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민주노동당을 넘어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운동의 위기에 대하여

지난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위기, 진보정당운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선패배만이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말하게 된 이유일까. 사실 위기는 몇 년 전부터 나왔던 화두였다. 민주노동당에겐 이를 극복할 아주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고, 아주 여러 번의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현명하지 않은 선택을 하였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민주노동당이다.

사진 | 참세상

많은 이들은 신당 건설에 나서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신당파들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이래서 안 돼!”가 아니라 새로운 진보의 전망을 가지고 논의를 해나가자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민주노동당이 왜 더 이상 진보정당으로서 전망이 없는지, 왜 민주노동당의 혁신은 불가능한지 명확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남한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정당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이유로, 이미 싸늘해진 시체가 되어버린 민주노동당을 떼 메고 가려는 이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이라는 식의 마인드로는 아마 총선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질질 끌려 다닐 것이다. 있는 대로 드러나야 새로운 진보도 가능하다.


있는 그대로의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은 대부분 종북주의, 패권주의로 인한 무능과 전횡을 비판하지 않고서는 극복되기 힘든 것이었다. 이러한 비판은 당내 투쟁을 더욱 격화시켰고 그 과정에서 진보정당의 본령인 대중정치활동은 실종되었다. 최근의 민주노동당 사태는 이러한 일들이 누적된 결과이다.


종북주의, 패권주의 청산이 진보정당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으로 한정해 볼 때 이는 당의 운영메커니즘과 관련된 신뢰 및 내부 민주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자민통(자주민주통일) 세력이 주로 저지른 집단적인 지구당 변경, 위장전입, 대리투표 등을 통한 지구당 장악은 결국 주소지, 거주지 등에 따라 획일적으로 당적을 규정하도록 하는 당규제정으로 귀결되었다. 이것은 정치활동을 잘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정파 서로간의 불신으로 인한 것으로 민주노동당이 내부정파정치에 묶여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직을 바라보는 철학의 차이 또한 무시해선 안 된다. 민주노동당 창당을 주도했던 세력들은 자민통 세력과의 세계관의 차이를 충분히 알고 있었고, 자민통 세력과 함께 정파연합당을 꾸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상황도 있었다. 그들 또한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 변할 것이다, 아니 스스로 변하지 않더라도 당원수가 10만 정도 되면 상식을 가진 당원이 다수가 되어 그들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판단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으로 서는데 주된 걸림돌이 된 것이다. 경남도당 회계부정사건을 비롯한 각종 회계 및 재정운영문제, 대대적인 당적이동 및 당비대납 등을 통한 비상식적인 지구당 장악사태, 고위당직자의 조선노동당에 대한 충성서약 사건, 2004년 여성당직자 폭행사건, 2005년도 당기관지인 <진보정치>, <이론과 실천>의 정파 기관지로의 전락 등 일련의 사건들은 이념적, 조직적 기초가 다르고 세계관이 상반된 흐름이 적대적 공생관계로 한 정당에서 공존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임을 보여준다.



선거만 하는 정당, 단체가 되어버린 정당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가진 문제는 단지 여기에 그치지는 않는다. 우선 민주노동당은 범여권이라는 틀 속에서 노무현정권이라는 사이비개혁세력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세력으로 인식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났듯이 대중들은 노무현 정권과 가장 멀리 있는 세력으로 한나라당을 선택했고, 민주노동당은 범여권에서 조금 더 ‘과격하고 친북적인’ 집단으로 규정되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은 대중의 에너지를 부분적인 것, 개혁적인 것에 가두어 왔다.


둘째, 민주노동당은 창당 목적으로 제시된 바 있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달성해내었는가. IMF 외환위기를 통해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회사 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에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방어하고 대변해줄 정치세력으로 민주노동당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것이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가 결의된 배경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권영길 후보를 ‘배타적으로 지지’했을지는 의문이다. 민주노총의 노동자들의 투표성향은 다른 이들과 커다란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에서의 정치교육을 통해 노동자 당원의 수는 늘어났지만, 당원이 된 이후 이들은 여전히 당으로부터 방치된 상태에 있었고, 대상화되는 길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셋째, 여성, 녹색, 인권, 소수자 운동에 대한 피상적 인식의 문제다. 작년 말부터 범민련 세력이 민주노동당에 속속 가입하고 있다. 이들의 입장은 “민주노동당으로 전체역량을 총집중시키고” 김일성 주석 탄생 백주년인 “2012년에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자”는 범청학련(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의장의 성명서에도 드러나 있다. 그러나 범민련이 진보정당의 가치를 과연 인정하고 있던가. 범민련 남측본부는 기관지 <민족의 진로>에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이주노동자문제 등을 부정적 사회문제들로 묘사하여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몰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사회주의 하에서의 사형제를 무조건 반인권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고 한 이가 버젓이 사무총장이 되었으며, “동성애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서 비롯되는 파행적 현상”이라는 발언을 한 이가 정책위의장이 되는 민주노동당의 현실에 어울린다고도 할 수 있다.


넷째, 민주노동당은 선거만 하는 정당이었다. 4년의 주기에서 6개월 정도만 선거와 무관한 시스템이었고, 나머지 3년 6개월은 선거준비위 활동, 선거대책위 활동, 선거본부 활동, 그리고 선거평가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나마 선거평가가 명확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가장 밑바닥의 기초조직인 분회는 철저하게 선거구에 맞춘 지역편제로 이루어져 선거 시기 동원을 위한 조직으로 기능할 뿐이었다.

사진 | 참세상

이라크 파병반대투쟁, 한미FTA 반대투쟁, 비정규직 철폐투쟁 등에서 민주노동당원들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이 특정한 대중조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치켜들 수 있는 깃발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에서 민주노동당은 각종 범국민대책위, 무슨 국민행동, 민중연대, 한국진보연대(준) 등의 소속단체였을 뿐, 정당으로 활동하지 않았다. 이러한 활동을 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이 건설된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당 혁신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는데 과연 당 혁신 노력이 없었던가. 그동안 수많은 당원들의 서명활동과 중앙위원회 및 당대회에 안건 제출은 당 혁신 노력이 아니었던가. 대선후보선출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당의 체질변화가 도모되었다. 명망가 국회의원에 의존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한 당 쇄신에 기대를 걸었던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자민통 세력의 묻지마 정파투표로 인해 좌절되고 말았다. 또한 진보대연합 논의도 실현되지 못했다. 앞에서 말했던 민주노동당 평당원 모임 내지 지지자들의 모임은 이제 다 사라졌고, 하루 방문자 수가 5,000명이 넘었던 그들의 홈페이지마저 없어졌다는 사실은 민주노동당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에게는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이 부인되는 많은 계기와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 때마다 당 혁신을 말해왔지만, 역량 부족, 준비 부족, 현실을 핑계로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꼴로 전락하고 말았다.


설사 민주노동당 혁신이 가능하다 해도 지금까지의 여러 계기들 속에서 떨어져나간 사람들, 활동을 중지한 사람들, 처음부터 민주노동당에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지켜보던 당 밖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당원 규정에서부터 의견그룹의 존재형태, 교육 및 토론시스템, 지역조직 체계 및 운영 메커니즘 등에 이르기까지 바꿔야 할 것이 쌓여있다. 그러하기에 재창당 수준의 혁신이 요구되지만, 현재의 민주노동당 상황은 이를 수행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또 다시 총선이라는 현실 정치일정을 핑계로 이러한 문제들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당원들과 대중의 요구를 외면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봉합하는 것은, 이번 대선패배로 사망선고를 받은 진보정당운동이 다시 소생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노동당을 뛰어넘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민주노동당 내에서 패배해온 대상은 자민통, 종북주의 세력이 아니라 바로 현실성이다. 민주노동당 창당을 주도했다는 생각, 민주노총 및 민주노동당 관료로서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한 현실성이 바로 진보정당운동의 발목을 잡아왔던 실체였던 것이다.


정치란 타이밍과 메시지, 그리고 내용(contents)이다. 민주노동당 안으로는 종북주의, 패권주의 청산을 제기함에 의해, 민주노동당 밖으로는 진보의 재구성을 제기함에 의해 메시지는 전달되었다. 물론 좌파적 의제를 일상에서 구현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진보의 다원주의, 즉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 건설의 길이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조건에서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내용을 구성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되, 이번에는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을 넘어서 건설하고자 하는 신당이 명실상부한 진보정당으로 인식될 것인지, 더 많은 대중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강내희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좌파는 숫자라기보다는 입장”이며, “이론적, 정치적 입장은 정확함, 분명함, 열정, 용기 등에 의해 가늠되는 것이지 숫자, 크기에 의해 가늠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은 지금 당장 요구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진보운동 판 자체를 생각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내부만 보아서는 안 되며, 새로운 진보담론을 만들어가려고 시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집권이 진보정당의 목표로 설정되어서는 안 된다. 집권을 목표로 현실과 끊임없이 타협하는 정당은 민주노동당으로 충분하다. 민주노동당의 시행착오를 경험 삼아 노동자 중심성을 명확히 하면서 집권을 하지 않더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그런 진보정당을 만들 필요가 있다.


남은 것은 타이밍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이 제대로 서려면 실기(失期)하지 않아야 한다. 다가오는 1~2년 사이에 원칙적인 진보정당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진보운동에는 희망이 없다. 그래서 바로 지금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풍부한 논의와 거침없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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