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사이버 모욕죄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

‘사이버 모욕죄’는 심리적인 고통에 대해 처벌하는 법안이다. 모욕죄가 구성되려면 모욕의 개념과 그 모욕을 받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 그리고 이 둘 간의 관계로 심리적인 고통이 일어난다는 것이 명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욕이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규정하기 어렵고, 그것을 받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도 사람마다 매우 다르기 때문에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다.


그런데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죄’를 규정짓는 법안이 등장했다. 게다가 친고죄가 아닌 제3자에 의해 처벌이 가능한 ‘반의사 불벌죄’ 조항으로 인해 이 법안은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상담 현장에서 대인관계 갈등에 개입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법안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조심스럽게 예측해 보고자 한다.


또한 ‘사이버 모욕죄’ 법안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인터넷 공간의 의사소통 문제와 관련된 부분도 있기 때문에 비판을 넘어선 대안 제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아이디어 제시가 논의를 활성화하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이 모욕인가?


심리학적인 의미에서 모욕은 깔보고 욕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모욕감은 듣는 사람이 무시를 당했을 때 느끼는 불쾌한 감정을 말한다. 그런데 이 감정이라는 것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느낌이기에 처벌을 위한 객관성 확보가 어렵다. 친한 친구끼리 “이 개자식아! 넌 왜 그동안 연락도 없었냐?”라고 했을 때 이 개자식이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욕이지만 듣는 사람은 모욕감이 아닌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욕이 아닌 말도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다음 기사를 보자.



7일 한 인터넷 포털에 실린 ‘주택담보 대출이자가 오르고 있다’는 기사에는, “국민요정 이명박 포에버!”, “금리 올려 서민들의 빚보증을 통한 내 집 마련에 일침을 가하신 이명박 사마 감사합니다(이상은 일명 ‘최진실법’에 의거 작성됨)” 등의 댓글이 달렸다. - 한겨례 신문 2008.10.8일자 사회면



법안에 대한 항의로 위와 같은 반어법 비판이 최근 유행하기 시작했다. 위 문장은 통상적인 욕은 아니다. 그러나 욕은 아니지만 모욕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심리적으로 동일하다. 또 반어법 외에도 은유적인 수사를 통해서 공격할 수도 있고 글꼴이나 말투를 독특하게 함으로써 상대방을 비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런 것들까지 처벌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신문에 만평을 그린 사람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표현도 개인의 지각 차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라진다. 지각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개인의 지각이 신체감각, 감정, 생각, 문화적인 영향, 대화 당사자의 관계 등 매우 다양한 변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객관적인 지각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결국 이런 모호함으로 인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모욕죄를 두지 않는 실정이다.



사이버 모욕죄가 몰고 올 심리적 파급효과


우선 무엇보다도 당사자가 신고하지 않아도 제3자가 신고할 수 있는 ‘반의사 불벌죄’ 조항으로 인해 공권력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많아졌다. 그것은 정확한 기준이 아니라 공권력의 입맛대로 처벌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이 없는 피해자들도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미 우리는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 법안이 매우 광범위하게 무의식적인 영역을 침범한다는 것이다. 굳이 많은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처벌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누구라도 말 한마디 잘못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두려움은 의식적인 영역과 무의식적인 영역 모두에 배경으로 깔려 개인은 자신의 표현을 억제하거나 조심하게 된다.


표현을 억제하게 되는 개인은 창의성과 상상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창의성과 상상력은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과정 속에서 점점 더 발현되는 것인데, 두려움을 느껴 긴장하고 멈칫하게 되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하고 안전한 곳으로만 가게 된다. 창의성과 상상력이 굳어가는 개인들은 점점 지식기반 사회에서 도태되고 국가 역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표현에 대한 억압은 정서적인 영역에서 우울감을 불러일으킨다. 가슴은 답답해지고 뭉친 응어리를 풀기 위해 다른 것을 찾게 된다. 적절히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개인들은 알코올, 니코틴, 게임, 쇼핑, 섹스, 마약과 같은 보다 손쉬운 것들을 찾게 되고, 그럴수록 자기표현은 더욱 더 빈곤해지면서 점점 더 외로워지게 된다. 현대사회의 각종 정신과적 증상의 대부분은 인간의 소외에서 온다고 보는 견해들이 있다.


그리고 보다 직접적인 문제는 처벌은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버린다는 것에 있다. 옛말에 거드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도 있는데, 제3자가 나서서 거들면 그 관계는 오히려 해결되지 않고 악화된다. 보다 더 교묘한 방식으로 서로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고, 처벌하지만 않아도 대화하면서 갈등을 해결할 수도 있는데 일단 처벌하는 절차를 밟으면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또한 욕이 자연스러운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길을 가다 깡패에게 돈을 뺏기고 맞기까지 했는데 그 깡패 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이버 공간의 일부 욕들은 마치 깡패에게 맞은 사람이 깡패를 욕하는 것과도 같다. 거대 권력과 힘없는 개인이 맞선 경우에는 흔히 후자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처벌 위주의 정책은 강자를 배려하고 약자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욕은 일종의 화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인데, 화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심리상담에서는 분노감정을 수용하고 상대방에게 잘 표현하도록 돕는다. 그런 과정에서 치유가 일어나는데, 특히 정부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쏟아지는 국민들의 분노 감정을 수용하고 달래준다면 국민들의 상처가 많이 아물 것이다. 반대로 건전한 비판 글까지 지나치게 처벌한다면 마치 압력밥솥의 구멍을 막은 것처럼 매우 파괴적인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



사이버 공간의 의사소통에 대한 아이디어


법이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처벌을 하고 경각심을 주는 것이라면, 심리학자들은 법적인 절차 이전에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해왔다. 특히 심리상담센터에서 일하는 심리학자들은 커플 상담이나 그룹 상담을 통해서 개인 간의 욕설이나 갈등에 대해 효과적인 방법들을 고안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얻어진 노하우들이 사이버 공간에서도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리상담가는 그룹상담에서 구성원들끼리 욕설이 오고갈 때 어느 한 사람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오히려 욕을 하게 된 배경, 마음이 상한 배경에 대해 서로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서로가 지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연습을 하다 보면 오해가 풀리고 다친 마음의 치유와 화해가 일어난다. 이런 화해를 돕는 ‘나 대화법’이나 ‘비폭력 대화법’과 같은 훌륭한 대화법들이 많이 개발되었다. 이런 심리학적인 노하우들을 사회 전체로 확장시켜서 사회전체적인 비폭력 대화가 가능하도록 하려면 여러 가지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해야 한다. 우선 학교 현장에서부터 아이들이 이런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서 갈등을 풀어가는 경험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교사와 학부모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고, 교과과정에도 포함시켜 연습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TV에서도 보다 성숙한 토론 모델을 보여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노력들도 가능하다. 이미 그런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선플 달기 운동이 하나의 아이디어이다. 이와 같은 아이디어들을 공모하여 훌륭한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그것을 사이버 공간 전반으로 확장시키는 노력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담가, 교사, 언론인, 종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좋은 방안을 도출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들에게는 좋은 모델이 필요하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그대로 배운다. 자기 말만 하지 않고 국민들의 의견을 듣는 대통령을 보면서, 무조건 인원이 많다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공부하라고만 몰아세우지 않고 아이들의 감정과 욕구에 귀기울여주는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들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욕을 하지 않게 될 것이고 세상은 아름다운 말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심리상담가로서 해야 할 일거리가 줄어드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