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주인권회의 주제인 ‘사회권과 돌봄-나눔의 공동체’는 지난 2008년 제주인권회의의 주제(‘시장과 인권-생존과 존엄 사이’)와 연결을 해보면 연속성을 가진다는 것을 분명히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주인권회의에서는 사회권 각각의 상황에 대한 어떤 위기와 함께 사회권 논의를 다시 촉발시키는 그래서 실천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의 장, 그리고 사회권과 기존의 사회권 언어에서 나오지 않았던 주제를 다룸으로 해서, 사실상 사회권과 사회권 넘어, ‘사회권 +α’를 동시에 논의해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사회권인가, 무엇을 돌보고 나눌 것인가
제주인권회의는 (지난 2박 3일 동안) 사회권 문제를 인권의 시각, 복지정책의 경험,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교차 토론을 진행했으며 그 다음으로 사회권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불러올 수 있을까와 동시에 사회권의 한계가 무엇인지, 기존의 사회권 틀에서 담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고, 그 다음으로 사회권을 구성하는 각각의 권리영역을 교차하여 어떤 연계성과 특징이 있는지를 토론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제주인권회의에서 제출된 문제의식을 보면,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어떤 주제를 구성할 것인가?’‘지역 정치를 통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사회권을 접근하는데 있어서 기존에 국가와 인권이라고 상정했던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새로운 공동체 논의가 사회권 구성논의에 같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큰 흐름의 문제의식은 개별적인 여러 가지 쟁점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흐름의 틀을 잡아줬던 라운드 테이블과 1세션 주제는 ‘왜 우리가 사회권을 제기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돌보고 나눌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제기됐었습니다.
일단 현재 한국의 현실은 사회권의 위기라는 상황 판단입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결과라는 점, 그 중의 하나로서 ‘국가 없음’의 상황이라는 점, 배제와 박탈의 성격을 깊게 심층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 거론되었으며, 그 대안으로서 인권의 정치, 인권의 헤게모니, 사회권의 온전한 접근과 같은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근본적인 취지는 ‘이것이 기존의 복지나 개별 정책적인 접근과는 달리 보편적 권리가 갖고 있는 힘을 다시 확인하자’는 것과 함께 ‘사회성을 가져오자’, ‘연대성을 회복하자’ 그리고 ‘국가의 의무를 재규정하자’는 논의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속에는 통상적인 사회권을 넘어서는 의미가 이미 담겨 있었습니다. 즉 기존에 있던, 앞에서 나온 통상적인 인권의 힘 말고 다른 것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패러다임의 쉬프트(이동)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문제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과 함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노동권이라는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지금 저희가 사회권과 복지를 접근하는데 있어서 기존의 틀이 갖고 있는 한계, 일 중심적인 패러다임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강력한 문제제기가 있으며 이것은 여성주의적인 접근을 통해 이번 회의에서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편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제주인권회의에서 충분히 답해지지 않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박래군 님이 제기하신 “왜 무상급식은 되는데, 용산은 안 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다시 해석하면, 국가의 폭력과 배제에도 층위가 있고, ‘배제 속의 배제’, ‘박탈 속의 박탈’이 있다는 것인데 이 점을 사회권이라는 폭넓은 접근에서 충분히 포착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제기와 함께 현실이 이렇게 심각한데, 돌봄과 나눔이라는 언어가 사회권 현실과 친화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이 역시 사회권과 함께 사회권 넘어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라는 그 틀의 질문에 들어간다고 봅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 ‘사회권을 넘어’라는 문제제기가 다각적으로 제기된 점은 굉장히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배제와 박탈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정치
사회권의 위기에 관해서도 조금씩 다른 편차 혹은 층위가 다른 진단이 있었습니다. 사회권의 위기를 부재의 위기로서 접근했던 측면이 있는 반면 충분성의 위기로 접근했던 것도 있었고, 패러다임의 위기로 접근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부재의 위기라는 것은 배제와 박탈이 심각한 상황인데 권리가 없다는 점, 정책과 관행과 조건에 있어서 부재가 많다는 점, 추진할 수 있는 지도력이나 정치적 의지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 이런 것들이 부재의 위기로서 설명이 되는 것인데 만약에 이러한 것이 어느 정도 갖춰졌다면 과연 충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실제 배제와 박탈의 상황이 너무 앞서가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권의 틀로서는 따라잡지 못한다는 이유와 헌법적인 접근과 복지제도적인 접근과 각론적인 접근에서 전체의 전략이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점은 패러다임의 위기와도 연결이 된다고도 생각하는데, 패러다임의 위기를 제기하는 까닭은 사회권의 각 구성이 동등하지 않다는 것과 사회권의 각 구성들이 악순환의 구조를 이루고 있고, 그 악순환의 구조에 일종의 핵심 고리가, 핵심모순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러한 사회권의 문제가 결코 젠더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여성주의적인 시각에서 패러다임과 프레임을 바꾸는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정규직 노동 중심의 접근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된다는 점, 재원부담이라든가 국가-시민권의 틀에서 접근한다든가, 국적의 틀, 헌법의 틀에서 접근하는 것이 다 한계를 지닌 것이라는 제기가 있었습니다.
세세한 부분을 다 소개할 수 없지만 이런 논의들을 다 모으면 부재의 위기와 패러다임의 위기는 굉장히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가 합니다. 그래서 복지정책으로서의 접근과 사회권적인 접근의 긴장관계에 대해서 더욱 더 깊게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고, 앞으로 사회권의 회복이라는 것이 노동, 젠더, 소득, 재산, 복지, 시민권 등과 관련해서 어떠한 새로운 사회경제체제 수립에 기여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되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사회권에 대한 기획과 주제설정에 있어서 기존의 사회권 틀을 벗어나는 도전적인 주제설정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여전히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세부적인 사회권적 검토가 과연 충분했던가, 사회권적 접근이라고 한다면 권리로서의 규정, 그리고 국가의 적극적이고 다면적인 의무를 설정하는 작업, 사법적 구제의 실현방법에 대한 검토, 이에 따른 법체제와 관행을 검토하는 것인데 이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회권과 국가-시민사회의 관계입니다. 단순한 배제와 박탈이 아니라 배제가 배제를 딛고 서는 배제, 2중, 3중의 배제이고 그것이 국제적으로 진행되는 박탈과 함께 연결이 되어 있는데, 이것을 주로 ‘국가의 작용이나 부작용, 국가가 뭘 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뭘 하지 않았기 때문에’로 이야기하는 것이 충분한 것인가 하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사회권을 보장함에 있어서 국가를 바라보는 방식은 충분한가, 재산권과 인권의 충돌에 대해 국가의 의무를 어디까지 부여해야 하는가, 사회권을 제공하고 요구를 들어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자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와 같은 논의도 있었으며, 기존의 헌법적 체계를 넘어서서 사회권 문제를 논의하는 것과 연결되어 사회권과 국가-시민사회의 관계, 시민사회의 압력과 실천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드러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충분히 나오지는 못했지만 경찰국가화라든가 이주자의 치안문제화, 청소년 문제를 잠재적 범죄자로 본다든가 하는 사회문제의 치안화 혹은 사회문제의 안보화라고 볼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배제와 박탈의 ‘국가 없음’ 상황이라고 설명되는 것, 이러한 문제가 태생부터 갖고 온 안보국가적인 성격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고, 복지예산과 국방비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으나 결국 한국이란 국가의 안보국가적인 성격과 사회권이 어떤 연관이 있는가에 대해 보다 깊은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안보문제가 처음부터 사회권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라면 이 양자를 어떻게 함께 논의하고 대응할 것인지가 숙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 기초하여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한국사회에서 배제와 수탈, 차별의 현실에 대한 보다 깊은 각성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또한 사회권 발전을 위한 후속활동으로서 이성훈 선생님이 제안하신 세 가지 유기적 통합적 접근(권리별, 대상별 접근과 총론적 접근의 결합, 그리고 운동과 제도와 정치, 문화 집단의 유기적 결합)이 필요하다는 점, 각 국가와 사회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을 수립하자는 점, 사회권에 기반을 둔 인권운동과 인권정치, 특히 지역에서의 주체형성과 모델형성이 필요하다는 점, 더 나아가서 사회권 실현과 시장-자유주의 경제의 어떤 경계선, 한계, 이런 문제와 사회권 실현과 안보국가의 변화의 관계 그런 점들이 추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논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앞으로 이 논의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어떤 체계적인 모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시사점을 받았습니다. 굉장히 불충분하고 각 세션 보고자들의 판단에 의거한 2010년 제주인권회의의 잠정적인 평가로 받아들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 덧붙이는 말
-
이 글은 2010년 8월 25일부터 27일까지 열렸던 제주인권회의 마지막 날 전체토론 및 평가 자리에서 발표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