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TV 드라마는 항상 ‘줄타기’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줄타기는 드라마의 소재 선택에서 볼 수 있는데, 주로 가족의 해체나 연애관 혹은 결혼관, 성정체성, 세대의 문제 등 다양한 소재에서 나타난다. 한국의 드라마는 현재 한류 열풍의 지속 여부와 함께 소재 고갈이라는 한계에 와 있다. 따라서 새로운 소재는 금기를 깨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바, 그러한 방향은 더욱 선정적인 소재와 내용으로 무장하는가 하면 등장인물이나 무대를 지금까지 다루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건드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국정원을 소재로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예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소재 ‘국정원’
지금의 ‘국가정보원’은 1961년 처음 생겨난 ‘중앙정보부’를 모태로 한다. 국정원은 사실상 40년 이상 일체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철저하게 비밀스러운 금기의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가 흔히 뉴스 화면에서 보던 국정원의 모습은 천편일률적이다. 본청 건물과 부훈이 새겨져 있는 앞마당의 바윗돌 모습이 그것이다. 과거 부훈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였다. 과거 국정원이 어떤 정체성을 갖고 활동했는지 잘 보여주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1999년 국정원으로 개명하면서 부훈 또한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꾸었다.
국정원은 정보화 시대와 산업기술 관련 업무의 중요성 등으로 인해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5년 영화 <태풍>, 2006년 <한반도>에 촬영 등을 지원한 것은 그러한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며, 올해 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의 본격적인 교감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현대사의 어둠과 그늘을 고스란히 간직한 국정원이 적극적으로 양지를 향해 두 팔을 벌리는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최근 TV에서 국정원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유는 국정원 내부의 변화이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중정’ 시절이나 권위주의 정권의 ‘안기부’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정체성과 활동을 준비한다는 나름의 전략이다.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 역시 큰 반감이나 비판적 여론을 나타내진 않는다. 이는 아마도 근래 한국사회에서 보여주는 국정원의 위상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국정원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기밀과 정보 등을 취급하는 비밀기관이며, 과거에는 헌법 위에서 모든 권력을 휘둘렀던 그야말로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이처럼 국정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새롭게 바꾸려는 게 국정원의 유연화 전략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 정보기관만의 현상은 아닌 듯하다. 최근 미국의 CIA는 20여 년간 CIA 근무경력이 있는 폴 배리(Paul Barry) 요원을 ‘엔터테인먼트산업 담당책임자’로 임명했다. 그는 CIA 홍보실에 소속되어 영화제작업자나 출판업자가 CIA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 때, 시나리오 자문이나 요원과의 인터뷰 주선, 비밀공작활동 현장 촬영 등을 지원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갖는다. CIA의 비밀공작활동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을 좀 더 긍정적이고 사실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게 함으로써 일반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고 신뢰를 얻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영화 <레드 옥토버>(1990), <패트리어트 게임>(1992), <긴급명령>(1994) 등이 제작되었으며, CIA 요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들 영화는 CIA 요원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정보원 사이트 |
국가정보원 역시 이러한 CIA의 전략을 수용한 것처럼 보인다. 지난 3월 16일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은 <에어시티> 기자간담회에서 “스타 한명, 좋은 작품 한편이 바로 국력”이라며 “21세기 가치창출의 새로운 원천이자 성장동력인 한류 산업이 크게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문화산업을 단순히 경제적인 차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이익의 차원, 나아가 국가안보의 중요한 축으로 생각하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 드라마 제작의 차원에서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려는 노력과 국정원의 새로운 전략이 맞물리면서 드라마와 국정원의 만남이 호응을 얻고 있는 셈이다.
‘국력’과 ‘미드(미국 드라마)’
그렇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최근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미국드라마(일명 미드) 열풍이다. 미국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리얼리티와 치밀한 서사구조이다. 병원, 교도소, 강력반, 과학수사대 등 특정한 영역을 드라마 소재로 끌어들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전문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미드’는 한국 드라마가 벗어나지 못한 ‘가족’이라는 범주의 한계를 뛰어넘는 재미와 감동을 제공한다.
미드 열풍은 국내 시청자들에게 연애 혹은 가정 문제 등을 넘어서는 소위 ‘전문가 드라마’에 대한 눈을 뜨게 만들었다. 물론 국정원 건물이나 국정원 요원이 드라마에 등장한다고 해서 ‘전문가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드라마의 주요 시청집단인 젊은 세대들에게는 유효할 것이다. 20대 젊은이들은 국정원을 잘 알지 못한다. 국정원의 존재를 모른다기보다는 국정원이라는 곳이 과거 어떤 짓을 한 곳인지를 잘 모른다는 말이다. 그들은 국정원을 인식하기에 앞서 이미 미국의 CIA를 접했다. 그들은 CIA와 국정원의 비교에서 CIA의 비교우위를 점치고 있을 뿐이다.
국정원이 일반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은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과거 국정원이 어떤 기관이었는지, 한국현대사에서 그들이 한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거의 알지 못하는 오늘날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국정원’은 단지 멋있는, 그야말로 ‘간지나는’ 일종의 기호로 작동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의 위치와 역할, 나아가 국가와 개인의 관계 등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고 만다. 그러한 고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국정원의 인물들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전체, 즉 국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국가)를 위한 그 어떤 희생도 정당화되고 만다. 그 자리에 개인이 설 자리는 없으며, 혹시라도 인권이 끼어들 여지는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개인이 설 자리는?
드라마에서 재현되는 국정원은 국정원의 이미지 상승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국정원이 국민을 억압하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는 21세기 첨단정보기관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과거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른 수많은 폭력의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이제 국정원의 물리적 폭력은 사라진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전혀 다른 형태로 우리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아니라 ‘정당한’(!) 전체의 이름이라면 언제든지 개인을 무시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어느 순간 우리의 일상에는 국정원의 이름과 함께 나타난 ‘전체주의의 얼굴’이 떠돌고 있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