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저 노래는 많이 들어서 좋아진 걸까?

돈 놓고 돈 먹기의 문화사업

인간의 뇌에는 거울(mirror)뉴런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이를 따라 하는 사람의 뇌의 특정부위에서 활성화되는 것으로 밝혀진 뉴런들을 말한다. 그리고 이 거울뉴런들은 동물들 속에서도 발견되는데 사회성이 있는 동물일수록 더욱 활성화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뉴런들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하는 습성을 추동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할 때 단지 이 뉴런들의 움직임이 동반되는 것인지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의지의 형성이 뇌 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인간의 의식적인 활동의 한 부분인 ‘문화’ - ‘배고프면 밥 먹기’를 상대적으로 비의식적인 활동으로 분류하였을 때-라는 현상을 이해할 때도 뇌의 구조가 가진 규정적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적, 무의식적 ‘따라하기’


문화시장에서 대중들이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가 ‘다른 사람 따라하기’이다. 영화시장 만을 보더라도 좋은 영화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선택하여 보러 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다른 사람들이 많이 본 영화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가 깨지지 않을까 하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다. 좋은 영화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그들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영화를 좋은 영화로 선택했는가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이 한 집단이 특정 대상을 평가할 때, 첫 개체의 평가가 다른 개체의 평가들에 영향을 미치면서 나타나는 ‘따라하기’ 경향은 영화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과학적 윤리적 평가 양태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해석이 분분할 수 있는 증상을 놓고 의사 집단에게 순차적으로 진단을 요청하면서 각 의사에게는 그 전의 의사들이 어떤 진단을 내렸는지를 같이 알려주었다. 이때 똑같은 증상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몇 명의 의사가 어떻게 진단을 내렸는가에 따라 집단 전체의 진단 양태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혹자는 누구를 바퀴벌레 취급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진정한 개혁은 인간의 양면성.자유의지와 규정론-을 동시에 고려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내용인가, 독점 때문인가


문화시장의 각 부문마다 독점의 폐해에 대한 비난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 비난들은 시장(市場), 즉 예술가들과 예술소비자들이 만나는 접점을 특정 세력들이 독점하면서 다양한 예술가들과 소비자들이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되고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독점은 소비자들의 선택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누가 누구에게 강요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허리우드 영화가 상영관을 독점하는 것은 평균적인 통계를 보자면 할리우드 영화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성향에서 기인한 것일 뿐이다.

천만관객을 훌쩍 넘겼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총제작비 1백70억원으로 한국영화 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와 홍보비가 투입되었으며 개봉관수도 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화시장의 독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살필 필요가 있고 거울뉴런이 고려되어야 한다.


소비대중은 선정적이고 반복적인 영상 및 음성의 공격, 그리고 ‘따라하기’ 성향에 약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문화시장의 독점은 광고 지면과 화면을 통해 많이 여러 번 알려진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발생한다. 이 글에서는 대중이 유흥(entertainment)을 위해 할애하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을 ‘지면’이라는 함축적인 단어로 대치해보자. 이 때, 돈이 많은 콘텐츠 생산자는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돈을 투자하기 보다는 더 많은 ‘지면’을 선점하기 위한 홍보비용 및 배급비용에 더욱 많은 돈을 투자한다. 즉, 순수제작비 보다는 홍보 및 배급비용에 더욱 많은 돈을 투자하게 된다는 것이다. 돈이 없는 콘텐츠 제작자들은 홍보 ‘지면’을 돈이 많은 콘텐츠 생산자에게 빼앗기게 됨은 물론, 열악한 홍보에서 대중적인 지명도에서 밀리게 되면 유통업자로부터 공연을 위한 ‘지면’을 받는 것도 거부당해 실제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문화시장에서 보이는 집중은 콘텐츠 내용의 우수성 보다는 광고 및 홍보 ‘지면’의 독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닌지 판단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산업과 언론의 커넥션?


돈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지면과 화면을 살 수 있고 돈을 많이 낼수록 더 많은 지면과 화면을 살 수 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돈을 이용하여 지면(紙面)과 화면(畵面)을 점령하여 특정 작품에 청중의 관심을 독점시킨다. 이렇게 되면서 문화시장은 음반, 영화, 도서, 미술 등의 모든 면에서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지면과 화면을 구매할 수 있는 배급 및 유통 단계를 담당하고 있는 업자들이 제작 및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업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배급 및 유통사들은 배급 및 유통 단계에서의 막대한 투자를 회수하기 위해서 되도록이면 투자면에서 안전한 작품들을 선호해왔다. 흔히 드는 예로, 음반/영상계에서는 유명연예인들의 작품 및 출연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라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제작사가 스타를 기용할 경우 이것을 과연 순제작비용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스타가 가지고 있는 홍보력에 대해 돈을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결국 제작자는, 그리고 우리는 양질의 콘텐츠보다는 이미 대중 속에 각인된 스타들의 이미지를 사기 위해 돈을 들이게 된다. 이와 같은 선택은 소비자들의 행태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TV채널을 돌리다가 어떤 영화는 그냥 지나가고 스타들이 출연하는 영화에는 멈추게 되는 이유는 무의식 속에 우리는 스타가 내린 출연작 결정을 ‘따라하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현재 한국의 영화제작비는 순제작비가 평균 25억 원에서 30억 원 사이로, 홍보 광고비가 평균 10억 원에서 15억 원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홍보 광고비가 이렇게 많이 드는 산업이 과연 영화를 팔아 장사를 하는 것인지 홍보 광고비로 산 지명도를 팔아 장사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돈 놓고 돈 먹기’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자본가는 언제라도 엄청난 자금력으로 홍보 및 광고를 위한 시공간을 선점한 후 이를 통해 발생시킨 대중적 지명도를 이용해 저작물을 만들고, 이렇게 키워진 지명도와 남은 자금력으로 다시 배급 및 유통단계를 선점하면 최소한의 소비량은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이윤을 취할 수 있다.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영화를 통해 돈을 번다’기 보다는 ‘홍보력 및 지면을 팔아 돈을 번다’는 표현이 더 맞다. 이미 이와 같은 질문은 지금 한국의 신문사가 과연 소식을 독자들에게 팔아 돈을 버는 것인지 아니면 지면을 광고주에게 팔아 돈을 버는 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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