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강곤 |
왜냐하면 한미FTA는 국민의 민주적 의사결정이 아니라 세계시장의 동학과 국제기업의 전략에 각종 공공정책 결정권을 내어주는 ‘반(反/半)국민주권’의 교두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고용 위기 속에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면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데도 이랜드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는 물리력을 동원할 뿐이기 때문이다. 거의 송장 취급 받던 국가보안법은 평화사진작가의 활동을 반국가행위로 몰아 버젓이 사상.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건재함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숨 막히는 상황을 거리에서 토로하는 민주주의의 원초적 권리로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집시법에 의해 가로막혀 있을 뿐 아니라, 개인끼리의 내밀한 의사전달 수단조차도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속속들이 감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는 일이 선거가 충분히 민주주의에 복무할 수 있도록 하는 우선적인 필요조건일 것이다.
선거는 시작이자 마무리이어야
한편 이러한 장애물들을 치우는데 선거가 기여할 수 있으려면, 주권 행사라고 하기에는 미완성인 선거권을 보정하는 장치가 결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거라는 통과의례만 지나면 기고만장해서 유권자를 무시하며 독선에 빠져 권력만을 탐하는 자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은 유권자 타이틀을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가 끝나고 당선된 이후 공권력을 집행하는 대표자들에 대하여 유권자의 의사를 무시하는 경우 그 권한을 박탈하거나 제약할 수 있는 법적 리콜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미FTA의 협상 개시와 협상과정과 타결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국회 동의 절차에 이르기까지 유권자는 잘못 뽑았다는 자괴감만 느낄 뿐 각 단계에서 관련 공직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수단을 가지지 못하였다. 이와 관련 「지방자치법」과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은 일정 수 이상의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에게 그 지방자치단체의 장 및 지방의회의원을 소환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헌법상 대통령이나 국회에 대하여 국민소환제도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헌법학계에서는 상당하다. 그렇지만 그에 관한 헌법상 명문의 근거는 없으며, 헌법이 문제라면 헌법을 고쳐서라도 선거를 선거답게 만들 수 있는 국민소환권을 쟁취해야 한다. 선거가 일회적인 주권이양의 투항 행사로 그치지 않고 주권자로서 진정한 민의의 대리자를 고르는 일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삐를 틀어쥐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선거과정에서 후보자의 허튼 공약이 난무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면서 임기 내내 공약의 실천 여하를 감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권자는 다음 선거에서 그 최종 심판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비례적으로 반영하는 선거제도
이렇게 볼 때 인권과 민주주의가 빈한한 사회의 선거는 그 자체만으로는 초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선거제도의 개선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않고 팔짱만 끼고 있을 수는 없다. 선거제도의 개혁은 다시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촉진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17대 총선 성과 중 하나인 민주노동당의 약진에는 1인 2투표제가 상당 정도 기여한 바가 있다. 과거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의회 진입에 실패하였던 것에는 선거제도 자체의 문제점도 있었다.
그렇다면 현재에도 소수파의 정치적 대표성을 확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선이 더 필요하다. 예컨대 1선거구에서 1인을 과반수 아닌 상대 다수득표로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는 대량의 사표를 발생시킴으로서 소수파에게 불리하다. 참고로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각각 41.9%와 37.9%의 지역구 득표율로 각각 53.1%와 41.2%의 지역구 의석을 차지했다. 이러한 문제점은 299명 중 56명에 불과한 비례대표 의원 수를 100명 이상으로 확대함으로써 소수파의 정치적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덧붙여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원정수를 배분하는 비례대표제가 의원내각제와 만났을 때 나타날 수 있는-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주요 원인에 부수적으로 결합하여 20세기 초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났던-정치적 불안정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독일의 이른바 봉쇄조항은 폐지되어야 한다. 즉 겨우 56석을 배분하면서 3% 이상의 정당득표율 또는 5석 이상의 지역구 당선을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 요청되는 것은 대정당 중심의 안정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선거제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유권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현행 선거법
그리고 선거판이 그런 대로 깨끗해졌다고는 하지만(중앙선관위 유권자의식조사에 따르면, 제17대 총선의 경우 85.1%가 “깨끗했다”고 응답), 여전히 남는 문제는 후보자들을 꼼꼼하게 씹어가며 평가해서 선택하는 길이 그리 넓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현행 공직선거법의 규정과 그 운용에 있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사실 관권에 의한 선거 부정과 금권에 의한 선거 혼탁의 방지가 오랫동안 한국 선거판의 숙원이었기에 이에 대한 법적 제한은 매우 촘촘해야 한다는 반작용은 나름대로 수긍할 수는 있다. 문제는 선거운동에 대한 제한이 유권자의 당연한 권리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 | 참세상 |
공직선거법 제58조 제2항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금지 또는 제한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선거운동은 일정한 예외가 있지만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이다(같은 조 제1항). 일견 내가 지지하는 후보자에게 단순히 한 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선거과정을 통해 민주적 의사를 수렴해내는 것이 선거의 목적이라면 선거운동의 제약은 자기모순적 측면이 있다. 과거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을 선거운동으로 보아 처벌한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결국 선거법상 선거운동에 대한 과도한 금지 또는 제한은 유권자의 후보자에 대한 정보접근권과 평가.토론의 권리를 축소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일까지 온라인 공간에서 허위사실 유포나 후보비방, 명예훼손은 물론 후보에 대한 지지, 추천, 반대까지 불법행위로 간주하고 단속하겠다는 것은 선거의 민주적 의미와 유권자의 권리를 중대하게 제약하는 것이다.
선거가 후보자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어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보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선거법제는 유권자들 간에 자율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투표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선거는 유권자 집단이 자신들을 대리할 일시적 다수를 만들어내는 집합적 합성행위로서 결과적으로는 유권자 집단 전체의 대표를 선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먼저 UCC 등을 비롯한 온라인에서의 선거운동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의미에서 상시적으로 최대한 허용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신공격과 허위사실 유포 등의 부작용이 생겨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원칙적으로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정화장치에 기대하면서 명백한 범죄행위에 대하여는 강력한 사후 처벌로 대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현행법은 제108조에서 선거일 전 6일부터 선거일의 투표마감시각까지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의 경위와 그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하여 보도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는데, 유권자들의 정치적 판단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는 의미에서 여론조사와 그 보도는 선거일 전날까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제17대 총선 전 선거법 개정을 통해 합동연설회와 정당연설회를 폐지하고 매스미디어 중심 선거운동을 지향한 것이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후보자와 유권자간 접촉기회를 차단한 문제도 있다. 그런 점에서 후보자의 호별 방문과 같이 선거비용이 들지 않는 선거운동 방법은 과감하게 대폭 허용하여야 한다.
유권자의 폭도 넓혀야 한다
흔히 선거권을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이해한다. 따라서 국외거주자에 대한 부재자투표의 부재는 평등권의 문제는 물론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를 야기한다. 최소한 대통령선거와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에서 유학생, 상사주재원, 해외여행객 등 해외단기체류자부터라도 부재자 투표를 도입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른 한편 현행법은 지방자치 차원에서 일정 요건을 갖춘 외국인에 대하여 선거권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피선거권과 선거운동의 권리 등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통령선거권과 국회의원선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선거권을 국민의 권리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에 생활근거를 두고 있는 외국인 역시 “자유, 평등 그리고 독립의 개별 기본권 주체들”로서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시민주권의 주체로서 인정해야 한다. 정치적 동물인 인간이 자신의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권리인 것이고, 그것이 인간 중심 세계화에 조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만으로 선거가 민주주의의 총아로서 자리매김할 수는 없다. 유권자가 총체적인 민주주의를 담보하는 주권자로서 항시 살아있을 때 선거를 통한 제도적 민주주의가 활력을 충전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과정에서 민주적이고 정책적 역량이 있으며 청렴한 후보자를 찾아내고 금권과 지역감정 등 부정한 방법을 구사하는 후보자를 솎아낼 수 있는 혜안을 갖추기 위해 유권자들은 서로서로 이성적으로 토론하는 시민의식을 북돋을 일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