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폭우가 번갈아가면서 괴롭히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옵니다. 초여름에 시작된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의 단식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반쪽이 된다는 말, 굶어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확인하기 위해, 목숨이라도 걸겠다는 처절한 단식 앞에서 인간으로 차마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KTX와 새마을 승무원들이 서울역 조명탑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하이텍알시디 노동자들도 본사에 천막을 쳤습니다.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장기 단식, 고공농성, 구사대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데도 연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야만의 신자유주의는 더욱 극성스럽게 삶을 파괴하는데, 우리는 연대에 나서기 전에 이러저러한 조건들만 따지기에 익숙한 게 아닌지 자성해 봅니다.
이번 호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이런 반인권적 상황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게 진행되었습니다. 촛불시위 광장에서 떠오른 쟁점이었던 폭력/비폭력 문제를 정리해보려 했지만 필자들을 찾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논의하기에는 준비되지 않은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공안탄압이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이 문제는 토론하고 진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기획이 현장에서 운동하는 이들의 고민이 성숙되는데 상상력의 단초나마 제공하기를 바랍니다. ‘직접민주주의’를 두고 횡단대화를 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한 독자들의 갈증을 다 채우지는 못하겠지만 그간의 논의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강화되어야 할 쟁점을 짚어본 자리였습니다. 르포를 통해서 현재 가장 치열하게 온몸으로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릴 수 있게 된 점은 여러 모로 다행입니다. 이번 호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다시 국순옥 교수님의 옥고를 싣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건강이 악화되신 선생님의 쾌유를 빕니다.
- 수원에서 편집인 박래군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