‘보관’법?


나는 간첩도 아니고,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고, 불륜을 저지르고 있지도 않기에 거리낄 것이 없음에도, 내 허락을 받지 않은 누군가가 나의 핸드폰을 열어, 최근통화목록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내 통화를 엿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핸드폰을 쓰는 것은 너무 끔찍하다.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이 말 그대로, 개악되려고 한다. 앞의 내가 상상하기 싫은 일들이 현실에 일어나게 할 내용들을 담은 채로 말이다. 개악안에서는, 당신에게서 전화요금을 받아내는 통신사가, 정부에서 지원해준 감청설비를 가지고 핸드폰을 감청할 준비를 해 놓고 있어야 한다. 모든 국민의 통신기록 1년치는 의무적으로 보관된다. 누군가가 내 전화통화를 엿들으며 킥킥댈 수도 있다. 또한, 감청을 통해 누군가의 불륜사실을 알아내, 그것을 빌미로 돈을 뜯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이것은 공공연히 불법으로 이루어졌지만, 개악 후에 전기통신사업자는 합법적인 발판과 기술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한 후에 일어날 피해를 법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다시 이 글 앞으로 돌아가라. 우리나라에는 아직 개인정보보호법이 없다. 혹시 이동통신사의 정보관리의 투명성을 무척이나 신뢰하신다면, 그 동안 벌어진 개인정보 유출사례 기사를 조금 더 유심히 봐주시길 바란다.
사진출처 | 통신비밀보호법 개악을 저지하는 블로그(http://blog.jinbo.net/1984)


그런데 통비법 개악안은 핸드폰 감청보다 더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전기통신사업자가 개개인의 인터넷 로그기록의 1년치를 의무적으로 보관해야 하는 것이 그 무시무시한 내용의 시작이다. 인터넷 로그기록은 한 사람이 어떤 사이트를 접속하는지, 어떤 사이트에서 물건을 사는지, 어떤 사람과 몇 시에 채팅을 했는지, 몇 시에 어떤 게시판에 글을 썼는지를 담고 있다. 이 기록을 조합하면, 인터넷에서 한 개인의 사생활이 송두리째 드러나게 된다. 이 정보가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게 될지 감이 오시는가? 전기통신사업자들이 가지게 될 1년치 로그기록을 얻어내면, 당신의 쇼핑 취향, 당신의 정치적 성향, 당신의 맞춤법 실력 등 당신이 인터넷에서 한 행적을 모조리 알아낼 수 있을 거라는 의미다.


이미 네이버 등 유명한 포털 사이트는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로그인을 해야만 글을 쓸 수 있어 ‘실명’을 쓰고 있음에도, 올 7월부터 더욱 철저한 ‘포털의 실명제’가 실시된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엔 ‘선거 시기 실명제’라는 것이 실시된다. 글을 쓰려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가입해야 한다. 통비법으로 저장된 당신의 로그기록과 실명제의 주민번호가 결합하면? 누가 무슨 글을 썼는지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돈 문제?)다. 그러므로 통비법 개악 이후, ‘네티즌’이란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과 수사대상이 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게시물을 작성하는 용기 있는 소수를 가리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왜 모든 국민의 1년치 통신 기록이 의무적으로 보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궁금하지 않은가? 모든 국민이 ‘잠재적 범죄자’고, 그들의 통신기록이 ‘잠재적 범죄기록’이기 때문이라서 그렇다. 당신은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1년의 통화기록과 인터넷 로그기록은 무조건 저장되어야 한다. 통비법이 개악된다면, 통신기록이 범죄기록이 되지 않기 위해, 당신은 전화통화를 할 때, 인터넷을 할 때 더욱 더 긴장해야 할 것이다. 혹시 잘못 누른 번호를 통해 나중에 수사대상자가 될 수도 있을 테니… 압박이 느껴지지 않는가? 당신의 소통의 자유는 이미 제약당하고 있다.


당신이 소통을 한 기록을 노리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그 기록은 당신의 개인정보이기 때문이다. 통신기록을 1년이나 보관한다는 것은 개인정보를 훔쳐내는 사람들에게 광대한 개인정보 누적지대를 열어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비밀을 보관한다는 것은 이미 보호와는 멀어진다는 것, 내가 고등학교 때 깨달은 사실을 이 법을 통과시키려는 자들이 모르고 있는 걸까? 범죄를 막으려는 의도라고? 국가가 소통의 자유를 제약한 후에 국민들에게 저지르는 범죄보다 더 거대한 범죄는 본 적이 없다. 국민의 소통의 자유를 침해하고, 프라이버시에 거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르는 거대한 범죄다. 또한, 이 개악안은 더 큰 국가 범죄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비법 개악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도 분명히 동의하리라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내 글이 부족한 탓이다.)



당신이 프라이버시가 모여 당신의 삶이 된다.


프라이버시권은, 심지가 굳고 부지런해야 지킬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지문 날인을 거부하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게 되면 행정청의 독촉과 더불어 가족 등 주변사람들의 “그냥 남들처럼 살라”는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다른 신분증을 발급받는 것이 번거로운 문제도 있다. 때로는 관성에 떠밀려, 혹은 편의를 위해 프라이버시권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충전식 교통카드의 충전방식이 귀찮아서 나의 이동경로가 고스란히 저장되는 후불식 교통카드를 쓰는 것 같은 경우 말이다. 그럼, 압박과 귀찮음을 이겨낸 사람의 삶은 어떠할까?


나는 어떤 고등학생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전에 지문날인 문제를 알게 되어, 그것을 거부하게 되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삶은 주민등록증이 없는 문제에 대한 도전을 끊임없이 받아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권리를 알고, 국가권력에 저항하여 프라이버시권을 적극적으로 지켜낸 그의 기쁨과 긍지는 그 후로도 그의 삶에 새로운 권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당신의 프라이버시권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가? 당신이 그것을 내 준다면, 더 많은 것을 내줘야할지도 모른다. 만약 통비법이 개악되어 당신에게서 프라이버시를 앗아가게 된다면, 결국 당신의 소통의 자유도 사라지게 되는 것처럼…


‘기술의 발달로 더 이상 프라이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거짓이다. 당신에게 프라이버시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당신이 그것을 아직 찾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한다면, 그 높이만큼의 새로운 프라이버시권을 찾아야 한다. 당신의 삶은, 당신의 프라이버시들의 집적으로 이루어져 있고, 프라이버시권을 지켜나감으로써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나’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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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혁명가

    한참 공부하는 학생인 제가 봐도 프라이버시 권은 분명히 개인이 누려야하며 당연한 것인데 그것 조차도 당당히 주장하기 힘들어지겠네요 지금의 정부는 왜 시대를 가장한 역행을 하는것일까요.. 잠재적 범죄자라는 말도 웃기지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지금의 정부에 치가 떨림은 물론 문제성을 인식을 못하는 우리의 대다수의 국민분들도 반성하고 앞으로 누리지 못할지도 모르는 여러가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반대를 해야할때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