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퍼진 공포바이러스
“지난해 5월 26일 경찰이 큰 아들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인터넷에 쓴 글 때문에 조사할 게 있으니 아빠 핸드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아들이 안 가르쳐주니까 그러면 니 애비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고 협박을 했대요. 그런데 어떻게 아들 번호는 아는데 제 번호를 모를 수가 있겠어요? 결국 아들 입을 통해 제 번호를 받아내고서는 부산 영도경찰서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인터넷에 올린 글로 조사할 게 있으니 경찰서로 출두하라고. 갈 이유도 없고, 사는 데가 안양인데 어떻게 부산까지 가냐고 했죠. 그랬더니 안양 동안경찰서로 사건이 이관되어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출두하라고.”
아고라(포털 ‘다음’의 토론방)에 천안함 관련 패러디 동영상을 올린 게 화근이었다. 경찰에서 연락을 받기 하루 전날인 2010년 5월 25일 그는 아고라에 ‘삭제된 TOD 동영상 기록을 네티즌이 복원!’이라는 제목으로 아고라 경제방 베스트에 오른 천안함 관련 패러디 동영상을 ‘펌질’해 올렸다. ‘웃자고’ 올린 글이었건만 공권력은 ‘죽자고’ 덤볐다. 검찰이 이 게시물을 수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경찰이 그를 전기통신기본법상 ‘허위사실유포죄’를 적용해 소환한 것이다. 소환을 거부하자 형사가 찾아왔고, 이마저 거절한 8월 16일에는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으로 들이닥쳤다. 두렵기보단 씁쓸했다. 큰 죄나 지었으면 몰라도 인터넷에 정부 발표와는 다른 논조의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잡혀가야하는 현실이 어처구니없었다.
2008년 5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촛불이 전국을 뒤덮은 이후 듣도 보도 못했던 허위사실유포죄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전기통신사업법상 47조 1항(“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 설비에 의해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을 일컫는 허위사실유포죄는 1983년 전두환 정권 때 만들어진 뒤 30년간 단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던 죄목이다.
하지만 2008년 촛불 이후 잠자던 법이 깨어나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을 넘나들며 맹위를 떨쳤다. 촛불시위 과정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단체 휴교를 하자고 문자를 보낸 학생, “전경들이 촛불시위 진압을 거부하기로 했다”는 글을 인터넷에 게재한 시민 등이 이 조항의 적용을 받아 공권력의 수사선상에 올랐고, 아고라 경제방에서 활동했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역시 이 덫에 걸려 법정에 서야했다. 또한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 당시에도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장난 문자를 보냈다는 이유로 청소년을 포함한 다수의 시민들이 이 조항의 적용을 받아 기소되기도 했다. 일부는 무죄를, 또 일부는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유죄인가 무죄인가 그 결과만큼이나 중요한 건 자신이 쓴 글을 일상적으로 공권력이 감시한다는 공포를 확산시킨 것이었고, 언제든 그들이 원할 때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주지시킨 것이었다.
“광우병 촛불에 나간 시민단체의 지원금을 삭감하는 형식으로 시민단체를 탄압했다고 한다면, 촛불들은 개개인들이거든요. 그런 개개인들을 허위사실유포죄 등을 이용해서 탄압하고 있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인터넷에서 이름 있는 논객들을 처벌하려고 하고 있어요. 경찰 사이버수사대라고 전화 오면 그 다음부터 그 네티즌은 글 못씁니다. 전화만 하고 출두요구서 안 보내는 경우도 허다한데 우선 겁을 주는 거예요. 글 잘 쓰던 사람이 글 안 써서 ‘전화 받았냐?’고 물어보면 끄덕끄덕 해요. 웬만한 독종이 아니면 그런 협박을 잘 견디지 못해요. 또 일반 사람들은 법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많지 않다보니 어떤 네티즌이 경찰에 소환됐다, 출석요구를 받았다고 하면 그걸 유죄라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어요. 언론에서도 잡혀간 얘기는 해주는데, 그 뒤는 보도를 안 하죠.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글 쓰는 것을 겁내고, 주저합니다. 이 정권 들어서 가장 많이 위축된 게 온라인이고, 표현의 자유예요.”
20년 만에 거리로 나선 까닭
2008년 5월 촛불이 있기 전만 해도 그는 정치와는 담쌓고 살던 시민이었다. 1970년대 말에 대학을 다녔으니 사회문제에 어찌 관심이 없었겠냐만 1987년 6월 항쟁을 끝으로 가족과 생계 문제만 생각하며 살았다.
“그때 막내가 초등학교 4학년. 광화문에서 촛불시위가 열린다고 해서 현장학습으로 좋겠다 싶었죠. 마침 부처님 오신 날 행사도 있고 해서 막내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세종로 사거리에 명박산성이 등장했는데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군홧발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가 다른 의도를 갖고 있구나 싶었죠. 그 뒤부터 촛불 시위에 열심히 나갔어요.”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아고라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신문에 아고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기에 그런 게 있구나 했는데, 어느 날 인터넷에 여대생이 촛불 시위 과정에서 피범벅이 된 사진이 떴더라고요. 그게 어디서 나온 건지 찾아가다보니 아고라까지 가게 됐죠. 그때는 아고라에 글 써서 베스트 되기가 고시 합격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내 글이 어디 있는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글이 쇄도했는데 정말 대단했죠. 처음엔 하나 두 개 올리다가 본격적으로 글을 쓴 건 2009년도부터예요. 당시 정부쪽에서는 촛불이 꺼졌다고 했지만 꾸준히 나오시는 분들은 여기저기서 게릴라식으로 활동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촛불이 살아있다는 걸 알리고,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자, 뭐 그런 내용의 글을 올리기 시작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지금은 일주일에 하나 정도 글을 쓰지만 한참 글을 쓸 땐 일주일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썼다. 사람들의 마음과 머리에 와 닿는 글을 쓰기 위해 공부도 거르지 않았다. 생계도, 가족도 뒷전이었기에 가족들의 원성도 높았다. 하지만 글쓰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정말 많이 후회했습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잘 설명해줘야 했는데, 내가 정치를 혐오해서 일체 말을 안했더니 이게 잘못된 세상으로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오더라고요. 사교육 문제도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전혀 손을 안대잖아요. 또 대학이 취업을 위한 관문처럼 됐는데 빚내고 대학 다녀봤자 실업자가 되는 세상이고. 근데도 아이들을 대학 보내라며 아이고 부모고 갈취를 한단 말입니다. 사교육하고, 방과 후 교육하고, 대학 입학금, 등록금 내고. 아이들은 경쟁논리 속에 밀어 넣고는 노예화시키고. 이것을 지금 끊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문제나 어려움이 일어나겠구나 싶었죠. 나야 나이가 들었지만 아이들은 잠시 살고 지나갈 게 아니잖아요. 이 시대를 살아야 되잖아요.”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유명한 인터넷 논객이 됐다. 최근 시작한 트위터에서도 그의 활약은 단연 도드라진다. 트위터에서 그가 쓴 글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팔로워만 3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명실상부한 1인 미디어다. 그 영향력 때문이었을까? 4대강 사업,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설, 천안함 사건 등 사회문제에 대해 거침이 없었던 그의 글은 공권력의 표적이 됐다. 체포영장에 기재된 것처럼 “정부의 정책 등을 비방하는 논조의 글을 상습적으로 게재하던 자”였기 때문이다.
경찰서에서 경찰이 물었다.
“증명되지 않은 내용으로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습니까?”
“국가원수를 모독하고 공익을 해할 목적이었음을 인정합니까?”
그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 어떤 것도 답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법정에 가서 정말 최선을 다해 싸워보겠단 생각만 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공권력에 맞서 대차게 한판 붙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검찰이 기소유예처분을 내리면서 사건은 ‘시시하게’ 끝이 났다.
무엇이 공익입니까?
“2008년도에는 주민번호만 가지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엔 집 전화번호를 넣으래요. 지금은 아고라나 포털에 글을 쓰려면 핸드폰 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은 익명성이 보장되어야만 가능하지 절대로 실명을 통해 드러나지 않아요. 일례로 정부기관에 비리가 있다고 하면 도대체 어떤 공무원이 자기 직장이랑 가정이랑 자기 삶을 다 내놓고 고발하는 글을 쓸 수 있겠어요? 이름이랑 주민등록이랑 핸드폰 번호까지 다 까자고 하면 누가 그 위험을 감수하겠냐는 거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실명제가 민주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인 것 같아요. 모욕죄, 명예훼손죄, 허위사실유포죄라는 것도 이 정부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에요. 정부가 테두리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만 글을 써라, 그렇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그러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기검열을 미리미리 하도록 말이죠. 보수 쪽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최진실 씨 자살사건이에요. 근데 댓글로 자살하는 사람은 정말 특이한 케이스인데, 보편적인 게 아니라 가장 자극적인 것만 가지고 얘기를 하자고 하면 얘기가 안 되는 거죠.
공익이라는 것도 그래요. 공익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국가가 판단할 수 있습니까? 석 선장 같은 경우도 우리 군이 쐈다고 한 걸 유언비어라고 하면서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을 다 간첩이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린 건 국가고, 한나라당이잖아요. 천안함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어떻게 증언할지 모르는 겁니다. 그 당시에는 유언비어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죠. 또 꼭 사실만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거짓말은 절대로 얘기하지 말라고 하는데, 뭐가 거짓말인지는 사실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선 판단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런 법들이 설치고, 사람들의 생각과 표현이 국가가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 갇히는 건 정말 안타깝습니다.”
지난해 12월 28일 헌법재판소는 허위사실유포죄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공익’의 의미가 모호, 사람마다 가치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표현의 자유에서 요구하는 명확성 원칙에 위배돼 헌법에 위반 된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와 네티즌들이 헌재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표했다. 정부가 이 조항을 악용해 “정부의 입장과 다른 ‘사실’추정 게시물은 ‘허위사실’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입장과 다른 ‘의견’게시물은 ‘명예훼손’이라거나 ‘국가보안법’위반이라는 이유로” 삭제하거나 형사적 책임을 물어오면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허위사실유포죄를 땅에 묻긴 이를 듯하다. 벌써부터 한나라당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허위사실들이 ‘면죄부’를 갖게 됐다고 비난하며 대안입법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8월 결성된 ‘공권력 남용 저지 및 기본권 수호를 위한 공동대책위’에서 활동 중이다. 공대위에서 다루는 사건은 크게 두 분류다. 하나는 천안함 사건 등으로 인해 허위사실유포죄의 적용을 받은 사건. 또 하나는 벌써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전에 촛불 시위 및 용산참사 관련 집회 등에 참석한 사진을 증거로 출석요구를 받고 있는 사건이다. 공대위는 지난해 하반기 동안 피해 사례를 모아 두 차례의 피해사례보고대회를 개최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1, 2차 피해사례보고대회의 내용을 몇몇 진보 매체에서 다뤘고, 지금 3차 대회를 준비 중입니다. 사실 우리 활동의 사회적 영향은 미미합니다. 하지만 이런 공대위 활동마저 없다면 그런 피해사례들이 더 많이 밑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그런 것을 방지하고 촛불이 살아있다는 걸, 저항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해야 하는 거죠.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이렇게 소문이 나면 온라인에 댓글이 달려요, 자기도 소환장 받았다고. 근데 피해사례를 모으자, 같이 대응하자고 하면 연락이 다 끊겨요. 글 쓴 것만으로도 탄압을 받았는데 피해사례까지 발표한다고 하면 더 큰 불이익이 생길까봐 숨는 거죠. 근데 공권력이 잘못 사용되면 그것에 대해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요. 그냥 나 하나 피해 받고 끝내야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게 하면 꼭 제 2, 제 3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권력이라는 엄청난 힘이 잘못 쓰일 때 그 피해는, 상상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남용된 공권력에 대해 알리고 저항하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이를 바로잡는 게 필요합니다.”
MB 정권 아래에서는 포기한 남편이 되어버린 그는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고 글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활동가나 투사처럼 살지는 못하겠지만 지난 시대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동료와 선후배들에 대한 부채감을, 좋은 세상을 물려주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세상의 잘못을, 부조리함을 끊임없이 고발해서 그 글을 보는 사람이, ‘아! 이게 아주 잘못 되었구나’라고 느끼게 해주는 게 네티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에서 보도 안합니다. 광우병에 대해서도
그동안 그가 인터넷에 올린 글들이 모두 사실과 진실만을 이야기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사실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허위사실을 막기 위해 글을 제한하고 검열하겠다는 발상은 결국 진실을 차단하려는 발상과 동일할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그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발언할 수 있도록 허해야하지 않을까?
허위와 사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판단되지 않는 날들 속에서, 그래서 허위를 차단하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세태에서,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의 발언은 ‘허위’가 무엇에서 기인하는가를 다시금 고찰하게 해준다. 그 글을 인용하며 인터뷰의 끝을 맺는다.
“루머를 잠재우는 방법은 해명이다. 사실이 아닌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면 될 일이다. 그 해명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불신이 깊기 때문이다. 투명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정부의 해명보다 루머를 더 믿는다. 따라서 인터넷의 루머에 대응하는 우리의 방안은 더 투명하고 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인터넷에 대한 싸움도 결국 몫 없는 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싸움이다.”
사진 | 박김형준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