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앰네스티 한국지부 |
정부는 고문으로 얻어진 정보는 법정에서 그 효력이 배제될 수 있고, 고문을 가한 경찰이나 검찰은 처벌받는다는 것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주장은 역설적으로 고문을 정부의 책임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수사과정에 있어서 용의자의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경찰관 한 개인의 폭행(독직폭행)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그 연장선에서 고문에 대해 정부에서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지불하기는 하지만, 고문을 행한 그 주체는 정부보다는 한 개인(경찰관)의 폭행 행위로 볼 수도 있다는 의미도 된다.
물론 수사과정에서의 고문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는 경찰에 의한 고문은 일상화되어 있으며 우리 또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도 아시아에서 일상적인 일은 고문은 단순히 고문이 일어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다른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최근에 일어난 고문사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문을 둘러싸고 한 국가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지 알 수 있다.
네팔에서 고문은 중범죄가 아니다?
네팔 헌법 제14조 4항은 고문을 금지한다는 명문 규정이 있다. 더불어 네팔은 고문방지협약의 당사국이며, 이에 대한 국내법으로 1996년에 제정된 고문배상법이 있다. 하지만 이 고문배상법은 고문을 방지하거나 고문사건을 기소하는 도구로는 효과적이지 않으며 고문방지협약의 기준에도 미달한다. 우선 이 고문배상법은 고문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배상법이나 헌법의 14조 4항에 의해 고문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에 일정정도의 제한이 존재한다. 고문가해자를 처벌하는 법이 없으므로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고문배상법 5부는 “피해자가 고문을 당한 후 혹은 풀려난 후 35일 이내에 구류된 지역의 법원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그 기간을 지나치게 짧게 제한하고 있는 문제도 있다. 그리고 오직 배상만 청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문을 당했다는 입증 책임이 피해자에게 주어지고 있고 입증을 실패할 때에는 처벌을 받게 되어 있어 사실상 많은 고문 피해자들이 소송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고문 가해자에 대한 양형 또한 문제다. 예를 들어 15세의 여자 아이를 고문하여 죽인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세 명의 군인들은 단지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국제형사재판소의 로마규정에도 고문은 인도에 반한 죄라 규정하고 있지만, 네팔에서 실제로 고문가해자들이 받는 형량은 단기간의 구금에서 벌금형 정도이다. 이 배상법에는 또한 체포 시, 구금 시 의사가 입회하여 고문여부에 대하여 검진할 것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정기적으로 행해지고 있지 않다.
대법원장도 고문을 당하는 파키스탄
파키스탄의 전 대법원장인 이프테하 차우드리(Iftekhar Choudhary)는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와 신드 지역의 수도인 카라치에서 법 집행요원들에 의해 정신적인 고문을 당했다. 2007년 3월 9일, 파키스탄의 대통령 무샤라프 장군은 그를 불러 대법원장직을 사직할 것을 요구했다. 대법원장은 이를 거부하자 5명의 군 장성들이 5시간 동안 그를 감금하고 대법원장직을 사직하라고 압력을 행사하며 협박하였다. 같은 시간에 무샤라프 장군은 대법원장 대행을 선임하였고, 대법원장은 그 직을 상실하게 되었다. 또한 정부는 전 대법원장 이프테하 차우드리가 재직시절에 권력을 남용하여 가족에게 정부 요직을 주었다는 혐의로 3월 13일에 대법원 사법위원회에 이 사건이 회부했다. 이로 인하여 그는 가택감금이 되었고 수십 명의 경찰들이 집을 둘러쌓다.
물론 고문은 아시아에서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미국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의 고문과 가혹행위는 끊임없이 문제가 되고 있다. 영화 '관타나모 가는 길' 캡처. |
5월 19일에는 전 대법원장 이프테하 차우드리가 법정으로 출두하는 과정에서 경찰들이 호송차에 타길 거부하는 그에게 뺨을 때리고 머리를 잡아 흔드는 폭행을 하기도 했다(http://www.ahrchk.net/statements/mainfile.php/2007statements/1040/?alt=french 참조). 이 사건이 알려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전 대법원장을 지지하며 정부에 항의하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이는 파키스탄 내에서 전례가 없었던 사건이라고 한다.
한편 지난 1월에는 요리사인 하주르 벅쉬 말릭(Hazoor Buksh Malik, 24)이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그는 곧바로 신드 주의 경찰서로 끌려갔다. 경찰서장은 그가 과거 자신의 요리사였으며 당시 절도혐의로 체포되었다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사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 경찰서장을 포함한 다른 3명의 경찰관들이 만취한 상태로 들어와서 구타를 하였고 이 와중에 깨진 컵으로 이 사내의 성기를 절단하였다. 그럼에도 하주르 벅쉬 말릭은 병원으로 바로 이송되지 않은 채 밤새도록 유치장에서 피를 흘려야 했으며 다른 경찰에 의해 아침에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하주르 벅쉬 말릭은 풀려나자마자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얼마 전에야 세 명의 경찰관들만이 정직되었을 뿐 주 용의자인 경찰서장은 선거당시 열정적인 캠페인을 벌여 도움을 준 마약금지연방장관의 비호를 받고 있다.
경찰이 고문하고, 피해접수 받고, 다시 위협하고
스리랑카 또한 고문방지협약의 당사국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이행법으로 CAT ACT No 22 of 1994를 제정하였다. 그렇지만 정부에 대한 모니터링은 물론 홍보도 전혀 되지 않아 10여 년이 지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를 이용하는 신청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최근에 그 신청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조사가 실시되지도 않거나 지연됨으로 인하여 가해자인 경찰들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하여 갖가지 타협을 시도하고 때로는 위협을 가함으로서 피해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또한 스리랑카 경찰청은 핫라인을 설치하여 사건이 접수된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조사하여 그 결과를 보고하게 하는 체계를 수립하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1개월 이내에 조사되어 마무리되는 사건은 거의 없다. 그 이면에는 사건이 일어난 경찰서에서 해당 경찰관에 의해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일반인의 민원 자체를 받지 않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설령 사건을 접수한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증인보호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고문을 당한 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의한 고문의 일상화에 너무나도 쉽게 순응하게 된다.
버마에서는 2007년 3월 18~19일 사소한 가족문제로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감옥에 유치되었던 코 나잉 우(Ko Naing Oo, 36)씨가 다음 날 아침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일이 발생했다. 그의 몸에는 심하게 멍든 자국들이 발견되었으나 해당 경찰관은 밤에 너무 추워서 쭈그리고 자다가 죽었다고 해명하였다. 곧 조사가 진행되었고 법원에 소를 제기하였지만 많은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이러한 소송은 성공하지 못한다. 이 사건에 관하여 법원에서 4월 11일 재판이 진행되었는데 코 나잉 우 씨의 가족조차 이 재판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통보받지 못하였으며 동시에 그의 아버지는 지속적으로 경찰관들에게 협박을 당해야 했다. 또한 재판이 열리기 전인 3월 29일 부검 결과가 나왔지만 그 내용은 술에 취해서 잠들다가 자연사했다는 결과였다. 사람이 경찰에 의해 끌려가 다음날 아침에 주검으로 발견이 되었으나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은 고문에서 자유로운가
유엔 고문방지협약의 정확한 명칭은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이다. 그리고 이 협약의 제1조에 고문에 대한 정의가 기술되어 있다. “고문이라 함은 공무원이나 그 밖의 공무 수행자가 직접 또는 이러한 자의 교사.동의.묵인 아래, 어떤 개인이나 제3자로부터의 정보나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이나 제3자가 실행하였거나 실행한 혐의가 있는 행위에 대하여 처벌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이나 제3자를 협박.강요할 목적으로, 또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기초한 이유로, 개인에게 고의로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흔히 한국에서 고문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수사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찰 혹은 검찰에 신체적인 고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협약을 한 번만 더 자세히 읽어보면 이러한 생각은 매우 협소한 정의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2006년 5월에 열린 대한민국 제2차 정부보고서에 대한 고문방지협약의 최종견해를 보면 한국도 고문으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과거의 고문피해자들에 대해 단순히 배상만 지급할 뿐 이들을 위하여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통합의 체계는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모든 정비가 잘 갖추어진 형사소송법이 곧 국회에 제출될 것이며 이 법이 통과된다면 고문방지협약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고문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장담하며 문제를 회피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고 있으며 실제가 법과는 상당히 유리되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또한 흔히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되지 않은 이들이 불행히도 용의자가 되어 경찰에 의해 체포될 경우를 떠올려보면 고문은 한국에서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며 인종에 근거한 차별의식 덕택에 그 뿌리가 아주 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고문을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우리 주변에서 가정폭력을 당하는 이가 경찰에 신고를 해도 경찰은 형식적인 확인만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경찰은 신고나 민원이 들어오면 출동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의무는 다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고도 피해자의 상태만 대충 확인하고 그대로 돌아가는 경찰의 의식 저변에는 무엇이 있을까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체벌이나 두발단속을 한답시고 교사가 직접 가위를 들고 강제로 학생들의 머리를 자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많은 학부모들도 교육을 위해 일정 정도의 체벌과 두발단속은 필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지나친 학교체벌을 보게 되면 처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간혹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와 교사를 폭행하는 현장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 교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인다. 폭력은 어떠한 순간에도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밖으로는 말하지만 정작 우리 내부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여러 가지 잣대가 있어왔다는 것이다. 반면 고문이 일상화되어 있는 스리랑카에서도 학교에서의 체벌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한국은 각 학교에 재량권을 둠으로써 그 여지를 남겨놓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 때 학교 선생님들에게 맞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행여나 이러한 과정을 지나온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잘못했으면 맞아야지’라는 생각을 너무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는지, 폭력을 당연시 하게 되어 죄를 지은 범죄자라고 하면 어느 정도 맞아도 싸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새삼 염려가 된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