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간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 사회는 놀라운 변화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5월초부터 광장에 켜지기 시작한 촛불은 넘실거리는 시위의 물결이 되었고 달포가 넘도록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0일에는 6월항쟁 이후 최대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왔습니다. 신보수 이명박 정권의 탄생 그리고 여당과 보수 세력들이 싹쓸이한 18대 총선이 있은지 불과 한 달여 사이입니다.
새로운 주권자의 탄생과 새로운 시민의 탄생이 얘기되고 있고, 새로운 시민혁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모든 세대가 나와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새 정부의 핵심 정책들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갑니다. 보수화되었다던 시민들, 경제적인 욕망으로 인해 민주주의를 잊은 것 같았던 시민들이 광장과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들의 창의적이고 발랄한 축제, 그러면서도 매일 새벽까지 흩어지지 않고 끈질긴 저항을 지속하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촛불이 밝혀지기 직전에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언제 난파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습니다. 특히 어떤 대항담론도 무색케 하는 이명박 정권의 반인권담론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상황이었습니다.
우선, ‘법과 질서’의 담론으로 이명박 정권은 공격해왔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정당한 항의와 투쟁을 ‘떼법 문화’라고 매도하고, 이런 떼법 문화의 청산이 정부의 목표로 제시되었습니다. 경찰은 백골단의 부활을 공언했고, 검찰은 상습시위꾼을 색출하고 경찰폭력에 면책권을 부여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의해서 무시되었고, 이들의 농성천막은 강제로 뜯겨나갔습니다. 참혹한 아동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국가형벌주의를 강화하고, 전자감시체제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쏟아졌습니다. 공안기관들은 물 만난 고기떼처럼 활개를 치고 일순간 공안정국이 조성되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의해서 어느 정도의 외형적 법치주의가 완성되었다고 믿었던 그 모든 일들이 한순간 무력화되려는 것 같았습니다.
둘째, 선진화 담론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사회권)의 후퇴를 본격화하겠다는 선전포고였습니다. 1%만을 위한 정부, 대기업을 위한 규제 완화에 나서는 정부의 모습이었습니다. 대운하 사업을 비롯한 뉴타운 개발 사업, 그리고 4월 15일 발표된 0교시의 부활과 우열반 편성으로 대표되는 교육정책, 물, 수도, 전기, 철도 등의 민영화, 의료 민영화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기세등등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었습니다. 이런 정책들은 이미 시행에 들어갔거나 국회에서 법률들로 현실화될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고, 유가를 비롯한 국제원자재의 비상한 인상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았고, 결국 이명박 정권은 핵심 공약이었던 ‘747’공약을 폐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회공공부문의 민영화에 속도를 붙이려 했습니다.
셋째, 한미동맹의 강화를 이명박 정부는 내걸었습니다.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는 동북아 정세에서 북미는 이미 핵문제 해결의 프로세스를 한국 정부를 제치고 합의해 놓고 있던 것도 모른 채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으로 날아가 부시 상전에게 읍소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아무런 조건 없이 수입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대가로 전략동맹 관계를 맺자고 구두로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유엔에서는 대북결의안을 아무런 고민 없이 찬성하고,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겠다고 공언하여 북한과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빠뜨렸습니다. 북미 수교로 가는 급격한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은 미국의 전쟁기지로 더욱 빨리 전락하고 있습니다. 군산미군기지에는 미국 본토에서 날아온 미공군기들이 연신 이착륙하면서 전쟁연습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략동맹이란 이름 아래 평화의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인권에 대한 총공세가 촛불이라는 거대한 방파제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물론 아직도 기만적으로 위와 같은 정책들을 시행하려는 기본적인 관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대운하 하나 포기한 상황이고, 물, 전기, 의료, 철도 등의 민영화 대신 선진화하겠다는 말 바꾸기로 대응하는 정부, 소통 부재에 대해 반성한다고 하면서 컨테이너를 쌓는 소통 불능 정부의 모습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부의 정책은 광장에서, 거리에서 호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광장과 거리에서는 직접민주주의의 맹아들을 열심히 꽃피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새로운 시민혁명이 진행 중인 것 같은데, 이 시민혁명은 권리의 혁명이기도 합니다. 대의제 민주주의로는 수렴될 수 없는 새로운 주권자가 광장에서 탄생하고 있습니다.
직접 정치에 뛰어든 시민들은 이 시대에의 가장 급진적인 세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소환할 수 없는 제도적인 약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갓 출범한 정권을 끌어내리겠다고 ‘독재타도’를 외칩니다. 이런 시민들의 역동성과 열망은 우리 자신이 민주공화국의 주인임을 내세우고 있고, 사회권의 많은 내용을 인권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촛불시위가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고, 촛불이 일순간에 꺼진다고 해도 지난 5, 6월 광장을 촛불로 지새웠던 경험들은 시민들의 기억 속에 간직되어 어느 순간에 다시 폭발할 힘이 될 것입니다. 그 폭발적인 힘을 잘 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시민인권선언’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당장 제도정치로 수렴될 수 없는 급진적인 권리의 내용들을 광장에서 서로 제안하고, 토론하고, 합의하여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인권으로 확고히 선언하는 일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방송 장악과 인터넷 규제를 시작으로 반격을 가합니다. 촛불이 약화되면 정부는 이전과는 달리 위기를 관리하는 역능을 체득하고서 분산적으로 야금야금 저들의 정책을 구체화할 것입니다. 의료 민영화하지 않겠다면서 제주도에서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한 것처럼 말입니다. 교묘해지는 탄압, 교묘해지는 인권의 후퇴에 대해 인권운동진영이 더 이상 담론에서 밀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시민들의 변화의 열망을 권리선언이든 권리헌장이든 간에 담아내는 과정을 밟아야 하지 않을까요? 거리에서 경찰의 폭력을 감시하는 활동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직접민주주의, 주권자에 의한 직접 정치의 모델을 만드는 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중요한 변화의 시점에 <사람>을 복간하므로 그 책무를 더욱 크게 느낍니다. 더욱이 성격을 담론지라고 했으므로 당연히 이 중요한 시기에 인권담론을 제시하고 토론을 제안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볼 때 이번 호의 기획은 다소 뒷북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상훈, 조효제, 송경아 씨를 모셔서 촛불시위에 대한 나름의 평가와 생각을 좌담으로 담았습니다. 그리고 아동성폭력 범죄 문제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토론으로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피의자 인권보호 활동을 해온 인권운동가와 반성폭력운동을 전개해온 인권운동가가 서로의 입장을 교차하면서 얘기를 풀어내고, 두 전문가들이 이런 입장들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의 차이들이 이후 제대로 된 논쟁으로 발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르포에서는 촛불시위를 촉발시킨 10대들을 주인공으로 다루어 보았는데, 그 현장에서 만난 세현이라는 젊은이의 20년 인생은 저와 같은 기성세대의 얼굴을 뜨겁게 만듭니다.
이주노조의 사무국장으로 있다가 강제추방당한 마숨의 글은 방글라데시 현지에서 그의 구술을 담아 와서 정리하였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분들은 그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이번에 네팔에 다녀온 이주노조 정영섭 사무차장은 이주노동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주장합니다. 다른 꼭지의 글들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남주 교수는 티베트 문제를 중국정부와 달라이라마의 타협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이 글은 아무래도 인권운동진영에서 논란이 될 듯싶습니다. 다음호에는 반론 글을 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후 중국의 인권, 동북아의 인권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해 보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겠습니다. 이번 호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국순옥 교수님의 글을 싣지 못한 점입니다.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시대에서 법의 지배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오랜 고민과 연구의 결과로 설파해주실 거란 믿음이 있어서 부탁을 드렸지만, 허투루 글을 쓰지 않으시는 분이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양보했습니다. 교수님의 날카롭고도 시대를 관통하는 좋은 글은 다음호에 싣겠습니다.
다시 두려운 마음으로 <사람>을 복간합니다. 독자들의 관심과 질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수원에서 편집인 박래군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