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1일 경범죄처벌법이 전부개정되어 내년 3월 22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아래에서는 위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을 ‘개정법’이라고 부른다). 개정법은 ‘자발적인 구걸행위’를 법에 의해 처벌되는 경범죄유형의 하나로 신설하였다(개정법 제3조 제18호 후단). 즉, 종래의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도록 시켜 올바르지 아니한 이익을 얻은 사람’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도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받도록 규정하였다. 이러한 개정법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구걸행위를 하는 경우에 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고 있다는 경찰 또는 철도특별사법경찰 등의 판단만 있으면 바로 범칙금을 통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주거가 확실하지 않은 노숙인이 구걸행위를 한 경우에는 법 제9조 1항 1호에 따라 통고처분을 거치지 않고 지체없이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될 것이다.
생존을 위해 구걸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에게 다시 벌금을 물리고, 헌법상 기본권 보호의무 있는 국가가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여 내몰린 이들을 오히려 형벌로써 처벌하는 이 웃을 수 없는 역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빈곤이 처벌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러한 소박하고도 상식적인 의문에 대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개정법률안의 검토보고서에서 “공공장소에서 위협적이거나 무례한 방법에 의한 구걸행위, 집요한 구걸행위 등에 따른 일반시민들의 불쾌감 등을 고려할 때 이를 규제할 필요성이 있”고, “개정안에 따르더라도 타인의 통행방해 등을 초래하지 않는 단순 구걸행위는 처벌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취지로 답한 바 있다.
이 짧은 글은 개정법에 신설된 구걸행위 금지규정이 지닌 법적 문제점들을 살피고서 나아가 보다 근본적으로 이 법이 ‘규제할 필요가 없는’ 단순구걸행위와 ‘통행방해 등을 초래하여 규제할 필요가 있는’ 구걸행위를 구분하는 눈, 구분할 수 있는 눈을 애초에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묻고자 하는 글이다.
2.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
신설된 개정법 제3조 제18호 후단 중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한다’는 구성요건은 각자의 주관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판단될 수 있을 만큼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반한다. 통고권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처벌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큰 문제이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는 행위’가 과연 형벌로 규제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행위인지 자체도 문제된다. 경범죄처벌법에 대해서는 불법의 정도가 너무나 경미한 행위들 뿐만 아니라 도덕적 성격의 ‘기초질서행위’들까지 형벌로 제재하여 형벌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비판과 비범죄화의 요청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타인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는 행위는 형법상 폭행, 협박, 강요 등에 이르는 행위가 아닌 이상, 기초질서를 위반하는 정도에 불과할 뿐 범죄의 실질이 있다고는 볼 수 없는 행위이다. 이와 같은 행위를 형벌로 제재하는 것은 기본권인 일반적인 행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서 형법의 보충성원칙과 과잉금지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눈여겨볼 점은 개정 전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길을 막거나 시비를 걸거나 주위에 모여들거나 뒤따르거나 몹시 거칠게 겁을 주는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하거나 귀찮고 불쾌하게 한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이 경범죄처벌법 안에 이미 존재해왔다는 사실이다(‘불안감조성’ 행위. 개정법상으로는 제3조 제19호).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다는 제18호 후단의 구성요건은 위와 같은 제19호의 규정범위에 사실상 전부 포함될 수 있다. 그럼에도 제19호와 별도로 제18호 후단을 신설하였다는 것은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한다’는 특수한 행위 양태 부분에서 제19호의 일반적인 불안감 조성행위와 구별되는 고유한 불법성을 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결국 단순구걸행위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표면상의 설명과 달리 제18조 후단 신설의 배경에는 구걸행위 자체를 불온시하고 규제하려는 시각이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된다. 그리고 이러한 의혹에 보다 분명히 답하기 위해서는 현행 경범죄처벌법과 위 구걸행위 금지규정이 어떻게 만들어져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인지 그 뿌리를 찾아가보는 일이 필요하다.
3.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
대한민국 경범죄처벌법은 1954. 4. 1. 법률 제316호로 공포되어 같은 해 4. 21.부터 시행되었다. 그런데 이 법의 체계와 내용의 모태는 1908년 일본의 ‘경찰범처벌령’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다.
1908년 제정된 일본의 경찰범처벌령은 경찰국가적인 관점에서 국민의 일상생활을 규제하기 위하여 58종의 다양한 행위유형들을 경찰범으로 규정하여 처벌하는 법규였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우리나라에서는, 위 경찰범처벌령을 기초로 하되 식민지배를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처벌행위유형을 87종으로 늘리고 처벌절차를 보다 간소화한 ‘경찰범처벌규칙’이 조선총독부법령 제40호로 제정되어 시행되게 된다. 1954년 제정된 우리의 경범죄처벌법은 이러한 일제강점기의 경찰범처벌규칙을 그 전신으로 하고, 역시 경찰범처벌령을 모태로 약간의 수정만 거쳐 1948년에 제정된 일본의 ‘경범죄법’의 체계와 내용을 계수하여 만들어진 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걸행위를 경범죄로 보아 처벌하는 규정 역시 위 경찰범처벌규칙(1912년)과 일본의 경범죄법(1948년), 더 거슬러 올라가 일본의 경찰범처벌령(1908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의 경찰범처벌령은 부랑자(‘일정한 주거 또는 생업 없이 사방을 배회하는 자’)와 구걸행위자(‘구걸을 하거나 구걸을 하게 한 자’)를 규제하기 위하여 이를 경찰범으로 규정하여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부랑자와 구걸행위자에 대한 이러한 처벌규정은 경찰범처벌규칙과 일본의 경범죄법을 거쳐 1952년 경범죄처벌법에까지 내려오게 된다.
다만, 1954년 경범죄처벌법은 자발적인 구걸행위자를 경범죄 행위유형에서 배제시켰다. 위 법 제정 당시 국회 본회의에서는 경찰범처벌규칙, 일본의 경범죄법과 동일하게 ‘구걸을 하거나 구걸을 하게 한 자’로 행위유형을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걸인의 생계를 도모해주지 않고 구걸하는 사람을 취체(取締)의 대상에 넣는다는 것은 인권옹호에 모순’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고 10:68의 표결로 자발적 구걸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은 제정법 안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제정 경범죄처벌법은 ‘일정한 주거를 가지지 않고 제방에 배회하는 자’(동법 제1조 제3호)와 ‘타인을 구걸하게 하여 부정한 이득을 하는 자’(동법 동조 제26호)를 경범죄의 유형으로 규정하였다. 이 중 주거‧이전의 자유와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전자의 규정은 1988년에야 비로소 ‘국민의식수준의 향상으로 현실과 맞지 아니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삭제될 수 있었다.
4. 나가며
이와 같이 경범죄처벌법은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민중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던 경찰범처벌규칙을 이어받은 것으로서 민중을 규제하고자 하는 경찰국가의 패러다임에서 태생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구걸행위에 대한 처벌규정들 역시 같은 맥락에서 구걸행위 자체를 반사회적인 것으로 보고 형벌을 통해 규제하고자 한 규정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1954년 경범죄처벌법은 인권의 관점에서 자발적인 구걸행위 처벌 조항을 배제한 형태로 제정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배제되었던 구걸행위 처벌규정이 60여년을 돌아 2012년,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개정법은 60여년 전에 시행되던 구걸행위 처벌규정에 ‘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는 경우’라는 단서를 더하였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검토보고서를 비롯하여 구걸행위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에는 불쾌감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일반시민들’이라는 존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개정법은 유령처럼 불러낸 구걸행위 금지규정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일반시민들’을 끊임없이 호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정법에 새로 덧붙여진 위와 같은 구성요건 ―다른 사람들(즉, ‘일반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는 경우―은 통고권자의 주관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형벌로서 규제할 필요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내용으로서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므로 근본적으로 부당한 구걸행위 금지규정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규정을 통하여 구걸행위자와 노숙인들을 ‘일반시민’과 구분되는 ‘비(非)시민’으로, 단순한 규제를 넘어선 배제의 대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법제도와 법담론에 대한 고발이 필요한 때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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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 |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