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 문제가 논술시험에 등장할 정도로 공론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민감하기만 한 군대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 병역거부를 선택했을 때, 혹은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을 때 마주쳐야하는 질문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 질문의 대부분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오해에서 비롯되었거나 비난하기 위해 이미 답을 정해놓고 궁지로 몰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답답한 상황에서 더불어 흥분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평화의 얼굴』은 이야기하듯 쉽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이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특별한 관심이 없어도, 이제 막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려는 사람이거나 그런 친구를 둔 탓에 처음 접해보는 사람에게도 병역거부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넓혀갈 수 있는 매뉴얼과 같은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삶에 기반을 둔 성찰과 고민으로 시작해 올바른 기독교를 위한 염원과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기독교 평화주의 교파에 대한 소개와 설명을 통해 병역거부의 역사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를 확인시켜주며, 평화주의의 오랜 전통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이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옥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단’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그의 이러한 성찰은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양심’의 보편적인 차원으로 다가온다. 반공, 애국, 기독교 등이 결합된 국가권력이 소수자를 억압해온 한국사회에서 전쟁과 폭력에 대한 다른 생각은 인정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평화, 반전을 말하는 요즘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지적하는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점령국의 편에서 파병을 하고, 무기를 개발하고 만들어 파는 것도 이익이 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들 평화를 말한다. 하지만 내가 들어야하는 총이 누구를 겨누고 있는지에 대해, 군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해본 후에 ‘평화를 위해’ 군대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평화를 원하는데도 멈추지 않는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전쟁을 막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에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기게 되면 그 대가로 불이익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말로는 쉬운 평화가 현실에서는 얼마나 ‘평화’롭지 못한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총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있는 6백여 명의 병역거부자가 증명하고 있다. 옛날부터 꾸준히 이 길을 택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나갈 새로운 평화에 대한 상상력과 희망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관용의 정신으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자고 마무리하는 이 책은 사실 너무 안전하다. 국가권력과 충돌하지 않을 수 있는 절충점으로서, 대체복무제도를 합리적으로 잘 도입한다면 병역거부자의 숫자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은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유용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병역거부운동 초창기에 자주 사용했던 논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비록 정권이 바뀌면서 뒤집히기는 했지만, 대체복무제도 도입 결정 이후의 운동을 상상했던 나는 여전히 불순한 꿈을 꾼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병역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고 군대의 본질을 알아가는 것, 각자 자신이 가진 다양한 양심과 신념을 바탕으로 병역거부를 주장하며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것, 전쟁과 관련된 일체의 활동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전 세계적인 연대를 통해 국가의 경계를 허무는 것, 그리하여 결국 군대가 쓸모없어지는 그런 세상을.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과 점점 다양해지는 병역거부자를 만나면서 내 꿈은 더 커지고 있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