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로 옮겨 한 시간 정도 본격적인 인터뷰를 했다. 새해를 맞이하여 진보법학계 어른으로서의 말씀을 부탁드렸으며, ‘MB 법치’나 헌법 개정 문제 등을 듣고 싶다는 말씀을 살짝 양념으로 섞었다. 선생님께서는 이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많이 다루어서 진부한 듯 하고, “꼭 한번 발언을 하고 싶은 것은 인권운동의 문제점”이라고 말씀을 꺼내셨다. “잘못하면은 인권운동 열심히 하시는데 초 치는 게 될까” 염려는 되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말씀하시겠다고 결연하게 운을 떼신다.
먼저 이제까지의 인권운동이 일반 대중에게 인권 담론을 확산시킨 긍정적 측면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다른 한편 부정적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투쟁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의 담론 차원의 상식으로 변질되면 실질적으로 인권투쟁이니 헌법투쟁을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한국에서 기본권 문제의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서민대중, 이들을 민중으로 표현하든지 아니면 인민으로 표현을 하든지 간에” 이들의 생존권인데, “인권담론이 시민운동의 차원에 갇혀버리게 되면 바로 가장 핵심적인 이것은 주변화 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논거이다. 1990년대 이후 인권운동은 “자유권에서 약간 정치적인 기본권 쪽으로 확장되는 수준”이었으며, 이것은 결국 ‘미국식 인권담론’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미 말머리에서 개인적으로는 인권이 아닌 기본권이란 말을 쓰신다고 밝히셨는데, 그 까닭에 대한 설명과 함께 선생님 말씀이 이어졌다.
"이론적으로 볼 때 인권을 바라보는 눈은 구체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인간, 시민, 또는 추상적으로는 국민들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소위 추상적인 보편에서 출발을 한다면 인간은 칸트가 얘기한 것처럼 인격적인 자율 주체이고 그 인권담론의 흐름은 자유권 중심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구체적인 보편성은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구체적인 현실에서 찾아보고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인 현실로 들여다보아 어느 사회에서든 존재하는 공통점으로서 ‘헐벗음과 기아에서 벗어나 비를 피할 수 있는 인간 존엄의 근본 요건’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이 지점에서 시민운동은 노동운동 등과 결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자칫 중간계층의 지식인 운동에 맴돌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국풍 인권담론이라 하는 것은 미국의 제국주의와 사실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인권 차원의 제국주의의 하나의 변형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자유권 중심의 미국식 인권 담론에서 핵심은 재산권이고 진보화된 형태에서만 언론의 자유를 언급하는 수준일 뿐이며, 지금 비판 받는 신자유주의도 미국식 인권담론이고 그것은 또한 과거 19세기의 기독교 역할을 하는 대체물이다. 특히 예각적으로 아주 날카롭게 부각되는 것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시각인데, 그것은 결국 미국 국무부의 시각이다.
헌법을 공부하는 관점에서 보면 사실은 인권을 아무리 추상적인 차원에서 얘기를 해도 실효적으로 보장이 되는 것은 아니며, 국가권력에 의해서 담보가 되어야 인권이든 기본권이든 구체적인 권리가 되는 건데 지금의 인권운동이나 인권담론은 바로 이 중요한 고리를 완전히 떼어버리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적인 시각이다. 이를테면 비국가적이고 비경제적인 것을 말하는 요새 시민운동이니 시민사회론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핵심적인 권리의 최대 침해자로도 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기본권의 보장자로도 볼 수 있는 국가를 빼어버리고, 또 구체적인 보편이 부정적으로든지 긍정적으로든지 전개되는 경제의 장을 완전히 빼버리고 하는 시민사회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시민운동 또는 인권담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공허한 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기본권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은 독일 사람인데, 거기에는 그들의 국가주의적인 측면이 강하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권은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것은 헤겔이 얘기한 구체적인 자유론하고 같은데, 앵글로색슨에서의 국가 관념은 계약에 의해서 만든 인공적인 피조물에 불과하고 1차적인 것은 개인이고 개인이 계약을 통해 국가와 정부를 만들어낸다는 시각임에 비해서 헤겔 이후 독일 사람들은 바로 앵글로색슨의 추상적인 자유는 국가를 통해서 구체적인 자유로 실현이 된다고 관념했다.
국가가 생겨난 이후 오히려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국가에 포섭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잘못하면 이것은 국가주의적인 극단으로 흐를 수 있지만 또 어떻게 보면 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가 있다. 독일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권은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이론적 근거가 국가/사회의 이원론이다. 즉 국가가 포섭하고 있는 완전히 포섭하고 있는 공간에서 개인의 자율적인 영역을 확보하려는 것이 독일의 국가/사회의 이원적인 대립론이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게 맞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헌법에서 사용한 기본권이라는 말은 날 때부터 추상적으로 가지는 천부인권이 아니라 국가가 인정을 하고 국가에 의해 인정이 된 테두리 안에서만 보장을 할 수 있는 실용성을 갖는 권리라는 의미에서 채택된 것이다.
다만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소외현상이 민주적인 참여가 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겨났지만 국가가 하나의 포괄적인 공간이고 그렇다 하면 이러한 개인과 국가의 갈등 같은 것은 우리가 국가권력을 민주화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한 연장선에서는 마르크스의 생각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물론 마르크스가 국가문제를 다룰 시간이 없었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국가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것은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 공산주의운동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던 소위 무정부주의사상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또 당시의 자유주의적인 사상에 알게 모르게 압도되어 국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본 게 아니겠는가는 그러한 생각도 든다. 국가가 이제 ‘absterben한다’ ‘고사 한다’ ‘사멸 한다’하는 정식은 역사적으로 볼 때 부정된 마르크스의 명제 가운데 하나이다. 마르크스는 이상적인 사회에서 자주 관리조직이 국가를 대체한다고 하지만 자주관리를 하든지 아니면 강제력을 구비하든 그것은 결국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애기하는 그러한 국가와 민주화된 국가와 그리 먼 거리에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않느냐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인권담론에서는 이렇게 중요한 국가라는 인권실현의 고리를 놓쳐버리고 있다. 신문 보도를 통해 보건대 국가권력을 부정적인 시각에서만 보는데, 지금 국가는 사회 모든 영역에 전면적으로 개입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실과 다르게 소위 ‘국가 부정’이라는 대전제 위에서 인권담론이나 또는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론적으로도 모순이고 현실과도 괴리가 있는 것이다. 인권운동이나 인권담론도 국가 문제를 좀 적극적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다.
인권운동 또는 인권담론의 문제점 중 또 다른 하나는 소수자 인권운동에 너무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소수자 운동은 자칫 진정한 의미의 기본권 운동을 파편화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예를 들면 다문화주의는 인종에 구애됨이 없이 문화를 존중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추상적인 차원에서 비판하기는 어렵지만, 그 뿌리는 사실 이주노동자가 핵심이다. 이주노동자는 2차 대전 이후 사람이 많이 죽은 유럽 같은 데서 노동자 부족을 메우기 위하여 경제적 차원에서 유입되었다. 이러한 소수자 운동에 집착하면 도식화하는 건지 모르지만, 이것이 미국의 패권주의적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소수자 운동에 집착하는 것은 인권담론으로 경제적 측면을 무력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미국에서 소수자 문제가 큰 이유는 인구 3억 규모에서 다양한 인종, 언어. 종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인데, 한국의 경우 인구 규모가 작을 뿐이어서 소수자 문제의 부각은 인권 담론 전체 측면에서 깊이 고민할 측면이 있다."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민중’의 생존권 보장에서 국가가 중요한데, 지금 상태는 민중과의 거리가 더 멀어진 만큼 인권운동 관점에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궁금했다. 선생님은 “사실은 난감”하다는 말로 시작하셨다.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은 권력을 탈취함으로써 일반국민과 국가권력의 대립전선이 분명했는데, 현 정권은 독재로 가든 파시즘으로 가든 합법성의 탈을 쓰고 있어 헌법 관점에서는 국회의원선거나 대통령선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지금의 국가권력은 어떻게 보면 합법적 정부 승계에서 나타나는 소위 정책조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완전히 60년 전후로 되돌리려는 사실상의 쿠데타이다. 나치스도 집권 후 중간단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래도 헌법의 테두리는 가능한 인정하려고 해서 법령을 개정하더라도 그 내용을 은폐하며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켰다. 현 단계에서 국회가 대통령과 같은 지향점을 가진 정당이어서 헌법개정절차를 무시하고 은폐된 형식의 법률 제정을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할 수 있는 형편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도 최소한 견제 역할을 해야 할 사법부조차도 동조를 하고 있어서 견제장치가 없다. 그런데도 헌법 차원에서 국민은 관여할 장치가 없다. 국회가 발의하지 않는 이상 헌법 개정도 불가능하며, 국민투표도 대통령 재량에 맡겨져 있어 개입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대국가 또는 현대국가가 담당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나 국가의 복지기능마저도 방기하는 행태는 우리 사회라는 한정된 테두리에서 생각해봤자 아무런 답이 안 나오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이 정부가 아무리 극우정부라 하더라도 집권 1년도 안 되어 역사 왜곡의 담대한 기획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처한 상황은 정권교체 차원이 아니라 좀 더 심원한 곳에 있는 하나의 체제변혁의 기로에 서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조차 있다. 비약인지 몰라도 이것은 해방 이후 정치적 군사적으로, IMF 이후 경제적 문화적으로 미국에 통합되는 과정을 겪다가 이제는 역사적으로까지 미국 체제에 수직적으로 편입하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사회가 일찍부터 그랬지만 언론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공부했고, 친미매판 지식인들과 관료조직도 그리고 군부도 각종 연수제도 등을 통해 마찬가지의 길을 걸었다. 역사 왜곡은 친미보다는 친일 매판 지식인들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미국이 기획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필연적 결과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운동이 어디에 발 붙여야 할지 난감하다."
마지막으로 신년이니 어떤 희망의 메시지가 있을지를 여쭈었다. 선생님께서는 그보다 “대한민국 주권자 시민들의 깊은 자기반성”으로 답하셨다. 정치·군사·문화적 통합은 어찌 할 수 없는 외적 변수이지만, 이러한 대세에서 이것을 가속화할 수 있는, 헤겔이 말하는 ‘역사의 간지’로서의 이명박 정부를 등장시킨 건 우리 자신이고, 이명박의 장점인 추진력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 속았다 하더라도 국회의원선거에서 뉴타운 등의 공약에 속아 통째로 권력을 넘긴 것은 우리가 자초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인터뷰 말미의 마무리는 역시 당초 주제로 돌아가 “기본권 또는 인권 담론에서는 복합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소위 진지전을 현실에 맞게끔, 현실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방향에서 투쟁을 해야 하고 인권운동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투쟁을 배치하고 연결하고 이것을 통일해 나가느냐 하는 것을 진지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성벽과 성채를 쌓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 진보적 환경운동과도 대화를 하고 실제로 정말 주권자 시민들이 현실적으로 요구하고 기대하고 있는 게 뭔가 이런 것을 정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셨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진보적 법학’에 대한 선생님의 팽팽한 긴장감은 내 맘 속에 고스란히 살아 증폭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한편 우리는 이명박 정부 임기의 5분의 1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2009년을 맞이한다. 광풍의 방향을 순풍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고단한 여정의 한 해가 될 것이다. 냉철한 자기반성과 다부진 각오 속에서 진보와 변혁에 대한 열망으로 우리를 담금질하여 우리의 진지를 구축하는 일은 더욱 가속되어야 할 터이다. 당장은 아닐지언정 반드시 ‘새해’를 맞이해야 하니까. 그것이 곧 우리 삶의 조건이니까.
인터뷰-오동석 아주대 법대 교수
<후기>
난생 처음 하는 인터뷰를 무턱대고 한 처지라 마감일을 한참 넘겼지만, 한편 새로이 경험한 글쓰기가 또 다른 매력을 주었다. 기회를 만들어 앞으로는 더 잘해 보겠다는 의지도 샘솟는다. 아울러 선생님과의 녹취록을 풀어준 연경과 주영이 고맙다. 생소한 용어 때문에 고생하면서도 다른 원고 때문에 바쁜 아빠를 도와주어 큰 힘이 되었다. 그들 덕분에 주로 선생님 말씀을 옮기는 선에 초점을 맞춘 이 글을 작성할 수 있었다. 인터뷰 대상으로서의 몇 번 안 되는 경험에서도 내 뜻과 달리 표현되는 일을 당한 나로서는 이 글을 넘기기 전에 선생님께 미리 보여드리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미리 양해도 얻지 않고 포기하였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꼼꼼하신 선생님 성격에 미흡한 글 때문에 마음의 불편함을 감수하시거나 일일이 교정을 보시거나 하는 또 다른 부담을 드릴 것 같아서였다. 혼자만의 꿍꿍이셈으로는 한동안 건강이 여의치 않았던 선생님께서 운동도 하시면서 원기회복을 하셨기 때문에, 이 미흡한 인터뷰 글을 그대로 실어야 ‘해명’(?) 차원에서 선생님께서 자세하게 직접 글을 쓰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있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