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국제인권] 전쟁을 사고파는 시대, 민간군사기업(PMC)이 간다

의회동의도 필요 없고 전사자 집계도 되지 않는 그들

근래 몇 년 사이, 파업이나 철거 현장 등에서 부쩍 자주 눈에 띄는 분들이 계십니다. 주로 특정 반찬을 연상시키는 짧은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검은 색 잠바와 군복 바지, 군화를 착용하신 그 분들은 소화기와 500원짜리 면장갑에 마스크 하나만 있으면 웬만한 수의 노동자들이나 노점상들 쯤은 가뿐히 ‘철거’해주시죠. 보통 기업들이나 지자체들이 그 분들의 주요 의뢰인들이지만, 법을 어기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을 심판해야할 법원도 2년 전 평택에서처럼 가끔 그 분들의 힘을 빌리기도 한답니다. 바로 용역깡패들 이야긴데요,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들을 그냥 철거용역업체나 경호업체 요원으로 불러주길 바란다지요. 기업이나 관공서들이 돈을 주고 그들을 고용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네 직원들이나 경찰이 하면 사회적 비난과 법적 책임을 감수해야할 ‘더러운’ 일들을 그들은 돈만 주면 대신 해주기 때문이죠.
미국외교관을 경호하는 민간업체 블랙워터는 이라크에서 민간인 차량을 공격해 400여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면허만 취소되었을 뿐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 성업(?) 중인 용역업체들은 오늘 이야기해드릴 전 세계 민간군사업체(PMC)들의 활약상(?)에 비하면 그야말로 동네 구멍가게 수준도 되지 않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부터 멀리 아프리카의 적도 기니까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 그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도 달려가 전쟁을 사고파는 이들, 민간군사기업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살인면허를 받은 PMC 용병들


지난 9월 16일 정오 무렵, 미국인 외교관들과 그들을 경호하는 민간업체 ‘블랙워터 USA(Blackwater USA)’ 소속 요원들이 탄 네 대의 장갑 차량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니수르(Nisour) 광장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요원들은 자신들이 지나갈 때까지 주변의 모든 차량들을 멈춰 세웠는데, 그 와중에 흰색 차량 한 대가 정지하지 않고 여전히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블랙워터 요원들의 자동소총과 장갑차량 위의 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을 지나던 행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면서 주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약 30여 분 간 이어지던 총격이 그치고 나자 자욱한 화약 연기 사이로 쓰러져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공식적인 사상자 집계로는 17명이 사망하고 24명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집안 일 때문에 문제의 흰색 차량을 타고 가던 아메드 하이셈 아메드와 그의 어머니 모하신을 비롯해 사망자들 전원은 평범한 이라크 민간인들이었습니다.


사건 직후, 블랙워터 측은 자기네 요원들이 “적대적인 공격에 대응해 적법하고 적절하게 행동했다”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미 국무부도 요원들이 먼저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 공격에 대응 사격한 것이라며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과 이라크 정부 조사단의 조사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블랙워터 요원들이 마구잡이로 사격을 가하기 전에 총격은 고사하고 위협을 느낄 만한 어떠한 상황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를 토대로 이라크 정부는 블랙워터 USA의 이라크 내 면허를 취소해버렸습니다. 이는 사실상 미국 정부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에 미국에 부담을 주거나 뜻을 거스르는 행위 자체를 금기시해왔던 이라크 정부의 태도에 비춰볼 때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블랙워터 USA 요원들에 대해 이라크 민중들의 그동안 쌓인 불만과 증오가 이만저만이 아님을 미뤄 짐작할 수 있겠지요.


이 사건에 대해 현장조사를 벌인 미군 당국 역시 외교관과 블랙워터 요원들에 대한 공격이 있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에 관련된 블랙워터 요원들이나 회사 관계자들 중에 처벌을 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미국 정부로부터 이라크에서의 사실상의 살인면허를 받아놓았기 때문입니다. 즉, 2004년 6월 미국 임시행정처의 폴 브레머 전 최고 행정관이 이라크를 떠나기 직전에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민간계약업체들은 이라크의 법이나 규정의 제약을 받지 않고… 미 임시행정처의 명령과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훈령 17호를 내렸던 것입니다. 이 훈령 덕택에 2006년 12월 24일에 이라크 부통령의 경호원을 쏴 죽였던 블랙워터 요원 앤드류 J. 무넨도, 올해 5월 호송차 가까이로 차를 몰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라크 운전사를 살해한 또 다른 블랙워터 요원들도 아직까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블랙워터 요원들만 유독 이런 면책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달 9일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너티 리소시즈(Unity Resources)’ 요원들 역시 이라크 여성 2명을 총으로 쏴 죽였고, 18일에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다른 민간 경호업체 차량 4대에 나눠 탄 요원들이 택시가 자신들 차량에 다가온다며 총격을 가해 이라크인 자매 2명과 쿠르드 위성방송의 영상 편집자 1명에게 중상을 입힌 일도 있었지만, 역시나 처벌은커녕 진상조차 밝혀지지 않았거든요.
사진 | blog.naver.com/guadmoon


아무튼, 9월 16일 사건은 이라크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사건이 보도된 후, 미 하원은 즉시 블랙워터의 창립자이자 소유주인 에릭 프린스를 청문회에 불러 세웠습니다. 그는 청문회에서 자신의 회사가 2005년 이후 이라크에서 195건의 총격 사건에 연루됐다고 인정했으며, 함께 출석한 요원은 자신의 팀이 1주일에 4~5회 꼴로 총격을 가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한 기존에 국방부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들은 미국의 ‘역외 군 사법관할권 법(the Military Extraterritorial Jurisdiction Act, MEJA)’의 적용을 받습니다. 그러나 블랙워터 같이 국무부나 그 외 정부 기관과 계약을 맺은 민간군사기업 직원들에게는 그 법률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실상의 무법 상태에서 활동해온 거지요. 그래서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민주당 의원 데이비드 E. 프라이스는 MEJA를 전쟁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민간 계약업자들에게까지 적용하는 법률안을 제출했고, 지난 10월에 찬성 389 대 반대 30표로 하원을 통과하고 지금은 상원에 회부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제 민간군사기업들에 대해 한시름 놓아도 되는 걸까요? 대답은 아니올시다 입니다. 이미 그들과 그들을 둘러싼 시장의 규모는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시체를 다시 살리는 일 빼고는 뭐든지 다할 수 있다고 덤비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마의 노다지 산업’이 되었기 때문이죠.



냉전 해체의 틈새시장을 파고들다


블랙워터 USA와 같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전쟁과 분쟁에서 정규군을 대신해 군사 자문, 요인 경호, 군수물자 수송, 무기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민간계약업체를 일반적으로 ‘민간 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 이하 PMC)’이라 합니다. PMC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원들도 물론 있지만, 보통 1년에서 1년 6개월 단위의 계약직들이 더 많습니다. 그들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면서 군에 배속돼 일하는 군무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PMC에 고용된 이들의 상당수는 실제 전투에 참가해 상대 정규군이나 민병대 등과 교전을 벌이는 말 그대로 ‘용병들’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전쟁에서 PMC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 전쟁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당시 PMC가 담당한 역할의 대부분은 건설과 요리같이 군인들보다는 민간인들이 더 어울릴 수도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빠 부시가 1991년 1차 걸프전에 약 1만 명의 PMC 직원들을 고용하면서 그들의 역할과 비중은 대폭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PMC의 등장과 성장의 배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냉전의 해체’로 인한 일시적인 해빙 무드와 그로인한 군사전략의 변화였습니다. 즉, 미국과 소련을 양대 축으로 한 동서 양 진영은 냉전 시기 경쟁적으로 군비를 늘리는데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야 했고, 나라마다 수많은 정규군 병력을 운용하느라 등골이 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냉전이 끝나게 됩니다. 이제는 그 많은 정규군을 보유해야할 이유가 사라진 거죠.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강대국들은 대규모 병력 감축에 들어갔고, 동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냉전의 전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알다시피 지구상에 전쟁과 분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원을 비롯한 각종 이권을 둘러싼 전쟁과 민족, 종교간 분쟁은 더욱 잦아지고 격화됩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보다 빠른 시간 내에 전쟁과 분쟁 지역에의 직접 개입이 가능하면서도 번거로운 의회의 승인이나 반전여론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돈벌이를 위한 호기로 포착한 이들이 바로 PMC입니다. 서로의 이해가 딱 맞아 떨어진 거지요. 그 결과, 이제 본격적인 ‘전쟁 아웃 소싱’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여러분, 전쟁 하세요. 확실히 이기게 해 드릴게요~.”


1990년대 초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권 하의 특수부대원들로 구성된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Executive Outcomes)’가 본격적인 효시가 된 PMC의 실체와 규모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일단 그들은 자신들이 단순히 ‘경호업체’나 ‘보안업체’, 혹은 ‘군수업체’라 주장하고 있는데다, 그들에게 고용된 용병들도 개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특정업체와 일정 기간 계약을 맺고 일하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1994년 이래 미국 정부와 12개 PMC들 간의 계약 금액만 해도 300조원, 전 세계적으로는 연간 100조원 규모라고 하니 정말 많은 PMC와 그 용병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지요.


1995년 국토의 95%를 장악했던 시에라리온의 약 4만 명에 달하는 반군들을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의 300여 용병들이 탱크와 아파치 헬기까지 동원해 몰아냈던 ‘현대판 300’ 사건을 비롯해 PMC의 용병들은 주로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등지의 수많은 나라에서 각종 내전과 군사 쿠데타에 관여해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럽과 러시아 등에서는 PMC들이 각종 전략시설의 운영과 방어, 심지어 핵무기까지도 맡아서 관리하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상당수의 중동 국가들은 PMC들이 사실상 국가의 정규 군대를 대신 맡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라크만 같아라?



그리고 아들 부시의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은 PMC의 역할이 세계 최고의 군대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미국의 군대에게도 없어서도 안 될 전술적 핵심으로 성장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PMC 요원들의 숫자만 약 16만 명에서 18만 명, 그 중 3만 명에서 5만 명가량이 요인경호와 보안 검색, 무기 수송을 명분으로 사실상 전투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미군을 제외하고는 이라크에 있는 외국 군대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숫자인 거죠.
영국 외인부대 구르카용병단. 사진 | http://cafe.naver.com/worldbg.cafe


미국 정부가 자기네 전쟁에 PMC를 애용하는 공식적인 이유는 ‘빠르다’는 것과 더불어 ‘싸고 확실하다’는 겁니다. 임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PMC 용병들이 받는 일당은 400달러에서 많게는 1,200달러 정도라고 합니다. 이는 일반 사병에 비해서는 훨씬 많은 급여이지만, 정규 사병의 경우 사망이나 부상을 당했을 경우 연금과 치료비에 굉장히 많은 돈이 들어가는 반면 PMC 용병들은 회사와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갈 뿐 정부의 금전적인 책임은 없습니다. 게다가 그들 중 상당수는 갓 스물을 넘긴 애송이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특수부대나 해병대 출신의 삼사십 대 백전노장들입니다. 일례로, 2004년 미군의 팔루자 포위작전을 담은 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옥상의 미군들을 민간인 복장의 용병이 능수능란하게 지휘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정치적인 이유겠죠. 이라크에서 전투에 참가하는 PMC 용병을 대체하려면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사단이 추가로 파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규군 전사자가 늘어날수록 국내의 반전과 철군 여론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PMC 용병들은 앞서 말한 대로 파병을 위한 의회 동의도 필요 없고 전사자 집계에도 전혀 포함되지도 않아 그만큼 정치적 부담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PMC들이 부시와 공화당 정부로부터 받은 혜택의 대가로 정치헌금을 듬뿍 안겨주는데다, 국무부과 국방부 등의 고위 공무원들이 퇴직 후에 PMC의 회장, 이사나 고문 등으로 옮겨가는 ‘일자리 보장’ 측면도 무시 못 하죠.


정리하자면, 오늘날 민간군사기업 PMC들의 수와 활동범위는 날로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에 비례해 PMC 용병들에 의한 살해와 인권침해도 폭증하고 있지만, 그들을 규제할 방안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PMC의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전 세계에서 전쟁과 분쟁은 끊이지 않고 격화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전쟁과 분쟁이 사라지면 PMC가 돈 벌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 거니까요. 이제 PMC가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해 갈등을 조장하고 전쟁광들에게 로비를 해 세계 곳곳에서 일부러 전쟁을 하도록 부추기는 우울한 가정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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