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배달을 하고 오는 길이라 손등에 시커먼 탄재가 묻어 있었다. “온통 새까매서…”, 먼지를 툭툭 털면서 멋쩍게 웃으셨다.
“요즘 연탄배달 주문이 많은가 봐요?”라는 질문에 “아무래도 경기가 안 좋다보니 예년보다는 배달 일이 많아요.”라며 허허허, 웃으셨다. 요즘은 하루에 500장정도 배달하는데, 추워지면 주문량이 곱절로 늘어나기도 한다.
연탄 소비량의 80%는 가게. 하루 난방에 연탄 3장이면 족하다. 석유 값도 오르고, 경제사정도 안 좋다보니, 연탄만큼 훌륭한 연료도 없다. 가정집에서도 석유보일러를 뜯고 연탄보일러를 놓는 집이 늘고 있어, 작년보다는 부쩍 바빠졌다고 한다.
연탄 한 장에 430원에서 450원, 작년 380원이던 연탄 값도 올해는 꽤 올랐다. “겨울에 없는 사람들은 살기가 더 힘들잖아요. 근데 경기도 안 좋고, 연탄 값이 많이 올라서 괜히 제가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또 허허허 웃으셨다.
원래 고향은 서울,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홉 살 때 엄마랑 피난 내려와 정착한 곳이 수원이었다. 간신히 한글만 떼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시절, “실공장에 다녔는데 월급이 적어서 도저히 먹고살 수가 없었어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연탄배달이 더 돈이 된다고. 그 길로 시커먼 연탄 나르며 여태껏 살아왔네요.” 또 웃으신다.
달랑 리어카 두 대로 시작한 연탄배달, 그가 실어 나른 연탄만 해도 작은 산 하나는 옮겼을 정도다.
“예전에는 손으로 연탄을 찍어서 그리 단단하지가 못했어요. 오르막길 가다가, 또 연탄광에 쌓다가 떨어뜨려 깨뜨리는 일도 많았는데… 한평생 이 일만 하다 보니 이젠 연탄 쌓는데 도가 텄죠.”
요새 나오는 연탄은 크기는 작아졌지만 단단해졌고, 19공탄에서 22공탄으로 구멍 수도 늘어 화력도 좋아졌다.
아침 6시 연탄가게 문을 연다. 연탄 땔 일 거의 없는 여름철에도 예외는 없다. “집에선 일도 없는데 뭐 하러 꼭두새벽에 나가냐고 하지만, 몸이 저절로 움직여요.” 몸에 인이 박힌 것이다.
작년부터 그는 먼 길을 돌아서 출근한다. 행궁 골목이 삶터이자 일터이자 고향이었다. 그런데 행궁 복원사업으로 인근의 집들을 부수고 새롭게 단장하겠다는 지방정부의 새마을운동 식 문화정책으로 그의 집이 철거됐다. “시에서 하는 일인데 별 수 있었겠어요?” 약간의 보상금 받고 화성시 정남으로 이사한 게 작년이다. 지금도 새벽 첫 차를 타고 수원까지 온다. “여기가 고향이에요. 가게도 여기에 있고, 친구들도 다 여기에 있고, 일이 있건 없건 첫 차 타고 그냥 나와요.”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한 번도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장가도 가고 두 자식들 키우고 여태껏 살아온 게 다 연탄배달일 때문이었는데요. 고단하지만 연탄 한 장으로 사람들이 따뜻해진다고 생각하면 보람도 느껴요.” 한 평생 연탄배달로 오른쪽 팔뚝은 비틀어졌다. 무릎 관절도 나빠졌다. 그래도 지금껏 먹고 살 게 해줘서 고맙기만 하다고 한다.
“새해 소망이요? 나 같은 사람보다는 더 배우고 잘 난 사람들한테 물어보시지.” 까만 손등이 신경 쓰이는지 인터뷰 내내 손을 만지작만지작 하시더니, 급기야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며 또 웃으신다.
“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마음 아프죠. 사실 돈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닌데… 근데 있는 사람들은 더 돈 벌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요. 담배꽁초라도 남의 것이면 손대면 안 되죠.” 그는 사람들이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암만 돈 많아야 뭐해, 하루에 밥 세 끼밖에 더 먹어요? 그 세 끼 밥 위해 몸 성하면 그게 제일이지요.”
두 평 남짓한 연탄광에는 1600여 장의 연탄이 빼곡하다. 천장에는 사다리며 고무함지며 장도리 같은 연장들이 그의 성품처럼 정갈하게 놓여 있다. 짬짬이 나이든 분들 집에 가서 지붕이며 하수도며 고장 난 곳을 수리해준다. 그는 이렇게 연탄배달하며 집수리해주며 이곳으로 마실 온다고 한다.
40년을 ‘연탄아저씨’로 불리며 행궁골목을 누볐던 그의 삶이 결코 녹녹하지만은 않을 터인데도 눈빛이 맑고 순수한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호주머니에 술 한 잔 걸칠 만큼만의 여유만 있으면 그걸로 족하죠.” 또 허허허 웃으신다.
인터뷰-노영란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