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에는 사상을 가지고 극복해야만 되지 완력으로는 이것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박해정 의원), “우리 민족이 남북통일만으로 산다는 이러한 지도이념이 섰다고 할 때에 … 천추만대에 원한을 남길 그러한 일이 생기리라”(박윤원 의원), “민주주의 헌법은 인민의 권리를 보장한 것입니다. 다수 일어나는 반란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만들었던 헌법정신은 몰각하고 인민을 극도로 속박하는 법률을 우리 자체가 또 만드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신성균 의원), “막연히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가지고 3천만 민중이 무고한 백성들이 걸리는 이 법을 만들자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손만대에 죄를 우리 자신이 짓고 말 것입니다.”(조국현 의원), “내란에 관한 범죄 사항에 관한 것… 선동이나 모략은 … 국가보안법이 아니라도 일반 형법에 의하여 탄압할 수 있”다(김옥주 의원). ‘탄압’이란 말이 걸리긴 하는데, 한편으론 형법이 탄압법이란 말 그리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네.
난 그래도 내가 태어나는 걸 반대한 나라는 없었어.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태어날 때 58개 나라가 있었는데, 여덟 나라가 기권을 하긴 했어. 소련, 벨로루시, 체코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지. 앞의 여섯 나라는 자유주의 이념이 너무 강하고 경제적·사회적 권리가 너무 약하다는 게 그 이유였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서구적 가치가 너무 강할 뿐 아니라 이슬람권에 적대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래. 당시 남아공은 백인우월 정치에 빠져있어서 인종과 피부색을 초월해 차별 없는 인간권리를 옹호하는 나에게 동조하지 못했지. 결국 보편적 인간평등에 대한 반대(남아공), 정치적·시민적 권리의 지나친 강조(구 소련권), 문화상대주의적 인권 비판(사우디) 등 내가 안고 있는 약점이 그때 이미 노출되었던 거지. 지금은 러시아(구 소련), 우크라이나, 남아공, 사우디 등이 유엔인권이사회의 47개 정식 이사국에 포함되어 있고,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향후 이사국으로 예정되어 있어서 나름 지지를 얻었다고 할 수 있지.
내 입으로 말하기가 쑥스러워 남의 말을 빌리자면,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가 벌이는 ‘세계인권선언 60만 읽기 캠페인’ 홈페이지는 나 인권선언이 ‘가장 야만적인 범죄들로 황폐한 세계 대전’을 딛고 ‘억압과 차별에 대응하는 방벽’으로서 ‘세계 최초로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개개인 모두에게 어디에서든 적용되는 것’임을 알렸던 점에서 ‘세계 역사상 현저하게 두드러진 성취’라고 평가하고 있네. 자네야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졸속으로 만들어졌지만, 나는 2년여 동안 58개 가입 국가들이 모든 단어와 조항에 대해 총 1,400번이나 투표를 해서 만들어졌거든.
사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법’이 어디 있겠나. 요즘은 일몰조항(日沒條項, Sunset Clause)도 있어서 태어날 때부터 시한부 삶을 부여 받은 법도 있는데. 법률을 제정할 당시와 여건이 달라져 규제할 필요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만들어진 법률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폐단을 없애기 위한 장치이지. 정부를 수립하는 다소 어수선한 과정에서 자네가 필요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형법이 만들어졌으면 자넨 폐지되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1953년 김병로 대법원장이 ‘국가보안법은 한시법이고 형법으로 규율할 수 있으므로, 보안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한 까닭이 그거 아닌가.
그런데 자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지. 권력욕에 눈이 멀었던 독재자 때문인 걸 잘 알고 있네. 법이라는 게 다 사람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건데, 사람들이 법에다만 온갖 욕을 해대는 건 말도 안 돼. 어쨌든 우리 입장에서야 나중에 역사적 평가도 있고 해서 제 할 일을 옳게 하고는 제 때에 떠나는 게 좋은데, 당최 사람들이 그렇게 놓아두질 않으니 말이야.
정치적 위기에 빠졌던 이승만이 1958년에 날치기로 국가기밀 개념 확대, 인심혹란죄 신설, 헌법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죄 신설 등으로 자네를 더욱 악하게 만들었지. 1960년 4.19혁명 이후 정보수집죄, 인심혹란죄, 명예훼손죄 등 일부 독소조항이 삭제되었지만, 불고지죄가 신설된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어. 더욱이 5.16 군사쿠데타 정권은 자네보다도 더 넓게 처벌할 수 있는 반공법을 적극 활용했고, 80년의 12.12 군사쿠데타 정권 역시 반공법을 자네에게 흡수시킴으로써 자네를 더욱 나쁜 법으로 만들고 말이야.
87년 민주화 이후에 등장한 헌법 체제 아래에서도 헌법재판소는 자넬 여전히 살려놓더군. 자네로서는 오욕의 역사를 마감할 기회가 최근에도 있었지. 4년 전 자넨 죽음의 문턱까지 거의 갔었잖아. 한겨울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보안법을 끝장내려는 시민들의 열망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 그런데도 개혁의 기대를 모았던 제17대 국회는 “국가보안법은 이를 폐지한다”는 그 한 줄의 법률을 끝내 만들어내지 못했지.
근데 참 이상해. 자네가 속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이라면서 그리고 최근 20년간은 민주화 시기였다면서 왜 아직도 국가권력기관들은 보안법 자네를 그렇게도 부려먹으려 하는지 말이야. 올해 출범한 정부는 이전 정권보다 득표율도 높았다던데, 왜 그리 국민들을 들볶는 거지. 대통령은 잡으라는 경제는 못 잡고 군기반장마냥 질서만 잡는다고 난리라며?
시장맹신주의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경향이라는 게 그렇다더군. ‘사회관계의 총체를 시장관계 중심으로 재편하거나 시장경제 논리에 최대한 종속시킴으로써 자본운동의 자유를 극대화’함으로써 국민국가의 경제정책이 점점 세계시장의 동학과 국제기업의 전략에 좌우되는 거지. 그 결과 정치적 자유주의와 사회복지국가원리가 망가지는 헌법 현상이 나타나고, 국가는 정치적·사회적 영역에서는 억압적으로 간섭하여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의 인권을 침탈하는 한편 경제적·사회적 영역에서는 최소한으로 개입함으로써 자본의 반인간적 이윤추구를 방임하고.
결국 “1%의 99% 자유를 위하여 99%에게는 1%의 자유만 인정하고 99%의 부담과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거지. 사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정책치고 어느 하나 힘없는 서민들을 위한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잖아. 촛불집회와 같은 국민적 저항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앞으로 그러한 국민적 저항이 거세질 것 또한 자명한 일이지. 거꾸로 정부 측에서 보면 1%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촛불집회 같은 형식으로 표출되는 서민들의 저항을 폭력적으로 진압해야 할 뿐 아니라 향후 이어질 반민주적·반인권적인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서도 그러한 국민의 저항이 불가능하도록 비판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예방적 진압을 할 필요가 있는 거지.
11년 전에 국순옥 선생님1)은 “지배체제가 위기국면을 맞이할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 드는 불청객”이 “분단모순의 산물”인 “공안정국의 망령”인데, “공안정국이라는 이름의 정치적 살풀이굿이 한바탕 벌어지면, 아전인수식 국가안보논리가 기지개를 켜고 양자택일의 흑백논리가 광란의 칼춤을 춘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 그 망나니 노릇을 하는 법이 바로 자네 국가보안법인 거지. 오로지 체제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민주주의와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공안기관들이 다시 활개를 치면서 자넬 들쑤시면서 공안정국을 만들어가는 지금이 바로 그런 형국인 거고.
국민과의 민주적 소통을 모르는 제왕적 대통령이 귀환하였음은 이미 충분히 증명이 되었네. 공안기관에게 지난 10년의 세월은 옛날에 비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었던 대통령이 제왕으로 귀환하길 고대했던 긴 세월이었을 것이고. 국가정보원에겐 절호의 기회이겠지. 국가보안법을 매개로 구시대 ‘국가보안’의 고토를 회복하고 활성화하며, 과거에 몇 차례 시도하다 실패했던 ‘대테러’ 시장도 재개척하고, 법질서 충성주의에 힘입은 ‘사정’ 시장까지 덤으로(6개 사정기관 합동수사팀 참여), 더욱이 대통령의 기업프렌들리 정책을 후광 삼은 ‘기업’시장(주요 그룹 투자·고용 계획 파악, 시민단체 기부금 내역 조사)도 손에 넣을 수 있는 호황을 만끽하고 싶은 거지. 국군기무사령부까지도 이적표현물 소지·배포 등 위반으로 국가보안법 자네의 재활에 나서고, 군인공제회 같은 민간기관에 요원을 파견해 사찰을 해온 것도 드러나고.
검찰도 그렇더군. 대검찰청은 2005년 폐지했던 공안3과를 4년 만에 다시 부활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촛불시위와 조중동 광고주 압박 운동 등 올해 초부터 각종 공안사건이 이어져 공안1·2과 체제로는 업무 부담이 많다고 판단했다더군. 경찰이야 이미 대단한 실력을 보여줬잖아. 촛불집회에 대한 전면전 선포와 ‘대통령궁’으로의 근접을 막기 위한 ‘명박산성’이 전 국민은 물론 세계 사람들에게 비판과 놀림감이 되었던 것이야 다 아는 일이고. 설상가상 대통령이 강조하는 준법을 강화하기 위해 헌법 위에 집시법을 더 높이 지으려 하잖아. 평화시위구역 지정, 집회와 시위에서 마스크와 복면 금지, 각목 등 제조·운반·소지에 대한 처벌, 소음 규제 강화 등.
도대체 대한민국이란 나라, 민주공화국 맞아? 세계 사람들이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고 나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깨닫고는 60년 전에 나를 태어나게 했는데, 왜 아직도 인간의 귀함과 인권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거냐구! 다시금 국순옥 선생님이 자네를 평한 말씀이 생각나는군.
국가보안법은 그 의미와 내용에 있어서 여느 치안관련 경찰단속법과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의 사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사상탄압법이다. 그리고 사상탄압법은 인간사고의 결정체인 사상을 정통과 이단으로 가르고, 이단으로 못 박힌 사상에 국가폭력의 칼날을 무자비하게 휘두른다는 점에서 빼어난 의미의 체제유지법이라고 할 수 있다.
체제유지법은 지배체제를 현재의 이 시점에서 무조건 그리고 영구히 동결시키려는 집단적 광기가 법규범의 형식을 빌려 표출된 것이다. 지배체제가 체제위협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국가폭력의 동원 체계를 미리 조직하는데 본래의 입법취지가 있는 만큼, 그것이 폭력성을 띠게 되는 것은 개념필연적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국순옥,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무엇인가”, 민주법학 제8호, 민주주의법학연구회, 1994, 126쪽)
최근 무한경쟁으로 인한 팍팍한 삶의 고단함 때문에 자살이 증가하는 것만을 봐도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99%의 사람들은 삶 자체가 총체적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게 보여. 그만큼 정권도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고. 그러기에 친자본·반민주·반인권적 정권은 CEO독재의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일이 절실할 수밖에 없겠지. 그게 국민 99%를 적으로 보는 ‘전투적 1%특권주의’ 아니고 뭐겠어? 자본 또는 정권에 밉보이는 자에게는 가차 없이, 인권을 주장할 틈도 없이 법적 보호의 테두리 밖으로 쫓아내고 불법의 낙인을 찍고 있잖아.
내 생각엔 지금의 상황이 국가보안법 자네 혼자 덤터기 쓸 일이 아니라 자네보다 더 악독해지고 있는 집시법, 그 배후세력으로서 공안기관과 상명하달 법질서를 강요하는 공안정권 그리고 시장맹신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오히려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거야. 그러니 혹여 억울하거든 자네 저 세상으로 떠나는 길에 그 모든 걸 몽땅 쓸어안고 가게나.
어쩌면 옛날 사람들에게 환갑이란 건 인생 한 바퀴 돌았으니 살 만큼 살았고, 남은 생은 덤이니까 감사하며 살라는 삶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요즘에야 사람들 수명이 더 늘어났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국가보안법 자네는 어지러운 세상에 잠깐 나타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사가 제자리를 찾으면 곧장 목숨을 내려놓는 게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이지. 아무쪼록 올해가 가기 전에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에서 보안법 자네의 편안한 죽음을 꼭 지켜보고 싶어.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말게나. 가끔 인터넷에서 과거 연혁법령으로 남아 있는 자네의 모습을 확인하며 다시는 자네와 같은 불행한 법률이 절대로 태어나지 않기를 기원할 테니.
나 자신도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모든 만물이 조화롭게 공생하는 세상이 오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래하면 생을 접어야겠지. 그러나 난 아직은 할 일이 많아. 부지런히 세계 각국을 돌면서 내 정신을 전파하고, 나를 넘어 훌륭한 인권규범들을 낳아야 하고. 자네 같은 법들이 아직도 남아 있거든. 사람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난 눈을 감을 수 없어. 그 책임은 사람들에게 있지. 그것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올바르고 정당한 몫이니까.
나,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사람들은 존엄성과 권리를 가지고 동등하게 태어난다.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 받았으며 서로에게 동료애를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라고, 제2조는 “모든 사람들은 세계인권선언에 나온 모든 권리와 자유를,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혹은 다른 견해, 국가적 혹은 사회적 출신, 재산, 태생 혹은 다른 지위와는 상관없이 부여받는다”고 명시하고 있지. 이건 우리 사람들이 바로 우리 스스로에게 한 가장 소중한 약속이야. 그러니 그 약속을 지키고 가꿔나가야 할 사명은 당연히 사람들에게 있는 거라고. 그 약속을 지켜줘야 할 대상 역시 이 세상 어디에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목 놓아 외치는, 바로 그들, 사람이라고.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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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하대학교 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