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사람들은 그의 폭로에 놀라워한다. 사건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침해사실이 심각하고 노골적이면 더, 사회전체의 놀라움은 크다. 말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은 나서서 걱정과 우려와 해법을 제시한다. 피해자는 때로 영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피해가 끝나지 않은 채, 사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해결되거나 용두사미인 채로 흐지부지 되었을 경우 즉,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을 때 불행은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 된다. 그는 사건이 잊혀진 이후에도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고백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들어줄 사람들은 모두 떠난 뒤다.
삼성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써 달라는 글 주문을 받자마자, 하고 싶은 말들이 서로 밀치며 튀어나오려 줄달음을 치고 있었다. 그러자 한편에서 “무슨 소용 있어. 그동안 지나치게 많이 얘기해 왔는데…… 말하면 얻는 게 뭐 있나”라는 말이 부스럭 돌아누우며 웅얼거린다. 순간 그 많던 말들이, 하긴, 그렇지…… 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향해 다시 걸음을 되돌렸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왜냐면 이미 피해자들이 고백과 폭로를 지나치게 많이 해왔던 ‘삼성’문제 아닌가. 최근 몇 년 사이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삼성과 관련해서 얼마나 많았나. 불법증여·상속, 휴대전화 위치추적, 안기부 X파일, 떡값검사, 삼성중공업 태안기름 유출 사건, 김용철 변호사 양심 고백…….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은 한두 달 뉴스거리에 불과했다. 아니면 더 짧았다. 그러나 한두 달 뉴스거리도 되지 못했던 사람들, 사실들은 더 많았다. 그들의 폭로와 고백, 아픔은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사람들에게 회자조차 되지 못했다.
어떤 노동자 이야기
삼성 해고 노동자 김갑수는 자신의 휴대전화가 도청된다고 의심을 품고 있었다.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휴대전화 도청은 불가능하다는 사람들의 도리질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자신의 전화는 삼성에 의해서 100% 도청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와 만나는지, 어디를 가는지 투명한 그릇에 담긴 것처럼 삼성에 의해 미행당하고 있는데 그것이 휴대전화에 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나 역시 그의 말에 다 동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듬해 안기부 X파일 사건에 의해 ‘휴대전화도 도청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의 의심은 진실일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그는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해 보겠다고 동료들과 모의한 이후 피곤한 인생길에 접어들었다. 발각 난 그와 동료들은 회사의 집요한 회유와 협박, 미행과 도청, 상상할 수 있는 또는 상상할 수 없는 모든 일을 당해야 했고 몇은 해외로 강제 전출되었고 몇은 사직서를 강요받았다. 그 마저 수용하지 않았던 그는 해고당했다.
삼성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삼성을 생각한다』에 등장했던 그런 일화들. 회사의 문제 사원으로 분류되면 집중적 관리의 대상이 된다.
“나의 성격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내가 잘 가는 화장실까지 알더군요. 언젠가는 관리자가 불러 왜 화장실을 다른 데로 다니느냐고 물어 봤으니까요. 친구 결혼식장에 쫓아다니는 것은 보통입니다. 수원 시내에서 모일만한 곳에는 3인 1조로 사람을 풀어 감시합니다.” - 어느 노동자 증언
심지어 노동조합 결성을 지원하는 민주노총 간부에 대한 미행과 감시까지 포착되기도 했다. 민주노총 금속연맹 경기본부의 한 간부는 2004년 상반기 삼성전자 가전부문 노동자들과 접촉하며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지원하던 기간에, 외출 시 늘 차량 2~3대가 미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미행 차량의 번호를 알려주자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총무팀 XXX 차야” “지대위 XXX야” “그놈은 지난번 나를 미행했던 차야. 그놈 아직도 그일 하고 다니는구먼.”이라며 삼성 구조조정본부 산하 지역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개입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세계일류라는 이야기를 듣는 기업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 또는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 노동자들의 비명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진실에 대해서 그러나 우리 사회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내부에서 ‘진실’을 수행했던 법무팀 간부가 육성으로 고해성사해도 검찰과 법원을 비롯한 어떤 기관도 진실 규명에 관심이 없는 마당이지 않은가. 그래서 사실 진실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했다. 물론 도처에서 진실이 짓밟히고 있지만, 어쨌든 삼성 앞에서는 더더욱.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진실로 믿고 있는지 아니, 믿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삼성왕국의 학습효과
삼성 노동자의 연봉이 얼마라는 진실. 중견간부가 받을 수 있는 한 달 급여가 몇 천만 원이라는 진실. 이사들이 받는 연봉이 수십, 수백억 원이라는 진실. 사람들이 알고 싶은 진실은 이것이 아닐까. 삼성 핸드폰이 유럽에서 명품 대우를 받는다는 진실. 그것이 내 것이 될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는 한, 삼성의 신화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계산상 더 나으리라는 마음. 그것이 삼성이 지켜야 할 진실이지 않을까.
“삼성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노조가 아니라, 노조의 필요성이다. 삼성은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시사저널 2005.9.20)는 이건희의 말대로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 진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 바로 삼성이 우리 사회에 만들어준 선물이다. 오로지 물질로 환원되는 대가만이 소중한 사회. 그걸 지켜주기 위해 청와대와 국회, 법원, 검찰, 언론들 모두 똥물을 뒤집어쓰고서 우리는 모두 짐승이야, 우린 사람이 아니지, 하고 옷을 홀딱 벗고 솔직하게 외치도록 만들어 주는 사회. 삼성왕국이 이룩한 대한민국이 환멸스러운 이유다. 이들이 번번이 가르쳐준 놀라운 학습효과는 한국 땅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중. 정의 따위, 진실 따위 모두 벗어 던져!
삼성 식의 노동자 관리법이 자본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막대한 경제력과 사회 지배 엘리트들의 효과적인 포섭을 통한 지배구조의 확립을 통해 삼성을 손댈 권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위임받지 않은 통치를 통해 한국 사회를 ‘삼성공화국’이라는 조어로 설명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공화국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나라는 ‘남조선’이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는 세습국가 ‘북조선’의 답습이다. 이병철을 이어 이건희가, 이건희를 이어 이재용 또는 이부진이 세습하는 삼성왕국, 대한민국. 이 왜소하고 불편한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제국의 신민들이다. 부자가 될 확률 앞에 감지덕지하면서 살아가야 할 국민.
바로미터, 삼성
한국사회에는 딱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삼성을 입에 올리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김용철 변호사가 언급했듯이 노무현 정부도 삼성에 자유롭지 못했다. 어떠한 권력기관도 자유롭지 않았다.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이 삼성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삼성 문제로 인해 번번이 거절당한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서, 삼성에 거리낌 없는 사람을 신뢰하게 되었다.
어느 날 눈가도 입가도 선하기 그지없는 어르신 한 분을 만났다. 커피숍에 앉은 그는 강한 강원도 사투리를 썼고, 커피 잔을 잡은 손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우리 유미가요, 삼성에 노조만 있었어도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자신의 품 안에서 죽어간 딸의 체온을 잊을 수 없었던 그는 삼성과 싸우는 사람들을 어렵게 수소문해 우리를 만나러 왔다. “유미가 일했던 베이(bay)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죽은 사람이 또 있대요. 그리고 임신했던 태아도 죽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게 우연일 수가 있어요? 도와주세요.”
그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실을 최초로 외부에 알린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였다. 그의 제보로 인해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 지킴이 ‘반올림’이 만들어졌고, 그와 유사한 피해사례들이 계속 제보되었다. 오늘도 그의 집에는 삼성 임원들이 찾아온다. 보상금을 들고, 사과상자를 들고. 그러나 그는 받지 않는다. 그들을 만나지 않는다. 우리 유미의 목숨을 돈하고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삼성이 싫다
삼성의 불합리한 지배구조. 그 정점에 있는 이건희와 그 일가족이 사라지면 문제가 해결될까. 물론이다. 그들과 그들 가신그룹이 벌이고 있는 불법과 탈법, 그로인한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많은 부분 제자리를 찾을 확률이 높다. 원인 제공자들이 물러선다는 것은 중요한 여러 가지 과정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결과를 포함해서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풀지 못했던 과거청산이 아직도 한국사회를 썩어가게 만드는 것처럼 혹여라도 이건희가 사라진 삼성이라도 짚어야 할 것은 분명히 있다.
그 수많았던 진실 앞에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것이다. 태안반도를 검은 기름으로 뒤덮은 삼성 중공업. 그 사건의 이름이 ‘삼성중공업 기름유출 사건’이 아니라 ‘태안기름유출 사고’로 이름 붙여진 배경에도 삼성의 로비가 있었다고 한다. 수백 년을 이어갈 환경 재앙의 가해자가 책임조차 지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 어민들은 네 명이 벌써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수많은 물고기와 새가 떼죽음을 당하고 태안 마을에 암 환자가 늘고 있는 마당에 삼성중공업은 56억 원만을 배상책임하면서 태안을 빠져나갔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만 23살. 고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입사한 삼성반도체에서 백혈병이라는 병을 얻어 짧은 청춘의 시절을 병원에서 각혈과 고통으로 마감한 박지연. 막 태어난 아가를 제대로 품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백혈병으로 죽어간 황민웅. 그들 모두 우연한 질병이기 때문에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세계일류 기업 삼성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우리라는 동그라미에 국회나 검찰이나 법원, 언론 같은 권력을 가진 것들이야 이건희와 같은 전범으로 기소되어 마땅할 테니, 같은 책임의 무게로 무리 지을 수는 없겠지만. 촘촘한 그물망처럼 그들이 구획해 놓은 비리의 먹이사슬을 뻔히 알면서, 그 빈번했던 폭로, 안기부 X파일도 있었고, 변호사 김용철의 고백도 있었는데. 그걸 알면서 그토록 쉬운 용서를 반복한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말이다.
우리는 삼성이 오매불망하는 금산분리법을 통과시켜 준 이명박과 박근혜를 뽑아주었다. 휴대전화에서 냉장고, 텔레비전, 에버랜드, 삼성카드, 삼성생명, 삼성화재를 아무 거리낌 없이 소비했다. 삼성에게 떡값명목의 뇌물을 받았다는 검사들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재용과 이부진이 소비하는 명품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그들로 인해 감옥에 갇힌 노동자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무노조라는 것이 사실은 ‘노동착취’와‘인권유린’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쫓겨나는 노동자들을 보면서도 외면한다. 성과급을 가장 많이 주는 기업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기업 중에 가장 많은 분사로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기업이 또한 삼성이라는 걸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천문학적인 이윤을 창출하면서도 결국은 공장 문을 닫고 일하던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몬 그들에 대해 원망하지 않는다.
어쩌면 삼성보다, “온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는 이건희의 뻔뻔함보다, 그런 모든 것을 용인하는 이 사회의 물신주의가 더 싫은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고 정의와 상식이 소통할 수 없는 시대의 정체를 보고 있는 것이 힘겹다. 삼성 특검이 막을 내리던 때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던 사제단의 육성.
“일부 언론의 왜곡과 많은 지식인의 침묵과 냉소는 용기 있는 증언자들을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경제 민주주의가 지연되고 있는 배후에는 언론과 지식인의 책임도 결코 적지 않습니다. 또 경제라는 물신을 위해 모든 가치를 뒤로 미루는 오늘의 국민 정서 또한 재벌의 범죄를 방관하거나 관대하게 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범이기도 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침 검사와 스폰서의 관계가 MBC
어쩌면 대부분은 “누구나 그 자리에 있으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어”라는 이심전심을 확인하고 대통령이든 검사든, 그렇게 해먹을 수 있는 자리에 나도, 내 자식도 기필코 올라가고 보자는 확실한 ‘진실’에 올인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냉소적이지만 현실가능성 있는 결말을 예상하면서 마음은 씁쓸하다.
이 믿지 못할 국민들에게 남는 학습효과가 진실의 무용론과 부정부패와 불의에 대한 동료, 공범 의식 확산이 아니기만 바란다.
다만, 희망은 진실에 대한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