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크고 넉넉한 품으로 식구들을 품어주었습니다. 병으로 한쪽 눈이 실명한 현서는 칠판에 적힌 글자를 구별하는 것도 어려운 빡빡한 서울 초등학교의 콩나물 교실에서 벗어나 지리산에서 아이들과 함께 씩씩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고, 형이 아파서 식구들의 관심을 받지 못해 조금 폭력적인 아이였던 민서는 지리산 실상사의 인드라망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생태교육을 표방하는 산내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아이로 변해갔습니다.
현서와 민서의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곶감을 말리는 평화로운 산과 들 생활에 적응해가는 참이었습니다. 서울은 요즘 어떠냐고 해서, 이번 정부가 4.19를 데모라고 하는 동영상을 찍어서 돌린 얘기, 1948년을 건국이라고 하고 미군정기를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한 얘기 등을 해주니 현서 아빠는 덥다고 옷을 벗으며, ‘이제는 서울에서 사람들 내려오지 말라고 해야겠어.’라고 중얼거립니다.
지리산 뱀사골의 기념관에는 1945년부터 48년까지 일어났던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 빨치산과 토벌대의 이야기로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리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이번 정부의 역사인식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지리산 노는집 식구들에게 2009년은 어땠으면 좋을 지 물었습니다. “세상이 다 마천면 같았으면 좋겠다.”라는 답이 돌아오더군요. 그리고 지리산 댐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정말 성사되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이 이어졌습니다. 2009년에는 전국이 온통 공사판이 되어야 한다는 이명박 정부에게, 지리산에 딱 한 열흘만 내려와서 지내보라고 권하고 싶어졌습니다.
2009년에는 모든 생명들이 평화로운 삶의 소중함을 아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인터뷰-권김현영 서강대 여성학 강사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