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열린칼럼] 비주류의 길

얼마 전 있었던 동호정보공고 폐교사태. 많은 이들이 남산타운아파트 주민들의 님비현상과 교육당국자들의 무책임, 사리사욕만 채우려는 지방자치단체와 건설 회사에 분노했지만 무엇보다 더 끔찍하게 다가온 것은 이제 공고마저도 화장장이나 쓰레기소각장처럼 혐오시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호정보공고의 폐교사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질 무렵 한 인터넷 신문에 인턴기자의 글이 실렸다. 동호정보공고 취재를 맡은 그 인턴기자는 학생들을 인터뷰하러 간 자리가 몹시 불편했다고 고백했다. 자기가 강남의 경기여고를 나와 이화여대에 다닌다는 것 때문에 학생들이 혹시 편견을 갖고 멀리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 도중 학생이 물었단다. “누나는 어느 대학에 다녀요.” 기자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화여대.” 그러나 그 학생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 학생은 이대가 어디 붙어 있는 학교인지,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는 대학인지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20년 동안 함께 한 공부방 아이들 역시 이화여대가 서울에 있는지, 부산에 있는지 관심이 없다. 하다못해 SKY가 어떤 대학을 말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우리 공부방 아이들의 반쯤은 모의고사 때마다 문제지는 보지도 않고 답안지에다 마킹만 하고 잠을 자버린다. 120여 분짜리 사회과학탐구 시험을 단 5분 만에 해결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이모 도대체 사회과학탐구시간은 왜 그렇게 길어요. 자도, 자도 끝이 없어요.” 물론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또 나머지 반의 반 쯤의 아이들은 나름대로 공부를 하려고 모의고사 문제지 지문을 읽는다. 그러나 시험시간이 끝나도록 시험문제 반도 다 풀지 못한다. 그리고 남은 반의 반 쯤의 아이들은 공고나 여상에서 나눠주는 요점정리 종이 한 장으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다 해결한다. 수업시간에 배우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과 10월 한 달을 시험공부란 걸 하며 보냈다. 최소한 바닥이라도 면해보자고 외계인 암호 같다는 수학문제도 풀고, 영어도 외게 했다. 그러나 결과는 뻔하다. 아이들은 풀죽은 목소리로 묻는다. “이모, 우리 전문대학에는 갈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하루 종일 그림자처럼 지내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학습능력, 체력, 체형 모든 면에서 뒤진다. 학생시절 상위권을 놓치지 않아 교대와 사범대에 진학해 임용고시를 거친 능력 있는 교사들은 이 아이들의 학습부진과 산만함과 열등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출발부터 다른 아이들을 똑 같은 교실에서 똑 같은 방법으로 교육을 하면서 학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학습부진아, 문제아 딱지를 붙여버린다. 심지어는 똑 같은 몫의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 공고, 여상 아이들을 낙오자, 불량아로 분리해 방치한다.


이보다 더한 폭력이 있을까? 이보다 더한 따돌림이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언제까지 이 불공정한 경주에 희생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 아이들에게 농담처럼 말한다. 우리가 주류에 낄 수 없다면 우리 당당하게 비주류의 길을 선택하자. 우리는 경쟁에 뛰어들지 말고, 그냥 가난한대로 바보 같이 착한대로 이대로 어울려 살자. 오로지 위만 바라보고 종종걸음을 치는 그들을 오히려 비웃어주며 살자고 말이다. 그런데 이것뿐인가? 이 불공정한 경주를 벗어나는 인간답게 사는 길이.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중미 | 기찻길옆작은학교 교사, 작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