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바라보이는 풍경은 평화롭기만 한데 참 인간 세상은 복잡하고, 어지럽습니다. 제가 수배 중에 갇혀 있는 이곳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주변에는 경찰들이 물샐틈없는 경계를 펼칩니다. 혹여 이곳을 탈출하여 집회에라도 나타나면 경찰 책임자들이 줄줄이 목이 달아난다고 난리들입니다.
밤마다 꾸는 꿈의 주제는 ‘탈출’입니다.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용산참사 현장으로, 집회현장으로 그리고 사무실과 회의하는 곳, 뒤풀이 자리도 가고 싶습니다. 사람이 갇혀 있을 때는 자유에 대한 열망이 저절로 생기나 봅니다. 갇혀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할수록 탈출은 더욱 간절해집니다. 이 탈출에 대한 간절함마저 없으면 저들이 쳐놓은 포위망 안에서 좌절할 것 같아서 매일 탈출의 꿈을 꾸기로 했는데, 정말 밤마다 꿈속에서 나는 그리운 사람들과 만나고 술 마시고 집회도 갑니다.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날은 다시 감옥을 준비해야 하는 날이겠지만, 정말 이곳에서 나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은 심정입니다. 물론 탈출하다가 경찰에 잡혀가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마침 용산참사 100일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 하루 종일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다시금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다양한 문화행동들을 가졌습니다. 그곳에 꽃길이 만들어졌습니다. 거기서 죽어간 6명의 생명을 기억하면서 우리 스스로 그 현장을 성지로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저녁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4대 종단의 의식과 함께 100일 추모제를 가졌습니다. 엄숙하지만 시민들이 친근하게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남편의 무덤 곁에 민들레를 심고 싶다는 유족의 발언은 참으로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백기완 선생님은 이명박 정부 장례위원회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용산참사를 잊고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장례도 못 치룬 100일 동안 단 하루도 촛불을 끄지 않았고, 크고 작은 집회와 시위로 정부를 압박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입니다. 국민을 죽여 놓고 사과 한 마디 없는 독재정권에 대한 투쟁은 쉽지만은 않지만,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진 과거가 아닌 살아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이 투쟁을 계속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참사 발생 100일도 더 넘었지만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용산참사는 6명의 생명이 죽었다는 사실로 출발하지만, 참사 전에는 외면하고 있었던 많은 인권침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과거에도 철거지역에서 주민과 세입자들을 무권리의 상태로 쫓아내는 일, 그러다가 망루를 짓고, 농성을 벌이다가 사망에 이르렀던 용산 이전의 사건들,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용역깡패들의 폭력과 경찰과 공권력, 사법기관의 방조까지 많은 일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용산참사 이전의 철거지역에서 철거민들의 투쟁은 어느 때부터인가 개발이익을 노리는 사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로 인식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철거민들 중에는 부모가 깡패들에게 폭행당하고도 오히려 사법기관에 의해서 처벌되는 일을 지켜보아야 했던 아이들, 심지어는 그 아이들조차 깡패들과 공무원들에 의해서 폭행당하고 그로 인한 심리적 충격으로 인해 급격하게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행태를 보이는 아이들의 문제까지 보아야 합니다. 철거민들의 주거권은 단지 집 하나 부서지고, 살던 곳에서 쫓겨났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왔던 생활기반, 인간관계까지 송두리째 뽑힌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저는 재산권이 인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허름한 집 한 칸, 권리금 내고 보증금 걸고 사글세로 운영하는 가게 한 칸이 그 가족의 목숨 줄이고, 생명줄일 때 가난한 사람들의 재산은 인권으로 파악될 수 있겠지요. ‘관계와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인권’이란 관점을 놓지 말고 용산참사를 사고해 들어가려고 노력해왔고, 그러는 중입니다.
그렇게 보니 용산참사는 이렇게 정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거권으로 시작된 사회권 전반의 파괴가 강제철거라고 우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일상적인 폭력의 문제를 비켜서서는 사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폭력에 의한 자유권 전반의 부정이 강제철거입니다. 이런 것들은 이익을 최대한 내려는 건설자본과 그에 기생하는 재개발조합 집행부들, 철거용역업체, 그리고 경찰과 시와 구청, 입법부, 사법부 등의 관계가 그곳에 하나로 얽혀 돌아갑니다. 철거민들의 내부로 들어가서 보면 가옥주와 세입자, 상가 주인과 세입자의 관계가 또 다릅니다. 이렇게 얽힌 관계망 속에서 인권적 관점은 늘 가장 약자의 위치에 설 수 밖에 없는 세입자의 입장에 가 있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철거지역에서 세입자들은 건설자본, 조합, 용역, 가옥주(때로는 같은 편일 수 있지만)와 같은 사적권력과 이들의 편을 드는 경찰, 관청, 입법부, 사법부, 국가권력과 같은 공적권력을 상대로 싸워야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토록 심각한 힘의 불균형 속에 놓인 세입자들은 대체로 초기에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포기하고, 자신의 집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동네를 등지게 됩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투쟁하는 악착같은 이들은 승리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전철연을 찾아오는 철거민들은 전철연이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그런 투쟁을 익히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용산참사와 관련해서도 이런 관계들을 물어야 합니다. 용산에서 국가는 세입자들을 국민으로 대우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그런 태도에 변화가 없습니다. 진압의 대상이었을 뿐이므로 정당하게 공권력을 동원해서 짓밟았고, 죽였고, 철거민들만 기소하였습니다. 이처럼 계급적인 관계가 정확하게 드러나는 일이 또 있을까요? 마치 광주의 오월 학살 때처럼 죽은 자는 있어도 죽인 자는 없는 관계가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용산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용산학살 또한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그 관계가 재정립될 것이기에 지금은 쉽지 않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1980년대 그 엄혹한 시절에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막을 수 없었듯이 용산학살도 그대로 묻혀서 국가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리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용산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날이 이 정부가 무덤으로 들어가는 날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그것을 제일로 두려워하기 때문에 용산참사와 관련한 어떤 집회도 시위도 허용하지 않고 탄압으로 일관하는 것이라 여깁니다.
용산참사는 이후 어떻게 기억될까요? 이번 호에서는 ‘기억’을 주제로 다루어 보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 어떻게 기억되느냐는 것 또한 권력관계를 정확하게 반영합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들의 기억은 같을 수가 없지요. 광주의 문제를 가장 올바르게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일제 때 성노예로 끌려갔던 분들의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바른 기억을 위해서 그 기억에서 배제되었던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인 당사자들의 입장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한편으로는 기억 투쟁입니다. 뉴라이트들이 역사 교과서를 가장 먼저 손대고 싶어 하는 것도 일본의 우익들이 역사 교과서를 개편하려는 입장과 같습니다. 그럴 때 누구의 입장에서 기억할 것인가는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국가의 입장에서 기억되는 것은 대부분 지배자의 입장에서 기억되는 일입니다. 국민들은 국가가 기록한 교과서를 보고 그 사건을 알게 되며 그로부터 국가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얻게 됩니다. 그렇지만 한 번 굳어진 기억을 바꾸는 일은 참으로 힘든 과정을 거칩니다. ‘광주’의 폭도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기억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투쟁이 필요했습니다. 늘 소수자는 기억의 주체가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 머물게 됩니다.
용산참사를 이후에 올바르게 기억되도록 하는 일, 철거민들, 나아가 민중들의 인권을 위한 투쟁으로 기억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 투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투쟁은 힘들더라도 쉽게 끝낼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5월을 맞으면서 이명박 정부에게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투쟁으로 사형되었던 미국 노동운동지도자 스파이즈의 법정 최후진술을 기억시켜야겠지요.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는 없으리라.” 들불처럼 일어나 저항하는 민중들은 꼭 용산의 진실을 그들에게 물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이 지독하게 자본의 편만 드는 국가를 개조하는 투쟁, 그것은 인권의 보편성이 한 걸음 더 전진하는 그런 일이 될 것입니다.
다시 여기에 글을 쓸 때는 용산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편히 모시고, 저도 갇힌 이곳을 ‘탈출’한 뒤이기를 바랍니다. 저의 자유를 위한 갈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 기원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눈부신 봄날에 박래군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