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을
산업재해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8년에는 온도계 공장에 다니던 15세의 어린 노동자가 수은 중독으로 목숨을 잃었다. 2007년 금속노조 사업장에서는 불과 열흘 사이에 7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와 자살로 죽고, 3명이 중상을 입는 등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노동부 집계에 의하면 2006년 현재 하루 평균 약 30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거나 다치고 있다. 이른바 5대 재래형 재해인 ‘협착(감김.끼임), 전도, 추락, 충돌, 낙하.비래’에 의한 사고가 전체 업무상 사고 재해의 77.71%(2006년 현재)를 차지한다. 2005년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 당 치명적 산업재해율은 27.6명이라고 한다. 미국은 4명, 일본은 0명에 비추어 놀라울 따름이다. 세계 제일, 1등 한국의 성장제일주의는 결국 산업재해 일등국을 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이나 이윤 극대화가 아닌 노동자의 건강권이다. 이에 2002년 노동계는 민중의료연합과 함께 집단적 작업환경의 개선을 목적으로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투쟁을 전개했다. “집단요양투쟁을 전개할 때 노동안전보건 단체들 내부에 두 기류가 형성됐어요. 각개 사업장을 중심으로 일상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부류와 공상이나 사내 물리치료실 설치 등에 대해 사측과 합의해야 한다는 부류… 우리는 산재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현장투쟁이 우선한다는 입장이었고, 지향이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단체를 결성하게 되었죠.”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아래 한노보연) 소장이 한노보연의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대중화
한노보연의 주요 목적은 노동자에 의한 작업장 통제를 통해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환경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의 초동주체들과 소통하고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노보연은 현장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한 근간으로 사업장 교육활동과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선전활동을 일상적으로 전개해 왔다. 산재처리, 노동 강도 약화, 특수검진 등에 관한 A3사이즈의 소자보를 비롯해 각종 선전물과 스티커를 제작해 사업장에 배포했다. 그리고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사회적 확산을 위해 매월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를 발행하고 있다.
올해는 크게 세 가지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데, 첫째 산업재해를 은폐하려고 하는 자본에 맞선 현장투쟁, 둘째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에 대한 산재인정투쟁, 셋째 현장의 작업환경 개선 투쟁이다.
자본에 맞선 현장투쟁
2002년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투쟁이 진행되면서 경총은 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꾸려 몇몇 방침을 만들고 2004년 5월 요양투쟁저지 방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공상(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치료비 및 후유보상금 등에 대해 회사와 합의를 보는 것)과 물리치료실 같은 사내 예방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도록 강요했다. 얼핏 노동자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것처럼 보이는 ‘예방관리 프로그램’은 이윤을 쫓는 자본의 제스추어다.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의 경우 노동부로부터 점검을 받게 되고 보험료도 인상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방어책으로 마련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산재를 당한 개별 노동자가 치료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미봉책에 불과하죠.” 공 소장은 산재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한다. 결국 사고와 위험으로 뒤덮인 현장의 문제를 숨김으로써 악순환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이다. 한노보연은 이러한 공상과 예방관리프로그램의 배경을 밝히고, 산재 발생 시 반드시 원인조사와 작업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사업장 교육과 선전물을 배포하며 현장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유정옥 소장 |
근로복지공단은 기업복지공단?
근로복지공단은 경총의 지침을 내부지침에 반영하여 ①근골격계질환 인정기준 처리지침 ②요양업무 처리지침 ③과격집단민원 대응지침을 세운다. 이는 산재의 불승인과 강제종결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복지에 힘쓰라고 있는 줄 알았던 근로복지공단이 기실 기업복지공단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세 가지 규정은 산재보험법을 뛰어넘어 초법적 위력을 발휘, 산재 불승인을 남발하며 산재노동자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한노보연은 이런 근로복지공단의 개혁 없이는 노동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도,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도 요원하다고 말한다.
정부와 자본의 압박 속에 무엇보다 일상적인 노동현장 개선과 노동안전 활동이 요청된다. 특히 올해는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의 성과인 유해요인조사가 실시되는 첫 해이다. 금속산업계 집단요양투쟁이 이어지면서 자본과 정부의 근골격계 직업병을 관리·은폐하려는 체계가 안착된 지금 유해요인조사를 어떻게 일상적인 노동보건 현장 활동으로 자리매김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당시에는 개별 사업장에서 분산 대응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작은 사업장들이 지역에서 공동조사를 하며 노동자가 스스로 유해요인 조사를 하겠다고 결의, 개선요구안을 만든 성과가 있었던 반면 큰 사업장의 경우 연구기관을 선정해 용역을 주거나 사업주가 얼렁뚱땅 해버린 경우도 허다했다. 이를 반면교사로 한노보연은 올해는 현장노동자가 직접 개입하는 공동투쟁을 고민하고 있다. 유해요인조사를 위한 가이드북을 만들어 사업장에 배포하고 일부지역에서 공동조사를 하며 현장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장의 노동자가 자기개입을 가질 경우 이를 지원하고 있어요.” 공 소장은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 소장과 이야기 하는 동안 이훈구 활동가는 유해요인 조사를 위해 방문한 노동자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운동의 대리주의 탈피해야
노동안전보건 투쟁이 다른 운동과 달리 접하게 되는 어려움은 전문주의 혹은 대리주의이다. ‘의학’이나 ‘보건’에 대한 두려움은 의료전문가에 대한 의존성을 만든다. 노조 내에서도 노동안전 전문가가 정해지면 그가 모든 걸 대리하게 된다고 한다. 일례로 산재요양신청을 했는데 승인이 안 되면 치료권을 박탈당하게 된다. 그러면 근로복지공단에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데 노동조합으로 항의방문을 온다는 것이다. 조합간부가 그거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하느냐고…. 한노보연은 이런 불만들을 모아 근로복지공단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지난해 3월 이주노동자가 위험한 유기용제에 중독되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노동부가 전국 120개 특수건강진단기관에 대해 일제 감사를 시행했다. 이 중 실제 검진을 시행하지 않은 1개 기관을 제외하고 모든 기관이 지정취소, 업무정지, 시정조치 등의 징계를 받았다. 노동부가 간만에 본연의 업무를 했는데 노동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오히려 민주노총 지도부는 지정기관에서 확약서를 받는 형식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관료주의적 방식으로 혹은 대리주의적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 거죠.” 공 소장은 이런 운동방식이 회의적이라고 한다. 집단요양투쟁 이후 현장성을 접목할 만한 사안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지금 어떻게 노동자들의 뜻을 모아 현장운동을 되살릴지 고민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운동’
현장운동을 위해서는 현장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장연구는 연구의 주체와 대상이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노보연은 끊임없이 현장의 주체들과 소통하고 조직하려 한다.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현장에서 보건운동을 전개해야죠. 권리차원, 건강권 차원에서 노동자를 조직하고 운동의 주체를 노동자 대중으로 확장해 나가야죠.” 공 소장은 의료전문가가 아닌 노동자의 주체적 투쟁을 강조한다. 나아가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즉 노동자들이 현장성, 계급성, 전문성을 갖추고 노동 강도를 결정할 수 있는 수준의 작업장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현실의 문제에 부딪힌다. 작업시간, 노동 강도를 줄이면 실질적으로 임금의 삭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심야노동 철폐, 휴게시간, 작업중지권을 요구하는데, 야근을 할 경우 심야근로수당이 두 배로 주기 때문에 충돌하게 되죠.” 공 소장은 노동자를 설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어떻게 얻어낸 야간근로인데…’라는 원망이 되돌아오기도 한다. 임금을 보존하면서 노동 강도를 약화시키고 노동시간을 연장하지 않음으로서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들 당장 현장에서는 임금삭감이 불 보듯 뻔하니 ‘현실감 있는 이야기 좀 해 달라’는 반응이 태반이다.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운동’이잖은가. 계속적인 교육과 설득을 통한 조직화와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한노보연은 총회, 운영위원회, 집행위원회, 상근자 구조를 갖고 있다. 운영위원회는 분기별로 한 번, 집행위원회는 1~2주에 한 번씩 열리며 실행사업들을 점검하는데, 운영과 실행이 분리되면 안 된다는 판단 하에 집행위원회 구성원은 모두 운영위원회에 참여한다. 상근자는 공유정옥 소장과 이훈구 활동가 둘 뿐이지만 회원들이 참여하는 선전위원회, 기획위원회, 노동강도저하특별위원회가 활동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전체 회원은 50여 명으로 적은 수에 비해 아낌없이 후원해주는 회원들이 있어 운영에 큰 어려움은 없다. 회원들과는 매월 세 번째 금요일 ‘회원의 날’을 통해 활동을 공유한다. 한 달 간의 동향을 브리핑 하는 ‘세상보기’, 시기별 이슈에 대해 논의하거나 피켓이나 자보를 함께 만드는 ‘나누기’, 그리고 친목을 도모하는 ‘힘다지기’ 시간을 갖는다. 매월 두 번째 월요일은 ‘열린토론-세상을 보다’를 열어 다양한 영역의 운동에 대한 공부를 한다.
반세계화, 인권, 비폭력대화 등의 주제로 내부역량을 강화하는 시간이다. 다른 운동영역과의 소통 속에서 활동은 더욱 깊어지고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이 일부 노동자계층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건강하고 안전한 생존을 위한 권리이다. 어떻게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소통하고 조직할 수 있을지 한노보연은 연구 중이다. 우리 모두의 지혜와 실천이 필요하다.
사진 박김형준 | 객원기자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