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밤 친구는 바깥 공기보다 차가운 소주를 벌컥 들이키고는 투정부리듯 말을 꺼냈다. 그러게 말이다.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경찰의 폭력에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지만 과연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막막하기만 하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용감한 투쟁이 그렇게 끝난 뒤로 모든 곳에서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날로 치밀하고 강도 높게 몰아치고 있다. 4대강 사업과 미디어법,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정부에 빼앗긴 광장, 어이없는 집시법,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재파병까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없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 크게 힘이 모이는 싸움도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싸움을 시작할 수 있을지 ‘초록색 이슬병’을 가운데 두고 밤새 머리를 맞대어 보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답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 이런 때에 저 방문을 열고 옥수수 담배 연기와 함께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등장하면 좋으련만.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1994년까지 멕시코의 깊은 산에 살았던 마야인 농민이다. 할아버지는 마야인 조상들이 물려준 지혜를 도시에서 온 젊은 게릴라 마르코스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세상이 만들어지게 된 이야기, 어떻게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진실한 인간들이 그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싸움을 시작해야 할 때는 바로 언제인지.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싸우는 사람들이 힘에 부칠 때마다 그들의 동지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으로서 마야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얻은 깨달음을 마야의 언어로 말해준다. 마야인들이 5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끈질기게 황금과 폭력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그들이 새로운 시대에 또다시 큰 싸움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아름답고 진실한 언어와 하늘과 땅에 가장 가까운 지혜를 가슴에 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할아버지가 전해준 많은 이야기들 중에는 분명 지구 반대편에서 무기력한 투정을 부리고 있는 나와 친구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들어 있을 것이다. 아니, 생각해보니 안토니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하나의 답을 얻었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수가 작고 힘에 부친다고 외로워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똑같이 투쟁하고 있음을 말이다. 그들의 지혜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우리에게 전해졌듯이 우리와 그들이 서로 연대하여 함께 싸울 수 있다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어느새 조용히 내 옆에 앉은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옥수수 담배 연기를 내쉬며 말한다.
여길 보게나. 여기 땅이 있네. 우리의 위대한 어머니, 진실한 남자들과 여자들을 위한 두 개의 가슴이 있네. 그러므로 진실한 남녀들은 이렇게 외치지.
“자! 우리 모두 함께 꿈꾸자!”
“자! 우리 모두 함께 투쟁하자!”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