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0년 동안 함께 한 공부방 아이들 역시 이화여대가 서울에 있는지, 부산에 있는지 관심이 없다. 하다못해 SKY가 어떤 대학을 말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우리 공부방 아이들의 반쯤은 모의고사 때마다 문제지는 보지도 않고 답안지에다 마킹만 하고 잠을 자버린다. 120여 분짜리 사회과학탐구 시험을 단 5분 만에 해결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이모 도대체 사회과학탐구시간은 왜 그렇게 길어요. 자도, 자도 끝이 없어요.” 물론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또 나머지 반의 반 쯤의 아이들은 나름대로 공부를 하려고 모의고사 문제지 지문을 읽는다. 그러나 시험시간이 끝나도록 시험문제 반도 다 풀지 못한다. 그리고 남은 반의 반 쯤의 아이들은 공고나 여상에서 나눠주는 요점정리 종이 한 장으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다 해결한다. 수업시간에 배우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과 10월 한 달을 시험공부란 걸 하며 보냈다. 최소한 바닥이라도 면해보자고 외계인 암호 같다는 수학문제도 풀고, 영어도 외게 했다. 그러나 결과는 뻔하다. 아이들은 풀죽은 목소리로 묻는다. “이모, 우리 전문대학에는 갈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하루 종일 그림자처럼 지내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학습능력, 체력, 체형 모든 면에서 뒤진다. 학생시절 상위권을 놓치지 않아 교대와 사범대에 진학해 임용고시를 거친 능력 있는 교사들은 이 아이들의 학습부진과 산만함과 열등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출발부터 다른 아이들을 똑 같은 교실에서 똑 같은 방법으로 교육을 하면서 학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학습부진아, 문제아 딱지를 붙여버린다. 심지어는 똑 같은 몫의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 공고, 여상 아이들을 낙오자, 불량아로 분리해 방치한다.
이보다 더한 폭력이 있을까? 이보다 더한 따돌림이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언제까지 이 불공정한 경주에 희생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 아이들에게 농담처럼 말한다. 우리가 주류에 낄 수 없다면 우리 당당하게 비주류의 길을 선택하자. 우리는 경쟁에 뛰어들지 말고, 그냥 가난한대로 바보 같이 착한대로 이대로 어울려 살자. 오로지 위만 바라보고 종종걸음을 치는 그들을 오히려 비웃어주며 살자고 말이다. 그런데 이것뿐인가? 이 불공정한 경주를 벗어나는 인간답게 사는 길이.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