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활동가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학령기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집과 수용시설에서만 생활하다가 서른 살이 넘은 나이에 노들장애인야학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1999년 서울 혜화역 리프트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 뒤 차별받는 장애인 문제를 인식하고, 이후 장애인이동권연대 투쟁국장을 맡으며 지하철 선로점거, 420장애인차별철폐 노숙투쟁, 장애인교육권 투쟁, 활동보조인 제도화 투쟁, 사회복지시설 민주화 투쟁 등 치열한 현장투쟁에 늘 앞장서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경찰의 폭력진압에 의해 수없이 연행되기도 했다.
한 중증장애인 활동가의 구속
이규식 활동가는 현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투쟁팀장으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특수공무집행 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도로교통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총 5건에 대해 벌금 486만 원을 받아놓고 있던 상태였다. 또한 다른 사건으로도 3건의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지난 6월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창 앞에서 전장연(준)은 무차별적으로 내려지는 벌금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 | 강곤 |
이규식 활동가는 특별한 수입이 없기 때문에 벌금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단지 벌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신변처리조차 힘든 중증장애인을 연행하기 위해 집 앞에 형사까지 잠복시키며 야밤에 강제연행을 하는 탄압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이규식 활동가는 전동휠체어에서 내려서는 방바닥에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중증의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구치소 입감 이후에도 성동구치소 측은 장애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규정만을 내세워 전동휠체어 이용을 불허했다. 이로 인해 이규식 활동가는 수감 뒤 매트리스 한 장 깔린 바닥에 하루 종일 엎드려 지낼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소화불량과 생리작용이 힘든 상황을 맞았다. 이런 문제에 대해 항의와 개선을 요구하자 구치소 측은 그나마 약간의 개선 조치를 취했다. 언어소통과 신변처리가 힘든 장애인임에도 활동보조인은커녕 제대로 의사를 전달할 어떠한 대책도 강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감자의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해주지 못하면서 인간이하의 생활을 강요하는 감금행위를 했던 것이다.
이규식 활동가뿐만 아니라, 지난 수년간 치열한 현장투쟁을 통해 장애인의 인권을 확장시킨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에게 검찰과 경찰은 폭압적인 진압과 연행을 일삼아 왔으며 무차별적인 벌금형으로 대응해왔다. 이 과정에서 60여 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1억 3천여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상황이다. 온갖 차별과 멸시 속에 살아가는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활동가들에게 가해지는 공권력의 벌금탄압은 가히 ‘벌금폭탄’이라할 만하다.
공권력의 가공할 벌금폭탄의 위력
먼저 지난 7년간의 투쟁을 통해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아래 장차법), 이 법률을 제정하기 위한 투쟁과정에서 자본의 논리를 들이대며 장차법 제정에 반대하는 경제5단체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검찰은 하영택 서울시지체장애인협회 회장을 비롯한 30여 명의 활동가에게 벌금 4천4백15만 원을 부과했다.
또한 대형 비리시설인 성람재단의 조태영 이사장이 시설운영비를 착복하여 국고 횡령한 사건을 바로잡기 위해 이 시설의 관리.감독 기관인 종로구청 앞에서 143일간의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이를 이유로 대규모 비리와 인권유린을 한 시설의 이사회와 이사장에게는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비리를 척결하고자 투쟁한 장애인운동 활동가 20여 명에게는 3천4백만 원의 벌금을 구형했다. 뿐만 아니라 비리재단을 철저히 관리.감독하지 못한 채 방치해왔던 종로구청은 오히려 농성과정에서 주차장 운행 등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박경석 성람공투단 집행위원장 외 활동가 9명에게 4천5백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한 중증장애인들이 신변처리 및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활동보조인 제도화 투쟁 역시 벌금탄압에서 예외가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는 중증장애인들의 처절한 외침을 무시한 채 당사자들의 투쟁으로 얻어낸 약속조차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기만적인 자세로 일관해왔다. 이에 정부로부터 활동보조인 제도를 중증장애인의 당당한 권리로 인정받기 위해 중증장애인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43일간의 노숙투쟁, 한강대교 노들섬까지 기어가는 진격투쟁, 정부종합청사 앞 집회, 광화문사거리 행진 등 목숨을 건 투쟁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중증장애인 활동가들과 비장애인 활동가 13명에게 3천만 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했다. 이들 벌금형에 대해서는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뿐만 아니라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참사를 계기로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스스로의 이동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5년간 끈질기게 이동권투쟁을 전개한 바 있다. 이 투쟁의 성과로 2005년 1월 27일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김도현 정책국장은 8개월의 옥고를 치렀으며, 박경석 이동권연대 공동대표는 각각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판결 받았고, 현재도 이동권투쟁 등으로 검찰에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07년 4월 30일 장애인부모와 당사자 그리고 특수교사들의 3년여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장애인교육권 투쟁과정에서 도경만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집행위원장 외 1명에게 8백5십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또한 장애인의 교육권 확보를 위해 각 지역교육청 투쟁을 전개한 장애인교육 주체들에게 검찰은 벌금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현재까지 정확히 집계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군부독재 정권이 시혜적인 차원에서 제정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선포하고 매년 3월 26일부터 5월 1일까지 장애인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에 대해서도 투쟁기간 동안 100여 명이 넘는 장애인운동 활동가를 연행하고 벌금을 부과하고 있으나 아직 전체적인 상황이 파악되지는 않고 있다.
벌금 매기는 일 외에 정부와 검찰은 무엇을 했는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보듯이 장애인운동은 장애인이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게 해달라는 장애인이동권투쟁,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교육받게 해달라는 장애인교육권투쟁, 차이를 차별로 몰아가는 이 사회의 잘못을 막아내려는 장애인차별금지법 투쟁, 시혜와 동정이 아닌 장애인의 현실을 폭로하고 잘못된 사회구조에 저항하는 420공동투쟁단 투쟁,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신변처리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활동보조인 제도화 투쟁 등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요구를 내건 정당한 투쟁이었다. 우리의 투쟁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은폐하고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린 이 사회에 대한 항거였으며, 구조적인 차별의 책임을 져야 하는 정부에 대한 저항운동이었으며, 기만적인 집시법 등 법과 벌금의 올가미로 우리의 투쟁을 탄압하려 하는 검찰과 경찰에 대한 불복종 운동이었다.
장애인운동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벌금으로 단죄하려는 검찰과 경찰, 이 사회 권력기관에 묻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로 장애인들이 차별을 받고 사는 동안 이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정부와 검찰은 무엇을 했는가? 한해에도 수십 명의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떨어져 죽고, 신변을 비관해 자살하고, 비리 시설에서 개처럼 사육당하다가 죽어나가도 정부와 검찰은 한번이라도 이러한 야만적인 사회를 제대로 처벌했었나? 법이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면 정부와 보건복지부, 건설교통부, 교육인적자원부, 종로구청 등의 책임에 대해서도 정확히 처벌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고는 법이 평등하다고 인정할 수 없고, 우리는 벌금을 한 푼도 낼 수 없다.
아울러 장애인운동 진영은 장애인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투쟁해온 활동가들에게 가해지는 벌금탄압에 맞서 이후에도 온몸으로 저항할 것이다. 또한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에게 수년간 1억여 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하는 정권의 기만적인 탄압에 맞서 더 힘차게 장애인차별철폐투쟁에 나설 것이며,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벌금 불복종 운동 등 다양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