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에서 국가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국가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강압적 사회관계’에 불과하다. 나는 이것 없이도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불행한 이유 중 하나는 이 국가가 그 존재이유에 대해 한 번도 합리적이거나 진지한 설명을 해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세기 전반기에는 일본이라는 적이 국가의 존재를 합리화시켰고, 후반기에는 북녘의 적이 이 국가에 대한 모든 의문을 무력화시켰다. 정치학자들은 ‘국가라는 체제가 적과 범죄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래서인지 국가는 적이 없어지면 새로운 적을 의도적으로 가공해내기도 한다. 미국을 보라. 그러고는 ‘범죄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전쟁이 발발하거나 적이 침공해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안보만을 집요하게 캐묻는 것이 국가다.
그런데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사람들을 지켜주겠다면서 권력을 빼앗아간 그 국가가 자꾸 우리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모든 사람을 범죄자로 의심하는 국가는 도대체 누구를 지켜주겠다는 것인가? 돈 많은 부자들? 충성을 맹세한 애국시민들? 나는 이 범죄자 집단에 소속되고픈 마음이 없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