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법체계는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화려한 언어로 장식되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보니 현실 위에 발을 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헌법이나 법률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도 예외는 아니라서 좋은 말과 어휘들로 포장되어 있다. 예컨대 주민자치센터 운영에 관한 조례는 “주민자치 기능을 강화하여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자치센터는 주민자치 기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보다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 프로그램 위주로 운영한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목적과 현실 속의 실행은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례가 내세운 이상적인 가치를 현실 속에서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실천전략이 촘촘히 고민될 필요가 있다.
조례제정 과정에서 창의적인 주민들의 생각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어떻게 만들지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주도하는 조례제정운동을 보더라도 주민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수렴하는 과정이 생략되곤 한다. 사실 몇몇 전문가들이 며칠 심사숙고하면 조례 하나 뚝딱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상위법이 규정하지도 않고 참고할만한 조례가 전혀 없는 조문을 만든다 하더라도 법체계 형식에 맞춰 만들어낼 수도 있다. 아무래도 법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는 법조인들의 참여는 불가피한 일이지만 조례는 생활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생활 전문가’인 주민들의 참여는 필수조건이다. 주민이 주체가 될 수 있는 조례제정운동이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조례제정의 특성
조례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제정되어야 한다. 법률 이외에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과 같은 법규명령을 벗어난 조례는 상위법 위반이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조례는 제정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조례는 하위 개념의 법이지만 엄연히 법체계 속에 위치함으로써 법적 구속력을 지닌다. 또한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법률이 그만큼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라면, 조례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규정하기 때문에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주민의 위치에서 보면 조례가 법률보다 더 가까이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일,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 보행로를 걷는 일, 시민회관 등의 각종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일, 공원을 이용하고 건물을 짓고 주차장을 설치·이용하는 일 등등 우리 자신은 알게 모르게 조례로부터 권한과 의무를 부여받는다. “조례가 삶의 질을 바꾼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활과 직접적인 접촉이 이루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조례를 제정하는 길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행정발의, 두 번째 의원발의, 그리고 세 번째 주민발의다. 대부분의 조례발의는 행정이 주도한다. 입법예고라는 형식을 통해 주민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긴 하지만 매우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의원발의의 경우 빈번한 편은 아니다. 의원 개인의 의지가 중요하나 일정 수의 의원서명으로 발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의 의지만으로 완전히 성립된다고 보긴 어렵다. 반면 이런 구조 때문에 시민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도 한다.
시행된 지 10년을 맞이하고 있는 주민발의는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현재 120여 건의 사례가 있다. 매년 12건 이상의 주민발의가 추진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주민이 참여하지 않으면 발의가 안 되는 구조다보니 아무래도 주민들이 영향력을 가장 크게 행사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일단 서명요건을 채우고 발의가 된다면 의회가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작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는 정치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변수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 조례를 제정하든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곳은 의회다. 최종 결정은 의회가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단체장이 의결된 조례를 거부하고 재의결을 요구할 수도 있다. ‘서울광장조례’와 ‘서울시 의무급식조례’를 거부한 서울시 사례도 있다. 그러나 결국 재의결은 의회가 한다. 국회와 마찬가지로 지방의회는 입법기관이다. 조례제정운동 과정에 지방의원과 교감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례제정운동의 전략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시급성을 요하는 조례제정운동이 있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복잡한 절차를 고집하기보다는 뜻을 공유하는 지방의원과 협력하여 빠른 속도로 제정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자치나 주민참여 관련 조례, 인권이나 환경, 문화와 관련된 조례 등은 ‘사회적 문화’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접근을 달리 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이런 주제들은 일정한 실천적 경험의 축적을 필요로 한다. 제도적 장치가 완벽하다고 해서, 행정이 야심차게 추진하다고 해서, 혹은 예산이 대폭 확충된다고 해서 성립되는 주제들이 아니다.
최근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만 하더라도 예산 편성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주민참여 문화’에 대한 문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누구의 조례를 통과시킬 것인가를 두고 행정과 시민사회, 의회 간의 갈등이 있다. 권한을 부여하는 범위나 방식, 참여문화 활성화 방안 등 참여예산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런 갈등에 묻히는 느낌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참여문화가 지역사회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긴 호흡의 시간이 필요하다. ‘참여하는 문화’는 제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실천하고 경험한 것이 쌓여 하나의 공통 유전자로 만들어질 때 가능한 일이다. 조례제정은 이러한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다.
주민참여예산의 경우 전략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1)주민들에게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2)동네 단위에서부터 주민참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3)예산학교와 같은 시민교육, 예산 관련 토론회 및 설명회 등을 통해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4)예산 편성의 범위를 어떻게 점진적으로 넓혀나갈 것인가 5)예산주기를 어떻게 앞당길 수 있는가 6)평가와 환류 구조를 어떻게 잘 갖출 것인가 7)더 많은 주민이 참여하고 발언할 수 있도록 어떠한 장치를 도입할 것인가 등등이다. 결국에 이런 접근이 참여 문화 활성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인권의 문제도 문화적인 요소가 강하다. 우리 사회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관심 갖지 못해왔다는 측면에서 보면 최근 지역 차원에서 인권조례를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인권에 대한 사회 여론을 상기시키고 논의를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조례가 담아 놓은 내용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에 있다. 그것은 곧 ‘인권을 옹호하는 사회적 문화 형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조례제정운동의 전략적 중심은 인권 문화가 일상으로 스며들도록 하는 데 있다.
조례제정운동에 시사점을 주는 몇 가지 사례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120여 건의 주민발의 사례 중에는 조례제정운동의 지침으로 삼거나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다. 주민들과 만나서 소통하고 협의하고 협동했던 과정은 조례안이 의회에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졌다. 구민투표조례 제정운동을 전개했던 부평, 주민소환조례를 제정하려 했던 광주, 보육조례 개정운동을 성공적으로 마쳤던 과천, 판공비공개조례를 제정했던 안산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예를 들어 과천에서는 ‘미니포럼’이라는 형태로 주민 설명회를 여러 차례 가졌다. 각종 주민모임에 찾아가 꾸준히 설명하고 토론했다. 영유아 학부모 대상 간담회, 지방의원과의 간담회, 공무원과의 간담회 등 왜 주민발의가 필요하고 어떤 내용으로 조례가 바뀌는지 이해와 협조를 구했다. 주민 이메일 주소를 확보해 주민발의 웹메일을 정기적으로 발송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은 주민들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조례제정운동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부천의 담배자판기설치금지조례운동은 사전 조사가 철저하지 않았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던 주부들이 부천시 소재 42개 학교 주변에 설치된 담배자판기의 정확한 위치와 판매되는 종류를 조사했다. 그리고 담배자판기 주변에 밀착해서 이용하는 실태를 조사한 결과, 담배자판기 이용자 중 24%가 청소년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시의회를 압박하면서 청원운동을 벌였고, 시의원에게 엽서보내기운동, 시의원 방문 활동, 서명운동, 가두 캠페인, 언론홍보 등 대대적인 대국민 홍보에 주력했다. 마침내 1997년 9월에 조례를 제정했고, 그 후 부천시만이 아니라 전국에 영향을 미쳐 길거리 담배자판기를 없애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의 미타카시의 사례도 눈여겨 볼만하다. 인구 17만의 아담한 도시인 미타카시에서 자치기본조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시민 30여명이 모여 ‘자치기본조례를 만들기 위한 시민회의’라는 모임을 만들게 된다. 소규모 인원으로 출발한 이들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과연 우리가 시민의 생각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였다. 즉 ‘시민회의’라는 이름답게 대표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고, 꾸준히 시민들을 만나는 과정을 밟았다. 시민대상 설문조사, 각종 심포지엄과 토론회, 시와 시의회 설명회와 간담회 등을 개최하였고, 6년간 70회 남짓 자체 회의를 거쳐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자치기본조례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미타카시 자치기본조례 제정운동이 인상 깊은 것은 제정 과정의 원칙들이었다. 예를 들면 첫째, ‘소박한 시민의 발상’을 최대한 살리려 했다. 처음부터 이미 만들어진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참고하는 일은 피하고, 철저히 시민들의 창의적인 발상을 조례에 담으려 했다는 것이다. 둘째, 법령의 범위 밖까지 시야를 넓혔다. 시민들이 제안한 창의적인 발상이 종래의 전통적 법 해석 사이에 차이점이 생길 때는 과감히 전통적인 법 해석을 배제했다. 오히려 시민의 시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 법규의 결함을 고쳐야 한다는 차원에서 과감하고 새로운 제안을 조례에 담으려 했다. 셋째, 가장 쉬운 언어로 작성하려고 노력했다. 주민참여가 핵심인 이 조례가 주민이 어려운 내용이라고 느끼는 순간 절반은 실패한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래서 “보통의 교육 수준의 주민이 한 번 쭉 읽어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의 내용과 언어로 작성되었다. 넷째, 자치와 관련된 중요한 명제를 남긴 것도 인상 깊다. 이를 테면, 이 조례는 주민참여가 핵심이긴 하지만 ‘참여하지 않아도 불리하지 않다’는 것을 명시함으로써 형평성을 잃지 않으려 했다. ‘시민의 정의’도 명료하면서 포괄적으로 정의 내렸다. “미타카시에서 거주하고, 일하고, 배우는 모든 사람”이라고 함으로써 ‘거주하는 행위’만큼이나 ‘참여하는 행위’에 방점을 두고 시민의 정의를 내렸다. 이 조항은 최근 우리나라 여러 지방자치단체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그 외에도 ‘18세 미만의 청소년 참여’의 보장, ‘시가 가진 정보는 시민의 공유재산’이라는 개념, 간담회까지 포함한 ‘시의회의 모든 회의 공개’ 등 자치헌법으로서 갖춰야 할 개념들이 망라되어 있다.
조례제정, 그 이면의 중요성
제도 자체는 중립적이다. 주민참여예산조례가 좌파적인 조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여예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정치적인 편 가르기를 위한 의도적 언행을 일삼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라는 단체 회원들이 주민참여예산제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예산편성의 우선순위를 좌우한다면 이 정책을 좌파정책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결국 관건은 주민에게 있다. 제도를 잘 운영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제도는 공허하다. 그래서 조례를 잘 구성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회 문화를 바꿔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묻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동안 조례제정운동은 총론에 대한 문제의식은 매우 강했다. 가치나 방향과 관련해서 우리나라 법체계가 후진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총론을 뒷받침할 각론의 제시가 미흡했다. 브라질 포르뚜알레그리 참여예산은 발언권은 개방하되 발언 시간은 3분으로 제한한다. 공평하게 발언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대전 대덕구는 ‘참여포인트’라는 것을 제공한다.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일정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독일 리히텐베르그는 시민이 제안한 의견이 채택되지 않았을 때 왜 채택되지 않았는지를 정확히 전달한다. 주민의견에 대한 피드백 장치다. 청주시와 안산시는 200명의 시민이 서명을 받으면 시의 중요 정책 사업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할 수 있다. 책임 정책을 실행하는 좋은 수단이다. 스페인 알바세테는 매년 각 가정마다 주민제안서를 발송한다. 주민들의 의견을 촘촘히 듣기 위해서다. 이런 정책들은 단순히 아이디어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참여문화를 촉진시키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총론 실현을 위한 각론의 제시. 어쩌면 더 많이 고민되고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