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장애인교육권연대 |
2007년 제정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법률 제정으로 그동안 주목하지 못했던 장애성인의 교육 지원에 관한 규정도 법률에 포함되었으나, 사실 장애인야학 등 장애성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 조항은 포함되지 못했다. 그전의 법률인 「특수교육진흥법」(1977년 제정)과 비교해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장애성인의 평생교육의 권리와 학교교육을 받을 권리를 최소한의 정도 수준에서 보장하였으나, 장애성인의 다양한 교육적 요구를 고려하여 ▲학교교육으로의 진입 가능성 ▲순회교육 등을 통한 별도의 교육지원 제공 가능성 ▲장애인야학 등 민간 장애인교육시설을 통한 교육지원 제공 가능성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장애성인의 교육 기회를 법률을 통해 보장했어야 했으나, 새 법률은 이중 가장 최소한의 정도 수준만을 담았다. 이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으로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마련 중인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시행령·시행규칙」 제정안에 법률에서 담지 못했던 장애성인의 교육지원에 관한 사항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였으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특히, 장애인야학 운영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시설 지원, 인건비 지원, 차량 지원 등에 관한 사항을 시행령안에 담아, 장애인야학의 안정적 운영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가 아닌 곳에 대한 운영 지원을 보장해 주는 사례가 없고, 다른 학교형태의 평생교육시설의 경우 교재-교구 지원 정도만 제공하므로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이를 거부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은 서울시교육청, 서울시청 등에서도 교육인적자원부와 똑같은 답변으로 일관하며, 장애인야학 지원에 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청은 “장애인야학의 고유 업무가 장애인 교육이므로 이 업무의 소관은 서울시교육청이므로, 서울시교육청을 통해 알아볼 것”을 주문하였으며,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학교에 대한 지원 이외의 지원에 관한 사항을 서울시교육청에서 담당하지 않고, 장애인야학은 장애인 복지 차원의 문제이므로 서울시청을 통해 구체적인 지원에 관한 사항을 알아볼 것”을 요청하였다. 현재는 서울시청과 서울시교육청 사이에서 핑퐁게임을 하며, 어느 누구도 장애인야학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장애인야학의 역사성
그러면 정말 노들장애인야학의 경우와 같이 장애인야학은 계속 거리로 내몰리며 생존에 허덕여야만 하는가? 장애인야학의 탄생 배경과 그 역사성을 살펴보면, 어쩌면 장애인야학이야말로 이제는 정부가 인정하고, 그동안 외면해 온 사실을 사죄하며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정도(正道)일 것이다.
1994년 「특수교육진흥법」이 전면 개정되기 전, 우리나라의 장애인 교육 현실은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장애인이 학교에 입학하려고 하면, 학교장이 입학거부를 밥 먹듯이 하였고, 설상 학교를 다닌다 하더라도 장애학생에게 적합한 교육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시설과 전문 인력이 확보되지 못해, 장애학생들은 비장애 학생들 위주로 맞춰진 일반교육 환경 속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적 환경은 “장애인이 교육받아서 뭐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돌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았다. 당시의 환경에서 장애인을 학교로 보낸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을 해야만 했고, 장애인을 둔 가족 역시 경제적, 육체적, 심리적 부담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렇게 당시의 사회적 환경은 장애인이 교육받기에는 매우 어려웠으며, 장애인들은 학령기 때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고, 집안에서 시설에서 문맹인으로 살아가야만 했고, 이들이 이제 성인이 된 것이다. 이들은 성인이 되었지만 학력지상주의 사회, 학벌에 경도된 사회 속에서, 학력이 낮아 취업하지 못하고, 승진하지도 못하며, 가장 열악한 사회경제적 위치에 머무르면서 생존에 허덕이고 있다.
사진 | 장애인교육권연대 |
교육계에서는 이와 같이 어쩔 수 없는 사정이나 개인 사정으로 인해 학교교육·문해교육을 제공받지 못한 계층을 잔류 비문해 국민으로 분류하여, 이들에 대한 학교교육·문해교육 지원 대책을 강구해 왔다. 1960년대에는 초등학교에 국문강습소를 설치·운영하였고, 공민학교 제도를 통해 읽기·쓰기·셈하기 등의 교육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문맹인 국민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교육 사업은 중단되었고, 민간의 야학에서 학교교육·문해교육 사업을 이어받아 정부의 무관심 속에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며, 교육소외계층을 위한 학교교육·문해교육을 실시해 왔다.
장애인야학 역시 이와 같은 야학의 역사의 흐름 속에 탄생되었다. 1990년대 들어 장애인의 사회 참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으나, 교육받지 못한 장애성인의 교육 문제에 대해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장애성인들은 학령기 시절에도 관련 법규가 미약하여 학교로부터 거부당하였고, 학교에 다니더라도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서도 이들을 위한 어떠한 교육공간도 마련되지 않아, 가정이나 시설에서 방치되어야만 했다. 바로 그러한 어려운 시기에, 기존 야학의 운영 방식을 모델로 하여 민간 차원에서 장애인야학이 탄생되었다. 1987년도에 인천에 작은자야학이 생겼고, 인천작은자야학을 모델로 하여 서울 은평구 지역에 은평작은자야학이 설립되었으며, 1993년도에는 정립회관에서 장애인청년연합회(준)의 활동가들을 주축으로 노들장애인야학이 만들어졌다. 그 후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전국 곳곳에서 국가 및 지자체의 힘이 아닌, 관련 법령에 근거한 것이 아닌 순수 민간 독지가의 힘과 열정으로 장애인야학이 설립되었다. 그래서 2008년 현재 전국에 약 22곳의 장애인야학이 운영 중에 있으며, 최근 장애성인들의 사회 진출 속도가 빨라지면서 장애성인의 교육 요구가 급증하고 있고, 이에 따라 자립생활센터 등에서 부설형태로 장애인야학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사실 장애인야학은 정부의 무관심 속에 장애인 교육이 외면당하던 시절에 민간의 순수한 힘으로 건설된 교육공간이다. 장애인야학은 민간의 힘에 의존하면서 장애인야학을 운영해 왔으나 언제나 인력 부족, 운영비 부족, 공간 협소 문제 등으로 운영난에 허덕여야 했고, 최근 장애인 교육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생겨나자, 장애인야학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첫 번째로 장애인야학을 법제화하여 국가 및 지자체로부터 구체적인 지원을 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동안 국가 및 지자체가 외면해 왔던 장애인야학이 이제는 명실상부한 장애성인들을 위한 학교교육 제공 공간임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장애인야학의 현재
노들장애인야학의 천막야학은 어쩌면 장애인야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전국의 모든 장애인야학은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정규교실 면적보다도 훨씬 좁은 곳에서 교육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반 특수교육기관에 지원되고 있는 각종 편의시설 등의 교육시설이 없어 교육활동 추진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애성인에게 적합화된 교재, 교수-학습 지원 방법 등도 개발되어 있지 않고, 이들 장애성인들의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인력도 부족하다. 또 한 가지 더, 장애성인들이 장애인야학으로 안전하게 등·하교를 할 수 있도록 통학지원을 제공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차량, 차량운전자 인건비, 차량운영비 등 통학지원에 여러 가지를 제공하지만, 현재 이와 같은 지원을 모두 장애인야학 스스로의 힘으로 부담하고 있다.
노들야학 초등과정(청솔반) 수업 모습. 사진제공 | 노들야학 |
한편, 노들장애인야학 등 장애인야학이 구현해 내고 있는 교육활동은 공교육을 통해서는 확인할 수 없는 대안적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교육자와 피교육자(학습자)의 평등한 관계 형성을 통한 민주적 학사 운영 ▲학생의 요구를 고려한 자율적인 교육과정 편성·운영 ▲장애학생의 사회진출을 고려한 실천과 실습 중심의 교육활동 ▲지역사회의 문화를 체험하고,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획득에 필요한 교육활동 등이 그것이다. 사실 현재 특수교육기관에서 장애학생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교육은 장애학생의 생활연령과 교육적 요구를 고려한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교육보다는 국가가 제시하는 표준 교육과정을 통한 교육이었고, 이에 대한 비판이 특수교육 현장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기에, 노들장애인야학 등의 대안적 요소는 특수교육 연구자들에게도 사뭇 매력적인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장애인야학의 향후 과제
이제 우리 사회는 장애인 교육 문제를 넘어, 장애성인의 교육 문제까지 이해하고, 장애성인들의 교육권과 학습권을 보장해 주기 위한 대책 마련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입시위주의 교육에 경도된 우리의 교육 문화와 경쟁과 효율 중심의 인력 양성 체제에서 장애인교육이나 장애성인의 교육 문제는 어쩌면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근대적 개념의 공교육을 도입한지 반세기가 되어가고 있는 우리 나라가 무상의 공교육을 국민 모두에게 동등하게 제공해 주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는 이 시점에서 교육은 어쩌면 장애인의 사회 진출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기에, 장애인의 완전한 교육기회 보장을 위해서 이제는 뭔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 때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추진 중인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시행령」에 장애인야학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에 관한 규정을 포함시키는 것부터 시작하여, 정부가 마련할 ‘특수교육발전5개년계획안(2008~2012)’에 장애인야학 지원에 관한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며, 각 시도교육청에서 추진할 ‘시도 특수교육운영계획(매년 수립)’등에 장애인야학 지원에 필요한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은 구체적인 지원을 법령과 제도 등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국가 및 지자체가 이제는 장애인야학을 장애성인의 교육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교육공간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인야학은 장애인의 사회적 문제를 올바로 직시하여, 장애인의 문화와 역사를 장애인들에게 교육해 왔다. 장애인야학의 학생들에겐 장애인야학은 단순히 학교교육을 배우는 곳이 아닌, 장애인에 대한 정체성을 획득하고 장애인으로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곳이 되고 있다. 그만큼 장애인야학은 이제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 아니라 나의 삶을 고민하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천막이 이러한 소중한 공간을 지켜나가기 위한 교사와 학생들의 처절한 투쟁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