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이뿐인가? 밤중에 동네 놀이터에 청소년들이 모여 있으면 십중팔구 돈이나 뺏는 불량 청소년들이다. 가리봉이나 안산 등지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될 수 있는 대로 길을 돌아서 가려고 한다. 잘 차려입지 않고, 외모가 다르고,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불온시하고 잠정적인 범죄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이들 모두가 공공장소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을 거리에서 청소하기 위해 온 동네에 CCTV를 달아야 하고 길거리에서 불량스러워 보이는 사람은 늘 검문검색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중의 하나가 3월 28일에 한국 국회에서 통과된 경범죄처벌법이다. 이 법률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는 구걸을 하면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나 구류에 처하게 되어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강제 퇴거시킨 것에 연이은 조치로 보인다. 이런 조치와 법률을 제정하는 이유는 보행자들의 안전과 도시 미관 때문이다. 이 조치들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사례들을 보더라도 지금 국가 관리와 도시행정에서 가장 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세금을 내는 자들의 ‘안전’과 관광객들을 위한 도시 ‘미관’이다. 도시는 점점 더 주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관광객들을 유혹하기 위한 ‘구경거리’로 탈바꿈했다. 도시의 ‘심미화’야말로 전 세계 모든 도시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그러니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걸인과 노숙자를 이들의 눈앞에서 치워버려 세금을 내는 사람과 관광객들의 눈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무엇이 불량하고 위험한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이 있다. 이제 우리가 무서워하고 추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서운 ‘행동’이 아니라 ‘더러움과 불량스러움’이다. 구걸하는 사람과 노숙인은 더럽고 불결하고 이주노동자와 청소년은 불량스럽다. 불결함과 불량스러움은 범죄인가? 만약 그 ‘불량스러움’이 학교폭력처럼 누군가에게 구체적으로 위해를 가한다거나 협박을 하는 것이면 그건 범죄일 것이다. 그런데 ‘불량스러움’이란 다분히 주관적이며 문화적인 것으로 정해진다. 그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가 불량스럽다고 규정하면 그건 그대로 ‘불량스러움’이 된다. 미국에서는 ‘후드 티’를 입는 것이 불량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불과 얼마 전에 한 흑인 소년이 경찰의 과잉 단속으로 살해되었는데 그가 불량스러워 보인 이유가 ‘후드 티’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갱단들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주로 입는 티가 후드 티이기 때문이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한 하원의원이 연설하러 연단에 후드 티를 입고 올라갔다가 끌려 내려오기도 했다.
나 또한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과거에 내가 살던 동네가 중․하층민들이 살던 동네였다. 새벽 3시에 후배가 잘 데가 없다고 찾아와도 되느냐고 전화가 왔다. 근처로 오라고 말한 다음 사거리에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경찰차가 나를 보더니 내려서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새벽 3시 ‘쓰레빠’에 ‘추리닝’ 차림으로 친구를 기다리는데 신분증 들고 나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없다고 하자 주민번호를 대라며 무전을 치고 난리가 났다. 항의하고 실랑이를 벌이는 차에 후배가 도착했다. 그러자 ‘오해’를 풀면서 하는 말이 새벽 3시에 추리링 입고 ‘어슬렁거리는’ 것이 수상해보여서였다고 한다.
‘불결함과 불량스러움’이란 이런 것이다. 불량스러움이란 일종의 ‘태도’와 ‘매무새’다. 양복 입고 머리에 무스 바르고 다니는 사람을 우리는 불량스럽다고 하지 않는다. 호주머니에 손 넣고 침을 찍찍 뱉거나, 혹은 다리나 계단 난간 위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을 우리는 불량스럽다고 말한다. 위에서 말한 이주노동자나, 청소년들이나, 노숙인들이나, 이런 사람들의 태도를 ‘불결하고 불량스럽다’고 말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이 말하는 ‘불량스러움’은 주류의 문화가 아니라 대다수 하위문화의 문화적 특징에 붙여진 그들의 ‘평가’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가 어느 한 순간에도 안전할 수 없다는 ‘위험과 위협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시간에 그들이 할 일이 없다는 것, 거기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결국 불량스러움이란 남들 노동하는 시간에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의 일체의 태도와 행동, 그것을 자체를 일컫는 말이나 다름없다. 일하지 않음, 그것이 곧 불량스러움이고 그것이 곧 범죄다.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다. 인간은 노동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 물론 이때의 노동이란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노동이어야 하며 돈으로 그 가치가 환산되는 임금노동이어야 한다. 구걸과 빈곤이 처벌받게 된 것은 노동이 인간다움과 윤리인 시대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구걸, 노동의 문제에서 미학의 문제로
원래 일하지 않고 구걸하는 것이 범죄인 것은 아니었다. 사실 유럽 중세 부자들에게는 큰 근심이 하나 있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힘들다는 성서의 말씀 때문이었다. 죽어서 지옥에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더구나 현세에서의 부와 영화를 죽어서도 영원히 누리고 싶던 그들이었다. 이들의 고민에 교회가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자선이었다. 비록 당신의 부귀영화는 지옥으로 가는 특급열차 표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라고 교회는 가르쳤다. 이 가르침은 부자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였다. 그래서 중세의 부자들은 길을 가다가 구걸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거지가 자신의 영지로 들어오면 '예수를 만난 것처럼' 기뻐하며 환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거지'는 자신들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은인과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구걸하는 사람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중세가 몰락하고 근대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자본주의가 태동하면서 부를 축적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거지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노동력의 완벽한 낭비였다. 더구나 떠돌아다니면서 대충 먹고 지내는 거지의 존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고되게 노동하여 삶을 이어가려고 하기보다는 여차하면 사람들이 일을 때려치우고 거지가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거지만도 골치 아픈데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유랑과 구걸을 금지하기 위한 온갖 법안이 마련되었다. 이미 14세기부터 부랑과 걸식을 금지시켰고 노동력의 이동에도 제한을 가했다. 노동력이 이동하면 임금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걸인들은 감금되거나 귀나 코를 절단하기도 했고 노예선으로 보내버리고 했다. '면허'를 받은 걸인들만 구걸할 수 있고 나머지들에는 가혹한 처벌을 가하는 법률을 제정하기도 했다. 면허가 없는 거지가 구걸하다 적발되거나 자기가 면허를 받은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떠돌다 체포되면 가혹하게 처벌했다. 걸인들은 교정원이나 작업장으로 보내 강제노역을 시켰다. 이 당시의 빈민법이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법이 아닌 것은 명확하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노동윤리를 전면화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 노동력을 확보하고 재생산하여 부를 창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가 구걸하는 사람과 빈민을 처벌하는 이유는 그들이 노동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이 ‘더럽고 불량스럽기 때문’이다. 노동만이 문제가 아니라 미학이 문제가 되었다. 이미 지그문트 바우만이 『쓰레기가 된 삶』과 『새로운 빈곤』에서 말한 것처럼 노동력이 쓰레기가 된 시대이다. 자본주의의 초기가 노동력을 생산하는 것이었다면 복지국가에서는 시장으로부터 노동력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었다. 시장은 지나치게 변덕스러웠기 때문에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그 변덕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언제든 사람들은 빈민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의 가장 큰 역할은 빈민들을 나락으로부터 보호하는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빈민들이 게을러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사회로부터 추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었다. 부의 생산이 노동이 아니라 금융이나 투자로 옮겨가면서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에 큰 부담이 되었다. 생산해 봤자 쓸데가 없는 것이다. 거꾸로 국가의 가장 큰 역할은 ‘시민을 시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가의 임무는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서 ‘잉여’를 생산하는 쪽으로 드라마틱하게 옮겨갔다. 쓰레기를 만들고 그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국가의 가장 큰 역할이 된 것이다.
형벌국가, 국가의 면죄부
『가난을 엄벌하다』(로익 바캉)에는 이 불량스러움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복지국가’에서 ‘형벌국가’로 넘어가는데 크게 일조하게 되었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미국의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가장 크게 평가를 받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는 오명에 시달리던 뉴욕을 안전한 도시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경찰력조차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철수하였던 할렘 등과 같은 흑인 게토 지역을 해체했다. 밤이면 무슨 살인사건이 일어나는지 모른다는 센트럴파크에서 조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치안이 확보되었다. 이른바 ‘무관용zero tolerance’정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뉴욕이 안전해진 것은 결코 줄리아니의 강력한 형벌정책 때문이 아니다. 범죄율이 감소한 것은 ‘경기가 좋았고, 거리범죄에 연루되기 쉬운 젊은 층의 인구가 감소한 덕분’이었다. 또 마약 매매업의 추세가 경쟁에서 독점으로 바뀌면서 마약 범죄율이 낮아진 것이 원인이었다. 이민의 추세가 여성화된 것도 한몫했다. 여기에 더해 가장 재밌는 것은 형량이 강화된 자체가 범죄율을 낮춰버렸다는 것이다. 뉴욕의 경우 ‘빈곤층의 30~40%가 감옥에 가 있고, 형량이 장기화하면서 보통 15~30년까지 선고’를 받게 되자 ‘감옥에서 평생 살다가 죽어나가는 꼴’이 되었다. 당연히 뉴욕의 범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고 이건 무관용 정책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아무튼 이 정책은 곧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국에서도 익숙해져 있는 ‘범죄의 전쟁’이나 ‘마약과의 전쟁’ 등과 같은 수사는 곧 전 세계 치안 담당자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을 매료시켰다. 좌파와 우파가 따로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사회당 죠스팽 총리가 이 정책을 따랐고, 영국에서는 신노동당의 블레어 정권이 이 정책을 추종했다. 멕시코에서도 진보정당 소속의 멕시코시티 시장이 줄리아니 파트너십 회사와 4천5백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이 ‘마노 도라’-철권 정치가 청소하려고 한 것은 ‘차장 닦기 벌이꾼’이나 ‘노점상’들이었다. 흉악범죄가 아니라 흉악범죄의 ‘씨앗’이라고 그들이 주장하는 그런 소소한 ‘범죄’와 도시 미관을 해치고 중산층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불량스러운 행동’들이었다.
이들은 곧 ‘편리한 적’이 되었다. 이들은 ‘보이는 것만으로도 방해되고 공공장소에서 소란은 물로 사건 사고를 일으킴으로써 항상 뭔가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쾌하고, 짜증나게 만드는’ 존재였다. 따라서 더 이상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을 담당하는 것으로 ‘큰 국가’를 꿈꾸던 관료들에게도, 시장에 대한 간섭을 배제하고 노동의 안정성을 뒤흔들어 부를 창출하려고 하던 자본가들에게도, 삶의 ‘불안’을 체제와 구조, 그리고 제도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나를 불안하게 하는 내 이웃의 낯선 자들에게서 찾으려던 중산층에게도, 몰락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을 즉자적으로 표출하고 싶어 했던 ‘서민’들에게도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불량스러운 ‘빈민들’은 ‘편리한 적’이었다.
그 결과 국가는 더 이상 빈민들을 위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임무가 아니라 안전을 위해 이들을 사회로부터 걸러내는 치안의 ‘저인망’을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가 되었다. 사회불안의 책임은 ‘사회보장이나 경제정책의 영역에서 철수한 국가가 아니라 빈민들 자체’에게 돌아가야 했다. 빈민은 그들 삶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국가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결국 이들의 의존성만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나아가 이런 상태를 방치한다면 ‘불법과 의존, 그리고 범법이 영국의 신빈민층 사이에서 일제히 증가하고 이 신빈민층이 서구 문명을 고사시킬 것’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존립문제로까지 비화한 것이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복지warfare'에서 '일하는 복지workfare'로의 전환이다.
이 정책은 정말 효율적이었다. 무엇보다 첫 번째로 사회의 불안과 불만으로부터 국가는 완벽하게 면죄부를 발행받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저 불량스러운 동네와 사람들의 문제로 치부되었다. 두 번째는 할 일을 잃은 국가가 자기 스스로 자기 일자리를 만들었다. ‘작은 정부’론 때문에 끊임없이 천덕꾸러기 취급만을 받던 국가는 치안의 영역에서는 오히려 이제 더욱더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었다. ‘한 번도 법을 위반한 적이 없는 수만 명의 젊은이들을 매해 잠정적으로 구속시키는 일’은 ‘인건비와 장비’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일자리 창출의 효과마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교도관이나 경찰들을 비롯한 치안과 형벌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 미국에서는 15년 동안 수감인구가 무려 3배가 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999년 말까지 문제 지역에 집결된 2만 명의 안전 요원과 중계 지역 요원 1만5천 명은 이른바 청년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 10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고용률에 있어서의 착시 현상이다. 수감률이 올라갈수록 실업률은 떨어지는 효과가 있다. 구직인구에서 인위적으로 수백만 명을 강제로 제거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들 사회 바닥의 노동력이 감옥으로 이동함에 따라 ‘최악의 열악한 임금제와 변칙적 경제 시장’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처벌의 압력이 높아질수록 이주노동자와 그 자녀를 중심으로 아무 일이나 해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진다. 이들에게는 ‘감옥이냐 부당한 일자리냐’는 선택밖에는 없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강화되는 것이다.
이 결과는 빈민들에겐 다시 치명적인 것이었다. 빈민들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은 급속도로 약화되었다. ‘극빈아동원조’이라는 것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를 위해 국가로부터 원조금을 받으면 그 부모는 반드시 2년 안에 일을 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있다고 한다. 정부 부서들 사이에서 행정정보망이 통합됨으로써 전과기록과 세금기록 등을 통합시켰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에서는 ‘불법 이민자가 노동시장 및 교육, 주택, 사회복지, 의료복지 등 공공 서비스 혜택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는 정보망이 구축’되었고 ‘불법 체류자는 더욱더 어둠 속으로 숨어들게’ 되었다.
이주노동자들뿐만 아니다. 빈민들 모두가 유례없는 삶의 위기를 겪고 있다. 학업에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삶-계획의 전면적인 차질과 가정 불안, 그리고 소외와 낙인, 정신병리학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빈민들은 공격당하고 있다. 빈민들을 처벌하면 처벌할수록 빈곤은 고착화된다. 이들이 한 번 감옥에 갈 때마다 이들에게는 돌아갈 공간이 파괴된다. 감옥에서 나오더라도 의지할 곳이 없다. 또한 감옥에 나온 다음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 기본적인 지출이 필요한데 그들에게는 문자 그대로 돈이 한 푼도 없다. 직업이 있을 리 만무하다. 발가벗겨진 상태에서 감옥에 가고 감옥에서 나올 때 다시 발가벗겨진다.
결국 구걸을 처벌하고 빈민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형벌국가’의 정책은 가난에 대한 빈민의 무능이 아니라 국가의 무능을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을 통제하여 시민을 방어할 능력도 의사도 없는 것이 신자유주의 국가 통치의 핵심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시장으로부터 도태당한 사람들에게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회로부터도 추방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형벌국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 형벌국가는 시민 사이에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끊임없이 확산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지금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공격과 위기에 처해 있다고 선전해야 한다. 내부로부터 사회를 붕괴시키고 있는 가장 친숙하면서도 편리한 적. 그들이 바로 공공장소와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자들. 도시빈민들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