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안의 제출 경위와 내용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말경부터였다. 17대 국회 들어 새로 국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의 단병호 의원이 2004년 7월 12일 ‘비정규직 권리 쟁취 법안’으로 불린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제출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기간제 노동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고2), 단시간 노동의 남발을 규제하며, 파견제 노동을 폐지하고, 동일가치노동에 대해서는 동일임금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그해 11월 8월 ‘비정규직 보호 법안’임을 천명하면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 △노동위원회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제출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3년 이내에는 기간제 노동의 사용을 자유롭게 하되 그 기간을 초과할 경우에는 해고보호 조치를 취하고, 파견제 노동의 허용업무를 현행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대폭 확대하며,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받았을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위 두 법안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경영계 그리고 정치권과 정부가 협상과 대립을 거듭하다가 현행과 같은 비정규직법이 2006년 11월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기간 제한 없는 기간제법
기간제법의 주요 내용은 사용자가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데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다만 2년을 초과하여 사용하는 경우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3). 그런 경우에도 몇 가지 예외적인 사유4)가 있는 경우에는 그런 간주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 예외적인 사유와 관련하여 법률에서 시행령에 위임한 내용이 어떻게 정해질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최근 노동부는 박사학위 소지자, 기술사, 주요한 전문 자격증 소지자(변호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건축사, 노무사 등), 일정 소득(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약 연 6,000만원 혹은 6,500만원이 기준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상의 관리자 및 전문가를 사용하는 경우 등을 그 예외적인 사유로 발표하였다. 그 결과 박사학위 소지자 등은 한 사용자 아래에서 2년을 초과하여 근로를 제공하더라도 정규직으로 전환될 여지는 없게 되었다. 한편 근로계약이 2년을 경과하는 시점에서 고용을 지속할지 여부는 사용자에게 전적으로 그 권한이 위임되어 있다. 즉 사용자는 근로계약 기간을 임의로 설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간이 만료되면 임의로 고용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기간제법의 가장 큰 문제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에 대한 제한을 전혀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계가 요구한 ‘사유제한’ 방식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노동부는 사용자가 기간제 근로자를 2년을 초과하여 사용할 경우에는 사실상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점을 기간제 근로자 사용의 제한 장치로 설명하고 있으나 그러한 조치로 기간제가 제한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노동부의 그런 예상이 맞으려면 사용자가 기간제 근로자를 2년을 초과하여 사용하여야 하는데, 그 결정권은 사용자에게 전적으로 유보되어 있어 사용자가 얼마든지 그런 상황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기간 제한 방식은 기간제 근로자 사용의 제한 장치가 아닌 기간제 근로자 교체 장치로 전락해 있는 실정이다. 아직 기간제법이 시행되지도 않았는데도, 사용자들이 기간제 근로자들을 대량으로 해고하는 있는 지금의 상황은 그런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불안정한 일자리마저 ...
한편 위 시행령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간제 근로자 사용의 제한과 관련한 노동부의 방침에 의할 경우 2년을 초과하여 근로하더라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예외적인 사유의 범위는 최소한이어야 한다. 사용자가 기간제 근로자를 실제로 2년 이상 사용하여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것인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최소한 그런 가능성이 있는 대상은 넓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앞에서 본 것처럼 그 예외 사유의 범위를 최대한으로 넓혀 놓았다. 그 결과 기간제법으로 ‘보호’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매우 좁아지게 되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노동부가 기간 제한 방식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예외를 대폭 확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가지고 있다. 노동부의 비정규직 보호 방침이 지금도 유효하다면, 시행령상의 예외 범위는, 사회적으로 전직 및 자영업 영위가 용이하다고 인정되는 일부 전문 자격증 소지자 중 일정 소득 이상의 자로 대폭 축소되어져야 할 것이다.
아직 기간제법이 시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 개정 방안을 제기하는 것이 다소 성급해 보이기는 하지만, 예견되는 기간제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의 현실을 고려하면 한시라도 빨리 개정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사유제한 방식’의 입법을 행할 수 없다면 다음과 같은 절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사용자가 기간제 노동자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하되 그 종료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를 하는 것이다. 즉 기간 만료를 이유로 근로관계를 해지할 때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여부를 살펴서 그런 이유 없이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신의칙상 허용될 수 없”고 그에 대해 해고 제한 규정이 유추적용되는 것(서울행정법원 2005. 6. 2. 선고 2004구합32623, 대법원 2005. 7. 8. 선고 2002두8640 판결 취지 등)으로 하는 것이다. 이런 법리는 교수 재임용 절차에 있어서도 채택되어 있고5), 일반 근로자에 대해서도 법원이 인정하고 있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채택될 경우 기간제 노동자들은 기간 만료의 통보를 받은 경우에도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다툴 수가 있을 것이고 사용자들도 함부로 기간 만료만을 이유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방안을 비롯하여 시급하게는 아무 조건 없이 기간 제한을 없애는 방안까지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현행 기간제법은, 열악한 지위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불안정한 일자리’마저 빼앗는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파견 허용 범위 확대의 근거 마련
파견법의 내용은, 객관적인 요소로만 구성되어 있는 근로자파견대상업무의 요건을 주관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것으로 변경한 것이다. 즉 개정 전 파견법에서는 근로자파견대상업무로 정해지기 위해서는 파견법에 규정되어 있는 객관적 요소, 즉 △직접생산공정업무가 아닐 것, △전문지식.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일 것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개정 파견법에 의하면 그런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도 △노동부가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하기만 하면 파견대상업무로 정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노동부는 파견 허용 업무에 관한 시행령을 발표하였는데, 애초 공언했던 대로 파견대상업무를 대폭 확대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표준직업분류의 대분류 및 중분류상으로는 3개의 업무가 늘어났고 세세분류상으로는 51개의 업무가 늘어났다. 이로써 총 187개의 업무에 대해 파견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이번에 포함된 업무에는, 창작 및 공연예술가 업무와 영화.연극 및 방송관련 전문가 업무가 다수 포함되어 있고, 일반사무보조원과 사무용기기 조작원 등의 업무도 포함되었다.
파견과 같은 간접 고용 형태는 고용과 사용이 구분되는 것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가급적 억제되어져야 한다. 따라서 파견은 전문지식.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로서 임시적으로 행해지는 경우에만 허용되어져야 한다. 그런데 노동부는 그런 요건과는 무관하게 노동시장적 관점에서 파견의 허용 범위를 정하고 있다. 그 결과 파견이 광범위하게 사용될 가능성이 많아지게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파견이 금지되고 있던 문화예술 부문과 사무직에 대해 파견이 허용됨으로써 이 부분에 대한 파견의 확산도 예측된다. 노동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파견 대상 업무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보이는 바, 파견이라는 고용형태를 이렇게 확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게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한편 실질상 간접고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내하도급과 관련해서는 그것을 원천적으로 금지시킬 입법적 방안이 없기 때문에 위장하도급을 규제하는 것 및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후술하는 차별 금지 및 차별 시정 절차가 적용되게 하는 방안, 원청업체를 부당노동행위의 주체와 교섭의 상대방인 사용자로 의제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법에 차별시정과 관련된 내용이 규정되었다. 그 결과 사용자가 임금 등 근로조건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임을 이유로 차별처우를 하는 것이 금지된다, ‘임금 등 근로조건에서 차별받은 근로자는 3개월 이내에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고 노동위원회의 차별 시정명령이 확정되었으나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에게는 최고 1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조금이라도 비정규직을 생각한다면
비정규직법에 차별금지의 원칙과 그 시정 절차가 규정된 것은, 비록 그 수준이 노동계가 요구한 것에 미치지는 못했다고는 해도, 비정규노동자들에게는 정말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비정규법 자체에 그 구체적인 내용이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 도대체 무엇이 ‘차별’인 것인지, 차별일 경우 그 시정절차를 통해 시정될 수 있는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차별인지 여부를 비교하는 대상은 누구이며, 그 대상은 어떤 시점에서 어느 곳을 기준으로 특정되는 것인지, 노동위원회 외에 법원에 대해서도 그 시정을 구할 수 있는지, 만약 그것이 가능할 경우 그 근거규정은 무엇이며, 소송상 다투는 쟁송물은 무엇인지 등 수많은 쟁점이 해석에 맡겨져 있다. 향후 법원과 노동위원회에서 그 구체적 내용이 결정될 것인데, 노동부는 조만간 그 시금석이 될 수 있는 ‘안내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거기에 차별을 실질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다면 큰 진전이라고 할 것이다.
차별시정 제도와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정규직과 기간제 법에 의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된 자 사이의 차별은 무엇을 근거로 그 시정을 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차별을 시정하는 것에 대해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차별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없다. 이에 대해서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가 기간제 노동자였던 것을 이유로 차별시정을 구하는 것이므로 그에 대해서도 비정규직법의 차별시정 절차가 적용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라고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고용안정 확보.간접고용 억제.차별해소와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법이 위 각각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가지고 곧 시행될 것인데,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실효성 있는 제도로 정착시켜 나가야 할 것이고, 간접고용으로 인한 폐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파견은 최대한 억제되어야 할 것이고 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방안은 시급히 마련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간제 노동자들의 고용이 안정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는 ‘사유제한 방식’을, 단기적으로는 ‘기간 만료를 이유로 하는 계약 해지에 대한 사법적 심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져야 할 것이다. 현행과 같은 ‘기간 제한’ 방식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단순.노무 업무에 종사하여 열악한 지위에 있는 비정규직들의 일자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싶다면, 그에 대한 개선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