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리와 개별화라는 삼성의 이윤 창출의 원리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사무직/생산직, 남성/여성, 정규직/비정규직, 본청/하청 그리고 다른 생산 본부들과 라인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삼성이 겹겹이 쌓아놓은 분리와 포섭의 장치들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주변부’의 노동자들까지 살피는 것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시아 노동자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단순히 삼성의 노무관리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기 위해서 혹은 삼성의 이윤창출의 구조를 보다 잘 알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1990년대 삼성이 이룬 신화, 특히 가장 이윤을 많이 남기는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신화는 바로 한국이라는 중심부의 노동자들을-물론 사무직, 남성, 정규직을 우선으로-확고하게 포섭하고 주변부의, 특히 아시아의 노동자들을 강도 높게 착취하는 전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종종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일하고 싶은 최고의 직장으로 꼽는, 대한민국 대표기업으로서의 신화를 창조하는데 쓰인 막대한 자금들이 상당부분 이들에 대한 강도 높은 착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누리는 온갖 찬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들이 아시아의 삼성 노동자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고려하지 않고 삼성의 변화를 얘기할 수 있을까? 최근에 속속 밝혀지는 삼성의 숨겨진 이야기들로 인해서 그리고 삼성이 은폐하려고 애쓰고 있는 안타까운 산업재해 희생자들을 계기로 삼성을 바꾸어보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지만, 삼성의 진정한 주변부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참여하지 않는 삼성개혁이 과연 삼성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과연 분리와 개별화의 경영원리에 연대의 힘으로 대항할 수 있을까? 나는 삼성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삼성신화의 뒤편에서 이 신화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이들, 아시아의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일이다.
삼성과 아시아
아시아는 삼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투자지역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총 27개의 해외 생산법인 중 21개가 아시아 지역에 몰려있다(중국 13개, 인도 2개, 인도네시아 1개, 말레이시아 2개, 필리핀 1개, 태국 1개, 베트남 1개). 삼성전기의 경우에는 7개의 해외 생산 공장 중 5개가 아시아에(중국 4, 필리핀 1, 태국 1), 삼성SDI의 경우 7개 중 4곳이 아시아에 있다(중국 3, 말레이시아 1). 아시아 지역에서 삼성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가 몇 명인지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고 다만 현재 삼성전체의 해외 고용 인력이 8만 명 정도라 하고 삼성의 해외 생산법인들이 이렇게 아시아 지역에 몰려있다는 것으로 그 수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직, 간접적으로 삼성을 위해 일한다. 삼성이 밝히듯이 부품과 자재의 현지 조달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이의 수월한 공급을 위해서 삼성은 투자현지에 자신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중소규모의 공장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하청 공급망들을 운영한다. 여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까지 합친다면 아시아에서 삼성을 위해 다양한 부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수십만에 다다를 것이다.
삼성의 이러한 아시아 생산망은 그리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에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은 생존을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지구적인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동참해야 했고, 수출주도의 산업화 전략을 펼치기 위해 시장과 투자를 개방하고 다국적 기업들을 경쟁적으로 유치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독재정권과 군부에 의해서 운영되던 이들 국가의 정부들이 약속한 것은 각종 세제 해택과 값싼 관세 이외에도 값싼 노동력이었다. 아시아에서의 이런 흐름들은 1987년 이후 한국에서 민주화와 민주노조운동으로 인해 증가하는 노동비용과 일본 경쟁업체들의 동남아 투자 등으로 인해 이윤압박을 느끼고 있었던 많은 한국기업들, 특히 삼성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다른 선진국의 초국적 기업들이 자국 내의 노동력에 기반을 둔 생산을 서서히 줄이고 직접투자나 전지구적 공급망의 형성을 통해 점차 개발도상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생산을 늘리면서 생겨났던 ‘국제적 노동 분업’에서 한국의 자본은 그 하위 파트너로 활약해왔다. 하지만 이제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이 국제적 노동 분업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나가는데 동참하기 시작한다.
삼성이 그 선두에 섰다. 먼저 단가가 낮은 제품들의-컬러TV나 세탁기, 전자레인지 같은-생산 공정들이 하나둘씩 이전되었고 이들은 값싼 가격으로 만들어져서 현지로부터 선진국의 시장으로 수출되었다. 현지의 시장이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이후로는 차차 고부가가치 제품들의 생산도 이들 국가들로 이전되기 시작했다. 계열사들과 하청업체들이 함께 줄줄이 따라가면서 생산의 수직적 통합을 가능하게 해주는 집중투자도 이루어지고, 중국의 톈진이나 쑤저우, 말레이시아의 세렘방 같은 곳에는 삼성의 복합단지들이 건설되었다. 이러한 대규모 집중투자를 통해서 삼성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로부터 보다 많은 혜택을 얻어낼 수 있었다. 삼성이 이들 국가들에서 보여주는 활약상은 선진국 출신의 초국적 기업들과 비교해도 도드라질 만큼 눈부시다. 삼성은 태국 정부로부터 1998년 최우수 품질상을, 2002년 노동관계상을 수상했다. 필리핀 정부로부터는 2006년 최우수 사회공헌상과 우수 수출상을 수상했고, 2001년에는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품질경영대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삼성의 성공의 결실을 조금이나마 배당받고 이 과정에서 ‘삼성사람’으로서의 각별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져나가는 노동자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삼성을 위해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다른 공장노동자들과 비교할 때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저임금 노동자이다. 이들은 대부분 투자유치국의 각 지방에서 삼성생산단지로 모집되어온 이주노동자들로, 생산직 노동자의 다수는 젊은 여성노동자들이다. 한국에서 공업화 초기에 그러했듯이 여성노동자들은 농민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 ‘부수적인 존재’로 취급되기 때문에 남성노동자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이들은 남성 가부장에 대해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도록 훈련되고 교육되었으며 공장에서 감독관과 매니저들은 이렇게 체화된 권력관계를 노동효율과 노동강도를 높이기 위해서 적절히 이용한다. 이들은 대체로 법정 최저임금을 약간 넘는 보수를 받으며 일하고 낮은 기본급 비율로 인해서 종종 초과노동을 통해 수당을 받아야만 겨우겨우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종종 파견직이나 임시직 등의 비정규직으로 고용된다.
아시아의 삼성노동자들
중국의 경우 텐진, 쑤저우, 선전, 둥관 등지의 삼성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풍부한 노동력을 가지고 있지만 생활수준이 낮은, 덜 개발된 농촌 지역으로부터 온 흔히 중국에서 말하는 ‘농민공’이다. 전국에 세워진 직업학교를 통해 훈련받은 18세에서 25세까지의 여성들이 이들 농민공의 주류를 이룬다. 중국의 경우는 특이하게 사회주의 시절 농촌인구의 도시유입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호구제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주노동자들은 공업시설이 몰려있는 도시지역에서 2등 시민으로 구분되며 국가가 지원하는 복지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은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삼성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기본급은 대부분의 경우 법정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고 장려금과 각종 수당, 그리고 초과노동수당을 더하면 법정 최저임금을 넘길 수 있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초과노동과 ‘개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낮은 기본급 비율로 인해 성수기와 비수기의 임금 총액 차이가 크게 나는데 2006년 자료에 따르면 성수기에는 기본급에 각종 수당을 포함해서 약 26만 원에서 30만 원(1600~1800위안)을 받고 비수기에는 16만 원에서 18만 원 정도의(1000~1100위안) 월급을 받는다. 그래서 비수기에는 노동자들의 이직율이 높아진다.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견습생 등으로 구분되고 각기 다른 임금체제를 통해 보수를 받는다. 또한 정규직들은 3, 4단계로 나누어지는 근무고과에 따라 다른 보상을 받기도 한다. 견습기간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이며 견습생들은 일반적으로 정규직 임금의 절반을 약간 넘는 임금을 받는다. 견습기간을 지나면 정규직이 되는데, 이마저도 사실상 일 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고 갱신하면서 연공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보기도 힘든 실정이다. 사실상 삼성 대부분의 공장들에서 정규직 노동자라 할지라도 일 년 단위의 계약갱신이 관행이기 때문에 한국 기준으로 한다면 중국에서 일하는 삼성의 거의 모든 생산직 노동자들이 임시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물론 삼성의 하청망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는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이들이 삼성공장의 노동자들과 같은 임금을 받기 위해서는 성수기에는 휴일 없이 매일 꼬박 12시간씩을 일해야 한다.
인도 노디아의 삼성전자에서도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현재 현지조사에 따르면 전체 약 1700명의 노동자 중 약 700명이 훈련생,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은 생산라인뿐만 아니라 수송과 보안, 정비 등의 일에도 배치되어있다. 노동자들은 대체로 공장이 위치한 지역 출신들이 아니고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주들, 혹은 인접해있는 네팔 등에서 직업중개소를 통해서 고용된다. 비정규직들은 파견업체를 통해서 처음 6개월 간 고용되고 그 뒤로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일할 수 있다. 삼성 인디아는 이윤 창출을 위해 저임금에 많이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자료에 따르면 정규직 노동자들도 겨우 기본급 5만 원(약 2000인디아 루피)에 고용되고 일 년이 넘어서도 기본급 약 7만 원, 3~4년의 경력이 쌓이면 최고 10만 원(4000루피)까지를 벌 수 있다. 부족한 기본급을 충당하기 위해서 삼성 인디아의 노동자들은 초과노동을 통해서 이를 보충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초과노동이 더해져서 주당 60시간에서 72시간가량의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도의 노동법이 정한 기준을 훨씬 초과하는 것이다. 비정규직들은 이렇게 초과노동을 해도 한 달에 75000원가량 밖에 벌지 못한다. 더구나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에게는 보장되는 연차, 출산휴가, 사망보상과 영구상해보상, 해고보상, 근로자 국민보험 등의 해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하게도 이들에게 삼성에서 일하는 것이 큰 자부심을 주지는 못한다. 아시아의 다른 곳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일당 6500원에 일하는 태국 삼성전기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무슨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까?
아시아의 삼성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단기계약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것 외에 삼성의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야기되는 심각한 고용불안에도 시달려야한다. 삼성전기 태국의 TV부품 생산부서에서 일하던 1400명의 태국 노동자들은 2005년 5월 TV 생산부서의 고압변성기 부분과 편향코일 부분이 각각 새로 설립되는 ANEON 전자와 메드 태국 주식회사로 각각 전근 조치될 것이라는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삼성전기는 이 두 생산부분을 ‘분사화’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 부서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삼성에 머무르고 싶어 했고 이전할 때 다시 수습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에 반발했다. 이들은 노동자 대표를 선출하고 노동조합연맹 등의 도움을 받아 사측과 협상을 하려 했지만 사측은 7명의 노동자 대표를 해고하는 것으로 맞섰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된 대표들을 지지하고 분사화가 결정된 두 부서 이외의 부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이들을 지지하고 나서야 삼성전기는 7명 중 5명을 복직시켰다. 그러나 결국에 노동자들은 보상금을 받고 퇴직하거나 새로 생긴 회사로 이직해야만 했다.
아시아 노동자들의 힘겨운 저항
물론 아시아의 노동자들이 항상 삼성이 하라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받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저항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여러 번의 노동조합결성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삼성에서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은 여전히 매우 어려운 일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삼성전기의 분사화와 그에 따른 고용승계 문제를 둘러싸고 노사 간의 갈등이 깊어졌을 때 삼성전기 태국에서는 관리직 사원과 일반직 사원을 따로따로 대표하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같은 주소로 등록된 두 개의 노동조합이 새로 설립되었다. 이전의 관례를 깨고 삼성전기의 경영진이 그대로 놓아두었던 이 두 노동조합들은 설립한 지 4개월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회사에 대한 투쟁을 주도했던 노동자들은 이들 노동조합들이 삼성 측에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잠재우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기 위해서 많든 유령조합들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삼성이 한국에서 노조설립을 막기 위해서 종종 써왔던 방법이다. 삼성전기에서 ANEON으로 이직한 노동자들은 여전히 회사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었고 2005년 말에 전기노동자조합을 세웠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당해버린 삼성전기 분사화의 경험으로부터 노동자들은 노조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이들은 계속해서 실질적인 ANEON의 소유주인 삼성전기가 회사를 운영할 것을 요구했고 임금과 보너스 인상 등을 노사협상을 통해 제기해왔다. 결국 ANEON은 2009년 회사 문을 닫아버리고야 말았다. 전직 삼성전기 간부가 운영했다는 이 ANEON라는 회사의 자산은 최대주주인 삼성전기가 점유했지만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보상받지 못했다. 이들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전국전기산업노동조합이 삼성에 노조설립을 시도하였다. 1999년 6월 전기산업노동조합이 삼성전자 말레이시아에 노조가 설립되었음을 발표하자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공문을 돌려서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말 것을 강요하였다. 삼성은 노동조합청(노동조합과 노사관계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말레이시아 정부부처)을 압박해서 그들에게 유리한 결론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청의 결론인 즉슨, 삼성전자는 ‘전자산업’에 속하기 때문에 전국‘전기산업’노동조합이 삼성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삼성이 만드는 전기제품은 전자레인지뿐이며 전자레인지 부분은 삼성전자 생산의 극히 일부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국제금속연맹까지 나서서 전기산업노동조합을 지지하고 정부의 결정을 비판했지만 말레시아 정부와 삼성의 입장은 확고했다. 전기제품인 전자레인지를 연간 80만 대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에서 전기노조설립은 실패로 돌아갔다.
중국에서 중국의 노동총공회는 2003년 무노조정책으로 악명 높은 월마트, 맥도널드 등과 함께 삼성을 반노동조합기업으로 지목하고 삼성이 노동조합의 설립을 허용할 것을 떠들썩하게 요구하였다. 이후로 삼성의 중국 생산법인들에 총공회의 지부가 생겨나는 ‘조직화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총공회 지부들은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일까? 텐진에 있는 삼성의 총공회를 보면 이들 지부들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텐진은 사회주의 중국 전통의 공업중심지답게 중국공산당의 단위 조직들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곳이다. 즉 중국총공회와 공산당지부, 직공대표회의 등의 구조가 기업 내에 남아있다. 이들은 사회주의 중국에서 당과 노동자들을 연결하고 기업 내 복지제도들을 운영하고 노동자들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었다. 삼성이 사회주의 국영기업들에 투자하고 중국기업과 합작해서 텐진SDI(텐진삼성퉁광)를 세웠을 때 이들 사회주의 조직들은 공장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기능은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과정에서 형해화된 지 오래다. 중국총공회의 지부는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아닐 뿐더러 이들의 기능은 갖가지 친목모임을 꾸리고, 기업 내 복지시설과 처우 등을 조율하는 역할로 축소되었다. 직공대표회의도 노동자 대표가 평직공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대표하는 기관이 아니라 회사 측에서 지명한 노동자 대표들을 통해 노동자들의 고충을 관리자들이 ‘청취’하는 자리로 바뀌었다. 명목만 남아있을 뿐이다. 텐진삼성퉁광의 노동조합대표를 삼성의 중국 측 합작사 대표가 겸임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이 노동조합의 성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삼성에게 있어서 중국이 무척 중요한 생산거점이자 시장이기 때문에 중국총공회나 중국정부의 의견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중국총공회가 독립적인 노동자 조직이 아닌 당의 하부조직으로 기능하는 한에서만 삼성은 중국의 생산법인들에서 노동조합지부를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를 생각한다
삼성의 아시아에서의 활동이 혹자에게는 단순히 ‘비즈니스’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꾼다. 다른 다국적 기업들이 그러하듯이 삼성이 가는 곳에서 평범한 농촌의 여학생이 도시의 여공이 되고, 사회주의 산업도시가 자본주의 발전의 첨병이 되고, 농지가 공장부지로 바뀐다. 삼성이 노동자들을, 자연자원들을 이윤 창출을 위해 흡수했다 토해내는 사이에 삼성은 아시아에서 사람들 사이의, 사람과 자연 사이의, 사람과 생산 활동 사이의 관계들을 뒤바꾸어 놓는다. 분리와 개별화를 통한 이윤추구의 극대화가 삼성의 경영전략의 핵심에 있는 한은 삼성이 우리의 삶을 크게 좋은 방향으로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이쯤해서는 분리와 개별에 맞서 연대를 통해서 삼성을 바꾸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앞에서 노동조합의 핵심 원리는 연대임을 강조하였다. 연대의 원리가 관철되기를 멈추면 노동조합운동은 힘을 잃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강성하던 서구선진국의 노동조합들은 연대의 정신을 상실하고 자기 공장의 담장 안에서 자신의 조합원들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활동했고 그 결과 노동조합운동은 사회보편의 정의와 민주화를 추구하던 운동에서 노동귀족들의 운동으로 전락했다. 최종적인 결과는 참담했다. 노조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흐름 속에서 노동조합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되었고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곤두박질 쳤으며 노동조합들은 젊은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 여성노동자들, 서비스 산업의 노동자들로부터 싸늘하게 외면당했다. 연대의 정신을 끝까지 관철시키지 못한 까닭이다. 최근의 현대자동차의 노조지도부가 ‘현대차 노조는 현대자동차 직원들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한 것을 보면 한국의 대기업 노동조합들도 같은 길을 밟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삼성을 바꾸는 투쟁을 통해서 잃어가는 연대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은 어떨까?
삼성은 삼성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 삼성의 성공신화는 삼성에 대한 정당한 비판기사에도 수백 개의 악성 댓글들이 달릴 정도로-잘나가는 대한민국 대표기업을 모함하지 말라는-한국사회를 튼튼히 지배하고 있다. 삼성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신화적 힘은 삼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젊은 노동자들의 의문스러운 죽음에 대해서도 침묵하게 만든다. 하지만 삼성에 대한 비판은 서서히 힘을 얻어가고 있다. 한 기업이 가지고 있는, 그것도 지극히 비민주적인 경영을 하는 기업이 가지고 있는 힘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 지극히 비민주적인 삼성공화국을 운영하는 힘은 분리와 개별화임에 틀림없다. 중심부 노동자들에게 월등한 경제적 보상을 통해서 안락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주변부의 노동자들에게는 저들처럼 되기 위해서 고율의 착취를 감수해야한다고 말하는 삼성에게 우리는 연대의 원리로 맞서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하려고 한다면 곳곳에서 삼성신화의 해택을 받지 못하면서도 큰 용기로 작은 투쟁을 만들고 있는, 우리 아시아의 삼성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출발점으로 보인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