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프리드먼이 쓴 『그들은 자유를 위해 버스를 타지 않았다』(2008. 김기현 옮김. 책으로여는세상)는 이런 식의 근시안적 역사 해석에 깊이와 넓이를 제공해 주는, 작지만 큰 책이다. 이 책은 자상하고 친근하고 평이한 언어로 우리의 무지를 깨우치고 우리의 안목을 열어준다. 이렇게 쉽게 저술하면서도 이런 심오한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인권적’ 글쓰기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씩 예를 들어보자. 우선, 몽고메리 사건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1955년 12월 1일 목요일 저녁에 로자 파크가 버스 안에서 운전사와 실랑이를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갑자기 터져 나온 사건이 아니었다. 로자 파크 스스로도 십여 년 전 이미 버스승차를 거부당한 적이 있었고 다시는 그런 식의 굴욕적인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던 터였다. 또한 그 사건 전 이미 수많은 제2, 제3의 로자 파크들이 매일매일 버스 속에서 이등 시민의 설움을 사무치게 겪고 있었고 실제로 경찰에 끌려가기도 했던 것이다. 조앤 로빈슨이 그러했고, 클로데트 콜빈이 그러했고, 메리 루이스 스미스가 그러했다. 이런 피해자들이 발생할 때마다 흑인 사회에서는 그것을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승화시켜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기폭제로 삼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이런 운동적 관점에서 보면 로자 파크는 수많은 피해자들의 한숨의 역사 속에서 몽고메리 사건을 위해 선택된 한 사람의 ‘이상적인 피고인’, 혼자가 아닌 수많은 피고인 중의 하나였다.
버스 안타기 운동 역시 몽고메리에서 처음 시작된 일이 아니었다. 몽고메리 사건이 일어나기 2년 전 루이지애나 주의 배턴루지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T.J. 제미슨 목사가 이끌던 흑인 사회에서는 차별에 항의하여 1주일 동안 버스 승차를 거부했고, 마침내 먼저 탄 순서대로 좌석에 앉을 수 있는 타협안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몽고메리에 와 있던 27살의 신참 목사 마틴 루터 킹은 제미슨 목사에게서 투쟁의 아이디어를 얻고 조언을 청하기도 했었다.
또한 몽고메리 사건은 처음부터 거대한 사회혁명을 꿈꾸면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저 버스 내에서 흑인들이 겪는 일상적인 모욕과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시작된 운동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래 근대의 모든 변혁의 경험이 말해 주듯, 몽고메리 사건도 겉으로 작은 듯이 보이는 움직임이 진행되면서 두 갈래의 흐름이 나타났다. 우선 전통과 현상(現狀)을 고수하려는 반동세력은 아주 작은 양보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 사태를 안이하게 판단하였다. 몽고메리 사건에서 백인들은 사태의 잠재적인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버스 보이콧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에서도 “비가 오면 당장 버스를 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흑인들이 내건 작은 요구조건조차 들어주지 못하겠다고 거부한다. 스스로 묘혈을 파는 것이다.
반면, 흑인들은 아주 작은 요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백인들의 치졸하고 야비한 탄압책을 겪으면서 점점 더 의식화되어 간다. 1년을 넘긴 투쟁 과정 속에서 버스에서 차별 당하지 않고 앉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로부터 우리들의 영혼을 팔지 않겠다는 자세로 흑인들의 의식은 점점 더 고조되어 간다. 수십 리를 걸어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 하루도 아니고 381일이나 그렇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일심동체로 운동에 참여한다. 마더 폴라드라는 할머니는 연로하신 분은 승차거부 운동에 참여하지 말고 버스를 타시라는 주위의 권유를 다음과 같이 물리친다. “내 발은 힘들지만 내 영혼은 평안하다우.” 이들은 이렇게 긴 투쟁과정에서 연대와 단결과 비폭력과 참을성과 희망의 중요성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버스 좌석의 인종분리 정책이 폐기되었을 때 이들은 단순히 거부운동 이전으로 돌아가 평범한 시민으로서 버스를 탄 것이 아니고, 당당하고 주체적이고 자력화된 인간으로 변하여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것은 운동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의 전환이고 승화라 할 수 있다.
몽고메리 사건이 흑인들만의 투쟁이었다는 것도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로자 파크 사건 초기부터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민권 변호사 클리포드 뒤르, 버지니아 뒤르 부부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흑인교회에서 시무하면서 민권운동을 돕다 폭탄테러까지 당했던 로버트 그레츠 목사도 당당하게 이 투쟁에 한 몫을 하였다. 그레츠 목사는 현재 여든의 몸으로 아직도 몽고메리에 거주하면서 지역신문에 정기 칼럼을 기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다. 최근 버락 오바마가 미 대선에서 승리한 후 그레츠 목사가 기고한 칼럼 한편을 독자들에게 권한다(www.montgomeryadvertiser.com/article/20081128/OPINION0101/811260366). 언론인으로서 흑인 권리를 열렬히 제창했던 줄리엣 모건 역시 열성적인 투사였다. 당시 모건이 쓴 글을 인용해 보자. “버스타기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흑인들이 보여 준 조용한 위엄과 절제, 그리고 헌신을 보면서 감동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영혼이요, 굳은 마음이요, 눈멀고 속 좁은 시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몽고메리에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사람들은 느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평등과 존엄을 위한 투쟁에는 말 그대로 인류 모두의 공통의 투쟁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몽고메리 사건은 흑인들이 단순히 버스타기를 거부하고 걸어 다니기만 했던 사건이 아니었다. 수천 명의 흑인 노동자들이 1년도 넘게 버스의 도움 없이 출퇴근을 하려면 엄청난 머리와 계획과 협력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카풀 운동도 그러한 협동의 한 성공사례였다. 당시에는 개인소유 자동차가 아주 귀했다. 흑인들 사이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똘똘 뭉친 흑인 공동체에서 150여대나 되는 자가용을 자진해서 공동 출퇴근용 자동차로 내놓았다. 카풀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군대처럼 정교한 시스템이 필요했다. 성공한 사업가 출신 인사가 카풀 제도의 조직가가 되었고 몽고메리 시내를 잘 아는 우체국 직원들이 자원봉사자로 등록했다. 그들은 차가 필요한 사람과 차를 내놓은 사람을 이어주는 규칙, 함께 차를 타고 내려주는 지점을 이어주는 복잡한 연결망을 고안해야 했다. 시내 전역에서 48군데의 출발 지점과 42군데의 승차지점이 서로 잘 맞물리도록 시스템을 짜고 운용했다. 이건 완전히 노선버스나 마찬가지인 대중교통이었다.
그 후 자진해서 자기 차를 내 놓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300여대의 자동차가 매일 같이 몽고메리의 흑인들을 일터로 실어 날랐다. 세상의 진보는 단순한 열정과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이같이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인 계획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자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몽고메리 사건에 대해 전혀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알았다는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몽고메리 사건의 영웅은 로자 파크만이 아니라 투쟁에 참여하고 몸과 마음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외친 수많은 보통사람들이라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버스 승차거부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고 정말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역사 속에서 그 이름마저 사라진 수천 명의 파출부와 노동자, 교사, 학생, 요리사 같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과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상의 안전한 삶에 연연하지 않고 깨어 일어났기 때문에 한 나라를 변화시키는 역사 드라마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버스를 타지 않았다』는 목청을 높이는 책이 아니다. 나지막하고 정확하고 겸손하게 감동을 선사하는 저술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반세기 전에 몽고메리에서 일어났던 그 사건의 현재진행형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청소년, 교사, 인권운동가, 일반인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작은 보석과 같은 책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