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환경과 인권, 그 관계맺음에 대하여

인간 중심적 관점을 넘어서야 할 환경권

서울과 수도권의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는 연간 1만여 명, 환경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 중국인은 75만 여 명. 환경오염물질의 위해도와 인명손실에 대한 연구 결과이다. 교통사고 사망자처럼 실증적인 통계는 아니고 추정치이지만,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수치이다. 환경오염이 건강에 주는 영향은 인권의 문제인가? 인권의 가장 본질적 토대는 생명에 대한 권리일 것이다. 한 인간의 생명이 외부적 요소에 의해 박탈당하지 않는 것은 인권 개념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가 실현되는 전제조건이다. 특히 환경은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경제적 활동, 공동체 문화 등의 토대라는 점에서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거나 파괴하는 행위는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환경오염과 인권


그러나 환경과 관련된 인권개념을 구체적 사안에 접목할 때에는 일반적인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비해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 사상의 자유 등 정치적 권리의 경우 권리의 내용, 박탈과 보장,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구체적이다. 물론 보편적 가치를 갖는 인권의 구체적 범위와 내용, 보장의 수준에 대해서 권력과 피권력 집단 간의 이해는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어느 수준까지 사상의 자유나 집회결사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하는가는 권력과 시민세력간의 갈등의 대상이었고, 그 갈등을 통해 내용과 범위는 확대되어 왔다. 그럼에도 보편적인 시민적.정치적 권리의 내용이나 행위당사자간 상호관계성의 규명은 어렵지 않고, 일단 그것을 개별적 사안에 적용하기는 쉽다. 하지만 환경오염과 인권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환경오염의 발생과 피해의 대상이 되는 집단 간의 상호관계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명확하게 대칭적 관계가 있으면 환경과 인권의 관계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의 여지는 좁다. 대표적 사례는 공단지역의 환경문제와 주민건강피해이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 울산 온산공단, 여수·여천 공단지역의 주민 수천 명은 공단에서 배출되는 환경오염 물질에 의한 건강 피해로 대규모 이주를 해야 했다. 문제가 발생한 초기 몇 년 동안은 기업과 정부 측에서 오염물질과 건강과의 인과관계를 부인했지만, 역학조사 결과 그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자 이주가 이루어졌다. 이런 과학적 인과관계의 규명만으로 지역 주민의 환경권이 확보된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 민주화 과정을 통해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토대가 확대되자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현상이 인간의 기본적 생존권의 문제로 인식되었고, 정부에서 어쩔 수 없이 개입하여 지역주민의 최소한의 권리를 수용해준 것이었다.


이런 경우와 달리 일반적인 도시대기오염 문제는 인권의 침해와 해소책임을 규명하는 것이 복잡하다. 미세먼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조기 사망한다고 하지만, 실제 한 개인의 호흡기 질환과 대기오염의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어떻게 규명할 수 있느냐 하는 어려움에 우선 직면한다. 오염물질과 건강피해의 인과관계가 규명되더라도 오염 발생 주체와 피해당사자 관계는 여전히 모호하다. 물론 오염물질별 건강 위해도에 대한 의학적 평가와 대규모 대기오염 배출업소, 버스 등 대형차량, 승용차, 난방연료 사용 주택 등으로 오염의 책임정도를 분석할 수 있지만, 다수가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인 상황에서 양자의 관계성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환경권’을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하는 데에 따르는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아직까지 논의는 다소 추상적이고, 국제사회의 논의는 실체적 권리 측면보다는 절차적 권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환경문제 맥락에서 인권개념의 재구성


환경문제와 인권에 대한 국제적 논의는 국제 환경논의와 인권논의의 틀이 서로 달라 각 부문이 서로 독립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런 과정에서 환경권의 범위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개념적 차이는 ‘환경권’ 개념이 ‘인간의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right of humans to a healthy environment)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그 개념이 ‘환경의 권리’(right of the environment)까지 포함하는가이다. 전자는 환경에 대한 인권적 접근이고, 본질적으로 인간중심적 관점이다. 후자는 인간뿐만 아니라 환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 즉 다른 생명체들의 법적 지위까지 논의의 주제로 포함한다. 모든 생명체가 동등한 존재적 권리를 갖고 있다는 관점에서 환경 자체의 권리를 논의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환경권이 인간을 중심으로만 논의될 때에는 인간의 권리마저 악화된다는 점을 고려한다. 전체 생명체와 인간의 유기적 관계를 고려하여 환경을 구성하는 모든 생명체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인간의 환경권이 실현될 수 있는 토대가 악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가지 관점은 배타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국제적 환경권 논의는 기존 인권개념을 환경문제 맥락에서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기존에 국제적으로 합의된 인권규범을 크게 실체적 권리와 절차적 권리 측면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권리가 환경보호와 어떤 연계성을 갖는가를 논의하는 것이다.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채택된 의제21 유엔 공식 사이트

국제 환경논의 부문에서 진행되는 논의의 출발은 환경에 관한 국제적 논의에서 시금석인 1972년 유엔 인간환경회의(UNCHE)에서 채택한 스톡홀름 선언이다. 이 선언은 환경은 인간의 생존을 지탱시켜줄 뿐만 아니라 지적.도덕적.사회적. 정신적인 성장을 위한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으며, 인간의 기본적 인권과 아울러 생존권 그 자체의 향유를 위해 기본적으로 중요하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환경오염에 반대하는 모든 국가의 주민들의 정당한 투쟁은 지지되어야 한다.”라며 환경권 확보를 위한 사회적 저항권을 명문화하였다. 이후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채택된 리우 선언과 의제 21(Agenda 21)은 환경권의 실현방식을 좀 더 구체화 하였고, 그 초점을 절차적 권리에 두었다.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의 원칙 10은 환경정보에 대한 대중의 접근권, 환경관련 의사결정에 있어서 대중의 참여권리, 효과적인 사법적.행정적 절차에 대한 대중의 접근권을 환경권의 주요 요소로 제시하였다. 이를 토대로 의제21(Agenda 21)은 23장에서 32장에 걸쳐 주요 그룹의 역할 강화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고, 특히 개발과 환경에 관련된 의사결정에서 여성, 어린이.청소년, NGO, 원주민, 노동자.노조, 농민 등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하였다. 이러한 환경권의 개념은 이후 1998년 유럽에서 채택된 “환경사안의 정보에 접근, 의사결정의 대중참여, 사법의 접근에 관한 오르후스(Aarhus) 협약”을 통해 더 구체화되었다. 오르후스 협약은 정보 접근권의 대상이 되는 환경정보를 환경상태에 대한 정보,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요소, 정책 등에 대한 정보, 환경 의사결정에서 사용된 비용편익 분석, 경제적 분석 등의 근거, 인간 건강 및 안전의 상태로 규정하고 있다. 환경에 영향을 주는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참여의 권리와 관련해서는 정부는 대중들이 의사결정 “초기부터, 적절하게, 적시에, 효과적인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함과 아울러 정보의 제공 및 대중인식 증진을 위한 조치를 시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사법적 절차에 대한 접근권과 관련해서는 환경피해에 대한 공정한 행정적·사법적 구제수단의 제도화, 이런 제도를 활용함에 있어 경제적 부담의 최소화를 규정한다.


‘인권과 환경에 관한 원칙’ 초안


국제인권부문에서의 환경권 논의는 1980년대 말부터 유엔인권위원회가 환경과 인권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검토하면서 이루어졌다. 1990년 인권위원회는 환경보전과 인권증진의 관계를 명확히 하는 “인권과 환경”에 대한 결의문을 채택하였고, 이후 인권과 환경에 관한 원칙 초안 작성(1994년), 독성물질의 불법교역과 투기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평가(1995~7년), 환경권에 대한 각국 정부 및 관련기구의 의견수렴(1996~7년), 위험 물질의 이동 및 투기와 인권에 대한 논의(2001~2년)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1966년에 채택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ESCR)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 담긴 환경관련 규정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환경권의 개념을 확대시켜 왔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생명에 대한 권리로서, 단순화하면 환경오염 혹은 환경사고로 인해 생명이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이다. ICCPR은 6조에서 “모든 인간은 생명에 대한 생득권(Inherent Right)을 가지고 있으며, 이 권리는 법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 누구도 그의 권리가 함부로 박탈당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이 개념을 극단적 환경재해에 의한 생명 박탈의 경우뿐만 아니라 기대수명 연장을 위해 오염을 저감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까지 포함하는 것까지로 해석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ICESCR의 12조, “현 규약의 당사국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누리는 것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인식한다.”라는 규정을 토대로 유엔인권위원회는 “환경적으로 건강한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인권의 중요한 토대로 강조해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1994년에 제출된 유엔인권위원회의 ‘인권과 환경에 관한 원칙’(Principles on Human Rights and the Environment) 초안은 비록 정식규약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환경권의 내용을 잘 보여준다. 원칙은 인권, 생태적으로 건전한 환경, 지속가능한 발전, 평화가 모두 서로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고 전제하며, 이에 따라 2조에 “모든 사람들은 안전하고, 건강하며 생태적으로 건전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실체적 권리로서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 환경을 보전할 권리, 자연의 편익을 공평하게 누릴 권리 등을 제시하고 있으며, 절차적 권리로서는 환경 관련 정보에 대한 권리, 환경 관련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 결사의 권리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국가는 이러한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각각의 권리 중 먼저 실체적 권리 측면을 구체적으로 보면, 안전하고, 건강하며 생태적으로 건전한 환경에 대한 권리(2조), 환경에 영향을 주는 행위와 의사결정과 관련된 차별로부터의 자유(3조), 현 세대의 욕구를 공평하게 충족하는데 적절한 환경에 대한 권리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의 동일한 권리를 손상하지 않을 권리(4조), 오염물질, 환경악화와 환경에 악영향을 주고, 생명·건강·삶·복리 혹은 지속가능한 발전에 위협이 되는 행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5조), 공기, 토양, 물, 동식물, 생물다양성과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초적 과정과 지역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권리(6조), 환경위해 없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건강을 가질 권리(7조), 복리에 적절한 안전하고 건강한 음식과 물에 대한 권리(8조), 안전하고 위생적인 근로환경에 대한 권리(9조), 안전하고, 건강하고 생태적으로 건전한 환경에 적절한 주거를 할 수 있는 권리(10조), 자연과 천연자원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의 공평한 혜택에 대한 권리(13조), 토지, 영토, 천연자원의 관리와 전통적 삶의 방식을 유지할 원주민의 권리(14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절차적 권리로서는 환경에 관한 정보에 대한 권리(15조), 환경과 관련한 정보와 생각의 유포, 견해의 표명에 대한 권리(16조), 환경과 인권교육에 대한 권리(17조), 환경보호를 위한 결사의 권리(19조), 행정적, 사법적 절차를 통한 보상 및 배상의 권리(20조) 등이다.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환경권의 보편적 개념을 환경과 개발의 충돌, 환경오염과 피해 발생의 각 개별사안에 적용해서 상황을 명쾌하게 판단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환경권의 실현과정에 다른 권리와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환경권과 재산권의 관계이다. 재산권은 환경보호에 양날의 칼이 된다. 환경악화를 초래하는 행위로부터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환경보호에 기여하지만, 사적소유 토지의 개발 등 재산권의 행사는 환경파괴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환경보호를 위한 토지이용 규제 등은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가하는 행위가 된다. 리우선언 원칙 3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개발과 환경적 요구를 공평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에서 개발의 권리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즉 미래 세대의 동일한 권리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 속에서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환경권의 행사주체를 동시대의 구성원에 한정하지 않고, 시간적으로 확장해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개별사안을 환경권의 잣대로 평가할 때 권리 주체를 다른 생명체로 확장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국제논의나 헌법의 환경권 개념은 환경보호 자체가 궁극적 목표라기보다는 인권보호를 위한 도구적 수단의 성격을 갖는다. 물론 이런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환경보호가 결과적으로 다른 생명체의 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환경권 논의도 다른 생명체들을 도구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내재적 가치 측면에서 보호하는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환경권 논의가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중심적 관점에서도 필요하다. 자연을 이해하는 ‘과학적’ 인식의 한계와 오류 때문에 인간의 협소한 이익을 중심으로 환경보전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에게도 합리적이지는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