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도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를 하며 언젠가 변호사가 되어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강단 있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잘 챙기며 구로파랑새 청소년자치회의 첫 회장을 역임했다.
철현이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 실용음악을 공부하러 예술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집에 이야기했다가 맞은 적이 있다.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으며 지금은 서울공고 1학년에 다니고 있다.
정현이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듬직한 친구이다. 로봇과 게임, 만화와 일본노래를 좋아한다. 아직은 어떤 삶을 살지 뚜렷하게 정하진 못했지만 이제는 조금씩 살아가는데 자기 원칙과 자기 껍질을 깨나가고 있는 중이다. 영서중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다.
사회를 본 태샘(성태숙, 구로 파랑새 공부방 선생님)은 둘째 아들로부터 형님 소리를 듣는, 땅에 가까운(?) 체구를 가진 파랑새 교사다. 아이들이 말썽을 부렸을 때 예측이 가능한 뻔한 4단계 상담을 실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좌담은 2010년 6월 18일 저녁 8시부터 10시 반까지 구로 파랑새 공부방에서 진행되었다.
태샘 우리가 지난번에 『88만원세대』라는 책을 다 읽고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그때 했던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이야기가 될 거 같아요. 과연 한국에서 청소년으로 살아간다는 건 뭘까? 한국에서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키워드, 어떤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핵심이 될 말은 뭐가 있을까?
민우 우선 핸드폰이죠. 우리들의 의사소통을 위해.
준호 술, 담배, MP3, 여자, 걸, 컴퓨터!
철현 뭐니 뭐니 해도 돈! 이거 없으면 게임을 못해요. 그리고 우리들의 영원한 안식처 피시방!
태샘 피시방이 나왔는데 공간으로 보면 어디어디 있어요? 청소년이 있는 공간들은? (이구동성으로 노래방, 당구장, 독서실, 뒷골목, 볼링장, 운동장 등이 튀어 나온다) 학교는 왜 안 나와요?
철현 학교는 당연한 거니까?
준호 최장시간 학교에 있지만…….
태샘 그럼 학교생활은 어때요?
준호 학교에서 공부보다는 자는 법을 배웠어요. 학교에서 120분 잤어요. 애들이 안 깨워주더라고요. 자고 일어났는데 수업이 다 끝났더라고요.
민우 저는 학교에서 공부해요. 죄송해요. (웃음)
태샘 왜 죄송하지? 학교는 공부하는 곳인데 공부를 하니까 죄송한 곳이 학교가 되어 버렸네.
정현 저는 학교에 속하거나 속하지 않는 상태로 있어요.
태샘 네 사람 모두 다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네.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도 다 다른 학교생활을 하는 거 같아요.
민우 저는 쉬는 시간마다 문제집 풀고 공부하고 그래요.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열심히 듣고.
태샘 이런 모습이 바람직하고 정상적인 모습이길 사회에서는 바라고 있잖아. 그런데 학교에서 공부하면 창피한 분위기가 되어버렸고, 학교는 공부하는 곳인데 눈치를 봐가면서 공부해야 돼는 곳이 되어버렸네. 정현이는 학교생활이 어때?
정현 저도 공부 쪽으로 많이 하는 편이죠. 그런데 흥미가 없으면 집중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고. 틈만 나면 음악 듣는 곳이고, 또 공짜로 에어컨 틀 수 있는 곳? 물론 선생님 허락이 있어야 하지만.
준호 저한테 학교는 액션 어드벤처 판타스틱! 쉬는 시간마다 매점 뚫기놀이로 시작해서 수업시간에는 종이비행기가 막 날아다녀요. 여기저기서 종이비행기가 날아 오고, 나도 날리고. 오늘은 학교에서 포카리 스웨트(이온음료)가 나왔는데 어떤 애들이 입에 머금고 있다가 우리한테 뱉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반 애들도 열 받아서 학교 옆 강가에서 쓰레기통으로 물을 받아와서 퍼붓고. 복도가 물바다가 되고.
철현 수업시간 되면 아이들이 지우개 뜯어 던지고, 쉬는 시간엔 한 명을 묶고 얼굴에 낙인을 새겨요. ‘낙인’ 이렇게 딱 쓰죠. 장난으로.
정현 그나마 중학교가 나름대로 괜찮네.
“학교에서 공부해서 죄송해요”
태샘 학교는 더 이상 공부하는 곳이 아니고 공부하면 오히려 눈치 보이고, 그런 학교에 왜 다니지? 애들은 학교를 계속 다닐 의사가 있어?
철현 쉬는 시간만이 아니라 수업시간에도 다 놀고 그러죠. 그렇게 노는 애들이 다 공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개중에 공부 잘하는 애들도 있고.
준호 공부 잘 하는 애들은 다 학원빨이에요.
민우 학교는 그냥 밥 먹는 곳인 아이들도 있죠.
태샘 학교가 그런 곳이라는 걸 담임도 알고 다 아는데 왜 그럴까?
민우 부모님들은 모르니까.
철현 우리 반에는 어떤 애가 장난치는 친구한테 낙서를 했는데 그 말이 와 닿았어요. “집에서 너 이러고 다니는 거 아냐?” 솔직히 공부 좀 잘한다는 애들은 집에서 ‘잉여’처럼 지내는 거 같아요. 학교에서는 그나마 얘기할 사람이 있는데 집에서는 공부만을 강요하니까.
민우 그래도 학교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죠. 학교에 좋은 선생님도 있고 잘 가르치는 선생님도 많으니까.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학교에서 그냥 학교 수업 듣는 게 저한테 이로운 거 같아요.
태샘 준호한테는 지금 시기는 뭐야? 사회생활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노는 시기?
준호 그냥 추억을 쌓는 거죠. 왜냐하면 제 경우를 보면 민우는 혼자 공부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냥 혼자 공부하는 거, 혼자 노는 거 싫어요. 함께 놀거나 떠드는 게 좋거든요.
태샘 어제 이번에 새로 당선된 서울시교육감이 왔었잖아. 학교에 이렇게 불만이 많았는데 왜 어제는 아무 이야기도 안 했지?
준호 어제 그 간담회 정말 불만 많았어요. 어제 왜 발언을 안 한 줄 아세요? 솔직히 하려고 했는데 그 사회자가 다음은 생협 관계자가 말하겠습니다. 그 발언 끝나자 다음에는 전교조에서 말하겠습니다.
철현 학생, 학부모, 교사 간담회라고 해서 갔는데 다 어른들 이야기만 했잖아요, 처음에 학생 두 명 먼저 하고 교사는 8명이나 이야기하고. 차례, 정해진 순서가 없었다고 하지만.
태샘 우리가 교육감을 만나서 건의를 하겠다고 해서 간 거잖아. 초반에 멈칫멈칫 했지만 나는 왜 너희들이 말을 못 할까 생각했는데 이제 들어보니까 기분이 언짢아서 말을 안 한 거였다는 거네.
철현 그리고 간담회 하기 전에 우리가 바라는 점을 미리 적었으니까 나중에 보겠지 싶은 생각도 있었고.
태샘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어때? 나는 학교에 비정규직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 기간제 교사라 그러던데. 교장이 지우개도 잘라서 쓰라고 그러고, 그 돈 모아서 교장이 자기 소송비용으로 쓴다는 이야기, 학교 회계 보는 사람들이 공무원으로 되게 해 달라는 이야기. 많은 요구들이 있었잖아. 그런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교육감이 되면 학교가 너희들 생각대로 약간은 변할 거 같아?
준호 솔직히 학생들 이야기 귀담아듣는다고 했는데 어제 그런 느낌은 안 들었고 특별한 학생들 이야기, 그리고 마치 비정규직분들처럼 큰 피해를 받고 있는 분들만 이야기하니까 솔직히 말하기가 그랬어요, 기분이. 마음속으로 부담감이 생기고.
태샘 그럼 준호는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이 뭐야?
준호 벌점제! 저는 지금 벌점이 18점이에요. 2점 더 받으면 기압 받으러 가야 해요. 좋아반으로. (좋아반의 정식 명칭은 특별반으로 담당 교사가 지도를 하면 ‘좋아!’라는 구호로 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좋아반’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거기 들어가면 벌점 때문에 강제로 공부하는 척해야 하고, 공부한 거 보여줘서 사인을 받게 해요. 좋아반 애들한테 물어보면 다 좋아반 나가기 위해 그러는데 이게 무슨 공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고, 고쳐지는 것도 없고.
태샘 그럼 준호는 언제 어떻게 공부해?
준호 집에서는 안 해요. 집에서는 집안일 하고, 집에서는 절대 안 해요. 할 맛도 안 나고 여건도 좋지 않고. 스탠드 켜놓고 하면 엄마가 잔다고 빨리 끄라고 하고. 태샘은 저희 집 와봤죠? 저희는 부엌에서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두 시간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요. 허리가 아파서. 또 여름이면 모기가 극성이거든요.
철현 저도 밖에 나가서 해야 되는데 도서관 간다고 하니까 진짜 뭐라고 해요, 아버지가.
정현 저도 학교 끝나면 공부방 와서 공부하고. (다들 웃음. 여기저기서 “공부방에서 언제 우리가 공부를 했냐?”는 말이 이어진다)
민우 말만 공부방이고.
태샘 하도 공부를 안 해서 우리가 공부방으로 이름붙인 거 아니야? 그건 그렇다 치고.
정현 중1, 2학년 때는 느슨했는데 이제부터는 중3이니까 이제 바꾸려고요. 웬만해서는 공부방에서 하려고 하는데, 다 같이 있으면 왠지 모르게…… 혼자 하면 편한데 그러면 모르는 게 있을 때, 막히는 게 있을 때 어려우니까.
태샘 우리 공부방이 같이 있어서 좋기는 좋은데 공부하기는 안 좋은 여건이야. 다들 너무 친하고 계속 말을 시키고,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지.
민우 그래서 오늘 “공부 좀 하자” 그랬어요. 정색하고 싶지 않았는데 “제발 공부 좀 하자.”
준호 미안, 미안. 공부 안 해서 미안.
태샘 대한민국 청소년에게 공부를 빼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준호 저는 정말 좋죠. 저는 알바 뛸 거예요.
철현 학교는 아이들과 만나러 가는 것도 있기 때문에 공부를 안 한다고 학교에 안 가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아이들과 소통이 단절되는 건 좀…….
“저는 알바! 혼자 살 준비를 해야죠”
태샘 우리가 예전에 봤듯이 핀란드 같은 외국을 보면 대학 가려고 그렇게 죽어라 공부하지는 않잖아? 의사가 되거나 목수가 되거나 격차가 별로 없으니까.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학을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직업을 구하고. 나중에 다시 공부하고 싶다 그러면 학교에 가면 되고. 그게 보장이 되는데, 우리도 만약 그런 식으로 될 수 있다면, 그런 게 가능할 수 있다면 청소년 시기에 뭐를 해야 할까?
철현 자신의 적성. 예를 들어 이 사람이 미술에 소질이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공부 안 하고 그림연습을 하고, 과학에 있다면 과학에 파고들고. 학교에서 있는 시간이 많고 시험에 얽매이고 그러니까 적성에 맞는 걸 할 시간이 없는 거 같아요.
준호 저는 알바. 돈 벌어서 집 나가려고요. 혼자 살 준비를 해야죠.
민우 멀리 멀리 돌아다니고 싶어요. 여행을 많이 하고 싶어요. 경험을 쌓고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거, 뮤지컬을 배운다던가, 풍물 배우는 거, 여러 가지 활동들. 그런 거 한 번 해봐서 제 적성 찾는 것도 괜찮고, 여러 나라 다녀보고 다른 나라 사람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보고.
정현 저 같은 경우는 취미활동, 문화적인 활동을 좀 많이 하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공부 때문에 문화 활동을 못하잖아요. 영화 관람 같은 것만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는다거나. 저 같은 경우에는 기계라든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다보니까 프라모델 조립 같은 거 많이 해보고 싶은데 시간도 없고, 일단 금적인 문제도 있고. 돈이 있다고 해도 시간이 없는 게 가장 큰 거 같아요.
태샘 충분한 시간 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여건이 안 된다는 거네. 이야기를 바꿔서 우리 OO이를 알잖아? OO이가 선택한 삶이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안타까운 부분이 있어. 한편 그걸 안타까워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잘 지내고 있는 건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거든. 또 소위 비행청소년이라고 아주 끈을 놔버리는 경우도 있잖아. 우리 주변에 참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 그렇게 해서 놓쳐버렸는데 어떤 거 같아? 또 집에서 안 나오려고 하고. 우리가 매일 데리러 가도 방에서 안 나오려고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하고. 무기력해지고.
철현 우리는 삶을 즐기는 타입이고 걔네들은 삶에서 도피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태샘 준호도 중학교 때 많이 괴로워 했지. 어때? 그런 친구들, 비행청소년이나 날라리라고 부르는 친구들도 있고, 아무것도 안 하려는 친구도 있고.
정현 저희가 공부방이라고 해서 걔네들을 무조건 공부방에 얽매이게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우선은 그 애들이 여기, 이런 시스템에 안 맞는 거고. 그걸 억지로 맞추려다보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랑 안 맞는다는 거를 존중해줘야 하고 우리랑 다르다는 거를 인정해줘야 하고.
태샘 그래, 우리랑 조금 달랐잖아. OO이도 우리랑 달랐지. 왜 어떻게 우리랑 다른 걸까?
준호 솔직히 말해 정현이랑 저랑 매 주말마다 OO이를 만나요.
정현 좀비와 인간의 관계로 만나고 있죠. (다들 웃음)
준호 OO이는 물어봐도 나는 딱히 할 거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소위 날라리랑 일진이라고 말하는 애들한테는 앞으로 “너 뭐하고 살 거야?” 물어보면 “생각해본 적 없는데” 하는 반응이에요. 대부분 “그냥 알바하고 살래.” 걔네들은 꿈이란 게 없고 적성이 어떤 건지도 모르고. 다만 사고 안치게, 꿈을 심어주거나 하고 싶은 걸 찾던가, 문화 활동 그런 걸 중점으로 하면 괜찮지 않을까.
태샘 우리도 그런 거 많이 하지 않았나? 강요하지 않고.
준호 솔직히 강요가 많았죠. 수유너머에서 하는 강좌부터 시작해서. 물론 공부는 해야 하지만 공부 쪽으로 강요가 있고 또 하고 싶지 않은 프로그램에도 참여해야 하는 강제성. 어디 가고 싶지 않은데 그냥 가래. 그럼 가야 되는 거야. 나는 힘든데, 가기 싫고, 몸도 지쳤는데 어쩔 수 없이 연극 보러 가야 되고. 그럴 때는 정말 울고 싶어.
정현 진짜 예전에 지금 입고 있는 이 회색 추리닝 입고 있었는데 오페라 하우스 가래. ‘예술의 전당’에 있는.
태샘 민우는 OO이의 무기력함이나 그런 걸 보면 어떤 거 같아? 개인의 특성일까? 개인의 특성도 있겠지만. 아니면 준호나 정현이의 말대로 공부방에서 강요를 심하게 해서 그런가?
민우 공부방의 영향보다는 개인의 의지하고 학교에서의 생활 때문에 그렇게 많이 변한 거 같아요. 공부방에서 강요가 있다고 하지만 그냥 안 나오면 끝이잖아요. OO이 같은 경우는 공부방에서 강요했다고 나간 거 같지는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나갔다가 학교 애들이 노니까 자기도 그냥 그런 애들과 놀면서 그렇게 된 거 같아요.
태샘 그러면 너희는 학교생활이 성공적인 거 같아?
준호, 정현 저희는 만족해요.
민우 저는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지금 배워야 할 것도 많은데 배울 시간도 없고 여건도 안 되고. 부족한 게 많은데……. 항상 불만이 많은 거 같아요. 이제 공부를 좀 잘 하게 되니까 무서워요. 초조하고 무섭고, 경쟁하는 애들이 너무 세니까. 저도 OO이처럼 나가 떨어져볼까 그런 생각도 해봤는데 제 사정도 있고 기대해주는 사람도 있고. 이거 아니면 다른 길이 없으니까.
철현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민우는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나는 앞으로 살 날이 많다, 대학 가서 공부할 바에야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하겠다, 그런 생각을 한 거죠. 나중에 필요하면 그때 대학은 가면 된다고.
태샘 그래, 민우 마음이 이해 돼. 초조하잖아. 많이 불안하고. 민우가 가끔 내는 짜증이 그게 사실은 성질을 내는 것보다 뭔가 해도 안 되는 거 같은 좌절감에서 나온다고 느낄 때가 많거든. 민우는 스스로 배수진을 치고 이거 외에는 길이 없다고 하는데 민우랑 같이 경쟁하는 애들은 3~4명이 함께 싸우잖아. 자기는 앞에 있고 그 뒤에 엄마랑 아빠, 민우는 1대3으로 싸우는 거니까, 그나마 우리 있다고 하지만 공부방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어떨 때는 심지어 방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쓸데없는 좌담을 하자는 둥, 교육감을 만나러 가자는 둥. 껄덕하면 연극을 보러가자는 둥 철딱서니 없이. (웃음)
정현 공부방 선생님들은 공부를 하라고 하면서도 공부 아닌 거만 보여주고.
태샘 준호는 경쟁이 안 느껴져? 다들 우호적이고 협력적인가? 불안하지 않아. 네가 사회복지사 하고 싶다고 했잖아. 이대로 가면 할 수 있을까?
준호 앞으로 살 날이 많으니까. 100살도 넘게 살 거니까 걱정 없어요. 그리고 어쩌다보니 뒤에 무서운 인물도 생겼고. (준호는 보건복지부의 취약계층 지원사업인 휴먼네트워크 프로그램으로 보건복지부장관과 멘토링을 하고 있다.) 나를 감시하는 보건복지부! 오늘도 학교에 전화 왔어요. 휴먼네트워크에서. “네, 지금 책 펴놓고 문제집 풀고 있어요.” 사실 친구 MP3 뺏어서 귀에 꽂고 담요 덮고 자려고 폼 잡고 있을 때였는데. 내가 알고 보니 거짓말의 황태자였더라고요.
태샘 빨리 장관이 바뀌어야 그런 사업이 없어질 텐데. (웃음) 철현이는 학교생활, 경쟁에 대해 어때?
철현 저는 내신 석차가 중학교 때는 49.7%였고 고등학교 들어와서도 50%예요. 내가 그나마 중간이라도 지켜냈구나, 뿌듯한 게 있어요. 그런데 경쟁에 섞이기 싫어요. 솔직히 경쟁을 해서 대학을 목표로 두고 달리는데 대학에 필요한 자격증을 다 따고 나서도 대학 나와서 취업 못하면 다 꽝이잖아요. 그럼 뭐 해야 되지? 저는 그렇게 살기 싫거든요. 내 꿈을 이룬다던가 그런 목표로 살고 싶어요.
정현 저는 중3이니까 이제 경쟁이 많이 심해지죠.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저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교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대학을 목표로 정하는 것도 아니고 방금 든 생각인데 중학교 졸업하고 하자센터 노리단(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에서 하는 공공적 문화예술사업) 같은데 가입해버릴까? 그런 생각도 해보고.
태샘 너희 엄마 걱정 많으시겠다. (다들 웃음. 정현의 엄마는 다름 아닌 성태숙 선생이다.)
정현 근데 주변 사람들 시선이랄까, 제가 살고 싶은 방식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해주지 못하는 거. 설득할 자신이 없는 거는 아니지만 유치원, 초중고대, 이 사이클 속에서 좋은 곳을 가야 한다는 게 있고. 거기서 경쟁, 대학 가면 취업경쟁, 회사 안에서도 경쟁이 계속되고, 그리고 나면? 그게 문제인 거예요. 무조건 경쟁을 시키다보니까 아이들은 기계가 돼가고 경쟁이 사라지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거.
철현 옛날에 어디선가 봤는데 어떤 레퍼가 ‘꿈이 뭔가’라는 주제로 만든 게 있는데 “꿈이 뭐예요?” 대학생에게 꿈이 뭐예요? 그러면 대답을 못해요. 진짜 슬프더라고요.
정현 중3 기술과정에 진로에 관한 게 나와요, 기술 수행평가가 진로를 정해서 발표하는 건데 저희 반에서 대략 반 이상, 지금 17명이 발표했는데 발표 준비해온 애들이 딱 3명. 나머지는 준비 자체를 안 해왔어요. 애들이 귀찮아서 안 해올 수도 있겠지만 또 그걸 잘 몰라서 그런 거 같아요. 저희 반 어떤 애는 자기가 골프선수를 하고 싶은데 저한테 하는 말이 골프선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봐달라는 거예요.
민우 같은 경우인데 선생님이 종이 준 다음에 꿈을 쓰라고, 10대, 20대, 30대 순서로 쓰라 그러면 애들이 다 써오기는 하는데 그 내용이 다 뻔하고 40명 중에 30명이 그렇게 써오고 한두 명만 자기 꿈을 적어오니까. 그런 거 보고 많이 안타깝죠.
철현 저희는 과가 전기과니까 대부분 전기 기능사를 적는데 저는 음악평론가를 적었어요. 그러니까 애들이 비웃는 거예요.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비웃고, 누구는 욕도 하고 그래요.
태샘 진로지도는 아주 형식적이고, 진짜로 하고 싶은 거를 적으면 비웃음을 당하는 분위기라는 말이네.
정현 경쟁을 안 하면 평범하지 않고 특이한 거라고 보는 거죠.
태샘 나는 노력 안 하고 살고 싶다, 이런 이야기가 통하지 않고, 더 노력하고 더 특별하려고 해야 하고. 공부방도 그래. 공부방도 평가받는 거 다들 알고 있잖아. 애들한테 더 많이 해줘라, 애들에게 필요한 걸 알아내서 더 많이 연계해주라는 거야. 너희는 프로그램이 싫다고 아우성이지만 우리 공부방은 다른 데 비하면 프로그램도 너무 없고, 뭘 안 해서 진짜 문제야. 뭘 많이 하고, 뭘 많이 연결지어줘야 그게 평가에서 점수가 올라가는 거야.
준호 정말 미쳤구나! 드디어. 수유너머에 한 번 가봐야 정신을 차리나! (다들 웃음)
“엄마는 돈 벌잖아, 그러면 게임 끝이에요”
태샘 너희가 그렇게 수유너머가 싫다고 하는데 사실 수유너머 프로그램이 다른 거에 비하면 좀 강제적이고 암기도 시키고 그렇지. 그러면 거기 수유너머의 선생님들, 여기 공부방에서 만나는 선생님들, 그리고 학교에서 만나게 되는 선생님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정현 제가 볼 때는 수유너머 선생님들은 프로들인데 굉장히 자신의 일에 책임도 많고 그런 분들인데 그런 책임감을 저희들한테도 요구하는 거죠. 너희가 프로그램에 들어왔으니까, 아무리 반 강제적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들어온 이상 책임감을 갖고 끝마쳐라. 물론 그 과정이 힘들어서 다니기 싫다고 말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왜 그때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철현 다닐 때는 정말 힘들어요. 그런데 막상 끝나고 보면……. 그런데 또 다음 학기에는 왜 그렇게 또 힘이 드는 것인지.
준호 이 배신자들! 다들 수유 싫다고 그랬잖아. 공부방을 수유에서 탈출시켜야 한다고.
정현 수유가 보리학교를 구로에서 열면서 프로그램이 정말 많았잖아요. 글쓰기, 영어읽기, 오행, 또 저는 이닥(영상인문제작소)이라는 곳에서 영상 배우러 갔는데 너무 비교가 되더라고요. 거기는 정말 자유로워요. 수유너머가 군대라면 이닥은 학생들만 남겨진 교실처럼 자유로워요.
태샘 파랑새 공부방은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세상이라고 하는 걸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 마침 한화그룹에서 프로젝트 사업이 되어서 천만 원을 받아서 가능했는데, 그때 우리가 하자센터 노리단을 만났고, 수유너머를 갔고, 목공을 배웠고. 나는 그걸 하면서 뭘 바랐나 하면 너희들에게 세상에서 다르게 사는 사람들,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게 가능하다는 걸 이해하길 바랐던 거야. 공부방에 30명이 있다면 나를 교사로 생각하는 사람은 한두 명 정도일 것이고 다 자기 나름의 스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 스승을 발견하고 만나길 바랐던 것이고. 그럼 학교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민우 학교 선생님은 그냥 선생님이고 그런 데서 만난 선생님은 스승이랄까.
철현 학교에는 두 부류의 선생님이 있죠. 교장의 사랑을 받으려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사랑을 받으려는 선생님. 문제는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거.
준호 저 같은 경우는 중학교 때 선생님에게 교무실에서 1대1 과외도 받았고 선생님들과 관계가 좋았죠. 특히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정말 좋았어요. 선생님이 아니고 친구? 같이 롯데월드도 가고, 같이 밥도 먹고, 우리들이 우울해하면 “자식 영화나 한편 보러 가자!” 그래서 같이 영화 보러 가고. 그러면 진짜 재미있었어요. 나머지는 솔직히 별로였어요.
민우 저는 관계가 저한테 뭔가 많이 알려주려고 하는 거 같고 친절하고. 친구 같기보다는 어른으로 느껴지죠.
정현 저 같은 경우는 이상하게도 아이들보다는 선생님과 더 친해지는 편이니까요. 소위 학교에서 예의바른 놈. 그런 거죠.
철현 학생과 친해지는 선생님은 금방 친해져요. 그런데 교장에 몸 바치는 선생님은 정말 싫어요. 기술 선생님이 있었는데 제가 정말 싫어했어요. 옛날에 학교에서 빵 먹다 들켰어요. 그랬더니 이 새끼 정신이 있는 거냐? 막말을 하고 학생들 앞에서 망신을 주는 거예요. 그때부터 진짜 반항해볼까 하고,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다가 처맞고 그랬거든요.
정현 그 선생님에게 저도 배운 적이 있었는데 저는 그나마 편하게 넘어갔어요. 수업시간에 그림 그리다가 들킨 적이 있었는데 그냥 넘어가고. 그러니까 학교에서 선생님들한테 살아남는 방법은 예의바르게 기는 방법밖에 없는 거 같아요.
준호 나는 진짜 화나면, 맘에 안 드는 선생님이 들어오면 저는 그냥 나가요. 수업 안 들어요. 화나면 “그냥 때리세요.” 하고 “엎드릴까요?” 중3때는 그랬어요.
민우 준호는 선생님과 친구같이 지내서 교무실 들락날락 거렸잖아요, 말썽도 많이 부리고 또 1대1 과외도 하고. 저는 말 잘 듣고 그래서 한 번도 벌 받은 적 없고 오히려 상점 올라가고. 진짜 저는 가만히 있었는데 상점을 받는 거예요. 뭐 꼭 나댈 필요는 없잖아요? 일부러 떠들어서 선생님한테 맞고 그런 거 보면…….
태샘 일부러 그런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지. 일부러 많이 그러지 않나? 준호는 왜 일부러 그러시나요?
준호 저는 나대지 않아요. 그냥 자고 싶을 때 자고, 매점 간식이 땡길 때 수업시간에 그냥 먹고, 자고 싶을 때 담요 덮고 자고. 이 수업시간에 못 버티겠다 싶으면 자거나 음악 듣고. 대신 이어폰 안 보이게 잘 해야죠.
태샘 학교폭력을 당한 적은 없어? 철현이는 어때?
철현 중학교 때 하도 당하다보니까 대처하는 방법을 알겠더라고요. 맞아본 사람이 때리는 방법도 안대요. 그래서 진짜 싸울 때는 우두머리, 한 놈만 패면 나중에는 때리지 못해요.
준호 저는 중학교 때 철연이랑 반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철현이가 당했다 그러면 그냥 놀이터 가서 놀아요. 동네 애들이랑 놀면서 그냥 그렇게 풀었죠. 그런데 학교폭력은 모르는 애들은 몰라요. 중3때 패싸움 했는데 순찰차가 오고 누가 실려 갔다, 구경 간 애들한테 문자가 오고 그래요. 그리고 뒷골목 대박이에요. 한신 휴(休) 아파트가 대박이에요. 가리봉은 이제 대세가 아니고 한신이나 래미안. 요즘은, 멍청한 애들 아니면 대놓고 길목에서 안 해요. 그냥 래미안 106동 맨 꼭대기까지 데리고 올라가요.
철현 아이들은 동네 CCTV위치 다 알아요. 담배 필 때도 그렇고 때릴 때도 그렇고.
정현 저는 본 적은 없어요. 노는 애들은 있지만 걔네들은 딱 보면 알잖아요. 애들한테 비위만 맞춰주면 그냥 넘어가요.
태샘 그런데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아무도 말려주지 않는 게 더 문제 아닌가? 그러니까 학교폭력이 판치는 거 아니야.
철현 무서워서 못 말리는 것도 있고 막상 말려도 선생님에게 말해도 나중에 또 그래요.
태샘 쉽게 말해서 어른들하고의 문제, 우리 다 결손가정이잖아. 다 이혼하고, 어때? 어른들하고 같이 살만한가?
철현 문화적으로는 통해요. 아버지랑 음악으로는 통하는데 다른 면에서는 공부나 그런 거는 다르죠. 그분들이 받던 교육환경이랑 우리가 받는 교육환경이랑 많이 다르니까.
준호 저는 어른들이 싫어요. 세상에서 제일 싫은 전화 베스트 쓰리가 있는데 1위가 엄마, 2위는 최근에 생겼는데 휴먼네트워크, 너무 심한 게 답장을 보내라고. 그래서 진짜로 완전……. 그리고 세 번째는 동생, 그런데 엄마는 진짜 싫어요. 집에 가면 엄마랑은 진짜 말이 안 통해요. 엄마랑 말을 할 바에는 애들이랑 말해요. 핸드폰이 있는 게 정말 다행이에요.
태샘 뭐가 문제야?
준호 집안 일이 문제죠. 엄마는 아프다, 나도 아플 때 있고 솔직히. 엄마는 아프다는 핑계로 누워있고. 나를 시켜먹고.
철현 가장 심한 건 이거예요. 저희가 짜증내도 그건 안 되는 거고, 어른들이 짜증내는 건 당연한 거고. 그게 제일 문제예요. 우리를 어린 애로 보는 거.
태샘 어른들은 돈을 벌잖아.
준호 진짜 엄마가 그게 무기예요. 돈을 벌어오니까. 엄마 왜 일 안하는데? 엄마가 잊어먹고 왜 나한테만 난리야? 그러면 “엄마는 돈 벌어오잖아!” 그러면 게임 끝이에요.
민우 저는 그냥 그런 척 해요. 얘기도 거의 안 해요. 그냥 같이 사니까 사는 거예요.
정현 저는 솔직히 말해서 답답한 면도 많이 있기는 하지요. 저희 개성을 인정해주지 않고 뭔가 쳐내는 것 같은 면도 있고. 때로는 그게 옳게 들리는 것도 있지만 우리랑 문화적 차이가 너무 많이 나잖아요. 6.25전쟁 이후에 IMF도 있었고 그러니까, 그런 걸 다 겪어봤으니까.
태샘 그래. 우리는 딱 보면 아니까 알아. 보면 미래가 보인다니까.
철현 딱 그렇게 말해요. 그런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우리 집은 공부하라는 강요는 안 하는 편이에요.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그 점만큼은 감사해요. 그리고 우리도 문제가 있고 어른도 문제가 있지만, 예를 들어서 어른들이 우리 음악을 듣고는 다 시시한 사랑노래라고. 옛날노래도 다 사랑노래잖아요? 다 똑같은데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인 거 같아요.
“난 각자의 기획은 시작됐다고 생각해”
태샘 좀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사실 지방선거 전에 술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서 울었어. 앞이 안 보이는 거야. 전 구청장이 또 될 줄 알았거든. 그러면 진짜로 살아갈 자신이 없는 거야. 우리는 3백만 원 못 받으면 끝이잖아. 근데 구청에서 언제 뭘 하라 그럴지도 모르고, 그걸 다 해낼 자신도 없고, 많이 피곤했어. 근데 갑자기 곽노현 교육감이 딱 되고 구청장도 바뀌고, 벌써 구청장 두 번 만난 거 알아? 그것만 바뀌어도 나는 너무 살 거 같아. 공부방은 지금이 제일 힘들 때야. 너희들이 고령화, 고령화 이야기를 하는데 진짜로 애들이 안 들어오잖아. 그리고 우리가 돌보고 싶은
아이들 찾기가 너무 어려워. 학교랑 소통이 안 되니까. 시골은 학교 하나에 센터 하나 있는데 어느 날 교장이 방과 후 시설 만들어서 남아라, 그러면 센터는 문을 닫아야 하는 거야. 그런 일들이 벌어져. 그런 속에서 우리 같은 공부방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데 희망은 우리랑 같이 했던 너희들, 너희가 어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하면 뭔가 달라질 거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너희들은 어떨 거 같아? 그리고 너희들 그거 알아? 강남에 정말 잘 사는 아이들은 못 사는 게 뭔지 몰라. 연탄을 본 적 없는 아이들, 옥탑방이 TV에는 나오지만 거기 나오는 옥탑방은 연애하는 곳이지. 우리 옆에 옥탑방에서는 세탁기가 고장이 나서 손빨래를 해야 되는 곳이잖아.
정현 강남에서 보면 우리 생활은 완전 ‘아마존의 눈물’인 거죠. 강남 애들한테 보여준다면 아마 이럴 걸. 쟤네들은 왜 저렇게 살지?
준호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박물관에 연립을 해야지(박물관에 전시를 한다는 것을 ‘연립’한다고 표현한다.).
철연 아니지. 강남 애들을 박물관에 연립해야지.
태샘 그런다고 서로가 서로를 아는 게 가능할까? 며칠 전에 보건복지부 가서 싸우고 왔는데 우리가 사는 3백만 원, 복지부 공무원이 혼자 받는 급여가 3백만 원이 넘을 거야. 우리는 그 3백으로 사는데 그 사람에 대해 분노를 키우는 게 옳을까? 아닌 게 옳을까? 어떻게 해야 서로가 서로를 알고 살 수 있을까?
철현 노래나 예술로 많이 알리려고 하는 거 같은데 사실 사람들이 그런 거에 관심이 아예 없잖아요.
준호 결국 혼자 알아서 배워야죠. 자기가 알아서 거짓말 하는 법도 터득하고, 사람 구슬리는 법도 자기가 터득하고. 결국은 다 자기가 알아서 해야 되요. 연애하는 법도 그렇고 세상 살아가는 것도 그렇고. 사회 나가면 결국 자기 혼자니까.
태샘 그럼 그렇게 사회 나가면 다 혼자가 되는데 청소년 시기에 바람직한 교육은 뭘까?
철현 학생과 소통만 되면 다 바람직해요. 또 놀면서 배우는 게 가장 좋은 거 같아요. 노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학습이 되는 거.
정현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놀면서 교육을 한다는 게 효과가 떨어진다는 거지. 효과가 떨어지면 경쟁에서 밀리는 거니까. 그럼 끝이니까.
철현 그럼 바람직한 교육은 경쟁을 안 하는 거지.
태샘 나는 지금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어. 내 일에 필요하니까. 어느 정도 공부하느냐 하면 대학원을 다니지 않지만 웬만한 대학원생 수준으로. 더 열심히 할 때도 있어. 나는 가장 중요한 게 기획력이라고 생각해.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 뭘 할 건지, 그걸 어떻게, 누구랑, 어디까지 할 것인지, 기획을 아이들이랑 함께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공부라고 생각했어. 내가 바라는 교육은 그런 거라고 생각해.
민우 그런데 우리 스스로 기획을 못하고 있어요.
태샘 아니 민우는 기획을 했다고 생각해. 너는 학교 공부를 해야겠다, 정현이는 아직 망설이고 있어. 준호도 사회복지학을 하겠다고 기획했는데 망설이고 있지. 철현이는 음악을 하겠다고 하지만 아직 결정을 못 하고 있고. 어쨌든 각자의 기획은 시작되었다고 생각해. 그런데 그 기획대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 그것에 필요한 것을 주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멋있는 말 한 마디씩 하고 마무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준호, 철현, 민우, 정현 (이구동성으로) 그만, 그만! 벌써 두 시간도 더 했어요.
- 태샘의 수다 후기 -
헉, 창피해라. 저는 왜 이렇게 말도 많고 쓸데없는 말이 많았을까요? 아이들이 좀 더 충분히 이야기하고 끝맺음할 수 있도록 좀 더 진득하지 못하게 그야말로 나대는 제 모습을 본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파랑새 아이들은 사실 공부에 조금 문제가 있긴 합니다. 열심히 하고 싶지만 못하거나 공부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이런 바람과 어수선함, 그렇지만 그 안에 잠깐씩 보이는 귀여운 순진함이 우리들 말 속에 살짝살짝 보여 저도 많이 웃었습니다.
청소년으로 사는 것도 어렵고, 가난한 청소년으로 사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나마 모여서 힘을 키워보자고 했는데 보다시피 때로는 모여 있어 생기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늘 언제나 고군분투가 필요하지만 아직은 용기와 희망을 품고 때로는 치기어린 말썽을 부리기도 하는 우리 파랑새 청소년들입니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