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는 이제 그만 좀 우려먹었으면 하는 유태인 학살을 소재로 삼았지만 재기발랄한 유머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잘 버무려진 영화다. 미국에 살고 있는 유태인이자 수집광인 조나단은 “어거스틴과 함께 트라침브로드 1940년”이란 메모가 적힌 사진 한 장을 들고 우크라이나로 온다. 사진 속 주인공은 조나단의 젊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옛 애인 어거스틴이다. 조나단은 우크라이나에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알렉스와 부인이 죽은 후로는 앞이 안 보인다고 우겨대는 알렉스의 할아버지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어거스틴의 언니를 만나 어거스틴의 죽음에 대해 듣게 된다. “잊어먹을까 봐 너무 두려워서” 자신과 가족의 소지품을 수집하는 조나단과 “사람이 물건을 찾아오는 것”이기에 트라침브로드에서 학살당한 이들의 유품을 알뜰히 챙겨놓은 어거스틴의 언니. “물건이 있기에 여기까지 왔지 않느냐”라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수집품을 통해 조나단과 알렉스, 그리고 알렉스의 할아버지는 비로소 과거와 화해하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된다.
“서류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던 ‘살인의 추억’ 형사는 영화 내내 미궁 속을 헤매고 조작된 증거를 진실이라 우기는 이들은 과거로부터 단 한 발짝도 못 벗어난다. 서류는 거짓말을 않지만 그렇다고 제 스스로 진실을 말하지도 않는다. 권력형 진실게임 탓에 요 근래 부쩍 입에 오르내리는 실체적 진실이란 것도 그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만 보이기 마련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