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괴리되지 않은 운동
‘끼리끼리’에서 ‘한국레즈비언상담소’로 명칭을 바꾼 것은 2005년. “레즈비언 개개인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고립되어 있는 레즈비언들을 찾아가는 일에 중점을 두기 위해 전환했어요.” 박은우 활동가가 상담소로의 전환배경을 설명했다. 상담소라고 하면 상담만 하는 곳으로 오해될 것이라는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레즈비언 인권 개선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보다 상담에 전념하기로 했다. 상담사례에서 현재 레즈비언들이 처한 사회적 위치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고, 당사자들의 현실이 운동의 지표가 될 때 현실과 괴리되지 않은 운동이 될 수 있다.
사진제공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매년 상담사례를 묶어 상담통계를 작성해 왔다. 그 속에 2006년 화두였던 군대 내 동성애자 문제가 2007년의 가족구성권과 입양의 문제가 있다.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는 통계가 아닌 매해의 이슈와 성적소수자들이 처한 인권지형을 보여주는 통계로, 이는 직접 상담을 진행하므로 가능한 일이다.
상담의 진화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활동은 팀체제로 이루어진다. 핵심사업인 상담팀을 비롯해 사건지원팀, 인권정책팀, 출판기획팀, 교육사업팀, 그리고 대외협력팀 이상의 6개 팀이 독자적이면서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각 팀은 적게는 두 명에서 최대 6명의 활동가들이 결합하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팀원들이 중복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한국레즈비언상담소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두 명의 활동가로 구성된 단체가 태반임을 감안하면 상근자 2인에 비상근이지만 13명의 활동가 풀을 가진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상황이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담팀은 상근자 2인에 더해 4명의 활동가로 구성, 전화, 게시판, 이메일 및 면접 등 다양한 형태의 상담을 진행한다. “한 번은 레즈비언 딸을 둔 독실한 기독교인 어머니가 전화상담을 해 오셨어요. 자신의 딸을 이해하고 싶어서 전화했다면서 동성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자신의 경험과 비슷하면 더욱 공감하거나 마음이 쓰이는 게 인지상정.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박은우 활동가는 자신의 어머니와 상담하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고 그 때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상담과 함께 상담원 양성교육 역시 상담팀의 중요한 역할이다. 줄곧 상담소 내 상담원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었는데 올해는 외부의 단체 활동가, 레즈비언상담을 공부하고 싶은 여성, 상담사 자격을 가진 남성 등을 대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이는 다른 많은 상담소가 레즈비언 상담의 포인트나 대처방법을 몰라 내담자를 다시 고립시키는 일이 없도록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여기에 동성애의 문제가 결합된 경우도 있고 자신의 성정체성 문제를 다른 상담소에 문의하기도 하는데 상담자가 오히려 이상한 반응을 보일 경우 내담자는 다시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팀에서는 올해부터 10대 청소녀 쉼터 방문을 시작했다.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는 10대들을 지원하기 위한 전략에서다. “우리가 쉼터를 직접 운영하면 좋겠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니까 기존의 쉼터와 연결고리를 만드는 발판사업인 셈이죠.” 려수 활동가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쉼터를 운영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쉼터를 방문해 10대 레즈비언을 만났을 때 필요한 상담기술을 공유하고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발간한 동성애와 관련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자주 묻는 질문 FAQ』를 배포한다. 쉼터 실무자들의 왜곡된 인식과 호모포비아적 태도가 인권침해를 낳을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전달하면서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존재와 역할을 알려나가는 것이다.
내담자 상담에서 기존의 광범위한 상담공간을 공략하고, 찾아가는 상담까지.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상담은 진화하고 있다.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하는 것들
상담팀과 연계해 사건지원팀에서는 각종 차별과 범죄사건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 의료적 지원을 한다. 검경과 법원의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이 병행된다. 이상의 상시적 활동 외에 올해는 지역법률강좌를 시작했다. 지난 5월 대전에서 레즈비언이 알아두면 유익한 법률상식 ‘법은 무지개를 타고’를 열었다. 상속과 입양문제, 성소수자와 관련한 범죄 발생시 피해구제방법 등을 내용으로 한 강의다. 앞으로 전주와 다른 지역(미정)에서 두 번 정도 더 진행할 예정이다. 성소수자 단체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 지역 강좌진행에 어려움이 따르지만 운동의 불모지를 개척하는 차원에서 매년 3~4개 지역에서 강좌를 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외부 강의나 교육을 전담하는 것은 교육사업팀이다. 2005년부터는 레즈비언 자긍심 갖기 프로그램 ‘나는 동성애자다. 나는 여성이다’도 열고 있다. 레즈비언과 레즈비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커밍아웃, 레즈비언 역사대탐험, 10대 이반, 동거나 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레즈비언이라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긍정하고 힘을 얻는 공간이다. 레즈비언의 존재가 가시화될수록 레즈비언을 향한 폭력 또한 거세지고 차별도 다양하게 표출된다. 또한 여전히 우리사회에는 레즈비언의 존재 자체에 대한 무시와 편견, 왜곡이 팽배하다. 때문에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개개인이 가진 고민과 어려움을 나누고 서로를 지지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웅변한다.
소수자 내 소수자 10대 이반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유독 10대 이반에 관심이 많다. 활동가들 자신이 소외된 10대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그것이 알고 싶다’나 ‘뉴스 투데이’ 등 매체에서 보인 10대 이반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우리사회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레즈비언 내에서도 10대와 2,30대가 사회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단절됨으로서 10대들은 소수자 내 소수자로 소외되곤 한다. 인권정책팀에서는 10대 이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10대 이반을 대상으로 학교 내 차별실태를 알아보기 위한 ‘10대 이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가 대표적이다. 89~95년생을 대상으로 설문과 심층인터뷰를 통해 구체적인 인권침해사례와 차별적 교육환경의 유형을 조사한다. 또한 ‘school kill us'라는 학교 차별사례 고발 게시판도 운영해오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교과과정, 학교, 학내생활환경에서의 인권침해실태를 조사,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 기초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끼리끼리’때부터 계속해 온 사업이라 많은 사례들을 수집한 반면 여전히 그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슬쩍 아쉬움이 생긴다.
이 외 출판기획팀에서는 반년간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웹자보나 각종 책자를 제작하는 등 기술적인 지원을 담당한다. 대외협력팀에서는 크게 3개의 연대사업을 진행하는데 목적별 신분등록법 제정을 위한 공동행동, 레즈비언 권리운동단체로 구성된 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 HIV/AIDS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공동행동이 그것이다. 인권교육네트워크의 경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활동가가 부족해 활동을 중단했다. 실질적인 참여와 활동을 바탕으로 한 연대원칙을 엿볼 수 있었다.
이렇듯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활동은 6개 팀을 기반으로 한다. 매주 열리는 팀장회의에서 활동내용을 공유되고 필요한 협력이나 운영을 결정하게 된다.
어떻게 상근을 시작하게 됐느냐고 하니 “우리는 2007년도 상근자예요.”라는 이해 못할 대답을 한다. “상근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으니까 길게 있지 못해요. 그래서 매년 11월 12월 경 활동가들 중에서 다음 해의 상근자를 결정하죠.” 려수 활동가가 설명을 덧붙여 이해를 도왔다. 려수와 박은우 활동가는 빈번한 상근자 교체가 일어나지 않을 만큼의 재정적 독립을 소망해 본다. 100여 명의 후원회원만으로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외부의 기금에 의존하지 않는 운영을 원칙으로 부단히 노력중이다.
‘끼리끼리’로 시작된 15년의 역사 속에 얼마나 많은 진전과 좌절이 있었을까? “94, 95년 ‘친구사이’, ‘끼리끼리’가 생기고 연세대에 ‘컴투게더’ 등 동성애 단체가 등장하고 서동진 씨가 학내 커밍아웃을 하면서 대학 내 커밍아웃이 회자된 적이 있지만 사회가 동성애자를 체감한 것은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 후라고 봐요. 예전에는 레즈나 게이라고 하면 기현상이고 존재자체가 충격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인식하는 정도,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해요.” 박통 활동가는 동성애가 가시화된 것은 분명하지만 일상의 변화를 체감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아주 초보적인 단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이들은 아웃팅과 사회적 혐오의 공포에 놓여 있다. 당장은 아주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사무실 약도쯤은 홈피에 올려도 좋을 만큼만이라도 우리사회가 동성애자 인권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