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속의 빈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고 하는 노랫말처럼 지난 40여년은 산업화, 도시화의 역사였으며, 그 결과 세계 열한 번째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시장의 공세가 강화되는 가운데 보수언론은 한미 FTA의 의미를 미국산 SUV를 타고 캘리포니아산 와인과 스테이크를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고, 물질적으로 좀 더 여유롭고 양질의 삶이 전개될 것이라는 희망찬 비전으로 설명하였다.
지구라고 하는 행성에서 우리 인류는 땅과 하늘, 물과 공기로부터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으면서 수십만 년을 함께 살아왔다. 인류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물건을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장소로서 시장은 먼 옛날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다만 오늘날의 시장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부의 양극화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괴물로 다가오고 있다.
자연에 대한 끝없는 착취와 재화와 화폐에 대한 탐욕은 사회경제적, 환경적 약자에게 빈곤의 굴레를 강제하고 있다. 빈곤은 모두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애초부터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제 빈곤은 단순히 주거, 소득수준의 불평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에 머물고 있지 않다. 자본주의적 시장이 낳은 무분별한 탐욕과 그로 인한 환경파괴의 문제는 빈곤층을 비롯한 환경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미래세대의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실제로 대표적 환경성 질환으로 손꼽히고 있는 천식과 아토피의 경우, 2005년 국민건강영향조사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91.4명이 아토피피부염에 시달리고 있으며, 천식의 경우 23.3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외에도 자동차매연과 각종 개발현장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PM-10)등 환경오염에 노출돼 건강상 악영향을 받고 있는 인구가 전체의 20%에 달하고 있다.
빈부격차, 양극화의 상징적 장소가 되어버린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와 타워펠리스. 사진 | 박김형준 |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불안정한 고용을 비롯하여 복지, 보건의료, 주거, 심지어 식생활에 이르기까지 민중의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체임금근로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에 속하고, 전체인구의 15%가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불안정한 사회구조가 고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지출 가운데 복지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4%(OECD국가의 평균지출규모 16.4%)에 머물고 있다. 부족한 사회복지시스템 아래에서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시장화는 빈곤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사회적 단절을 가져오고 있다.
노동과 자산의 양극화과정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구조의 심화는 경제규모의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풍요속의 빈곤을 가져오는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적, 환경적 약자의 사회경제적 기회는 물론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환경적 접근성마저 박탈하고 있다.
위험사회와 인간적 삶
울리히 백은 『위험사회』에서 “현대인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자율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자연력-지진, 화산폭발, 태풍, 가뭄, 폭풍우뿐만 아니라 과학 그 자체- 핵폭발, 살충제나 약물중독, 댐 붕괴, 유조선 침몰, 오염사고-에 의해 생산된 위험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매년 기록을 갱신하듯 대형화되고 있는 폭우, 폭설 등의 자연재난은 단순히 기후변화의 탓만은 결코 아니다. 가진 자들의 풍요로운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하기 위한 마구잡이식의 난개발(펜션, 골프장, 고랭지 채소밭, 하천직강화 등)이 이와 같은 자연재해를 가중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기후변화 역시 자연의 심술이 아니라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본의 끊임없는 자연환경의 착취가 가져온 일종의 부메랑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각종 자연재난으로 인한 재해복구비용의 규모가 27조9800억원으로 국민 1인당 약 55만원의 조세부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환경에 대한 착취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득에 대해 일부집단이 독점하고 있지만, 그 피해부담은 전 국민이 함께 공유하는 불평등구조가 일반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위험사회로 인한 생존의 위협이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물 맑고 공기 좋은 삼천리금수강산은 더 이상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소위 웰빙(Well- Being; 참살이) 유행 속에서 환경은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더 이상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릴 수 없는 것으로 전락하였다.
지난해 급식파동에서 볼 수 있듯이 급식에 의존하는 저소득층 아동과 노인들에게 있어서 식품의 원산지와 질은 사치에 불과하다. “먹는 것이 곧 하늘이다”(食而天)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먹는 문제는 인간생존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크(junk food)에 노출된 저소득층의 건강한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제 비만은 더 이상 부자만의 행복한 고민이 아니다. 불균형적인 영양섭취로 인한 비만은 저소득계층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빈곤이 모든 질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며 “저소득층은 주거환경이나 영양상태가 처질 뿐 아니라 건강정보 접근성도 떨어져 사회에서 섬처럼 고립되고 있다”는 주장이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빈곤층을 비롯하여 사회경제적, 환경적 약자들은 환경피해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공단지역 등의 환경오염으로 인해 해당지역에 거주하는 저소득계층에서 천식 등 환경성 질환과 조기사망이 상대적으로 다수 발생하는 등 환경오염 노출 및 피해가 사회경제적 요소에 의해 지역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연구보고가 지속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생물학적 약자인 어린이, 여성, 노약자에게서 환경성 질환이 많이 발생하여 사회경제적 약자이자 생물학적 약자인 집단에서 환경피해가 집중해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인다. 이는 거주지역의 환경실태, 주거형태, 가구소득, 교육수준, 건강수준, 환경자원 이용형태 및 수준 등 사회경제적 요인과 도시지역 저소득계층의 환경피해 간에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복지를 통한 진정한 사회복지의 실현
행복한 삶의 조건은 무엇일까? 흔히 삶의 조건을 설명하는데 어떤 집에서 무엇을 먹고 입는가 하는 것으로 일상적인 생활을 설명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환경보건정책 10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환경정의, 민감·취약계층 우선보호 원칙을 제시하고 있으나, 환경피해가 집중되어 있는 저소득계층의 환경피해 저감을 위한 정책방안은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소득이나 교육 등 각 분야의 양극화현상이 심화되고 빈곤층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양극화현상이 환경 분야의 양극화로 전이되어 저소득계층의 환경피해가 악화되고 고착되는 반면 환경혜택은 오히려 감소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정책방안 마련이 시급히 요청된다.
양극화로 인해 저소득계층에 집중된 환경피해의 악화와 고착화는 또다시 저소득계층의 빈곤을 야기하여 저소득과 환경피해의 악순환을 가져오고, 이로 인해 현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로까지 영향을 미쳐 사회전체의 지속가능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환경적 책임, 피해와 혜택을 둘러싸고 계층 간 양극화를 해소하는 대책으로서 저소득계층을 보호하여 환경피해를 줄이고 환경혜택을 늘일 수 있는 종합적인 환경정책방안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공평한 분배는 사회복지분야의 핵심적 영역이다. 그러나 성과에 대한 공정한 분배뿐만 아니라 자원에 대한 평등한 접근성은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무절제한 생산과 난개발은 환경파괴(오염)로 인한 사회적, 환경적 약자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미래세대와 모든 인류의 건강한 삶은 사회복지의 가장 핵심적 요인이다. 파괴된 공공재로서 자연에 대한 책임은 기업과 국가에게 있으며, 환경문제에 대한 국가적 개입은 모든 사람이 안전한 환경에서 건강한 삶을 보장해주는 진정한 복지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에 대한 권리는 인간다운 삶의 유지, 생명권, 건강권 등을 통하여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