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대학시장화는 귀족사회로 가는 길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이다. 다시 말해 교육기관 중 하나인 것이다. 교육기관은 국민에게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난다. 이것은 인력으로 어쩔 수 없다. 어떤 부모는 부자이고 어떤 부모는 가난하다. 어떤 부모는 좋은 학벌과 좋은 문화적 자산을 갖고 있고 어떤 부모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부모의 차이가 자식에게 그대로 이전되는 사회가 바로 봉건사회였다. 즉 신분이 세습되는 사회. 공화국은 세습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화국에선 교육기관이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금융회사가 아니라 금융기관이라고 한다. 과거 한국사회에선 금융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별주체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와 기관은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금융개방, 금융자유화 이후 비로소 금융기관은 금융회사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은행이 산업발전을 위해 공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것이 바로 시장화다.


교육부문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이 교육기관이 아닌 학교기업처럼 변해가고 있다. 국민을 교육시키는 공적 의무보다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 치중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학도 산업이다.”라는 말은 이런 시대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은행도 산업이라고 생각했고, 대학도 산업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별 시장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과 대학을 포괄하는 산업부문은 ‘서비스업’이다. 노무현 정부는 서비스업 개방과 선진화, 즉 시장화를 추진했다. 이런 기조는 이명박 정부에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대학이 교육기관이 아닌 학교기업으로 변화해가는 흐름도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신분 세습의 고리를 끊는 공화국 교육의 기능이 사라진다. 교육기관일 때는 모든 국민에게 차별 없이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특히 ‘없는 부모, 못 배운 부모’ 밑에서 태어난 국민에게 더욱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이 태생적 한계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교육은 정반대다. 가난한 집 자식에게 교육기업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난한 집 자식은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의 질은 철저히 그 소비자의 지불능력에 의해 제한받는다. 가난한 소비자는 저급한 싸구려 상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 기업이 나빠서가 아니다. 이건 시장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시장주체의 본성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늘려주는 사람에게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바로 부잣집 자식들이다.


그에 따라 가난한 집 자식이 나쁜 교육을 받고, 부잣집 자식이 좋은 교육을 받게 되어 공화국 교육기관의 원리가 산산이 부서지게 된다. 봉건사회 세습의 원리가 부활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중고등학교만 나와도 사회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다. 지금은 대학이 필수다. 이런 조건에서 고등교육 시장화를 추진하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필수인 교육과정에서 부모의 빈부차를 자식 대에 더 심화하는 양극화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화국이 붕괴하는 사태다. 고등교육 시장화는 이렇게 엄중한 문제다.



대학기업, 그 욕심의 끝은?


대학이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주체가 됐을 때 어떤 이익을 탐하게 될까? 봉건사회 때는 지금처럼 전 국민에게 공평히 제공되는 공교육이 없었다. 대신에 귀족학교와 평민학교가 분리되어 있었으며 어떤 귀족은 독선생을 초빙하기도 했다. 개인이 아니므로 독선생이 될 수 없는 대학이 추구할 수 있는 이상향은 당연히 봉건사회의 ‘귀족학교’가 된다. 평민학교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광휘를 뿜어대는 귀족의 성채. 귀족들이 대대손손 거쳐 가는 신분세습의 요람. 개별 시장주체로서 대학의 자유로운 이익추구는 필연적으로 그런 귀족학교를 모델로 하게 된다.


귀족학교가 되기 위해 대학이 최우선적으로 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귀족학교에는 귀족이 있어야 한다. 평민이 있으면 귀족학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귀족학교가 되려는 대학은 제일 먼저 입학생을 통제하게 된다. 한국에는 국민의 신분을 가르는 표지가 있다. 바로 학벌이다. 학벌은 그것이 성적순이라는 신화에 의해 유지된다. 우수한 학생이 우수한 학벌, 즉 우월한 신분을 취득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독점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우수한 학생만 있고 열등한 학생이 없는 대학이 바로 귀족학교의 기본 조건을 갖추게 된다.


이것으로 왜 자율화, 시장화되고 그에 따라 기업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한국의 대학들이 점점 더 심각한 입시파동을 일으키는지 알 수 있다. 입시안만 나오면 대학들은 변별력을 요구하며 볼멘소리를 한다. 시장화를 추진했던 노무현 정부는 대학과 임기 내내 싸워야 했다. 노무현 정부는 대학에게 최고 인재 선발에 대한 집착을 완화해달라고 했고, 서울대와 연고대는 그것을 거부했다. 상위 대학들은 국민이 어떤 고통을 받건 최고 인재를 뽑기 위한 입시파동을 때마다 일으켰다.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시하여 공화국의 교육기관이 아닌 귀족학교가 되려는 책동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싸우는 시늉만 할 뿐 대학의 탐욕을 막을 수 없었다. 이미 노무현 정부 자체가 대학에게 시장주체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이 이렇게 학생선발에 집착할수록 입시경쟁이 격화되어 초중등 교육이 황폐화되고 사교육이 팽창한다. 대학의 탐욕 때문에 나라가 기우는 것이다. 모든 대학이 우수 학생을 독점하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면 시장경쟁의 속성에 따라 승자가 점점 더 우수한 자원을 독식하게 된다. 동시에 패자의 처지는 점점 더 비참해진다. 그에 따라 귀족대학과 열등한 대학의 차이, 즉 대학 간 서열이 심화된다. 이럴수록 상위 대학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격심해진다. 그런데 상위대학이란 어차피 서울에 있는 몇몇 대학들이기 때문에 대학 간 경쟁 속에서 지방의 고사는 필연이다. 지방대학이나 일반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일류대로의 편입이나 대학원 학벌세탁을 준비하게 된다.


대학이 그다음 추구하는 것은 다른 방식의 입학생 거르기다. 한국에서 전통적 방식의 학력고사 점수는 점점 더 무의미해지고 있다. 대신에 특목고, 자사고, 국제중학교 등 출신학교나, 외국 유학 경력, 영어 구사능력 등이 중요해지고 있다. 한 마디로 부잣집 자식들의 지위가 갈수록 공고해지는 것이다. 이 아이들을 최대한 많이 확보한 학교가 귀족학교가 되는 분위기다. 그에 따라 대학들은 학력석차 이외의 방식으로 이 아이들을 독식하려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일류대에서 수시 파동이라든가, 특별전형 파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입시자율화는 대학이 보다 자유롭게 부잣집 자식들을 선발하는 통로로 기능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학력석차 상위자와 부잣집 자식들을 독식한 대학들은 귀족학교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귀족에게 있는 것이 단지 명예뿐이던가? 당연히 아니다. 귀족은 다른 말로 하면 ‘부자’가 된다. ‘우아하고 유식한 부자’가 바로 귀족인 것이다. 학생 선발을 통해 ‘우아하고 유식한’ 쪽을 챙기면서 동시에 대학은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그것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등록금 인상이다.


공화국의 교육기관은 등록금을 안 받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으니까. 반대로 기업처럼 사적 시장주체가 된 대학은 등록금을 가능한 한 최대화해야 한다. 국민의 공평한 교육기회 따윈 중요하지 않으니까. 최근 교육시장화의 흐름 속에서 등록금 천만 원 시대가 도래했다는 외침이 들린다. 사실 이 정도는 장난이다. 돈 천만 원이 귀족의 품위에 가당키나 한 액수던가? 귀족학교 모델을 따르고 있는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들은 기숙사비를 포함한 연간 등록금이 우리 돈 6,000만 원대에 이르고 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선진국형 대학은 바로 미국의 사립명문대이기 때문에 등록금 천만 원까지 온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놀랄 일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천만 원에서부터 놀랄 필요는 없다.


문제는 천만 원 대 등록금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곡소리가 난다는 데 있다. 학자금 대출자와 연체자가 순식간에 불어나고 있다. 학자금 대출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의 소식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장기간 휴학하느라 제대로 교육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여학생의 경우 성산업에 투신한다는 뉴스가 더 이상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이제 겨우 천만 원 대에 불과한데! 한국 대학들의 귀족학교화가 더 진행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부자가 되려는 대학이 그다음 할 일은 사업이다. 학교 안에 재벌과 외국자본의 상업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학생을 상대로 학교와 상업자본이 돈벌이에 나서는 것이다. 과거에 교육기관의 의미가 조금 더 강했을 때 학교 안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는 이윤원리에 좌우되지 않았었다. 이젠 아니다. 대학과 상업 자본 간의 결탁은 점점 더 심해져 기숙사비마저도 이윤원리에 의해 가격이 오르고 있다. 학생들이 학내에서 물건을 사는 데 부담감을 느낄 정도다. 또 자신들이 가진 지식자산을 사업화하여 공동체를 상대로 돈을 벌려 하게 된다. 동시에 돈을 제공하지 못하는 학과는 아무리 공공적 의미가 크더라도 점점 축소하게 된다.


그다음 대학은 자신을 중심으로 뭉친 귀족들에게 손을 벌린다.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모든 대학이 저마다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하여 자원 끌어들이기 경쟁을 벌일 경우 상위 명문대학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한국의 부자들은 모두 몇몇 상위 대학을 중심으로 학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원을 바탕으로 자산을 마련하고, 투자를 통해 자산증식에 나서고, 재벌의 지원을 받아 시설까지 확충해나가면, 비로소 귀족학교는 완성된다.


이 귀족학교로서의 대학은 천문학적인 자산과, 엄청난 등록금과, 엄청난 인적 네트워크와, 엄청난 문화적 자산을 독식한 괴물이 될 것이다. 이런 대학은 당연히 소수가 될 것이며 서울 지역 명문대들이 그 소수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간간이 특별전형과 장학금을 통해 그런 대학에 들어가는 서민의 자식들을 제외하면 일반 국민은 그런 학교를 감히 쳐다도 못 보게 될 것이다. 거대한 귀족의 성채가 들어서는 것이다. 이제 귀족들은 자기 자식을 그곳에 보내고, 그 자식이 커서 그 학교의 동문 귀족이 되며, 다시 자식을 낳아 그 학교에 보내는 방식으로 권력을 영속화할 것이다. 공화국은 사라진다. 이것이 대학기업화, 고등교육 시장화의 귀결이다.


대학도 공교육이다


한국사회는 일류대학 콤플렉스에 빠져있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과 같은 일류대학을 육성해야 한국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명박 정부도 그렇다. 그래서 대학에 자율성을 주고 각자 이익을 탐하며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살펴본 것처럼 공화국이 붕괴하는 길일뿐이다. 대신에 우리가 얻을 것이 있을까?


한국의 일류대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이익을 탐했을 때 우리 공동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노무현 정부 때 우린 충분히 경험했다. 국가가 지속적으로 대학들에게 공공성을 생각해달라고 (말로만이라도) 요청했지만 대학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했다. 공동체의 이익과 자신들의 이익이 배치될 때조차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선택하는 데 추호의 망설임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전국적으로 입시파동이 벌어지는 데도 본고사 문제 등을 계속 터뜨리고, 등록금 문제로 학생들이 절규하는 데도 등록금을 올리며 자산만을 쌓아갔던 것이다. 심지어 최소한의 투명성 규제인 사학개혁조차 거부하는 파렴치한이 우리 대학의 모습이다.


이런 대학에게 자율성을 아무리 줘봐야 하버드 대학이 아닌 한국식의 변종 일류대학이 생길 뿐이다. 한국의 대학은 학벌 패거리에 따라 지위가 결정된다. 그에 따라 연구나 교육에 역량을 투입할 아무런 유인이 없다. 학벌 관리에만 치중하면 국내에서의 지위는 안정되고, 교육은 미국의 일류대학들에게 떠맡기고 있다. 대내적으로 기득권을 공고히 하고 힘을 팽창하는 데만 열중하는, 가장 퇴행적인 귀족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젠 대학 자유화, 자율화, 시장화, 기업화 등 지금까지의 흐름을 뒤집어야 한다. 이것은 국민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없고 오로지 소수 부자들을 귀족으로 만들어주는 데만 복무할 뿐이다. 한국은 인재가 소중한 나라다. 공화국의 정의를 위해서도, 국가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고등교육을 공교육으로 정상화해야 한다.


일단 대학을 평준화하여 학생선발 경쟁을 폐지해야 한다. 이것으로 학생선발에 대한 대학의 탐욕이 원천봉쇄 되고, 입시경쟁이 사라지며, 사교육비의 고통도 사라진다. 모든 대학의 평준화가 어렵다면 국립대만이라도 먼저 해야 하며, 국립대를 늘려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일류대 밖의 대학들이 천민의 지위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모든 대학, 모든 대학생들이 정상적으로 학교공부에 임할 수 있고 지방도 정상화된다.


또 등록금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공화국에서 돈이 없어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모든 국민에게 교육의 기회를 국가가 책임져주는 것이 공화국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기회를 가로막고 있는 등록금은 국가가 책임진다. 이것을 위해 현재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인 1인당 고등교육 예산을 평균의 두 배 정도로 올리고 부자들을 위한 감세를 취소해 교육재정에 투입해야 한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시장에서의 이익극대화에 나서지 못하도록 국가가 규제해야 한다. 상업자본과 결탁해서 학생을 상대로 장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유명 대학이 재벌과 일체화하는 것을 막고, 돈벌이 때문에 순수학문을 퇴출시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자유로운 시장에선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국가가 나서서 규제할 일이다. 학생선발경쟁과 등록금 제도를 폐지하고 대학의 이익추구를 규제할 때에만 공화국의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이 바로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