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인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종종 의무에 대해서 논하기를 꺼린다. 의무를 강조하는 것은 권리 주장을 누르기 위한 방편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집회와 시위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주장을 보면, 집회와 시위보다는 교통정체로 많은 시민들이 불편하다고 부정적으로 말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하면 국가안보를 위한 국민의 의무를 내세운다. 그러기 때문에 일단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대체로 의무는 부정적으로 읽히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양 극단의 사고는 모두 잘못이다. 권리와 의무는 대응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보통 권리를 주장할 때는 의무 당사자의 문제는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유권, 사회권 규약에서 언급되는 모든 권리항목들의 의무 대응관계는 주로 국가다. 개인이 이런저런 의무를 지고 있는데, 국가는 그 의무주체가 된다. 의무주체로서 국가가 무엇을 행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주로 서술된다. 그러므로 권리 주체인 개인들은 국가에 대해서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느냐가 이들 규약에서 거론하는 권리들의 주요 내용들이다. 이렇듯이 모든 권리에는 의무 담지자의 의무이행이란 문제가 대응하고 있다. “권리가 의미 있기 위해서는 그에 대응하는 타인의 의무들이 무엇이며(의무내용의 문제), 도대체 누가 그 의무를 지는가(의무주체의 문제)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다시 인권이란?
이런 논의들을 진전시키기에 앞서 우선 인권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고 가도록 하자. 인권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로부터 의무 문제를 보다 정확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법철학 교수 김도균은 인권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① 근본적인 도덕적 권리로서의 인권은 ‘각 개인이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제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당한 요구’(everyone’s minimum resonable demands upon the rest of humanity)이다.
② 근본적인 도덕적 권리로서의 인권은 인류 전체에 대한 각 개인의 최소한의 합당한 요구들로서, 기타의 모든 권리들을 향유하고 행사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 되는 기능을 하는 권리들을 말한다.
③ 어떤 이익이나 필요가 근본적인 도덕적 권리인 인권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것을 보장하지 않거나 침해하는 경우 죽음에 이르거나 엄청난 고통을 받거나 또는 인간의 자주성의 핵심영역을 심각하게 손상하는 때이다.
④ 어떤 재화나 가치들을 각 개인들에게 골고루 균등하게 배분하지 않거나 또는 그 재화를 박탈할 경우 각 개인이 인간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부당하다고 판단될 정도로 그 재화나 가치들이 필수적이고 긴요한 중요성을 가지는 것일 때 각 개인들은 그러한 재화나 가치들에 대해서 근본적인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
위의 정리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인권에 대한 개념을 집약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권은 네 가지의 특징을 갖는다. 즉 권리주체의 보편성과 권리상대방의 일반성, 도덕적 정당성(moral validity), 권리내용의 근본적 중요성(paramount importance), 실정법에 대한 우선성(priority) 등이 그것이다.
주류 인권학에서는 이와 같은 인권을 소극적 권리와 적극적 권리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극적 권리는 주로 시민.정치적 권리(자유권)를 말하고, 적극적 권리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사회권)를 말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에 속하는 얘기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소극적 의무와 적극적 의무
소극적 권리에 대해서는 소극적 의무가 대응하고, 적극적 권리에는 적극적 의무가 대응한다. 보통 소극적 권리는 “모든 사람은 ∼권리를 갖는다”는 논리 구조를 갖는다.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국가는 그런 권리를 확인하고, 존중하고, 침해하지 않으면 된다.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고문은 국가 공무원들이 강압에 의해서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인데, 여기서 국가가 고문을 행하지 않으면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는 보장된다.
반면 사회권에서 말하는 권리들에 대해서는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의 다음의 권리를 인정한다(또는 약속한다)”는 논리 구조를 갖는다. 당사국인 국가가 인정하고, 약속하는 권리에는 적극적으로 국가가 정책을 펼쳐서 그런 인권이 보장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비정규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교하여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에도 맞지 않고, 각종 노동조건들에서도 차별이 존재한다. 이럴 때 비정규직의 문제를 개별 기업 자체의 조처를 그대로 두고 보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때는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비정규직을 끊임없이 확대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국가는 기업에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조처들을 입법을 통하거나 행정지도와 감독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해결하도록 하여야 한다. 단지 존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침해받지 않도록 방지해야 하고, 나아가 인권의 실현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정책도 생산하고, 자원도 분배하여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이런 것이 적극적인 의무다. 물론 한국의 현실에서는 이런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말한 계제도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비정규직의 차별을 확대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국가로서 최소한의 의무인 인권의 후퇴방지 의무조차 지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류 인권관에서는 이런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규정한 사회권은 인권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런 주장은 다음과 같은 논리에서 가능하다. 적극적 권리에 대한 적극적 의무의 대응관계를 규정하는 사회권의 경우는 국가의 특수한 의무를 규정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기 때문에 의무 당사자인 국가의 의무가 보편적인 의무가 아니고, 사회권규약에 가입한 해당국가에만 적용된다. 그러므로 보편성의 원칙에 어긋나고, 그런 이유로 인권으로서의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권은 종종 ‘프로그램 규정설’ 정도로 인식된다. 이것을 김도균 교수가 작성한 도표를 인용해 보면 아래 표와 같다.
삼중의무 대응설
하지만 20세기 후반을 경과하면서 위와 같은 주류 인권관의 주장은 공격을 받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미 유엔에서 사회권규약이 채택, 발효되었다는 것부터가 주류 인권관의 관점이 부정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의무 관계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인 해석은 사회권규약 가이드라인을 작성한 림버그 원칙(1986년)과 그를 계승.발전시킨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침해에 관한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1977년)으로 나아가고 있고, 이런 해석과 가이드라인은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일반논평으로 정착되고 있다.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의 전 내용을 살펴보기에는 지면이 부족해서 여기서는 ‘존중, 보호, 실현의 의무’ 항만 인용해 보자. 그렇지만 인권활동가라면 반드시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전문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6. 시민.정치적 권리와 마찬가지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도 국가에 세 가지 형태의 이행의무를 부과한다. 그것은 존중, 보호, 실현의 의무이다. 세 가지 이행의무 중 어느 것이라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들 권리의 침해를 구성한다. 존중(respect)의 의무는 국가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향유하는데 저해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자의적인 강제퇴거에 관여했을 경우, 주거권을 침해한 것이다. 보호(protect)의 의무는 제3자가 인권침해를 하지 않도록 국가가 막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기업이 노동자의 기본적인 일할 권리와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을 만드는 데 실패한다면 노동권에 대한 인권침해이다. 실현(fulfill)의 의무는 국가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 적절한 법률.행정.예산.사법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므로 국가가 필요한 사람에게 필수적인 기초 의료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이런 원리는 사회권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권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것으로 법학계에서는 삼중의무설로 정립되어 있다. “즉, 국가는 ① 권리보유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의무(침해금지의무) ② 다른 사람들이 권리보유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부터 권리보유자를 보호할 의무(보호의무) ③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한 권리보유자를 구조할 의무(구조의 의무)”가 그것이다.
소극적 권리라는 것은 이중에서 침해금지의 의무 정도에 한정해서만 사고하는 것이고, 적극적 권리는 보호의무와 구조의무까지 포함해서 사고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인권을 존중, 보호, 실현할 3중의 의무를 지고 있는 국가에게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들을 취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의무 없는 권리는 없다
그렇지만 국가는 이런 3중의 의무를 이행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때가 종종 있다. 앞의 예에서도 다루었지만, 오히려 국가가 최소한의 인권 후퇴를 조장하는 정책을 시행하지 말아야 함에도 국가가 그런 짓을 법의 이름으로 행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비정규직보호법’이라든가 한미FTA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현상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에 국가는 자본의 적극적인 옹호자로 등장하고 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내맡기자는 주장 자체가 갖는 위험성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인권의 후퇴를 조장하는 국가에 대한 개인들의 의무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정리하면, 국가를 민주화할 의무를 국민들이 지게 된다. 3중의 의무 이행에 역행하는 국가라고 한다면, 개인들은 그런 국가에 연대해서 저항하는 것이 요청된다. 만약 국가가 적극적인 인권침해자로 등장하게 되면, 거기에는 국민적 저항권을 발동하여 국가를 전복하는 길밖에는 달리 길이 없다. 그 저항권을 발동하기 전에 개개의 법률이나 제도에 대해서, 정책에 대해서 불복종하는 방법이 있고, 그것을 통해서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를 확인하고, 이를 실현한 국가의 도덕적 의무를 일깨우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위에서는 주로 국가의 의무만을 강조하여서 말했지만, 인권의 존중, 보호, 실현의 의무는 국가만이 아니라 인권의 주체라고 하는 개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나의 인권을 주장하면서 남의 인권을 무시하는 태도는 인권의 원칙에 반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로부터 연대의 중요성이 등장하게 된다.
이번 호에서는 권리는 반드시 의무에 대응한다는 점, 그런 의무의 실현은 국가만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해당된다는 점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았다. 이번 논의의 결론은 “의무 없는 권리는 없다”로 정리할 수 있겠다. 다음 호에서는 인권 논의에서 종종 회의에 부닥치게 되는 국가의 문제를 고민한다. 이때 다시 의무의 문제를 논하게 될 것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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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김도현 교수가 지난 4월23일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행한 제1회 인권간담회 “인권과 정의론: 최소한의 정의원리 보장으로서 인권”을 많이 참조하여 작성했다. 김 교수의 원고는 대한변호사협회가 발간하는 <인권과 정의> 제369호에도 수록되어 있고, 홈페이지에서도 다운받아 볼 수 있다.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은 도서출판 사람생각에서 발간한 『사회권규약 해설서1』(인권운동사랑방 사회권규약해설서팀 엮음)에 수록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