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을 고발하면서 기고했던 글의 일부입니다.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가 재심과정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기 전에 사망했지만, 그의 말마따나 사건의 진실은 12년 만에 밝혀졌습니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 불린 사건이 있습니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입니다. 아무런 증거 없이 동지의 유서를 대필하여 자살을 방조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강기훈은 3년형의 유죄를 받았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16년 6개월 만에 그가 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너무도 당연한 상식을 확인했습니다. 진실이 승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죄 판결의 유일한 증거인 유서가 대필되었다는 감정결과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해서 번복이 되었으므로 이제 법원에서 재심과정을 거쳐 무죄가 확정되는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드레퓌스는 프랑스의 대위로 복무하던 유태인이었습니다. 당시의 군부와 인종주의에 희생이 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악마도’에 수감되었습니다. 그의 첫 재심 때 그는 단지 죄가 없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강기훈도 재판과정에서 무죄임을 거듭 밝혔습니다. 재심과정에서도 그가 할 말은 무죄라는 말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의 재심이 순탄치만은 않을 겁니다. 검찰이 ‘조직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한사코 진실을 어둠 속에 가두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걱정입니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 매우 중요한 부분의 진실이 밝혀졌는데도, 세상은 너무도 조용합니다. 그렇게 글발이나 써대는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칼럼 하나 쓰지를 않는군요.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던 당시의 프랑스와 너무도 다릅니다. 뭐, 강기훈 사건보다 더한 과거 사건의 진실들이 밝혀져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 위장간첩 이수근 사건이 법원에서 재심 개시결정이 있었는데도,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진실의 궁극적 승리를 믿는 한국판 ‘졸라’는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인가요?
재심과정에서 ‘진실과 건전한 상식’이 다시 한 번 배반당할 수도 있습니다. 드레퓌스 사건 첫 재심에서 군사법원의 심판관들이 그에게 유죄를 인정했던 것처럼. 그렇지만, 권력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지난 16년 6개월 동안 그랬던 것처럼 궁극적 승리의 날이 올 때까지 진실은 행진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이 밝혀지는 날, 추악한 범죄를 기획하고, 조작했던 그 범죄자들의 죄상이 밝혀지는 날까지, 졸라의 신념과 열정을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마지막 호를 냅니다. 돌아보고, 짚을 게 많은 한 해였음에도 특별한 송년호를 기획하지 못했습니다. 새해에는 대선의 결과를 인권잡지 <사람>의 관점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새해에도 늘 인권의 현장에서 멀어지지 않는 <사람>으로 서 있겠습니다. 한해 보살펴 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