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박래군 월간 <사람> 편집인
날짜 및 장소 | 2007년 5월 18일. 진보네트워크 사무실
왼편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종범(우리만화연대), 최재호(장애인문화 공간), 김정우(진보네트워크), 이원재(문화연대), 박래군(월간 사람) |
사회 이번 달 특집 주제인 문화권은 참 어렵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문화적 권리에 대한 논의들이 풍부하지 못하고 이를 운동으로 풀어나가려는 노력도 부족한 탓이다. 오늘 좌담은 문화권에 대해 이해를 높이는 자리였으면 한다.
사회적이면서 일상적인 문화권리
이원재 문화권이 최근 많이 이야기되지만 여전히 좁은 의미에서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권리로 이야기되는 것이 현실이다. 문화연대는 문화예술인들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의미, 일상적인 문화 활동에서의 권리를 고민하고 있다. 일례로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작가들의 권리, 영화의 검열에 대한 감독들의 싸움들이 있지만 최근에는 그에 못지않게 인터넷 상에서의 문제라든가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문제들이 있고 이들은 매우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문제들이다. 이에 대한 정치적인 의미와 자본주의 국가 체계 안에서 침해되는 문화권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의식이다.
김종범 우리만화연대 활동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만화를 통해 사회적 문제에 접근하고 활동하는 것이다. 8,90년대를 거치면서 사회변혁의 무기로 만화가 활용되었고 우리만화연대 설립도 그 흐름에 따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만화연대의 활동은 문화권과 관련되어 있다. 만화를 읽는 독자의 권리와 저작권 문제가 겹치면서 볼 권리와 창작권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과제가 있는 것이다.
최재호 장애인문화공간에서는 장애인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전환을 위해 활동한다. 사람들은 장애인 문화가 뭐냐고 물어보는데 그러면 나는 비장애인 문화는 무엇인가 하고 반문한다. 결국 둘 다 같은 것이란 답변인데 사람들은 인식에서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차별을 하고 있다. 누구나 누려야 할 것이 문화권인데 현실에서 장애인에게 가능한가? 세종문화회관을 간다면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불쾌감을 감수해야 한다.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이런 부분을 하나씩 문제제기하고 풀어나가기 위한 활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회 문화권은 참 넓고 다양하다.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장애인들에 대한 비장애인의 차별적 시각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문화의 주체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사회에서 문화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최재호 장애인, 비장애인의 문화가 같은 것이듯 마찬가지로 장애인 내에서도 문화는 다양하다. 지체 장애인은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흡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문화의 주체로서 장애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보다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존재이자 극복의 대상, 불쌍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주류 언론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데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서 이야기를 꺼내기보다는 대상화 되는 것이다. 또한 아직도 편의시설이 갖춰지지 않는 건물이 세워지고 대통령 후보가 아무렇지도 않게 ‘불구’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현재의 인식수준인 것이다.
창작권과 향유권이란 이분법을 넘어
이원재 인식의 문제에서 문화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다. 문화를 잉여의 영역, 돈이 남고 시간이 남아야 할 수 있는 무엇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밥 한 끼를 못 먹어도 만화를 봐야 하는 사람도 있다. 자본주의 아래서 생산력 위주의 사고틀 속에서 문화는 잉여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또한 문화는 탈 정치적이며 좋은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이지 않은 문화는 없다. 옷차림, 가족관계. 문화는 탈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장애인을 문화의 주체로 보지 않고 국립극장 공연의 표 몇 장을 주자는 정책이 나온다. 그런데 국립극장은 산꼭대기에 위치해 장애인의 접근성도 낮다. 장애인에게 이동권, 미디어 접근권, 이런 것들이 전 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하는데 정형화된 문화예술을 그저 보여주면 문화권이 해소가 된다고 인식하는 것이 문제이고 이는 다른 소수자 영역도 마찬가지다.
김정우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의 권리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권리보호와 동시에 공정이용을 도모하여, 궁극적으로는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실재에서는 저작권자의 독점적인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치우쳐 있다. 하지만 디지털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창작의 환경이 변화하고 있으며 누구나 쉽게 창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서로 공유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활동은 저작권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를 즐김이고 그로써 문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작권은 여전히 산업적이고 경제적 관점에서 문화를 보고 있기 때문에 현실과 문화 향유의 권리와 문화발전과도 충돌이 되는 것이다.
이원재 문화 향유권이란 개념에 대해 비판적이다. 문화 향유권은 국가권력이 창작과 향유를 철저히 분리시키면서 생산과 소비란 관점에서 문화를 대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계는 많이 허물어지고 있다. 창작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용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분법 속에서, 저작권 아래서 이득은 중간자인 자본이 챙긴다. 냉정하게 말하면 자본이 생산영역을 장악하고 있고 그 밖의 나머지는 향유 아닌 향유를 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이분법을 깨기 위한 고민과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소수자나 장애인들도 향유자이자 창작자이고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
수입 없음 50%, 누구를 위한 저작권인가
김정우 저작권 문제로 국한시켜 이야기해보면 좀 더 대안적인 보상체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는 금전적이고 경제적인 독점권을 주는 것만이 유일한 보상인데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의문을 던져야 한다. 정보나 문화는 혼자 갖고 있는 것보다 공유할 때 그 의미가 있고 공유할수록 가치가 커지며 문화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작권은 완전한 독점권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공유를 차단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현행 저작권 체제가 실제 창작자들 구조라기보다는, 힘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나 심지어 투자자들을 보호해 주는 방향으로 변질되어 간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이원재 많은 작가들이 사회적으로 창작물을 사유하고 제작지원을 받는 방법도 많은데 이에 대한 정책이 부재하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만 집중이 되는 것 같다. 저작권이 없기 때문에 문화예술인의 창작이 위축된다는 것은 창작자를 위한 것이기 보다는 문화 영역에서 자본의 입김이 높아진다는 증거이다.
김정우 문화연대가 2003년인가 실제 예술인 수입이 어떻게 되는지를 발표했다. 거기서 수입 없음이 30%가 넘었고 최저생계비 이하도 50%를 넘었다. 기초예술 쪽으로 가면 수입 없음이 50% 넘었고…. 저작권 강화론자들은 창작자들에게 더 많은 동기부여를 위해서 저작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경제적인 통계치는 사실상 그런 주장과는 매우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김종범 우리만화연대 회원 상당수는 중고등학교 만화 강사로, 속셈학원 강사로 원치 않게 투잡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워낙에 밑바닥 생활에 단련이 되어 있어서 큰 불편을 못 느낀다고 해야 하나? (웃음) 만화 그리는 것이 기본적인 시스템만 있으면 집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들어가는 것이 적기에 수입이 충분치 않아도 씀씀이를 줄여서 해결하는 것이다.
투자가 많아야 좋은 문화?
사회 우리 사회에서 문화교육은 거의 사교육 시장이 전담하고 있다. 시민의 권리로서 예술창작의 권리를 누리고 그에 대한 소양을 키우는 것이 참 어려운 현실이다.
이원재 미디어센터, 박물관. 미술관, 아카이브(특정 장르에 속하는 정보를 모아 둔 정보 창고), 이런 공간은 그냥 시민들에게 수혜를 주듯 사용하라고 주는 곳이 아니라 이러한 인프라를 통해서 창작자들이 나오는 문화교육의 장이다. 공공영역에서의 문화교육이 중요하다. 일상적인 감수성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 한국은 예체능 교육이 엘리트 교육 위주다보니 개인이나 가족이 노력하지 않는 이상 문화예술로부터 격리된다. 이렇게 되면 문화예술을 보편적 감수성으로부터 분리된 사회가 되는 것이다. 무조건 예술의 전당을 지으면 문화가 발전한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상품으로써 문화만을 인지하는 사회이다. 또한 문화예술은 기술로서가 아니라 삶의 당연한 구성요소로서 인정되어야 하는데 그림을 그리면 잘 그려야, 노래는 잘 불러야 한다는 교육이 그것을 왜곡시킨다.
김정우 정부 문화정책이 드러난 광고를 보면 그 핵심은 투자가 없으면 문화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투자된 것만 문화로 치고 저작권으로 보호하고 다른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문화들, 예를 들어,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개인창작자들이나 독립예술가들의 창작에 대해서는 많은 중요성을 두지 않는다. 이런 광고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문화구나, 문화라면 돈을 내야지, 그러면 발전하는 것이지, 하는 인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김종범 장애인 만화교육에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한 장애인 단체에서 생계를 할 수 있는 방편으로 만화를 가르쳐달라면서 무보수 자원봉사를 요구했다. 또한 수료 후에 자신의 작품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하청 받아서 하는 염가의 삽화로 단순노동을 위한 교육이었다. 다른 문화예술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문화교육과 그 장르에 대한 충분한 이해, 그것이 미칠 영향력까지 생각해서 교육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우리 내부에서조차 그렇지 못하다.
김정우 과거에 운동진영에서 창작에 대해 경제적 보상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을 차치하고라도 큰 집회에서 대중가수들 부르면 기본적으로 비용을 생각하지만 민중가수는 그냥 불러다 쓰려고 한다. 오히려 잘 나가는 사람은 돈 안줘도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인식전환이 더 필요하다. 민중가수들이 저작권의 테두리에서 보호도 못 받고 있다.
이원재 진보적 문화예술인이 상처받는 것은 보상보다도 이중 잣대 때문이다. 아쉬울 때마다 부르다가 중요한 무대에서는 배제된다. 이는 운동의 철학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비판하고 변화시키려는 주류적 패러다임, 말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비싼 것이 좋은 것이고 좋은 예술은 비싸다는 것, 그것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기에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문제다.
접근권을 의무화 하고 선택권이 주어져야
사회 문화에 대한 접근권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다.
이원재 국가 통제 영역에서 시장 통제로 다른 영역보다 더 빨리 넘어가고 있는데 문화는 그 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 접근권도 결국 시장이 문제이다. 멀티플렉스처럼 문화 다양성이나 보편성은 좋아졌다고 하지만 주류의 장벽은 더 높아지고 시장적 가치나 자본주의 가치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화 자체가 배제된다. 본질적으로 자본이 접근 자체를 막는 것이다.
최재호 장애인 입장에서 접근권은 보다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다. 하나의 건물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 들어가도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느냐의 문제이고 그 이전에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대부분이 집에 있기 때문에 TV 외에는 정보에서 차단된다. 바우처 제도(정부가 특정 수혜자에게 비용을 지원해주는 교육)를 통해 티켓이 일방적으로 내려와서 좋든 싫든 봐야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아니다. 내가 선택해서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봐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김정우 정부 저작물에 대한 접근권도 문제다.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지는데 정부 부처에 돈을 내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또한 기술적인 뒷받침이 꼭 필요하다. 의무적으로 정부 저작물을 디지털화해서 제공하여야 인터넷 환경에서 사실상의 접근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저작권법과 국유재산법은 개정될 필요가 있다. 한편 인터넷에서 미니홈피, 블로그를 통해 중요한 정보를 주고받는데 최소한 개인들이 비영리적으로 이용하는 정보들은 어느 정도 허용이 되어야 하는데 현 저작권 체제와 충돌이 있다.
사회 사회적 약자 입장에서 보면 시골에 있는 노인층은 인터넷을 비롯한 문화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어 있고 문화생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며 욕구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지내게 된다. 문화다양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시장에 받아들여지는 문화만 유통되고 있다.
이원재 어느 지역에서나 거대한 최신식 문화센터를 짓고 일 년 지나면 거기서 전시성 행사를 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일상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마다 문예회관과 같은 공간이 있는데 주로 민방위 훈련으로 사용한다. 이곳에서 고급예술을 공연하면서 대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일상적으로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적 공공 공간에 대해, 죽어있는 공간에 대해 지역민의 직업, 연령 이런 특성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 서울시는 폐 철도를 뜯어내는데 철도는 기본적으로 경사가 없기 때문에 이런 공간을 노인, 어린이, 장애인을 위한 산책로가 될 수 있다. 학교도 죽어있는 공간인데 지역민을 위해 쓸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공간을 재정의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폐교는 지역에서 커뮤니티의 중심이었던 공간인데 유명 예술인에게 사유화 되는 경우도 많다. 단순히 빈 공간을 쓰면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쓸 것이냐가 중요하다.
김종범 만화는 문화다양성과 소수자 문화권에 대해 훌륭한 매체가 될 수 있다. 생활문화로서 전문가 양성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은 것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거기까지 신경을 쓰기에는 우리 내부 역량이 너무 모자란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평상시 네트워크가 되어 있어서 역할 분담을 하면서 만들어 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최재호 장애인문화공간에서는 장애인 기자학교를 3년 째 하고 있다.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기자 양성 교육을 하고 있는데 기자라고 하지만 여러 장애인 단체에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역량을 높이는 것이고 더 나아가 올해는 장애문제를 다룰 언론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목소리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더 넓어지고 커져가야 할 것이다. 장애인이 주체가 된 미디어 운동이 앞으로의 주요 과제이다.
김정우 저작권 체제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고민 중이다. 경제적 가치에 의한 권리보호 뿐만이 아니라 더 널리 퍼지기를 원하는 창작자의 요구 등 다양한 가치가 인정이 되어야 한다. 더 중요하게는 공공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공유문화, 정보공유라이센스, 위키피디아와 같은 이용자들의 백과사전 등등 이런 운동을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이원재 문화는 지금껏 이야기했던 것과 정반대로 신 성장 동력으로 이야기된다. 경제적 결정론이 문화를 장악하는 사회로 우리는 가고 있다. 이 가운데서 문화가 삶의 기초적 토대이고, 우리의 정체성이고, 삶이 질감이고, 삶 자체라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기초예술이란 단어가 문제는 없지만 이를 산업의 기초라고 규정하는 것이 주류의 태도이다. 삶의 기초, 생활의 기초가 되어야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직 돈이 안 된 ‘기초’ 예술. 돈이 되는 문화는 산업이고 돈이 안 되는 문화는 기초라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문화권 운동은 삶의 기초적인 권리를 찾는 싸움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