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단체탐방] 우리 안의 장벽을 너머서

평등과 평화를 위한 시민의 모임 ‘너머서’


'너머서’의 전미옥 대표는 1990년 갓 돌이 된 아이를 업고 서울YMCA를 찾았다. 신앙과 생활을 통해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일하는 보람도 얻고 싶어서였다. 시청자모니터 교육을 받고 해당분과에서 17년간을 활동해 왔다. 2002년 서울YMCA 이사회의 비자금 조성으로 인한 각종 비리가 터져 나오기 전까지 전미옥 대표는 자신이 활동하는 공간의 부정부패나 차별에 대해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1903년 결성된 이래 우리나라의 독립과 개화에 앞장서 온, 사회적으로 널리 공인된 YMCA가 아니던가. 이런 믿음은 여성이란 이름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서울YMCA 100년의 역사 속에 최고 의결기구인 총회에 참석한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서울YMCA 이사진은 ‘여성은 총회원의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어 그에 살을 더하여 여자를 만드시니… 다시 말해서 여자는 갈빗대입니다. 독립적인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슬로브핫의 딸들1) 중)라면서.



YMCA는 남성회원단체?


‘너머서’는 2002년 서울YMCA 개혁과 재건을 위한 회원비상회의 내 ‘여성특별위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특별위원회는 서울YMCA의 여성참정권 배제에 대한 성차별철폐와 개혁을 목적으로 꾸려졌다. 지난 100년간 서울YMCA 여성회원들은 의결기구인 총회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 YMCA 헌장 상 총회에 참석할 수 있는 총회원 자격은 모든 회원들 중에서 “①만 20세 이상의 기독교회 세례 입교인인 자 ②보통회비 이상의 회비를 납부한 자 ③2년 이상 계속 회원으로 본회 활동에 참여한 자”에게 부여된다. 회원위원회에서 추천을 하고 이사회의 추인을 받아야 총회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사회 측은 YMCA의 M은 ‘사람(People)’이 아니라 ‘남자(Man)’로 남성만이 총회원의 자격이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 할 뿐이다. 한국에 62개의 YMCA가 있지만 이런 해석을 하거나 이를 근거로 여성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서울YMCA 전체 회원 중 60%는 여성이다. 자원봉사 인력의 90% 또한 여성이다. 여성들이 내는 회비와 노동력은 받아줄 수 있어도 여성을 함께하는 동지로는 인정할 수 없다?


여성회원들의 지속적인 요구에 변화의 조짐이 일었다. 2003년 100차 회원총회에서 ‘여성 남성이 함께하는 서울YMCA 결의문’이 채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루묵이었다. 101차 총회원 명부는 ‘관례’에 따라 남성회원만을 대상으로 작성되었고, 여성의 총회원권과 참정권을 위한 남성들만의 투표를 진행했다. 이 의안의 부결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을까? 여성연합, 참여연대, 환경련 등 시민사회단체의 진정서나 국가인권위의 ‘서울YMCA 성차별에 대한 개선권고’도 이사회 앞에 무력했다. 여성특별위원회는 2004년 2월 서울지방법원에 총회 의결권, 선거권 등 인가가처분신청을 냈다. 그러나 법원의 결정도 이사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헌장 및 회원규정 중 총회 구성원에 대한 자격 요건이 회원 개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거나, 강행법규에 반하여 무효인지에 관하여 살피건대, 신청인들이 제출한 소명 자료 및 심문 전체의 취지에 의하더라도 헌장 및 회원규정 중 총회 구성원에 대한 자격요건이 위헌 또는 강행법규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2004카합392)는 형식 논리를 앞세워 기각했다. 제도적, 형식적으로 남녀평등이 안착된 듯 보이지만 평등이 실천되어야 할 현실의 장벽은 여전히 두터웠다.



평등한 서울YMCA를 만들고 싶었다


현실의 장벽을 넘지 못한 채 2005년 개혁재건위가 자진해산했다. 여성특별위원회는 성평등을 지향하는 시민의 모임 ‘너머서’로 재탄생했다. 너머서로 독립한 후에도 서울YMCA 성차별에 항의하는 운동은 계속되었다.


전미옥 대표
“이사회에 꽃다발, 성경도 보내보고, 편지쓰기도 해보고… 근데도 아무 반응이 없어요. YMCA는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 일을 하잖아요. 그래서 2006년 자원봉사자 파업을 시도했죠. 본관 2층에 녹색가게와 시민중계실을 닫았지만 역시나 반응이 없었어요. 시민중계실, 녹색가게는 시민들이 계속해서 방문을 하는 곳인데도… 나중엔 우리가 시민들의 불편이 걱정돼서 계속 못하겠더라구요. 한 10일 정도 하고 접었죠.”


전미옥 대표가 허탈하게 웃었다.


2006년 전국YMCA 연맹의 퇴회 결정에도 불구하고 2007년 총회에서도 여성의 총회 참여는 부결되었다. 너머서는 서울YMCA의 시민단체로서의 생명은 끝났다는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소복시위를 했다. 지금 너머서가 서울YMCA 성차별문제와 관련하여 진행하고 있는 것은 참정권을 주지 않음으로 인해 받은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뿐이다.


“소송을 진행하는 건 올바른 판례를 남길라구. 대법원에서 지면 UN까지 갈2) 생각이에요.” 김정남 사무국장은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통보(진정)도 불사할 생각이라고 한다.


서울YMCA 참정권 투쟁을 시작한 지 6년째. 사람들은 이사회의 반응에 상처받고 피로감에 지쳐 떨어져 나갔다. 전미옥 대표는 이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한다. 함께 평등한 서울YMCA를 만들고 싶었는데….



가부장성을 너머서


너머서의 운동방식은 서울YMCA에 대한 문제의식과 성찰 속에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크게 다가왔던 문제는 조직의 가부장성.


김종남 사무국장
“여성차별문제는 작은 문제라는 시각이 많았죠. 더 큰 문제도 못 풀고 있는데 그게 머가 중요하냐며 소홀하게 취급하고. YMCA 전반에 가부장적 요소들이 있어요.” 김종남 사무국장은 인간존엄성이 우리의 핵심인데 여성문제를 부차화함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 사람이 주체로서 인정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보다 더 큰 문제란 무엇일까? 우리의 남녀평등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외적이고 형식적으로 남녀평등을 내세울 뿐 성차별이나 성폭력 등 구체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무마시키거나 다른 문제에 비해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한다. 혹은 ‘머 그런 일로~’라며 친분으로 위장한 가부장성은 제2의 가해를 한다. 당사자 관점에서 바로 나의 문제라는 인식과 참여는 여전히 부족하다.


너머서는 조직 내 민주주의와 평등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지고 있는 가부장적 요소들이 많잖아요. 이런 것들은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문제들이라고 봐요. 그래서 우선 상처받은 것들을 치유하고 서로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전미옥 대표는 치유와 훈련을 통해 다양한 차별문화를 바꾸어 가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주체들이 많아질 때 우리의 인식과 문화도 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너머서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의 폐해도 뼈저리게 느꼈다. 회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고 수용하지 않는 단체를 회원단체라고 할 수 있을까. 너머서는 회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강조한다. “회원단체는 회원을 따라가야죠. 사무국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무국 간사체제의 활동은 효율성은 있을지 모르나 지양해야 한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회원단체인데 회원이 없이도 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지니까.” 김종남 사무국장이 그리는 너머서의 모습이다. 그래서 너머서는 프로젝트 사업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도 운영되는 구조를 만들려고 노력중이다.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 일 중심으로 가니까. 그것보다는 회원 중심의 단체를 지향해요. 회원들 안에서 어떤 일을 해보자는 욕구가 나올 때 그 일을 시작하려고 해요.” 김종남 사무국장은 말한다. 상시적인 전체회의나 회원 모임으로 자주 회원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 회원들은 자유롭게 토론하고 결정한다. 그 결정이 곧 너머서의 활동이고 운영방침인 것이다.



모든 차별을 너머서


변미혜 활동가
너머서는 이제 성차별의 문제를 벗어난 다른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서울YMCA성차별대책특위 외 ‘아동청소년위원회’, ‘미디어네트워크위원회’ 등의 분과활동이 그것이다. 아동청소년위원회에서는 노동을 하고도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한 청소녀/년, 폭력과 차별에 노출된 청소녀/년과 상담을 진행한다. 몇몇 청소녀 쉼터와 연계하여 청소녀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는데, 쉼터 청소년들의 경우 한부모거나 자존감을 상실한 친구들도 많다. 그래서 청소녀들의 자긍심 갖기 프로그램, 취업과 교육훈련, 멘토-멘티(멘토-조언자 또는 후견인-에게 후원받는 사람)를 이어 자립을 위한 훈련과 함께 자긍심을 키워준다. 그래서 청소녀/년들이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벽을 넘어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존엄성과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한다.


너머서는 단체의 중심은 회원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회원정책의 핵심은 회원사업을 일상화하는 것. 회원들이 재미있고 편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회의를 진행해 보기도 하고 다양한 소통방식도 고민해 본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과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변미혜 활동가의 말 속에서 다시 한 번 너머서의 지향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안의 차별과 폭력의 요소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민감하게 인지하고 성찰하고 있을까? 당신은 모든 차별과 폭력을 넘어 인권과 평화를 지향하고 계십니까?

덧붙이는 말

1) 서울YMCA의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성회원들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문정현 감독. 푸른영상. 58분 2) 한국은 지난 2006년 9월 29일 국회에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 선택의정서 가입동의안’을 가결해 10월 18일 여성차별철폐협약 선택의정서에 가입했다. 이 의정서는 올 1월 18일 발효되었다. 여성차별철폐협약 선택의정서가 발효됨으로써, 국내법에서 해결되지 않은 성차별 사건에 대해 국제법상의 판단과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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