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을에는 무슨 수확을 할 것인가 생각하니 참 쓸쓸하다. 부패하고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진동하는 이 땅에서 그나마 썩지 않은 채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곳을 모조리 빼앗겨버린 것은 아닌가? 떠밀리고, 짓밟히는 이들의 아우성만이 남은 곳에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가슴이 시리다. 끝없는 노동과 만족할 수 없는 소비의 나락으로 우리를 몰아가는 이윤의 체제에 맞서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일어나 함께 완강한 제동을 걸어야 하는데, 왜 우리는 쫓겨나기만 하는 것일까. 나는 친구들과 새만금특별법이 얼마나 깡패 같은 법안인지 살펴보는 세미나를 하고, 곧 이란을 침공한다는 미국 보고 전쟁 그만 하라고 노래를 부르며, 소비를 하지 않는 자립적 삶을 알리기 위해 대안생리대 만들기 워크숍에서 강연을 하는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결실은 없고 폭력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는 것도 아닌 내 삶은 무엇일까. 최소한,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을 올려주겠다고 약속하는 자들의 말잔치에 현혹되지 않을 판단력은 생겼다. 내 삶을 유지시키는 것은 정치가들이 떠드는 경제해법이 아니라 나의 노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수십 년간 황새울 땅을 맨손으로 일구며 풍성한 가을을 지켜왔던 농민들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