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조 다국적 이주노동자 밴드
Stop crackdown! 흔히 ‘단속추방 반대’로 번역된다. 이주노동자의 집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어쩌면 세계에서 ‘Stop the war!’와 함께 가장 널리 애용되고 있는 이 만국공용의 구호를 당당하게 단체이름으로 걸고 있는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 크랙다운은 네팔에서 온 미누와 인도네시아에서 온 해리, 버마 출신 소모뚜와 소띠아, 그리고 한국인 송명훈으로 구성된 5인조 다국적 밴드다.
굳이 이주노동자 집회가 아니어도 다양한 투쟁현장에서, 그리고 각종 문화제에서 이들을 만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공연을 제외한 일로 다섯 명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기란 쉽지 않았다. 오늘의 만남도 겨우 자투리 시간을 얻어 마련한 자리다.
“지난 11월 4일 울타리 없는 노래콘서트에서 ‘버마를 위한 기도’라는 공연을 했어요. 오늘은 그날 수고해준 사람들과 같이 밥도 한 끼 하고, 그날의 공연 수익금을 버마국민운동촉진위원회에 전달하는 날이죠. 또 지난주가 소띠아 아들 돌이었어요. 늦었지만 축하도 해줘야지요.” 드럼을 맡고 있는 명훈은 막내이자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밴드에서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다.
‘울타리 없는 노래콘서트’는 스탑 크랙다운이 매년 해오고 있는 정기공연으로 “군부독재와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버마 민중들을 위해 힘닿는 대로 뭐든지 해야겠다”는 멤버들의 생각이 모아져 기획된 콘서트였다. 기타를 맡은 소모뚜는 버마 출신일 뿐만 아니라 이번 버마 민주화운동 상황을 한국에 널리 알리고 다양한 지지, 지원을 조직했던 단체, 한국에 있는 버마출신 이주노동자들의 모임인 ‘버마민중학살규탄과 민주화운동지지 긴급행동(버마액션)’에서 활동하고 있다. “버마 민주화운동은 끝나지 않았어요. 지금 나서면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잠시 움츠리고 있는 거죠. 버마 민주화 운동은 계속 될 거예요. 결국 버마는 승리할 겁니다.” 버마 상황을 전하며 소모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끝을 맺는다.
왼쪽부터 베이스 소띠아, 기타 소모뚜, 건반 해리, 드럼 송명훈, 보컬 미누. 사진 | 강곤 |
농성장에서 지어진 이름, 스탑 크랙다운!
스탑 크랙다운은 2003년 겨울, 정부의 광기어린 단속과 강제추방에 맞서 이주노동자들이 농성을 했던 서울 태평로의 성공회대성당에서 결성되었다. 한국에 온지 14년째인 보컬 미누는 농성 중에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노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민중가요도 부르고 공연도 하는데 우리 이주노동자들에게 딱 맞는 노래가 없어요. 몇 명이 모여서 우리가 직접 연주도 하고 노래도 하자고 했죠. 소모뚜도 그 전에 유레카란 밴드를 했었고. 그래서 밴드가 그 자리에서 결성이 되어버렸어요. 이름을 뭐로 할까 하다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가장 절실한 문제였으니까 강제추방 중단하라! 스탑 크랙다운으로 되었죠.”
다섯 명의 멤버들은 락(Rock)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있지만 약간씩 음악적 취향이 다르다. 출신국가가 다른 만큼 문화적 차이도 있을 것이다. 명훈은 그것이 스탑 크랙다운만의 장점이라고 한다. 나이는 비밀이라는 밴드의 맏형 미누도 “우리 음악이 락이지만 뭐랄까, 냄새가 좀 달라요. 말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어요. 동양적인 냄새를 풍기는 락이라구 해야 하나?”라며 거든다.
지난 2004년 그 말 많았던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20주년 기념공연에 참여해 부른 ‘손무덤’은 스탑 크랙다운의 대표곡이 되었다. 당시 노동자 문예운동을 박제화하고 상품화했다는 비판이 들끓었던 이 공연에 그나마 20년 전 한국 노동자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함께 했기에 면피가 되었다는 평을 읽은 적이 있다. “밴드 이름이 워낙 강하다보니 방송국에서 섭외를 하면서도 어려워해요. 너무 강한 노래는 부르지 말아달라고 대놓고 주문을 하는 경우도 있고. ‘손무덤’은 안 된다고 해서 출연을 접은 적도 있어요.” 명훈은 그와 같은 검열과 개입은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 사실 1집 앨범이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대변하다보니 무겁고 대중적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더욱 정성을 기울인 2집 앨범이 지난 6월 제작되었다.
사실 공연도 그렇지만 음반 제작도 쉬운 일이 아니다. 미누와 함께 작곡을 하고 있는 소모뚜는 “이메일로 작곡한 것을 보내면 서로 의견을 말하고 덧붙이고 해서 노래를 만든다”고 창작 과정을 설명한다. 연습도 공연 당일 리허설에서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꽤나 유명하다는 대중음악 밴드들도 살림이 어려워서 해체와 결성을 반복하고는 한다는데 이들이야 오죽할까. 명훈은 “2집 앨범은 그동안 공연에서 받았던 출연료를 걷어서 만들었어요. 많이 팔아서 그 수익금을 다시 나눠야죠.”라며 그나마 밴드활동에 개인적인 비용 부담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한다.
가장 인상 깊은 건 한국사람?
10년 동안 봉제공장 등에서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해온 미누는 현실에 저항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은 물론 “이주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다가설 수 있을까”하는 것이 요즘 고민이다. 그는 밴드 활동 외에 캠코더 촬영에 열심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직접 발언하기 위해 만든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에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2005년 밴드에 결합하여 건반을 맡고 있는 해리는 다니던 공장에서 해고된 뒤 노동운동의 소식통인 노동네트워크에서 웹디자인을 하고 있다. 스탑 크랙다운의 홈페이지도 해리의 작품이다. “웬만한 일은 다 자급자족”이라는 소모뚜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는 소띠아는 컴퓨터 조립판매를 하고 있으니 밴드 구성원 모두 한 가닥씩 하는 재주꾼들인 셈이다.
2003년 농성장에서 자원활동을 하던 우선주 씨와 결혼한 소띠아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이란 뻔한 질문에 “모든 공연은 다 감동적이죠. 특히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공연은 더….”라는 대답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공연장에서 한국인 스텝들이 자신들을 무시하고 차별할 때라고 한다. “야, 이리와 봐.” “이거 맞춰봐.” 그러면 한 ‘성질’ 하는 미누와 소모뚜는 “아저씨, 우리 반말하는 거 존나 싫어하거든.”하며 정색을 한단다. 그러면 대부분은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우거나 말을 돌린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데 왜 남의 나라에까지 와서 그래?”하는 비아냥거림은 이미 익숙해졌다.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활동을 하니까 좋은 한국 사람을 많이 만나죠. 하지만 공장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다 못 된 사람인 줄 알아요.”라며 해리는 “한국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 이미지 관리를 잘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한편 소모뚜도 버마액션에 몸담고 있기는 하지만 “사장이 좋은 사람”인 탓에 지금도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주말에 밴드 활동할 시간을 보장해주는 대신 평일에 작업을 더 해주는 조건이니 사장이 크게 선심 쓰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음반이 나오면 구입해서 직원들에게 선물까지 한다고 하니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서는 부러움을 듬뿍 살만한 행운이다.
어느새 삼겹살집은 하나 둘 모여든 버마 민주화운동 단체 사람들, 이주노동자 영화제에서부터 자원활동을 했던 대학생들, 스탑 크랙다운의 팬클럽이자 후원인들로 들어차 왁자지껄하다. 무슬림이어서 삼겹살을 못하는 해리의 주 메뉴인 계란말이가 늦자 소모뚜는 아주머니가 닭 잡으러 간 모양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오늘의 또 다른 주인공 소띠아의 애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자 미누는 다들 소개를 시켰는데 애기는 왜 차별을 했냐고 사회를 보는 명훈을 타박한다. 버마 민주화를 위해, 스탑 크랙다운을 위해 건배가 잇따른다. 이미 12월 내내 주말마다 공연이 잡혀 있다. 밴드 이름을 바꾸는 날이 오기 위해 노래를 한다는 이들은 오늘의 힘으로 다시 무대에 설 것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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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탑 크랙다운의 야심찬 2집 앨범은 스탑 크랙다운 홈페이지(http://www.stopcrackdown.com)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