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아르 후세인. 샤말 타파 씨의 뒤를 이어 농성단을 이끌었던 그는 2005년 4월 한국 최초의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한 지 불과 3주 만에 지하철역에서 연행되어 1년 넘게 청주 외국인보호소에서 강제퇴거를 거부하고 투쟁을 전개해오다 결국 지난 7월 26일 오전 9시 비행기로 한국을 떠났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지만 이처럼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는 것은 그보다 몇 곱절 더한 어려움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아노아르 전 위원장의 뒤를 이어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조합(이주노조)의 위원장을 맡은 까지만(43. 네팔) 씨를 10월 9일 이주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위원장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7년 2월 서울고등법원이 이주조조 설립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현재 한국에서는 누구도 이주노동자들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설립신고 당시 노동청은 “불법 체류 외국인은 노조가입 자격이 없고, 이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는 단체를 노조로 볼 수 없다.”라며 신청서를 받지도 않았다. 산업연수제에서 고용허가제로 바뀌었어도, 이주노조가 있어도 미등록이주노동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정부는 계속 단속을 하고 있다.
노동부는 2007년 말이면 우리나라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9%, 임금노동자의 3.2%를 이주노동자가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자 열 명 중 두 명이 이주노동자가 되는 셈인데 이주노조 조합원은 많지 않다.
현재 조합원은 360명 정도다. 그 중에 약간이라도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200명 정도, 아주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다. 조합원 대부분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로 일을 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아래서 비자가 3년짜리인데 3년이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노조를 찾아온다. 그렇지만 특별히 노조에게 이야기 할게 없는 사람은 노조를 피하려고 한다. 이건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다. 노조는 자기 권리를 위해 싸우는 곳이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필요로 해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체불임금, 퇴직금, 이런 문제로 혼자 힘으로는 제대로 안 되니까. 산재 같은 것도 회사에서 해결을 해주면 안 오는데 회사에서 해결이 안 되니까 온다. 그래서 차츰 조합원이 늘고 있다. 재작년보다 작년, 작년보다 올해가 더 많다.
이주노조 까지만 위원장 |
이주노조 외에도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센터가 전국에 300여개 정도 있다. 센터와는 다른 이주노조의 활동은 무엇인가?
이주노조는 노조이므로 노동권 문제에 집중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문제, 법제도 문제, 임금협상, 산업재해, 이런 것들이 노조에서 기본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주노조에서는 국제결혼, 이주여성, 자녀, 아동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센터에서처럼 고민을 해야 하지만 못하고 있다. 또 이것이 노조의 역할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센터나 시민사회단체가 할 일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계속 살고 싶은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돈 벌어서 자기 나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결국 이주노조의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주노조의 존재 자체가 이주노동자 운동의 커다란 성과였다. 이제 이주노조는 평등노조까지 거슬러 가면 8년째를 맞고 있는데 그간의 활동에 대해서 간략한 평가를 해본다면?
이주노조의 출범은 한국에서 싹이 하나 난 거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전국적으로 많은 지부를 만들지는 못했다. 대구를 비롯해서 몇 군데 진행 중인 곳은 있는데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지역마다 하나씩은 이주노조 지부가 있어야 한다. 올해 8월 1일부터 합동단속이 다시 시작되었는데 이것에 대한 투쟁도 예전 명동성당 농성 때만큼 강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 겨우 정기적인 항의집회 정도만 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왜 미등록이 되었나 하는 것을 자신들도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냥 다들 비자 끝나고 미등록으로 남으니까 미등록으로 남아서 일하다가 잡히면 가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한데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피하려 한다. 처음에 한국에 들어와서 우선 급한 것은 내 나라에서 들어올 때 돈을 빌려서 들어오기 때문에 매달 월급을 받아서 갚아야 한다. 아무리 차별을 받아도 갚기 위해서는 참고 일해야 한다. 그 다음부터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데 그 기간이 2~3년 걸린다. 그 동안 회사 밖에 안 나오고 일하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어려운 조건이 있다. 미등록이 되면 곧바로 추방 위협이 있기 때문에 또 어렵다. 이것은 한국에서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또 이주노동자에 대한 조직은 이주노조뿐만이 아니라 민주노총에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는데.
중장기적으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와 교육,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 추방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어차피 필요하고 써야만 하는 건데 3년 일하는 것을 6년 하면 왜 안 되나? 3년이 지나면 한국말 더 잘하고, 일 하는 것도 잘 알고 한국 사람과 지내는 방식도 더 잘 알게 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불법으로 만들어서 추방시키는 것이 과연 맞는가? 일하고 싶다, 더 오래 일하고 싶다, 일 못하게 하는 법제도를 고쳐라, 이것이 뭐가 잘못된 주장이고 어려운 요구인가?
민주노총이나 금속에서도 이주노동자를 조직한다고 하고 있다. 당장 내일모레부터 그렇게 되기는 어렵겠지만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금속이나 건설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숫자가 합법적인 이주노동자들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이주노조가 그들을 조직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런 부분에서 민주노총이나 건설, 금속, 일반노조 등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부분까지 논의되지는 못하고 있고 서로 민감한 부분도 있지만 전망은 밝다.
민감한 부분이라는 것은 일자리를 이주노동자가 빼앗고 임금을 낮춘다는 한국 노동자들의 인식을 말하는 것인가?
특히 건설현장에서 이주노동자 때문에 일자리를 뺏긴다, 이런 이야기가 노조에서는 안 나오지만 현장에서는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같은 노동자인데 그렇게 나누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조금씩 한국 사람들도 차츰 알아가고 있다. 일자리 뺐기는 문제는 무엇보다 임금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노동자는 100원이면 이주노동자는 80원이니까 회사에서 이주노동자를 쓰려고 하는 거 아닌가? 같은 임금이라면 이런 문제는 해결된다. 한국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싸움은 아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같은 노동자로 회사에 요구하고 정부와 싸워야 한다.
한국사회의 민족주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불쌍한 사람, 도와줘야 할 사람 정도로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경향도 있다.
앞으로 또 다시 20년, 이주노동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이주노동자 운동도 계속 될 것이다. 말레이시아 같은 경우 300만 이주노동자 중에서 100만 명이 미등록이다. 한국도 그렇게 될 것인가? 선택을 해야 한다. 앞으로는 한국이 더 다양한 사회로 갈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이주노동자를 같은 노동자로 보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라면 한국 사람도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한 경험이 있지 않나?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돈 벌러, 일하러 온 사람이다. 어디든 돈 벌러 가면 똑같은 노동자다. 산업연수생 제도에서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라 연수생이었고, 지금 고용허가제에서는 이름만 노동자이지 노동3권을 전혀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라는 것이 한국 사람들과 한국 정부에게 우리가 하는 요구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